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저의 개쓰레기 발언을 싫어하십니다.
그들의 이유는 한결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시고 우리는 자녀인데.. 자녀가 아버지에게 자꾸 자신을 낮춰서 개쓰레기 개쓰레기..라고 스스로 비하하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그렇습니다.
개쓰레기 발언을 싫어하시는 분들 주장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마음이 아프시므로 더는 개쓰레기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입니다.
그러나 저는 진실로 묻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아픔을.. 헤아리며 사셨습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시나요?
개쓰레기 발언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이유를 하나님께서 아파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묻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것이 싫어서 개쓰레기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할 정도로
여러분들은 그토록 절절하게 하나님의 아픔을 생각하며 사셨느냐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죄와 싸우려고 애를 쓰며 살았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성경을 보며 사셨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여러분은 과연 얼마나 기도하며 사셨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어떻게 할 때 마음이 아파하셨습니까?
여러분들의 주장처럼 “입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야. 나는 개쓰레기 따위가 아니야”라고 고백했을 때 주께서 즐거워하셨나요?
그럼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했던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이었겠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자뻑증으로 물들었습니까?
심지어 이방인들을 개 취급하고 자신들만 거룩한 척 신성한 척 온갖 좋은 미사여구로 치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야”
“우리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민족이야”
어느 누구의 입에도 나는 “개쓰레기야”라는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랬던 이들의 결과를 저도 알고.. 그리고 “개쓰레기를 싫어하는 당신들”도 압니다.
모두 멸망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뻑증으로 살았던 모든 이들이 멸망했습니다.
아닙니까?
반면 누구만 살았습니까?
창녀가 살았습니다.
세리가 살았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뻑증에 걸린 사람들이 더럽다고 버린 이들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뻐기며 산 사람들을 버리고
스스로를 향해 “나는 개쓰레기입니다.. 나는 더러운 자입니다. 나는 죄인의 괴수입니다”라고 말한 이들만을 사랑했습니다.
아닙니까?
김 전도사가 지금 사기 치는 겁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제가 사기 치는 것이 아님을 사람이 아닌 성경이 대신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은 입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이들이 아니고 오히려 삶을 그분의 뜻에 합하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예.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백’이 아닌 ‘삶’을 요구했던 겁니다.
그런데 살아보면 아시지 않습니까?
주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애들 장난처럼 쉽더이까?
그분의 뜻대로 살려면 육신과 안목의 정욕을 죽이고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매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처절한 삶을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육은 음란을 원하고 술을 원하고 높아지길 원하고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길 갈망합니다.
누가 조금만 나를 비방해도 그 싫은 소리 때문에 잠이 안 오고 열불이 납니다.
남이 나보다 유명해지고 잘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그렇게 배가 아파 방구석을 뒹굴 거리며 속상해합니다.
그런 욕망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리를 옭아매고 자꾸만 우리를 죄의 결박으로 이끌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참으로 형편없고
참으로 옹졸하며
참으로 더럽고
참으로 치사하며
참으로 죄의 노예로 사는 것을 즐거워하는 존재..
그가 바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 “김관운”입니다.
저는 이런 저의 모습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향해 “나는 개쓰레기입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진실을 접하고도 여전히 나를 천사처럼 가장하는 것은 저의 마지막 남은 양심이 거북하다 소리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쓰레기란 말을 싫어하는 여러분들”처럼 깨끗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 몹시도 두렵고 떨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이기보다는 그분의 몸종이면 족합니다.
자녀놀이는 여러분들이나 하십시오.
저는 평생을 그분의 몸종으로
그분의 신발 끈을 풀고
물을 떠서 그분의 발을 씻기며
그분이 가라 하면 밥을 먹다가도 가고 오라 하면 오는 노예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하고 간청할 뿐입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합니다.
아니 이 쓰레기 같은 자가 감히 그분의 노예로서 평생을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평생의 영광으로 알고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는 감히 그분 앞에 숨조차 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 옛날 모세가 하나님과 대화할 때 그 모습을 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영광과 권능 앞에 두려워 떨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사람이 감히 그분에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감히 그분을 찬양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감히 그분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
사람이 감히 그분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복을 받았음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 하나님을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감히 그분께 다가설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면 사도바울처럼 두 눈이 멀어버리는 존재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제발 하나님 앞에서 거만을 떨지 마십시오.
