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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회복 요법과 다중 인격
나는 빙의(possession), 기억 회복 요법(recovered memory therapy), 다중 인격, 최면과 같은 문제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그런 생각도 별로 없다. 내가 주로 공부하고 싶은 것은 진화 심리학의 이론적 기초와 진화 윤리학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들과 내 생각을 쓰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과학자들의 생각이 거의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이 글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미국에서 기억 회복 요법과 다중 인격 치료를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다. 한국에도 아마 비슷한 치료법을 쓰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미국처럼 대대적으로 유행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다중 인격에 대해 궁금한 사람은 다음 두 편의 글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상당히 짧은 두 편의 글은 다중 인격 개념을 옹호하는 학자들의 연구가 얼마나 개판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풍부한 참고문헌도 제시하고 있어서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The Persistence of Folly: A Critical Examination of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Part I. The Excesses of an Improbable Concept」, August Piper, Harold Merskey, http://ww1.cpa-apc.org:8080/Publications/Archives/CJP/2004/september/piper.pdf
「The Persistence of Folly: Critical Examination of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Part II. The Defence and Decline of Multiple Personality or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August Piper, Harold Merskey, http://ww1.cpa-apc.org:8080/Publications/Archives/CJP/2004/october/piper.pdf
August Piper는 <Skeptical Inquirer>에도 기고했으며 책도 썼다.
「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Witchcraft Survives in the Twentieth Century」, http://www.csicop.org/si/show/multiple_personality_disorder_witchcraft_survives_in_the_twentieth_century
『Hoax and Reality: The Bizarre World of 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나는 기억 회복 요법을 다룬 「프로이트의 유혹 이론과 기억회복요법」을 쓴 적이 있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35
그리고 정신분석의 문제에 대해서 『나는 왜 프로이트주의자가 아닌가 (version 0.2)』라는 글을 쓰다 만 적이 있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oAb/3
Frederick Crews는 정신분석의 문제점을 지적한 여러 학자들의 글을 『Unauthorized Freud - Doubters Confront a Legend』에서 모아 놓았으며 나는 그 중 일부를 『왜 프로이트의 이론이 헛소리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http://cafe.daum.net/Psychoanalyse/Glrk/31
나는 이 문제들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생각은 없지만 앞으로도 아마추어로서 어느 정도 더 공부하고 이 글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은 조금은 있다.
최면에 걸린 사람에게 전생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요청하면 실제로 전생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최면술사는 전생에 대해 이야기하라고만 했을 뿐이며 피험자의 전생에 대해 미리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이런 것을 전생 퇴행이라고 부른다. 어떤 경우에는 TV 쇼에서 단지 재미로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치료를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많은 최면술사와 피험자들이 전생에 대한 이야기가 실제 이야기라고 믿는다. 그들은 불교식 윤회론 또는 그와 비슷한 것을 믿는다. 그들은 실제로 전생에서 겪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전생 퇴행 시에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 회의적인 학자들은 꼼꼼히 살펴보면 그런 이야기는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회의적인 학자들의 말을 믿는다.
나처럼 전생이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전생 퇴행 현상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최면에 걸린 피험자에게 약간의 암시만 주어도 자신도 몰랐던 낯선 이야기를 술술 들려준다는 점에 주목하자. 그 이야기의 기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지만 그런 현상이 있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비슷한 현상으로는 UFO 납치에 대한 기억(?)이 있다. 뭐든 쉽게 믿는 사람들은 UFO에 납치되어 강제로 항문 검사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최면 시에 피험자가 할 때 그것을 그대로 믿는다.
