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일이란 어떤 행사를 치룰 때 좋은 날을 정하고 나쁜 날은 피하는 것을 말한다. 좋은 날은 길한 신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날이고 좋지 못한 날은 흉한 신이 온갖 훼방을 놓는다고 한다.
즉, 매일매일 인간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있는데, 도움이 되는 吉神과 도움이 되지 않는 凶神이 있다는 동양적 사고관이다.
다음은 철학관에서 사용하는 택일력에 책에 실린 내용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선택에 달려 있으며, 그 선택은 택일로부터 시작된다. 비록 택일에 대한 과학적 증거나 학문적 뿌리가 빈약하지만, 민간에서 오랜 세월 관습적으로 지켜온 것들이다.”
택일은 관혼상제 때 주로 쓰이며, 이사 갈 때 택일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집 지을 때, 집수리할 때, 장 담글 때, 여행갈 때, 파종할 때, 영업장 개업할 때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적용한다. 어떤 사람은 손님과의 약속날짜도 날을 고르고 심지어 복권도 아무 날이나 사지 않는다.
이사 날은 손(損) 없는 날을 택하는데, 손해 없다는 뜻은 나쁜 귀신의 영향을 받지 않는 날을 말한다.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은 날짜별로 동서남북을 다니며 해코지 하는데, 음력 9일과 10일은 하늘로 올라가기 때문에 손 없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서남북 아무 곳으로 이사를 가도 탈이 없기 때문에 좋은 날이라 선호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손 없는 날에 이사 예약이 몰려 평일에 비해 비용이 비싼 경향도 있다.
풍수에서는 주로 묘지 관련 작업할 때 택일을 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한식 때를 선호한다. 매년 4월 5일이나 6일의 한식날은 손 없는 날이라 여겨 이장이나 화장 등의 묘지 작업을 해도 무탈하다고 생각하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식날을 선호하다 보니 작업하는 사람을 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어떤 곳은 1년 전부터 한식날 묘지 작업을 미리 예약해 놓기도 한다. 덩달아 화장장 예약도 한식날을 전후해서는 일찌감치 마감되는 일이 벌어진다.
윤달도 마찬가지이다. 윤달은 무엇을 해도 부정을 타지 않는 탈 없는 달이라는 믿음이 있어 묘지 관련 일이 증가하게 된다. 윤달은 3년마다 돌아오는데, 2025년, 2028년, 2031년 등이 해당된다.
참고로 택일법 종류는 생기복덕법, 삼재법, 대장군법, 삼살방위법 등이 있으며, 묘지로 국한하면 더욱 많아지고 복잡해진다. 거기에 더해 개인의 사주까지 따지다보면 날짜를 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된다.
한식일이나 윤달 등 손 없는 날에 대한 것은 동의보감 단방법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단방법은 동의보감을 지은 허준 선생이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간단한 처방을 적어 놓은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유황은 설사를 즉시 멈추게 하고, 황토는 이질이나 설사에 효험이 있다. 복숭아꽃은 변비에 좋고, 간을 보할 때는 인진쑥을 달여 먹고, 폐가 좋지 못하면 도라지가 좋다는 식이다.
가난한 서민들은 한약방에서 비싼 약재를 처방받기 어렵기 때문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이루어진 가장 서민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렇듯이 한식이나 윤달, 손 없는 날의 개념 또한 동의보감 단방법 같은 일반적인 택일인 것이지 만사형통의 길일은 아닌 것이다.
요즈음 들어 풍수에서 부쩍 택일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은 종자에 따라 파종하는 시기가 맞아야 수확할 수 있다는 논리로 택일의 법을 강조하는데, 말인즉 맞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은 작물처럼 파종하는 시기와 수확하는 시기가 정해진 것 아니며, 생사를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택일의 법이 하나같지 않고 모두가 제각각이다. 이 법에 맞추면 저 법에 틀리고 저 법에 맞추면 또 다른 식에 맞지 않으니 어느 것을 믿을 것이며, 누구의 방식을 쫓을 것인가.
천문과 지리에 해박한 지식으로 택일하여 임금의 즉위식을 하고 또 좋은 날을 골라서 국상을 치렀지만 조선왕실의 현실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정승·판서들 묘를 볼 것 같으면 당대 최고의 지사들이 잡아주었을 법한 것들이 의외로 상식이하의 자리가 부지기수이다.
터무니없는 곳을 정해 놓고는 흉사만 잦으니 택일의 때가 맞지 않았다고 궁색한 변명으로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썩은 가지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보았자 꽃을 피울 수 없는 법이다.
이장 택일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님 묘가 그늘진 추운 곳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이장 운이 맞지 않는다고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우리 부모님은 자식이 물에 빠지거나 불속에 갇혀 있다면 그 어떠한 위험도 마다않고 뛰어 들어서 구해주신다. 그것이 한결같은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도 자식들은 한가하게 날을 가리며 자신들의 이해타산만 따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한평생 살다보면 분명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다. 그러나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간사이다.
택일법에 연연하지 말고 현실에 맞게 실행하면 된다.
특히 한식이나 윤달 등은 속설일 뿐이니 집착할 것 없다.
행사를 치름에 가장 좋은 날은 가족 모두가 화목하게 모일 수 있는 날이 최고의 길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후회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다.
https://youtu.be/IC13DW6LZ20
첫댓글 교수님
잘들었습니다.
명심 합니다.
가정의 달 행복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