요한계시록을 보셨습니까?
하늘에서 장로들과 백성들이 무엇을 하고 있더이까?
그들이 하는 일은 오직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엎드려 경배하고.. 엎드려 찬양하고.. 엎드려 높여드리는.. 것이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어서 혹시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면
그때는 알게 될 겁니다.
그때는 보게 될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시는 그 거대하고 광대하고 위대한 능력을
그 존귀함에 압도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네.. 라고 너스레를 떨었던 자신의 모습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존귀함을 실제로 대면하면 스스로 이런 고백을 하게 될 겁니다.
“나는 주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부족한 자입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의 고백이 단순히 겸손의 표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훗!
착각입니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진정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에도 부족한 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진심으로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단지 팩트를 말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의인도 예수님의 신발 끈을 풀기에 합당한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극복할 수 없는 차이입니다.
지금 시대 사랑의 하나님 마케팅에 속아서 자신들의 삶은 솔직히 개판이면서 그럼에도 “나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자녀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그에 합당한 심판이 있을 겁니다.
그 심판을 피하는 길은 유일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해지는 겁니다.
자신이 쓰레기임을 진실로 고백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오직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받는 겁니다.
우리 중에 그 누가 있어 하나님께서 흡족해할 만큼 떳떳한 삶을 살고 있단 말입니까?
없습니다.
그런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자신의 부족한 실체를 깨닫고 그 부족한 모습에 통곡하는 횟수에 비례한다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에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마음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개쓰레기니 뭐니.. 하는 말에 분노하지 마시고
왜 제가 개쓰레기라고 하는지 그 중심에 집중해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주장하는 요지는 하나입니다.
치열한 삶을 살자..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되자..
더는 사랑의 하나님 마케팅에 놀아나서 그저 고백으로만 그분을 믿는 척하는 가식을 버리고
철저하게 쓰레기 같은 우리의 본 모습을 직시해 이제는 그분 앞에 그분의 뜻을 따르는 치열한 삶을 살자..
그것이 진짜 주님의 마음을 생각하는 자의 모습이니...
첫댓글 관운장 다운 모습입니다. 폴워셔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은 원래 악하다는 선악설에 근거한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로 태어났으며 반지의 제왕에서 우리들은 사루만이 만든 오크들이 죽을때 환호한다. 왜 환호하는가. 그들이 악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지의 제왕에서 오크같은 존재이다. 매일 악한 품성을 죽여나가며 예수님처럼 거룩해지도록 나아가야 한다.
아멘.
아멘..!
아멘
전도사님의 외침을 읽고 나서 제 눈에는 눈물이 흐릅니다. 감사합니다 전도사님~~~
감사합니다.
저는 전도사님의 개쓰레기의 예찬론은 이 말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9장 3~8절 까지의 말씀을 보게 되면 다윗이 가장 사랑했던 친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에게
은총을 베풀고자 하자 므비보셋은 인간 , 그저 왕 이라는 것만으로도 두려워서 떨며 감히 죽은 개같은 나를
돌보시나이까 ~! 라고 고백을 하는 것을 보며 인간인 다윗에게도 이렇게 자기를 비하 하는데 ,,
하물며 인간인 우리가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 에게이리이까 ~? 라고 저는 그 보다 더한 우리를
낮추고 비하 하여도 손색이 없다고 저는 말씀을 묵상하며 생각합니다.
다른 구절에도 또 있습니다.
아멘 아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나정도면 그래도 선한 사람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다 고 들엇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니요.. 성령으로 만취된 자는 자신을 절대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뻐기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만취될수록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더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할이 원래 우리의 죄를 직시하게 하여 회개케 하시는 일이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성령충만이 부족해서 자신을 죄인의 괴수라고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성령님으로 충만했기에 나올 수 있는 고백이 바로 "죄인의 괴수"입니다.
그러게요....성령님의 은혜가 있을 때마다...얼---마나 내가 더러운지...이루말할수가 없던데....자동으로 개 쓰레기중에 넘버 원..인 것 을.....
아멘 ~!
저는 기도중에 하나님께서 저를 저의 죄를 보여 주시는데 아예 죄덩어리 더라궁요 !
너~~~~~~~~~~~ 무 더러워서 저라도 저가 싫더라구요 ,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