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천 [방산시화]
김진환 시인의 [마음을 닦다]
서정시란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은 마음을 닦는 일이다. 나이들면 세상 보이는 것들의 의미가 변질되게 마련이다. 어려서의 순정한 마음에 때가 끼고 얼룩이 져서 피사체가 보이는 대로 보는 대신에 자꾸 의미를 덧대거냐 겹쳐 보게 된다. 한송이 꽃이 개화하는 순간마저 그 황홀한 기쁨을 만끽하는 대신 개화 자체에 다른 의미나 이유를 찾거나 샊깔의 농담이나 꽃봉오리의 생김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타박을 놓는다. 그래서 진정한 서정시는 사춘기 시절의 때묻지 않은 순수한 나이에나 맛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평생 마음을 닦는 수도승이나 승려와 같은 신앙인에게 우리네 삶의 얼룩을 닦아주고 씻겨달라고 종교에 의지하게 된다. 좋은 서정시도 그러한 종교의 기능을 발휘할 때가 많다. 우리 마음에 낀 때나 얼룩을 깨끗이 씻어내 주기 때문이다. 워즈워스가 ‘어린이는 어름의 아버지’라며 어릴 적 무지개를 바라보던 설레임을 노래하듯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어린이로 돌아가자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다.
안경을 닦으면 세상이 밝게 보인다
얼룩이 묻은 렌즈를 닦으면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 풍경
거리를 오고 가는 얼굴들이 선명해진다
저만치 흐릿하게 보이던 것들
미처 알아채지 못하던 당신의 몸짓
한두 번쯤은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찬찬히 살펴 가며 생각하게 한다
때가 낀 안경을 벗어 꼼꼼히 닦는다
눈이 나쁘다는 핑계로 대충 흘려보낸 것들
부대끼던 거리의 표정을 살필 겨를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던 욕심을 비워 낸다
어느새 송두리째 굳어버린 본색을 펼쳐놓고
마음이 부끄럽지 않게 닦아낸다
아리아리한 눈꺼풀을 천천히 풀어내고 있다.
-김진환 「마음을 닦다」 전문
평생 한마음을 지니기 위해 마음을 닦는 일에는 오랜 수행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시인은 일상생활에서 잠시만이라도 마음을 닦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안경을 닦으면 세상이 밝게 보이”듯이 “얼룩이 묻은 렌즈를 닦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더 잘 보이는 것은 안경을 닦는 것이 곧 마음을 닦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신의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안경을 활용해 마음을 조금이라도 닦아내는 새 방편이다. 안경 역시 오래 끼다보면 이물질에 오염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안경을 닦아 쓰면 닦아 쓰기 이전과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저만치 흐릿하게 보이던 것들”과 “미처 알아채지 못하던 당신의 몸짓”이 보이는 것도 “욕심”이라는 마음의 번뇌를 닦아내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이 흐려지고 사욕에 차면 성(性)의 본래 모습대로 심(心)이 발현되지 못한다고 주장한 퇴계의 지적처럼, 마음을 비우고 순수한 정으로 본성이 채워지면 삼라만상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게 되는 동시에, 세상일을 “한두 번쯤은 더 자세히 보게” 되고, “찬찬히 살펴 가며 생각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송두리째 굳어버린 본색”이란 세상을 살면서 오염된 부끄러운 자아일 것이다. 치열한 자아성찰을 통해 “마음의 먼지”를 닦아내면 잃어버린 본래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리아리한 눈꺼풀을 천천히 풀어내”는 것은 곧 욕심으로 흐려진 마음의 눈을 닦아내는 자기수양의 행위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