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즌 회 상
길게 갖추어 연주하는 영산회상이란 뜻이다.
연주자들은 연주 중에 시종일관 청중을 의식하지 않은 채 현실의 저 너머에서 소요할 뿐이다. 이규보는 이런 경지를 남이야 듣거나 말거나 맡겨둔 ‘임인문불(任人聞不)’ 상태라고 했다.
영산회상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곧 선미(禪味)에 감탄한다는 의미와 통한다. 그래서 영산회상의 영기(靈氣)는 감상자들을 자연스럽게 선율 속으로 살풋 한 발 들여 놓게 하며, 맑고 상쾌한 정신으로 원행(遠行)을 떠날 수 있게 한다.
근대 이전의 한국음악은 소위 작곡가가 없는 무명의 연주가들이 남긴 가락의 모음이다. 이것은 개인의 길을 통해서 도달한 경지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이 사라진 전통의 길을 통해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산회상이 시류(時流)를 타지 않은 고전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은 개인의 작품이 아니다. 조선시대를 거쳐 간 최고의 정악연주자들이 탄생시킨 공동작품이다. 영산회상은 그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니 우리 민족의 마음의 표현이다.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영산회상은 사찰에서보다 유학자들과 중인계층의 지식인들이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음악으로 더욱 애호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산회상은 약 한 시간이 소요되는 방대한 기악합주곡으로 완성되었고 조금 지나서는 중간에 수연장지곡과 뒷부분에 천년만세가 더하여 모음곡 형태의 가즌회상이 유행하게 된다. 가히 영산회상은 유가(儒家)와 불가(佛家)의 공동작업에 의한 소산이라 할 만하다.
영산회상을 만든 음악가들은 음악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훌륭한 예술가이기도 했으나 진리를 추구하는 선사들은 아니라는 점 또한 이 음악이 갖는 불가사의이다. 그래서 영산회상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선적(禪的)인 것과는 직접 관련성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산회상은 자연 그대로의 음색으로 그 어떤 걸림도 없는 그윽한 선(禪) 세계를 전개하며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영산회상의 선율에서는 인류가 추구했던 궁극적 세계, 즉 선(禪)의 향기를 들을 수 있다고 본다. 음악적 선(禪)이 진리의 바다인 선(禪)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세필로 그린 듯 청초간결하게 움직이는 곡선의 물결은 피안의 바닷가로 밀려오는 파도소리인 듯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단순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다. 오히려 고요히 흐르는 곡선의 물결인 것이다.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는다[得魚忘筌]’. 뜻을 얻으면 말을 잊는 장자적 정신세계 마져 아우른다. 언어와 문자의 세계를 뛰어 넘는 격조 높은 음의 세계는 곧 선(禪)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문자는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 그것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동양적 세계관을 선율로서 실현하고 있는 음악이라 할만하다.
시끄럽고 번잡한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소모요, 마멸이요, 오염이다. 영산회상을 들으면, 아무른 집착과 걸림이 없이 대자유한 마음으로 몰아의 경지에 젖어들 듯, 선미 그윽한 향기가 내면에서 피어오름을 느끼게 한다. 현실세계의 온갖 번뇌망상을 떨쳐내고 오직 일념으로 삼매의 경지에서 빚어지는 난숙한 속 멋이 질박한 음색으로 휘감아 돈다.
가즌회상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잠시 온갖 시름을 떨구어내고 인간 본연의 문제를 정관(靜觀)케 해주는 명상음악이라 하겠다.
이 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