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중의 복은 인연 복’
보림 이충호
지난 11월의 첫째 금요일(2021.11.5) 내장산에 갔었습니다. 내장산은 정말
원 없이 다녀본 곳이라서 새로울 것도 없어서 펜을 잡을 소재가 없을 것 같
았는데 새롭게 내 가슴을 울리게 한 ‘복중의 복은 인연 복’이라는 명귀가 나
타난 것입니다. 내장은 나에게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남겨준 곳인데 지금부
터 그 일부라도 올려 보겠습니다.
1978.1.2 나의 첫 번째 결혼식 후 기념 여행을 갔던 곳이 내장산 이었습니다.
약혼으로 이름 지어진 우리의 여행은 하늘이 마치 우리를 축복이라도 하는 듯
이 솜털 같은 눈이 펄펄 내렸고 온천지가 온통 하얀 눈밭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설경을 보았지만 그 때 그 내장산만큼 좋았던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내장산과의 인연은 그런 좋았던 추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광지
의 방범과 교통관리에 시달렸던 단풍철의 악몽 같은 기억은 그 날 기념 여행
이후 사라지고 좋기만 하였었답니다.
그리곤 오랜 친구들과 봄이면 봄, 가을이면 가을 그리고 눈 오는 겨울철에도
서래봉 쪽을 수없이 오르내리곤 하였었답니다. 그리곤 내장산을 연례행사처럼
마나님 모시고 다녀와서 새로운 맛은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장사 특히 서
래봉 쪽은 다닐 만큼 다녀서 우리 이상 안다는 사람은 건방떤다고 생각했었답
니다.
지난 11월의 첫째 금요일의 내장산 방문의 당초 계획은 약간 철지난 단풍 구경
외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답니다. 년 전에도 다녀온 불에 탄 내장사 대웅전이나
한 번 둘러보고 케이불 카를 타는 일상적인 것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후에 귀가 길에 정읍의 대봉시를 넉넉하게 사기로 했었습니다.
어쨌든 경내버스를 타고 종점인 내장사 일주문 근처에 내리면서도 별다른 계획
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상이 좋은 버스운전사가 ‘서래봉 아래 벽련암을 가도 좋
을 것’이라고 느닷없이 안내를 하였습니다. 서래봉 쪽의 벽련암은 처음 듣는 절
이름이었습니다. 호기심이 나서 짝꿍의 반응을 살폈더니 좋다라는 표정이시었습
니다.
일주문 옆에 세워진 안내문은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닐진데 그동안 눈을 감고 다녔
었나 ? 그렇게 좁지 않은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남짓을 오르다 보니 벽련암이 나
타났습니다.
벽련암 안에 들어서면서 대웅전 뒤 쪽을 올려보니 눈에 친한 서래봉의 바위들이
그 위용으로 우리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 동안 몇 년간 답답한 것만 같았던 나의 가슴이 확 뚫리는 것이 아니겠
습니까? 이런 경우 보통이라면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싶었을 것 같았는데 말입니
다. 나는 그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감동을 맛보았단 말입니다.
절 마당에서 한번 둘러보니 작으마한 연못에 세워진 돌로 만든 불상을 향한
상석(床石)에 새겨진 글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복중의 복은 인연 복’이라는 법어였습니다. 절집에서 많이 쓰는 말씀은 아니
었지만 내 마음에 그만 쏙 파고들어 왔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나에게 다가온 인연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악연 보다는 좋은 인연이
훨씬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얼굴도 기억되지 않은 그 버스운전사하
고의 인연이 아니었으면 벽련암과의 만남은 생전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벽련암은 원래 내장사로 불리었었는데 현재의 내장사를 신축하면서 고내장사(古內藏
寺)등 여러 이름으로 호칭되다가 현재의 벽련암이 되었다는 역사를 알게 된 것도 인연
중의 인연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좋은 인연 보다는 이제 부터라도 남에게 좋은 인연으
로 남아야겠다는 모처럼 철든 생각이 고개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福 중의 福은 因緣 福’
2021.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