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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미학 실천하는 길, 보시·나눔에 있다
재가자로서 비움의 미학, 무소유를 실천한 방온 거사(龐蘊居士, ?~808)의 진영(일본 도쿄박물관 소장).
➲ 부처 선발 대회
사찰에 가면 수선당(修禪堂)이나 심검당(尋劒堂)이라 쓰인 편액을 발견할 수 있다. 선(禪)을 수행하고 지혜의 칼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모두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선방(禪房)을 가리킨다. 흔치는 않지만 선방을 선불당(選佛堂)이라 부르는 곳도 있다. 이는 글자 그대로 부처를 선발하는 장소였다. 한마디로 승과(僧科)를 실시하던 과장인데, 오늘에는 마음 닦는 수행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담아 선불당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 봉은사나 장성 백양사에 가면 이를 볼 수 있다.
선불장이라는 이름은 이번 주제인 방거사(龐居士, ?~808)와 인연이 깊다. 그는 형양(衡陽) 출신으로 이름은 온(蘊)이며, 자는 도현(道玄)이다. 부유한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과거시험을 위한 공부를 한다. 그런데 목불을 쪼개 군불을 지핀 일화로 유명한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과 함께 과거를 보러 장안으로 향하다가 우연히 주막에서 한 승려를 만나 삶의 진로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승려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공부가 아깝네. 그대들은 왜 부처를 뽑는(選佛) 곳엔 가지 않는가?”
두 사람의 삶을 온통 흔들어놓은 질문이다. 또한 선불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인물들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결국 단하천연과 방거사는 과거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의 문하에 들어가 부처가 되는 진짜 공부를 하게 된다. 당시 젊은이들은 과거시험을 보는 대신 선불장으로 향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전해진다. 왜냐하면 과거 자체가 온갖 부정부패로 얼룩져 폐해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돈과 배경이 없어 시험에 합격할 수 없는 이들이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당나라는 선의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뛰어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이면에는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도 자리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아무튼 방거사는 마조 문하에서 열심히 정진한 끝에 한 소식을 얻게 된다. 이때의 심정을 담은 게송이 <조당집(祖堂集)>에 전해지는데, 잠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시방의 무리가 한 자리에 모여 각각 무위의 법을 배우네.
여기가 부처를 선발하는 곳이니 마음을 비우면 급제하여 돌아가리
(十方同一會 各各學無爲 此是選佛處 心空及第歸).”
그는 관리를 선발하는 과장이 아니라 부처를 뽑는 선불장에서 진짜 급제를 한 셈이다.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참으로 멋진 시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는 참다운 공부가 무엇인지, 진짜 합격이 무엇인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경전을 열심히 암기하여 답안지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텅 비우는 것이 참다운 급제라는 뜻이다. 그래서 방거사는 글공부를 아무리 많이 했더라도 마음으로 그 뜻을 깨치지 못하면, 이는 마치 땅만 많이 차지한 채 마음 소가 밭을 갈지 않는 것(心牛不肯耕)과 같다고 강조했다. 이런 밭은 풀만 무성할 뿐(田田皆是草) 벼 싹이 나올 수가 없다(稻從何處生). 마음공부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은 경구다.
방거사는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승려가 아니라 평생 거사(居士)로 산 인물이다. 거사란 도력이 높은 남성 재가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불교의 역사에서 그는 <유마경>의 주인공인 유마와 함께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거사다. 그는 도량을 떠나 세속에서 가족들과 함께 대나무로 엮은 바구니와 조릿대를 팔면서 청빈한 삶을 살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많았지만, 이를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무소유의 삶을 이어갔던 것이다.
특히 방거사의 마지막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열반의 시기가 다가오자 그는 딸인 영조(靈照)에게 해를 보고 있다가 정오가 되면 와서 알려달라고 했다. 딸은 밖에서 해를 보고 있다가 정오가 지났는데도 일식 때문에 해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확인하려고 방거사가 밖에 나간 사이 영조는 아버지가 열반에 들려고 했던 자리에 앉아 가부좌한 채로 입적에 들었다. 아버지보다 먼저 열반에 든 딸의 모습을 본 방거사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7일 후에 고요 속으로 떠나게 된다. 다음은 방거사의 열반송이다.
“다만 온갖 있는 것을 비우고 없는 것을 채우려 하지 마라. 즐겁게 머문 세간 모두 그림자와 메아리 같나니(但願空諸所有 愼勿實諸所無 好住世間 皆如影響).”