나 같은 사람은 전생이나 UFO 납치를 믿지 않는다. 따라서 전생에 대한 기억이나 UFO에게 납치 당한 기억이라고 피험자가 이야기할 때 그것이 실제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연령 퇴행은 어떤가? 전생 퇴행의 경우에는 전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반면 연령 퇴행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최면 시에 잊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고 주장하는 피험자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어야 할까? 전생에 대해 기억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지만 어린 시절에 대한 잊혀진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최면 시에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생 퇴행과 UFO 납치 기억의 예에서 잘 보여주듯이 최면 시에 떠올린 기억이라는 것이 엉터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연령 퇴행 시 떠올리는 기억이 실제인지 아닌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 회복 요법이라는 치료법을 쓰는 치료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연령 퇴행 시의 기억이 실제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특히 잊었던 기억 중 외상(trauma)이 된 것들을 중시한다. 육체적, 성적 학대 경험이 주로 등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하면 감당하기 힘든 그런 기억이 억압(repression)된다고 한다. 그 억압된 기억들이 어른이 되어서 온갖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것들을 끄집어내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성적 학대에 대한 기억 중에 자신이 한두 살 때에 친아버지가 항문 강간을 했다는 것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UFO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항문 검사다. 나는 왜 항문이라는 테마가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치료사가 항문에 대한 암시를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항문이라는 테마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어떤 뇌의 메커니즘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식이 한두 살 때에 친아버지가 항문 강간을 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거나 사실상 없어 보인다. 보통 가족 내 강간은 양부나 계부가 저지르며 한두 살 때가 아니라 적어도 대여섯 살이 되었을 때 일어나며 보통 사춘기가 되었을 때 일어난다.
치료사들은 학대에 대한 기억이 진짜라고 우기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한다. 이런 점은 다중 인격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사가 그런 것들이 사실일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 그런 믿음이 환자(?)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이며 환자도 그것을 굳게 믿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UFO 납치나 전생에 대한 기억을 피험자가 믿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 이러면 재앙이 일어난다. 이제 어른이 된 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좋아했던 아버지가 악마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갑자기 깨닫게(?) 되며 가정은 풍비박산 난다.
정신과에서는 보통 다중 인격 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MPD) 또는 해리성 정체 장애(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 DID)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는 그냥 다중 인격이라고 부르겠다.
먼저 다중 인격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그것을 치료하고자 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들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 끔찍한 외상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기억을 억압하거나 해리시킨다. 그리하여 억압된 기억을 품고 있는 또 다른 인격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이 다른 인격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 인격(들)을 불러내서 이야기를 들어 주어야 한다.
양극성 장애(bipolar disorder) 또는 조울성 장애(manic–depressive disorder)에서는 기분이 들뜨고 활발한 조증 단계와 우울한 울증 단계가 교차된다. 어떤 경우에는 그 주기가 매우 짧아서 48시간마다 바뀌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August Piper는 과거에 이런 장애가 다중 인격으로 오해 받았다고 주장한다.
범죄자들 중에는 다중 인격을 흉내 내서 처벌을 피하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이런 시도를 해서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통계를 본 적은 없다. 어쨌든 다중 인격이라는 진단명이 DSM에도 실렸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다중 인격을 흉내 내는 것이 어느 정도 효과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다중 인격 개념 옹호자들에 따르면 다중 인격은 보통 어린 시절에 성적 학대 등을 당해서 일어난다. 따라서 다중 인격이라는 판정을 받으면 범죄자는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로 비추어질 수 있다. “내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은 다 어린 시절에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다중 인격은 상당히 심각한 병으로 여겨진다. 쉽게 말하면 다중 인격 흉내는 미친 척 하는 것이다.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면제 받거나 덜 받을 수 있다.
다중 인격 개념 옹호자들 중 몇몇은 실제 다중 인격 장애가 있는 것과 흉내 내는 것을 구분할 수 없다고 실토한다.
의원성(醫原性) 질병(iatrogenesis)이란 의사와 병원 때문에 생긴 병을 말한다. 초기 산부인과에서는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다. 심지어 의사들이 손도 제대로 씻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집에서 애를 낳을 때보다 죽는 산모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것을 지적한 사람은 왕따를 당하고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다.
