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칼빈주의 지성
3장 하나님 중심주의
1. 칼빈주의의 기본 원리
칼빈주의 신학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실제적인 속죄, 성령의 인격과 사역 등과 같은 모든 본질적인 복음 교리들을 포함한다. 또한 그것은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안셀무스, 그리고 마틴 루터와 같은 신학적 거장들에 의해 발전된 많은 교리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다 칼빈이라는 한 위대한 인간에 의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그래서 칼빈주의가 ‘칼빈’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는 것이다.
그는 조직하고 체계화하는 데 천재적이었다. “칼빈주의는 가장 광대하고도 심오한 기독교이다. 가장 순전한 기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칼빈주의는 가장 일관성 있고도 균형 있는 기독교이다”(발렌타인 헤프)
칼빈주의 체계의 핵심은 무엇인가? 예정론도 있고 언약 사상도 있다. 하나님의 주권이 핵심이다.
주권은 ‘통치’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최상권, 하나님의 왕권 그리고 하나님의 신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권은 하나님을 모든 국면에서 완전하신 분으로, 그리고 모든 의와 거룩을 소유하신 분으로 선언하는 그분의 모든 속성들 안에서 행사된다. 주권적으로 은혜로우며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다.
여기서 우리는 칼빈주의의 참된 정수를 만나게 된다.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이며, 그분의 뜻이 역사의 열쇠가 되는 우주의 주권자이심을 믿는다.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존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고도 독립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심을 믿는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처음과 마지막을 아심을 믿는다. 칼빈주의자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며 보존하며 통치하며 명령하심을 믿는다. 그는 또한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완전히 드러날 것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주권을 전횡적이며 독단적인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의 주권으로 이해할 때, 바로 이 주권이 교리적 칼빈주의의 정수가 된다.
2. 하나님 중심주의
개혁주의 신학의 가장 주된 관심사는 삼위 하나님이다. 즉,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성적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 그 자체인 것이다.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을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 버렸다.
개혁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만물을 향하여, 모든 피조 세계에 대하여, 모든 피조물들의 노력에 대하여, 그리고 신자의 삶의 모든 국면에 대하여 포괄적이고도 주권적이며 부성적인 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의 지배적인 사상은 바로 창세기 1장1절의 “태초에 하나님이”이라는 말씀이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은 오직 권리와 권세만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주권적이고도 은혜롭게, 오직 언약의 방식으로만 스스로 의무에 묶이시고, 언약 안에서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지신다. 물론 그것은 제1원인이시요 만물의 궁극적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손상시키지 못한다. 우주는 우연이나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주권적인 법칙에 의해 통치될 뿐이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하여 존재한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오직 의무만 가지고 있을 뿐 청구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을 거스르는 그 어떤 행위도 심판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국면에 대하여 법을 제정하시고는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을 다 동원하여 예배를 통하여, 매일의 삶을 통하여, 매 순간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개혁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의 철저한 특징에 관심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삶을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론 즉 하나님에 대한 교리(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성적이며 주권적이신 하나님)는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이다.
칼빈주의자로서 우리는 하나님께 푹 빠져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엄과 아름다움과 거룩하심과 은혜에 압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고 그분의 임재를 간구하며, 그분을 우리 삶의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사회의 정화는 천국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일을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성경 공부와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3. 교회와 칼빈주의의 표지
어거스틴. 개혁주의가 초대 교부신학자이자 저술가인 어거스틴을 높이 평가하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삶과 구원에 관한 그의 관점이 하나님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칼빈. 칼빈의 삶 자체가 하나님 중심주의에 대한 풍성한 주석과 설명을 제공해 준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위해 분투했다. 그 결과 경건의 열매를 맺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의 가장 아름다운 모범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영혼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일한 행복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즐거워하고 기뻐하기 위해 천국에 가는 것이, 지상에서 가장 안락한 곳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
하나님 중심적인 열정은 오늘날 우리의 타락과 신학적 과오로 말미암아 대부분 상실되고 말았다. 소위 많은 복음주의 교회들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잃어버렸고, 결국 성경적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해도 잃어버렸다. 복음주의는 인간 중심이 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에 관하여 성경에 제시된 실재와 아주 거리가 먼 견해를 조장하고 증진시켰다. 적지 않은 개혁주의 교회들이 하나님 중심주의를 포기하고 인간 중심주의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이제 우리는 너무나 자주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다루기 쉬운 하나님을 제시한다.
우리는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거룩에 대해 너무나 무지하고 무감각하기 때문에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를 허용한다. 위험한 타협들과 교묘한 배교들, 에베소 사람들의 냉담함과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무관심이 우리 삶에서 ‘비개혁주의’를 더욱 증가시키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보다 우리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더욱더 드높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