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사무엘상 28장에서 신접한 여인에 의해 죽은 사무엘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무엘상 19:18-24에서의 사울 왕도 여타의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신에 의해 예언도하고 벌거벗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답변)
이 두 가지 질문을 묶어서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 어떤 극박한 환경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사울 왕은 신앙의 흉내만 내고 있는데 이러한 형식적 신앙은 모든 인간들의 본성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선 사무엘과 사울 왕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사무엘에 있어 이스라엘의 왕의 자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겸손하게 움직이는데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호와 하나님만이 진정 이스라엘의 왕됨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자신이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왕의 자리를 소지해야 한다는 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 자세는 사무엘이 보기에 하나님의 구원 정신에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나를 자신의 사적 통솔력이나 정치력으로 부지하는 나라인 줄 여기고 있습니다. 사울 왕도 예언도 하고 선지자처럼 행동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신이 임했기에 가능했지 결코 사울 왕 개인의 자질이나 신앙심에 근거한 결과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신이 임한 자는 자신이 갖게 된 신앙의 능력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당사자의 신앙의 능력의 토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예들 들면, 다윗이 골리앗을 죽여놓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승리'라고 언급하는 차원을 두고 말합니다. 다윗은 그 이후의 전쟁에서 또다시 물 맷돌을 활용한 적이 없다는 점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태를 진두 지휘하시는 분은 신앙 좋은 다윗도 아니오 사무엘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런 점에서 사울이 성신 받아 예언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본인이 신앙심이 좋아서 하늘로부터 보너스 받은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이 사울 같은 인간도 쓰겠다면 얼마든지 쓰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울 본인에게 악신이 임하니까 이제부터 그는 지난 날 자신의 행했던 신앙적 노하우나 종교적 형식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섭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와내고 백성들이 폐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사울왕 본인은 전혀 모릅니다. 바로 사무엘 선지자는 이런 엉터리 같은 사울 왕의 태도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합니다. "당신은 더 이상 이스라엘 왕이 아니오!"
그러나 이러한 선고를 순순히 그냥 받아드릴 사울 왕이 아닙니다. 여전히 자신이 왕인 양 여기면서 사무엘 선지자를 찾습니다. 사무엘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확인하므로 아직도 자신이 하나님의 종임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사무엘은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울의 왕국은 반드시 다윗의 왕국으로 바뀌기 위해 말씀에 의해 필히 망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사울왕의 근원적인 속성을 사울왕의 멸망과 연결짓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블레셋 군대로 하여금 사울왕 군대와 맞서게 했습니다. 사울왕은 남들 보기에 대단한 신앙가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신접한 자와 박수무당을 쫓아냅니다.
자 그러면 기적 같은 블레셋 군대가 갑자기 물러가서 이스라엘이 공격받지 않게 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사울은 자신의 제사와 기도에 응답하지 않은 하나님과 선지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면서 신접한 여인을 어쩔 수 없이 찾게 되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쉬운 예로, 해태 프로 야구팀 감독 김응룡씨가 지금은 자신이 감독 맡은 인물이 못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서는 변명하기를 "으∼응, 종범이도 없고, 동열이도 없고" 하는 것으로 핑계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왕은 지금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사울왕을 통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왕 역할을 다 수행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왜 사울왕은 하나님에 의해서 왕 자리에서 제거될 수밖에 없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사울왕 자신이 생각하기를, 가장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고 참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긴 신접한 여인이 어쩌면 사울 왕 자신의 깊은 내심의 심정을 어떻게 그토록 제대로 현실화 해내는 것에 대해서 사울왕 본인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접한 여인보다는 차라리 사무엘 선지자를 아쉬워하고 다시 찾고 싶었던 그 사울왕의 본심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곧 신접한 여인의 무가치성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무가치성 행위였고 이것이 바로 사울왕의 진정한 본질이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하나님은 사울왕을 통해서 온 이스라엘에 전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사울왕은 신접한 여인을 부추겨 위로나 받고자 신접한 여인을 찾을 때 변장하고 간 것이 아닙니다. 죽은 사무엘로부터 마치 살아 있을 때처럼 지시를 받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무엘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예언은, 이스라엘 나라가 블레셋의 공격을 무사히 이겨내고 사울왕 중심으로 다시 재편성된다는 내용이 아니라 사울왕 중심의 왕국은 이미 끝났다는 점을 재차 언명할 뿐입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의 같은 것은 사울왕과 같은 형식적 종교심에서나 나올 질문인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1. 한번 죽은 자가 과연 되살아 오는 것이 가능한가?
2. 마귀 들린 신접한 여인이 불러낸다고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이 고분고분 그 말에 따르는 것이 가능한가?
3. 과연 사울왕 앞에 나타난 사무엘이 마귀가 변장해서 나타난 것인가, 아니면 진짜 사무엘 선지자일까?
4. 혹시 신접한 여인이 자신이 사무엘의 뜻을 일반적으로 도용해서 대신 사무엘왕에게 예언하는 게 아닐까?
5. 옛날처럼 오늘에도 점쟁이들이나 무당들이 죽은 혼백을 불러내는 일이 있다는데 바로 그런 류가 아닐까?
6. 예언을 듣고 낙담하여 실신한 사울왕을 친절히 보살피고 기력을 회복시키고자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준 이 신접한 여인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이웃 사랑을 실천한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평가받지 않을까?
7. 다윗이 정식으로 백성들로 왕으로 인정받기 전이기에 사울왕이 최선을 다하여 국가와 민족을 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모든 행정적 처방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 노력에 대해서 충분히 동정 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
여기에 대한 답변은 간단합니다. 신앙이란 모든 호기심과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총집합을 하는데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종교적인 열심과 행위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거 자체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계획에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시도한 신접한 자에 대한 대 축출은 하등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행위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행위를 인정해서 구원의 일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자생력으로만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사무엘상 28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변함 없는 약속과 인간의 종교적 행위를 대비시키는데 있습니다. 사울왕처럼 아직도 자신이 구원받을 권리 생존할 권리가 있다고 여기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구원은 오르지 주님의 권리에서만 나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