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27 신곡수업 제 5곡 음란죄의 제 2원
음란과 애욕의 죄인들이 벌받고 있는 제 2원.
이 곳에서 그들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벌을 받습니다.그들 중에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영혼이 단테에게 자신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음란지옥의 재판관은 황소와 정을 통해 미노타우르스를 낳은 파시파에의 남편이자, 크레타 섬의 왕 미노스이지요. (음란지옥의 재판관으로서 적임자인 듯..)
미켈란젤로 역시 신곡을 읽었던지 '최후의 심판'에 지옥의 왕 미노스를 등장시킵니다. 작품 속에서 뱀을 몽통에 둘둘 감고 뿔귀 가진 남자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미노스의 얼굴은 당시 교황의 의전관 체세나와 닮았다네요. 체세나가 교황에게 '최후의 심판'의 나체들이 심히 불경하여 공중목욕탕에나 어울릴 것 같다고 험담했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일부러 그렇게 그렸다는데... 천재화가를 못 알아본 댓가로 역사에 지옥왕 미노스의 이미지로 남았다니 참눼... (험담하지 말아야겠습니다ㅎㅎ)
지옥의 제 2원을 떠돌고 있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단테와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1275년 라벤나 귀족 폴렌타의 딸 프란체스카는 리미니 귀족 잔초토와 결혼했는데, 불구에 추남인 잔초토는 결혼식장에 미남 동생 파올로를 대신 내보냈고, 신부 프란체스카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프란체스카는 결국 파올로를 사랑하게 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에게 두 사람은 살해당합니다.
두 사람은 랜슬럿과 아더 왕의 아내 기네비어의 슬픈 사랑에 관한 액자소설 갤러해드를 함께 읽다가 첫키스를 나누는데, 이 때 발각되어 죽임당하죠. 저 개인적으로 이 두사람이 왜 음란지옥에 있어야 하는건지 당췌 모르겠스나, 당대의 기독교 윤리기준에 비춘 죄목이었겠지요.
본문 표현에 의하면 '열정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었던 육체의 죄인'이기에 그런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열정과 육체는 악하고, 이성과 정신은 선하다는 금욕적 스토아 학파의 영향이겠습니다.
이 곳의 영혼들은 욕망에 이끌린 비둘기, 추운 계절 무리 지어 날아가는 찌르레기, 구슬피 노래하며 허공을 날아가는 두루미 등 주로 새의 이미지로 묘사됩니다.
남편이 죽은 후, 우연히 표류해 온 아이네아스를 사랑했으나 그가 떠나자 실망하여 자결한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 클레오파트라, 트로이전쟁의 도화선이 된 헬레네, 아킬레우스, 파리스, 트리스탄 등등 사랑 때문에 삶을 마친 이 곳 영혼들의 이름을 대자, 측은지심이 일은 단테는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됩니다. 프란체스카에게 슬픈 사연을 들은 후엔 연민에 북받쳐 죽어가듯 정신을 잃고 급기야 죽은 시체(몸)가 넘어지듯 쓰러지고 맙니다.
이렇듯 격한 공감을 보이는 단테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만만찮은 로맨티스트이죠. 구세때 만난 첫사랑 베아트리체를 잊지못하고 위대한 창작물 신곡으로 승화시켰으니까요.
한편...사랑이 무신 죈가요? ㅋ
따지고 보면 프란체스카는 사기결혼 당한 셈인데, 정말로 신랑인 줄 알았던 파올로와 키스 한번 나눈 죄목으로 칼맞아 죽고 음란지옥을 떠도는 영혼이 되었다는 사실이 황당하고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수업 후 노모 학우님이 질문했습니다. 특별한 육체적 고통없이 연인 둘이 딱 붙어서 떠돌아다니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무슨 지옥이냐고.
강대진샘의 대답이 참말이지 그럴듯 해습니다~
파트너체인지 없이 영원히 둘이 붙어 다녀야 되는데 그게 바로 지옥 아니겠냐고.ㅋ
첫댓글 스토아 학파의 이상이 능동적인 이성의 힘으로 정념(pathos)을 극복하는 경지(apatheia)에 이르는 것이라면,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과거에 파묻혀 영원히 자기 극복의 희망이 없다는 점에서 색욕 지옥에 갇힌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답니다. 물론 제 눈높이에 맞춰 풀이해 주신 강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오천년, 아니 수피아님
앗! 제 정체를 아시다니..ㅋ
고주백님의 댓글로 신곡수업복습이 더욱 알쪄지길 기대해봅니다~^^
@수피아 단테 시대의 철학(스콜라)과 전혀 상관없는 스토아 철학을 헷갈림. 부끄럽고, 지우고 싶어라.
@고주백 ㅋㅋㅋ고주백님 댓글읽고서야 알았다능..아무도 눈치못챘을듯...한끝발차이 외국어 철학용어 뭐 헤깔렸다고 부끄할게 전혀 없죠~^^
알찬 정리 흥미진진 합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의 질의 응답이 재미납니다~~^^
모든 천국이 지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지옥에서도 천국의 씨앗을 찾아내야 하는게 인생인 듯 하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