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
한중수교 20년과 중국동포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수교 한 날이다. 올해는 한중수교 20주년 되는 해로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한반도를 비롯해 세계는 사상과 이념으로 갈리어 다른 두 체제가 대립하였다. 한반도는 남북이 분열되어, 북한은 중국과, 남한은 미국과 혈맹을 맺었다.
남한사회에서 80년대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굴도 빨갛고 성질도 포악하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약자를 괴롭히는 늑대와 같은 존재, 소위 '빨갱이'라고 불렀다.
또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미국이 중국보다 월등히 우월하고, 한국도 미국을 따라가면 잘사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 덕분인지 고속성장한 한국은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루고, 89년 소련은 개혁실패로 붕괴되고, 중국도 개혁개방 물결에 크게 흔들렸다. 그뒤 이어진 한중수교의 중요한 메세지는 중국은 북한과 대립하는 한국에 눈길을 돌리고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국도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대만과 관계를 깨고 중국을 선택했다.
한중수교의 수혜자이면서 피해자는 공교롭게도 조선족동포들이 아니었나 싶다. 50년 가까이 떨어져 있으면서 전혀 다른 사회체제에서 살아온 동포들의 만남, 처음에는 눈물날 정도로 반갑고 정겨웠지만 이는 곧 서로에게 상처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이쯤해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조선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2000년초 서울조선족교회에서 동포신문을 만들게 되면서 한국에 와서 불법체류하며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조선족동포들을 만나게 되었다. 동포가 모국에 왔지만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불법체류자라는 고깔을 쓰고 생활하는 모습들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비극인가! 한국 정부와 사회가 왜 이런가?’ 이래서는 안되는데 …‘ 하는 생각을 가졌다.
나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도였다. 당연히 나의 꿈은 영어를 유창하게 하며 미국문화를 공부하고 후에 한미관계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것이었다. 중국동포를 접하면서 내꿈은 180도 바뀌었다.
민족주의자가 되었고, 조선족동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친중파가 되어야 했다. 한국사회는 영어공부를 많이하고 미국문화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잘 아는 한국인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한중수교를 이루었지만 중국에 대한 이해 준비없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럴때 조선족동포는 누가 뭐라해도 중국어에 능통하고 중국문화를 실제 체험하면서 동시에 북한과 교류하는 사람들, 남북통일과 한중교류에 있어 한국사회에서 찾을 수 없는 소중한 자원 아닌가!
이런 생각때문에 나는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리봉동에 거주하며 한 장짜리 신문을 내며 중국동포와 한국인이 서로 이해하고 어울려 사는 공동체를 꿈꾸며 활동을 펼쳐온 것이다.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한중수교 20주년이 된 현재를 생각해 본다. 20년전, 10년전 중국동포와 지금의 중국동포는 확연히 달라졌다. 불법체류였던 동포들이 대부분 합법신분이 되어 한국사회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방문취업 5년 만기 시점이 도래된 현 시점에서 한국정부의 중국동포 관련 정책이 한국사회의 이해관계에 얽혀 혼탁해지고, '말짱 도로묵' 꼴이 되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심기일전(心機一轉)'이라는 말을 되새겨보게 된다.
첫댓글 국장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국장님은 한국분이시면서도 우리조선족에 많은 애착을 가지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란 인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