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을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다가 펴드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종려나무는 의, 아름다움, 승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깔고 흔들었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찬송하면서 주님을 환영했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여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종려주일부터 한 주간은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주간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때로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닭이 우는 새벽시간까지 입니다.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즐거운 교환이라는 말씀을 듣고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교환을 경험합니다.
울월스나 상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돈을 지불하여 교환합니다.
직장에서 일을 하고 기여를 하면 대가로 주급이나 월급을 받습니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여 먹고 돈을 지불하는 것도 교환입니다.
집을 임대하여 사용하면서 돈을 지불하는 것도 상응하는 대가의 상호교환이지요.
이와 같은 교환은 일상적이며 상대적인 교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인관계에서도 상대적인 교환을 하며 살아갑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면 웃음으로 돌려받습니다.
때로는 슬픔을 주고받는가 하면 분노와 상처를 서로 교환하기도 합니다.
조금 다른 의미이지만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의 교환도 있습니다.
기업인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정치인은 기업인에게 이권을 제공하는
교환입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교환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는 이런 거래들 때문에 정치인과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주고받는 모든 교환은 대부분이 조건적이며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교환을 하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는 것은 모두 쓰레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온갖 문제들과 고통과 상처와 죄악의 무거운 짐들을 가져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받으시고 오히려 온갖 좋은 복으로 교환하여 주십니다.
그러면서도 조금도 언짢아하시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하십니다.
우리의 고통, 절망, 미움, 원망, 분노와 죄악의 쓰레기들을 다 받아주십니다.
그리고는 용서와 사랑, 희망과 행복, 평화와 축복으로 교환해 주십니다.
세상에서 상대적인 교환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이상한 교환을 이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짊어지신 저주와 죽음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와 생명과 축복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나도 즐겁고 하나님도 즐거우신 즐거운 교환의 장소입니다.
교회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즐거운 교환”의 장소라고 했습니다.
종교개혁가인 존 칼빈과 신학자인 칼 바르트는 십자가를 “화목”의 장소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즐거운 교환의 장터이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들이 화목을 이루는 장소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즐거운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터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와 불의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저주와 형벌의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버림당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죄 지은 모습 그대로, 상처입고 못난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며 죄인을 대신하여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고통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고통을 깊이 느낄 때 참된 회개와 진실한 고백을 하게 되고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저주와 고통의 문제들을 모두 하늘의 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즐거운 교환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아래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신명기 27장 26절에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떠나 각기 제 갈 길로 행하며 자기 생각과 욕망을 따라 살면서 죄를 범한 사람들입니다.
큰 돌도 호수에 던지면 가라않고 작은 돌멩이나 모래들도 가라않는 것처럼 큰 죄를 범한 사람이든지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이든지 모두가 죄인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율법과 양심의 정죄와 책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율법의 저주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명기 21장 22-23절에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죄를 범하여 율법과 양심의 정죄를 받고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나무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저주에서 속량해 주시고 오히려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고 성령의 약속을 받는 축복의 사람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찔리고 상함을 받으시며 죽임을 당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복을 주시려는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칠백여년 전에 주님이 당하실 수난과 그 의미를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4-6절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찔리고 상하며 채찍에 맞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값을 지불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와 평화와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즐거운 교환을 믿음으로 받으시고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 예수님이 형벌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 예수님이 상처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는 부요를 얻었습니다.
- 예수님이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심으로 우리는 자랑이 되었습니다.
- 예수님이 거절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용납 받고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이 죄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는 의로움을 얻었습니다.
-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는 새로운 부활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 예수님이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죄 짐과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아가 온갖 좋은 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즐거운 교환을 경험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즐거운 화목이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이 만나 화목을 이루는 장소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아버지를 떠나 자기 마음과 욕망을 따라 죄를 지으며 방탕하게 인생을 살던 아들이 있었습니다.
방탕하게 살면서 인생을 낭비하며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허비하여 마침내 극심한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고통 속에서 자기 아버지의 집에 살 때가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했었는지 깨닫고 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떠나 자기 욕망대로 인생을 허랑방탕하게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서는 아들이 아니라 일꾼 중에 하나가 되어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방탕한 아들은 마침내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멀리 아버지의 집이 보이는데 아버지가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와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들은 자기의 잘못을 고백하면서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이라 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하여 종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라
-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라
- 발에는 신을 신기라
-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방탕하게 살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비참한 상태로 돌아온 아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며 끌어안고 입 맞추며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시며 사랑으로 받아들이시는 장소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잃어버린 아들과 딸의 지위를 회복시켜주시며 화목을 이루는 장소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는 십자가의 은혜와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우리의 자격이나 조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29절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격 없는 내 힘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십자가의 은혜를 통하여 즐거운 교환과 화목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십자가의 은혜는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통한 즐거운 교환의 은혜와 축복을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고 자랑하며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자기중심으로 자신의 만족과 성공을 위해 세상을 살던 사람이 무엇보다 먼저 나를 위하여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을 더 사랑하며 주님을 위하여 사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4-15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독일에 진젠도르프(Nicolaus L. G. von Zinzendorf 1700∼1760)라는 귀족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경건주의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이 분이 헌신적인 삶을 살게 된 데에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술관을 방문했다가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있는 예수님의 그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실제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저렇게 피를 흘리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미술관 바닥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예수님, 당신은 저의 죄 때문에 피를 흘리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을 위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다음부터 진젠도르프 백작은 자신의 시간과 재산을 바치며 전적으로 주님께 헌신하고 전도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께 헌신하여 시간과 물질을 바치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여 십자가의 즐거운 교환과 화목의 복음을 이웃에게 나누고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통은 나눌 때 더 작아지고 기쁨과 즐거움은 나눌 때 더 커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누리는 즐거운 교환의 축복을 이웃에게 전하고 나누며 살아갈 때 더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종려주일과 고난주간을 맞아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님이 당하신 수난과 십자가를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죄와 저주에서 속량해 주시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는 십자가의 즐거운 교환의 축복을 믿음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신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십자가의 사랑과 즐거운 교환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