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은공에 감사하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온 인류와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해야...
심상태 신부(한국 그리스도 사상연구소장)
“신자 가정은 온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세상을 떠난
부모뿐 아니라 잊혀지거나 고통받는 이들까지 하느님의 사랑에 의탁
하는 마음을 제사에 담아야 합니다.”
20여년 전부터 한국교회의 토착화에 심혈을 쏟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
사상연구소장 심상태(수원가톨릭대 교수)신부는 한가위나 설 명절에
신자 가정에서 거행하는 제례가 일반 비신자 가정의 유교적인 제례와
는 의미가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 가정의 제사가 조상과 자손의 일치 도모에 역점을 둔 가족 중심적
인 분위기의 제사라면 신자 가정의 제사는 조상의 은공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인류와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고, 특히 잊혀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이 담긴 제례
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신자 가정에서도 조상들의 은공에 감사드리는 예(禮)를 거행
하지만 일반 비신자 가정의 유교적인 제례와 구별이 모호합니다. 따라서
신자 가정을 위한 상제례 양식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와 관련 심 신부는 특히 “신자 가정은 보본추효(報本追孝)로 드리는
제사의 축문을 읽을 때 적절한 복음 구절을 낭독하고, 잊혀진 이들을
기억하는 위패도 조상의 위패 옆에 같이 모셔서 온 인류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신 하느님의 구원행위 안에 담긴 보편적인 인
류애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국교회는 1939년 교황 비오 12세의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조상 제사를 미신 행위로 여겨 금지해왔고 이것이
박해의 구실로 작용하기도 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이 훈령에서 조상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그 나라 민속으로,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여러 종족과 민족의 훌륭한 정신적 유
산을 보호 육성한다. 또 민족들의 풍습 중에 미신이나 오류와 불가분
의 관계에 있지 않는 것이면 무엇이나 호의를 가져 고려하고, 할 수
있다면 잘 보존하고자 한다”(전례헌장 제37항)고 밝히고 있다.
한국사목연구소(소장 김종수 신부)는 심 신부를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
이 참여한 가운데 유교 제사를 바탕으로 가톨릭 상제례 토착화 시안을
내놓은 바 있으나 아직까지 조상 제사에 관한 교회의 공식적인 예식서는
마련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설이나 추석 명절 미사 때 신자들이 개인, 또는 구역별로 정성껏 마련해
온 음식을 봉헌하고 배(拜)를 드리며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것도 좋겠습
니다. 조상 은공에 감사하는 우리의 제사 예식을 미사중에 포함시키는
명절 예식서가 빨리 나왔으면 합니다.”
심 신부는 또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성당에 가서도 미사 예물을 봉헌하는
등 \'이중과세\'를 지내는 신자들이 있다며 이같은 이중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교회의 공식적인 차례 예식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심 신부는 한국교회의 토착화 작업과 관련해 “교회 지도자들이 방향을
제시하면서 관련 전문가들의 연구가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현실
적인 지원으로 뒷받침할 때 \'토착화\' 작업은 실효를 거둘 수 있는데
우리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평화신문발췌 2000년9월10
추신: 지난 해 상장 예식서가 공식적으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