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牽牛)와 직녀(織女)
견우(牽牛)란 글자는 시경 소민 지 십(小雅 小旻之什)을 비롯한 각종 선진문헌에 많이 실려 있다.
시경을 살펴 보면 소민(小旻)이란 글자는 소호(小昊, 昊天)를 바꾼 글자인 듯 하다. 좌전에는 견우(牽牛)를 더벅머리 총각 노예란 뜻에 수우(豎牛)라 했다 . 그가 별이 되어 은하수를 경계로 직녀와 떨어져서 일년에 한번 까마귀가 은하수에 놓은 다리를 건너 직녀를 만나는 날이 7월 7석이다. 견우성는 북두칠성 큰 곰좌에 들어 있다. 물 떠먹는 쪽박 같다 하여 “Big Dipper” 라 하고, 고다 밭을 가는 농구 같다 하여 “plough or plow” 라고도 한다.
초씨역림 (焦氏易林) 오른다는 뜻의 승지(升之)편에는 우가 권력을 잡고 견우계미(牽牛繫尾)라, 즉 꼬리에 매달렸다가 뒤에는 죽었다. 껍질을 벗긴다는 뜻의 박지 (剝之)편에는 수모를 당하고 돌아온 신하를 수우(豎牛) 라고 했다. 산해경에는 임금이 수해帝命豎亥步) 에게 명하여 동서 오억보 (五億步)가 넘는 먼 거리를 제어 보라고 했다. 해를 숭상하던 유목민 젊은이 에게 명한 임금을 일설에는 우(禹)의 명이라고 했다 . 이렇게 임금(단군왕검)과 견우 그리고 우(禹)와의 관계를 은미하게 기술 했다.
이 세 사람의 관계가 죽서기년에 역사적 사실로 실렸다. 홍수로 진흙으로 덥힌 도산(塗山)에 모여 회의 결산(會稽)을 하고 방풍씨(防風氏)를 죽였다. 그 곳에서 우(禹)가 죽었다. 우는 그때 나이가 45세 였다. 우(禹)가 방풍씨(殺防風氏)를 죽였다는 예기는 선진문헌 여로 곳에 실렸다. 방풍씨를 산해경 해외북경에 상유(禹殺相柳)이라고 했다. 같은 사람이다. 방풍씨를 치수사업을 하던 공공의 신하 (共工之臣曰相柳氏)라고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에서 병풍이란 낱말이 나타났다. 단군 설화에 나오는 세 보좌관의 한사람 우사(雨師) 가 동양 설화에 나오는 견우직녀의 견우다.
그를 수해(豎亥) 수우(豎牛) 상유 (相柳) 또는 방풍씨 라고 했다.
모솔 이돈성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