August Piper에 따르면 다중 인격은 의원성 질병이다. 기억 회복 요법과 다중 인격 치료는 상당히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둘 모두 치료(?)가 시작될 때에는 환자에게 별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사는 환자가 어린 시절에 심각한 외상 경험을 했기 때문에 뭔가를 억압하거나 해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생각은 프로이트의 이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과거의 기억을 다 끄집어내야 치료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프로이트의 치료법과 비슷하다.
치료사는 뭔가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기억 회복 요법에서는 기억을 되살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다중 인격 치료에서는 다른 인격을 불러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른 인격을 불러오는 것도 기억을 되살리는 하나의 방편이기 때문에 결국 두 치료법은 상당히 비슷하다.
치료사는 최면, 향정신성 약물, 집요한 추궁, 집단 치료에서의 정신적 압박 등의 방법을 사용해서 과거의 학대 기억을 떠올리라고 또는 다른 인격을 불러오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많은 경우에 실제로 무언가를 기억해내거나 다른 인격이 나타난다. 그러면 치료사는 자신의 짐작이 입증된 것이라고 확신하며 점점 더 많은 것을 환자에게 요구한다. 그러면 환자는 점점 더 기괴한 기억을 떠올리거나 점점 더 많은 인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딸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아버지를 고발하는 일이 벌어지거나 자신이 다중 인격이라는 깨달은 사람이 우울증이나 심각한 혼란에 빠진다. 이전에 없던 환각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갑자기 엄청나게 충격적인 기억들을 떠올린 다음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고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온갖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미국에서 상당히 유행해서 엄청난 해악을 끼쳤던 기억 회복 요법은 다행히 지금은 사그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다중 인격 치료는 여전히 미국과 캐나다에서 상당히 유행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에 수출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중 인격 개념 옹호자들이 최근에 몰락을 겪고 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기억 회복 요법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프로이트도 초기에 최면을 사용했으며 초기 다중 인격 연구자 중 한 명인 Pierre Janet도 최면을 사용했다.
깊은 최면에 걸면 최면 중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가 보통 꿈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현상은 별로 놀랍지 않다.
다중 인격의 핵심적인 특성은 다른 인격이 하는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다중 인격 치료사들은 최면을 걸거나 강한 암시를 준다.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했을 때 환자가 자신이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 즉 다중 인격이 되는 일이 별로 놀라운 일 같지는 않다. 다중 인격 치료를 장기간 동안 벌어지는 최면 또는 유최면 상태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최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최면을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어떤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 또는 오작동하여 최면 현상이 일어나는지 해명해야 한다. 최면에 대한 온갖 연구들은 현상을 기술할 뿐이지 이런 정도로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빙의, 기억 회복 요법, 다중 인격은 모두 최면 현상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빙의는 다중 인격과 상당히 비슷하다. 빙의의 경우에는 보통 학계에서 무시당하는 반면 다중 인격은 미국과 캐나다 같은 나라의 학계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둘 모두 무당이나 치료사가 최면 또는 유최면 상태로 피험자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런 상태에서 상당히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과학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피험자, 무당, 치료사는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한 후에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믿게 된다. 그러면 자신들의 방법을 더 밀어붙이며 더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면서 이론은 점점 기괴해지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첫댓글 빌리 밀리건 이후에 매스컴에서 아주 흥미있게 다루었기 때문에 내용에 언급한 것처럼 의사가 환자를 다중인격으로 유도한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범죄자가 어릴 적 학대를 핑계삼지만 프로파일러는 속지 않는답니다. 물론 속지 않는 프로파일러에게 앙심을 품고 프로파일러를 서류와 씨름하게 만들지만 말입니다. 범죄학자와 끔찍한 연쇄살인범과의 인터뷰에서 어릴 적에 성적으로 학대당했다고 주장하지만 범죄학자는 그것이 거짓말일 것이라는 근거를 나열하는 다큐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