➲ 없는 것 채우지 말고 있는 것을 비우라
오래 전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 1210)의 <수심결(修心訣)>을 공부하면서 방거사를 알게 되었다. 지눌은 이 책에서 <전등록(傳燈錄)>에 있는 방거사의 “신통과 묘용은 다만 물 긷고 나무하는 것(神通并妙用 運水及搬柴)”이라는 말을 인용하여 일상의 모든 행동이 본래 마음의 작용임을 밝히고 있다.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마조의 말과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마조의 제자답게 방거사는 물을 긷고 나무를 자르는 일상 모두가 도의 작용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 구절은 또 다른 스승인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을 만나 마음의 눈을 뜨고 그에게 바친 게송의 일부다. 석두는 이 시를 칭찬하면서 출가사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재가자로 남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방거사는 머리를 깎지 않고 재가자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것이 방거사가 원하는 삶이었다.
그는 여느 선사들처럼 우리들 삶을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이 무상(無常)하며 공(空)하다고 노래했다. 그렇기 때문에 없는 것을 채우려 하지 말고 있는 것을 비우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겼다. 평생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인물답게 비움의 미학을 노래한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부처와 중생의 차이를 여기서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 부처의 길이라면, 없는 것을 채우는 것이 중생의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나에게 없는 것을 채우면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잘 살았던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채운다 해도 또 다른 욕망이 계속해서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욕망의 속성이다. 그 결과 정신적 불안이나 온갖 짜증, 스트레스 등의 고통이 뒤따르게 된다. 불교식으로 말한다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삶이 펼쳐지는 셈이다. 그래서 방거사는 이렇게 말한다.
“탐욕 없는 것이 보시보다 낫고 어리석음 없는 것이 좌선보다 낫다. 성냄 없는 것이 지계보다 낫고 생각 없는 것이 인연을 구하는 것보다 낫다(無貪勝布施 無癡勝坐禪 無嗔勝持戒 無念勝求緣).”
<조당집>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누군가를 위해 보시를 하고 열심히 수행을 하며 계율을 지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이는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을 대치하는 좋은 처방이다. 하지만 약은 병이 생겼을 때 먹는 것이지 병이 없다면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가장 좋은 상태는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본래 삼독이 없는 상태가 가장 좋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삼독의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이를 대치하기 위한 공부가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방거사 역시 자신의 재산을 모두 보시하고 수행을 하며, 계율을 지키는 삶을 살았다. 증세에 따른 처방은 분명 필요하다. 방거사의 유훈에는 인간의 탐욕을 치료하는 명약이 소개되어 있는데, 바로 온갖 있는 것을 비우는 것이다. 비움의 미학을 실천하는 길이 보시, 즉 나눔에 있다.
얼마 전 한 월간지의 요청으로 <무소유와 풀소유>라는 주제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소유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보시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평생 나눔을 실천하다가 2015년 세상을 떠난 이인옥 할머니의 명언을 소개했다.
“돈은 똥이다. 쌓이면 악취를 풍기지만, 흩어지면 땅을 비옥하게 한다.”
생각할수록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다. 할머니는 전 재산을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하고 자신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살았다. 그런데 매달 정부로부터 나오는 돈마저 저축해서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모두 내놓았다. 방거사의 열반송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비우고 떠난 분이다. 할머니의 삶을 보면서 돈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가치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1975년 평생 모은 30억6000여만원, 지금의 가치로 3000억원이 넘는 거금을 기부하고 떠난 대원(大圓) 장경호(張敬浩, 1899~1975) 거사도 있다. 그는 동국제강의 창업자이자 대한불교진흥원의 설립자로서 오늘의 한국불교를 있게 한 주역이다. 모두 돈을 똥처럼 생각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비우고 우리가 사는 이 땅을 비옥하게 만든 인물들이다.
무소유의 아이콘인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오래 전 이 말에 꽂혀 지금까지 20년 넘도록 세탁기 없이 손빨래를 고집하며 살고 있다. 세탁기가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수행이라 여기면서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생각해낸 방법이다. 무거운 옷이나 이불을 빨 때면 세탁기에 대한 유혹이밀려오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마음의 근육이 잘 견디고 있다. 방거사의 유훈을 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본다. 소유욕에 눈이 멀어 없는 것을 채우려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불교신문3682호/2021년9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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