기능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참조하라.
「기능론: 목적론과 인과론」
http://cafe.daum.net/Psychoanalyse/NSiD/400
http://en.wikipedia.org/wiki/Gerald_Cohen
에서 Gerald Cohen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볼 수 있다.
Gerald Cohen은 기능 개념을 명시적으로 이용해서 마르크스의
역사 유물론을 재구성하려고 한다.
Cohen suggests two sorts of “evolutionary” accounts as a basis for
functionally explaining a social practice or institution without giving the
mechanisms (1986, 229-232). The first, analogous to natural selection, is
roughly that the social environment favors the survival of institutions and
practices which produce benefits for powerful groups. If religion promotes
acquiescence to domination, dominant groups will be more likely to survive in
social environments which produce religion. Marx (1976, 100-102) endorses the
Darwinian analogy, unfortunately without elaboration.
The Second is analogous to Lamarckianism: Beneficial practices or
institutions, once intentionally “acquired”, are culturally preserved because of those benefits. Fisk’s functionally explanation is Lamarckian. If welfare exists because
dominant groups foresee that it enhances social stability, the explanation is
functional and intentional. (「Functional Explanation
and Metaphysical Individualism」, Justin Schwartz, http://www.jstor.org/pss/188355, http://theacro.com/zbxe/413065)
나는 「기능론: 목적론과 인과론」에서 세 가지 의미의 기능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화 생물학적 의미의 기능 개념은 자연 선택을 끌어들이며, 공학적 의미의 기능 개념은 지적 존재인 인간의 설계를 끌어들이며, 신학적
의미의 기능 개념은 지적 존재인 신의 설계를 끌어들인다. 따지고 보면 신학적 의미의 기능 개념도 공학적
의미의 기능 개념에 포함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Cohen는 신학은 거부한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기능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자연
선택에 의한 “설계”와 지적 존재인 지배 계급에 의한 설계를 끌어들이고 있다. 나는 사회학에서 자연
선택이나 지적 설계를 끌어들여 기능 개념을 정식화하는 것 자체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 둘 모두 가망성이
약간이라도 있어 보인다. 문제는 Cohen이 엉망으로 정식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에서는 무엇이 기준인가? “유전자를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잘 복제되게 하는 것”이 기준이다. 즉 자신을 더 잘 퍼뜨리도록 표현형에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자연 선택된다.
이것은 동어반복적인 뻔한 진리다. 만약 어떤 대립유전자
A가 같은 유전자좌(locus)에 있는 다른 대립유전자 B에
비해 스스로를 더 잘 복제하도록 표현형에 영향을 끼친다면 미래 세대의 유전자 풀에서는 A의 비율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결국 A의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
개체 수준의 자연 선택에서는 무엇이 기준인가? 포괄 적합도다. William Hamilton은 「The genetical evolution
of social behaviour(1964)」에서 위에서 말한 유전자 수준의 자연 선택 기준에서 출발하여 수학적 논증을 거쳐서 포괄
적합도 개념을 정립했다. 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이라는 요인 때문에 포괄 적합도 개념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포괄 적합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치는 형질이 대체로 자연 선택된다”라는 명제 역시 자명하다. 왜냐하면 유전자
수준의 자명한 진리에서 출발하여 수학적으로 논증을 거쳐서 도출되었기 때문이다.
George Williams와 William
Hamilton의 이론적 연구가 널리 알려지면서 진화 생물학자들은 자연 선택의 기준에 대해 상당히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종에 이득을 주는 형질이 자연 선택된다”와 같은 명제는
사실상 완전히 폐기되었으며 “집단에 이득을 주는 형질이 자연 선택된다”라는 명제는 (진화 윤리학계와 같은 예외가 있긴 하지만) 빈사 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인기가 떨어졌다.
Cohen이 제시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지배하는 계급에 이득을 주는”이 그 기준이다. 즉 Cohen에 따르면 지배하는 계급에 이득을 주는 제도, 문화, 관습, 이데올로기
등이 자연 선택된다. 왜 “지배받는 계급에 이득을 주는”이라는 기준도 아니고, 기능론적 사회학자들 주장하는 “사회 전체에 이득을 주는”이라는 기준도 아니고, 하필 “지배하는 계급에 이득을 주는”이 기준이란 말인가? Cohen의 정식화는 진화 생물학자가 “으뜸 수컷에게 이득을 주는 형질이 자연 선택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엉터리다.
“유전자가 더 잘 복제하도록 하는”은 제대로 된 기준인
반면 “지배하는 계급에 이득을 주는”이 왜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는 전혀 명확하지 않다.
이것이 Cohen의 기능론의 핵심 약점이다. 자연
선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자연 선택의 기준을 제시해야 하며, 어떤 기준을 제시할 때에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배 계급에게 이득을 주는>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인 나의 취향이다” 또는 “<사회 전체에 이득을 주는>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능론적 사회학자인 나의 취향이다”라는 식의 말로는
자연 선택을 제대로 이해한 학자를 한 명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
Richard Dawkins의 경우에는 “밈(meme, 모방자)의 복제에 도움을 주는”이
기준이다. 이것은 제대로 된 기준이다. 어떤 유전자가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복제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면 세대가 지날수록 그 유전자는 유전자 풀에서 더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밈이 경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복제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영향을 끼친다면 세월이
지날수록 그 밈은 밈 풀(meme pool)에서 더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된다. 따라서 그런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뻔한 진리다.
다만 밈 개념이 유전자 개념보다 훨씬 지저분하기 때문에 얼마나 큰 성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라마르크주의라는 딱지가 꼭 들어맞는 것 같지는 않지만, 지적 존재에
의한 설계를 끌어들이는 것 역시 그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복지 제도를 그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자본가의 욕망(세금 많이 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을 생각해
볼 때에도 별로 그럴 듯하지 않고, 실제 역사와 부합하지도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좌파의 엉터리 기능론: “복지
제도의 기능은 체제 안정화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44
첫댓글 좌파는 '지배계급이 지배하는 국가기구, 언론 등을 통해서'지배계급에게 '이득을 주는 제도, 문화, 관습, 이데올로기 등이 자연 선택된다'고 하지 않나요? 그들과 이야기하면 항상 나름의 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만.. 다시말해 언론이 여론에 영향력을 주고 기업이나 국기기관이 금력 혹은 행정력으로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