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4,19-28; 요한 14,27-31ㄱ
+ 찬미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어떠한 평화일까요? 오늘날은 평화를 주로 마음의 평화로 해석해서, 세속적인 소원이 이루어지거나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시던 시대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 즉 ‘로마의 평화’라고 불리는 시기였는데요, 이는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80년까지 200여 년간, 로마제국이 무력으로 식민지들을 억압하며 이루어진 강제적 평화였습니다. 이 시기에 반란이나 소요가 적었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평화의 시기라 불렀지만, 이는 거짓된 평화였고 위장된 평화였습니다.
제국에 도전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반란자들은 본보기로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반란자 중 하나로 취급되어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 패가 적힌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바로 이 ‘로마의 평화’ 시기였습니다.
이제 곧 ‘로마의 평화’로 인해 희생되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와 가장 가까운 것은, 시편 72장(2-7절)의 말씀인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그가 당신의 백성을 정의로,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통치하게 하소서.
산들은 백성에게 평화를, 언덕들은 정의를 가져오게 하소서.
그가 백성 가운데 가련한 이들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며
폭행하는 자를 쳐부수게 하소서.
세세 대대로 해처럼 달처럼 살게 하소서.
그가 풀밭 위의 비처럼, 땅을 적시는 소나기처럼 내려오게 하소서.
그의 시대에 정의가, 큰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저 달이 다할 그때까지.”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메시아께서 가져오시는 평화로서,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과 하나되는 평화입니다. 또한 이사야서가 말하는(11,1-11)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미는”, 인간과 자연의 장엄한 화해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과의 평화, 이웃과의 평화, 피조물과의 평화, 자기 자신과의 평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평화는 겨자씨처럼 자라나고 있으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고난이나 환난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1독서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안티오키아와 이코니온에서 몰려온 유다인들에게 돌을 맞아 죽음 직전의 상황에 처했고, 도시 밖에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 도시 안으로 들어갑니다.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2서에서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2코린 11,25)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지만, “그 밖의 것들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에 대한 염려가 날마다 나를 짓누릅니다.”(2코린 11,26-27)라고 고백합니다.
이러한 환난을 몸에 지니고 살면서도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하느님 나라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로움과 평화와 기쁨”(로마 14,17)이라고 말합니다.
평화는, 환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환난 가운데에서도 하느님께 충실하려는 믿음 한 가운데 자리한 예수님의 선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이 평화를 미사 중에 서로에게 빌어줍니다. “평화를 빕니다.”
이 인사는, 당신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진리와, 빛과, 생명과, 기쁨이 당신과 함께 하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빌어준 평화가 그 사람 안에서 열매 맺고, 그 사람이 나에게 빌어주신 평화가 내 안에서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장 바띠스뜨 샴페인, 돌 맞는 바오로 (1667년 경)
출처: Jean-Baptiste_de_Champaigne_-_The_Stoning_of_St._Paul_-_Arnot_Art_Museum.jpg (1785×2048) (wikim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