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예뻐 보이기 위해 여러 수단을 사용한다. 세수를 하고, 목욕을 함으로써 지저분하지 않게 보이도록 한다. 몸매가 드러나게 하거나 다른 식으로 예뻐 보이게 하는 옷을 입는다. 화장을 한다. 성형 수술을 한다. 적어도 문명국에서는 여자가 이런 방면으로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들인다.
여자는 왜 예뻐 보이려고 할까?
많은 사람들이 그 대답은 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에 따르면 그 이유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은 굳이 학문적으로 파고들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끌어들인다. 여자가 “나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감을 위해서 화장을 한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당신의 의식을 뿐이다. 무의식 수준에서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하는 것이다”라고 응수한다.
어떤 사람은 진화 심리학을 끌어들인다. 남자에게 잘 보여야 더 잘 번식할 수 있으며 남자가 여자의 외모에 집착하기 때문에 여자가 화장 같은 수단을 사용하여 예뻐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굳이 학문적으로 파고들 필요도 없을 정도로 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같은 여자가 있을 때 남자는 성형도, 화장도 안하고 옷도 아무 거나 입었을 때에 비해 성형 전문가, 화장 전문가, 패션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을 때 훨씬 더 예쁘다고 느끼며 남자는 예쁜 여자라면 환장을 한다. 따라서 여자가 예뻐 보이려는 이유는 뻔하다. 남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George Williams가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에서 이야기했듯이 “위하여”가 들어가는 목적론적 설명 또는 기능론적 설명을 남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효과(effect)와 기능(function)을 구분해야 한다. 또는 효과와 목적을 구분해야 한다.
여자가 예뻐 보이면 남자가 좋아한다는 점은 뻔하다. 즉 “예뻐 보이다”는 “남자가 좋아한다”라는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이로써 입증된 것은 효과일 뿐이다. “예뻐 보이는 것”의 목적 또는 기능이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과학적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다.
여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해서 왜 예뻐 보이려고 애쓰는지 물어보는 방법이 있다. 만약 절대 다수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면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그것이 목적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연구를 본 기억이 없다. 어쨌든 그렇게 답하지 않는 여자들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무의식 수준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해야지”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하려면 그 증거를 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프로이트식 꿈 해석이나 증상 해석은 검증 방법론으로서 엉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손쉬운 “증거”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는 증거를 대야 할 것이다.
진화 심리학을 끌어들이고 싶다면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가 어느 수준에서 작동하는지 명시해야 한다.
“왜 먹는가?”에 대한 심리 기제 수준의 답변은 “배 고파서”다. 반면 선택압의 수준 또는 진화 수준의 답변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배고픔 기제가 없거나 부실했던 우리 조상들에 비해 제대로 작동했던 우리 조상들이 에너지를 더 잘 얻은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배고픔 기제가 현재와 같은 구조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제가 작동하여 배고픔을 느껴서 먹게 된다.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는 심리 기제의 수준에서 작동하는가? 즉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의식적 수준이든 무의식적 수준이든 하면서 사는가? 아니면 그것은 선택압의 수준 또는 진화 수준에서 작동했는가? 즉 어떤 심리 기제가 남자에게 잘 보이도록 만드는 기능을 했기 때문에 진화했으며 그 심리 기제 때문에 여자가 화장을 하는 것인가?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가설로는 성형 본능, 패션 본능, 화장 본능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형 본능이 진화했을 리가 없다. 효과적인 성형 수술의 역사는 자연 선택의 기준으로 볼 때 너무 짧다. 효과적인 화장 기술의 역사는 그보다는 길지만 역시 의미 있는 진화가 일어나기에는 상당히 짧아 보인다. 옷의 역사의 경우에도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살던 우리 직계 조상들은 (거의) 홀딱 벗고 살았던 것 같다.
성형 본능, 패션 본능, 화장 본능과 같은 심리 기제가 아니라면 어떤 심리 기제가 여자가 화장을 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그 심리 기제들은 어떤 선택압 때문에 진화한 것일까? 이런 문제를 명시하지 않고 진화 심리학을 끌어들여서 “여자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면 별로 설득력이 없다.
여자가 화장, 성형 등을 하는 이유에 대해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말고도 온갖 진화 심리학적 가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 두 가지만 제시해 보겠다.
1. 인간은 자신의 공동체에 규범을 받아들이도록 진화했다. 그래야 온갖 방면으로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공적인 자리에 나갈 때에는 화장을 해야 한다는 규범이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 이런 규범과 여자의 규범-수용 기제가 결합하여 여자는 화장을 한다.
2. 여자에게도 높은 지위를 열망하도록 하는 심리 기제가 진화했다. 또한 인간에게는 자원에 대한 열망이 진화했다. 취직을 하면 지위와 돈을 얻을 수 있다. 예쁘면 취직하기 쉽다. 지위-열망 기제와 자원-열망 기제가 작동하여 여자는 취직을 위해 화장을 하고 성형을 한다.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설은 내가 즉석에서 생각해낸 위의 두 가설과 경쟁해야 한다. 물론 내가 생각해내지 못한 훨씬 더 가망성이 큰 대안 가설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만약 여자가 화장을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라면 각 요인에 대한 정량 분석을 해야 한다. 즉 어느 요인의 효과가 더 큰지를 따져야 한다.
이런 골치 아픈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여자가 화장을 하는 이유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이덕하
2013-10-10
첫댓글 여성도 그렇고 남성도 그렇고 외모가 좋으면 자원을 획득하기가 용이하고 타인에게 뭔가를 양보받는데 유리한것도 이유가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