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08(화) 농성 154일차 이어말하기
<우리는 일하면서 불행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초대손님: 인권교육 “온다” 이세훈 / 진행: 권영은 / 정리 : 손성배
다시 문제제기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 삼성, 농성 154일차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영은]: 이어말하기 하기 전에 잠시 함께 현수막도 달고 농성장 정비도 하고 준비도 같이 해주셨습니다. 어떠셨는지요?
[세훈]: 아까 이종란 노무사님이 ‘현수막 많이 달아 보셨을테니 잘 하시겠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간만에 해보니 잘 안 되네요. 역시 꾸준함이 중요하구나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영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시던데,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세훈]: (웃음) 인권교육온다 인권교육하고 있는 이세훈입니다. 몇 번 개인적 사정 때문에 이어말하기 초대를 받았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요. 이번에 일정을 잡으려고 하니 경쟁률이 치열하더라고요. 오늘은 꼭 가겠다고 마음 먹고 미리 연락 드리고 찾아왔습니다.
[영은]: 원래 오시려고 했던 지난 달과는 조금 다르게 이어말하기를 진행하게 됐어요. 연좌시위도 시작했고, 거리도 추모 분위기로 하나씩 꾸미면서 3월 한 달을 추모의 달로 보내고 있다. 때문에 이어말하기 시작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늦어졌네요. 오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활동하는 곳이 인권교육온다라고 하셨지요?
[세훈]: 인권교육온다는 이름에서도 아실 수 있겠지만, 인권교육을 주로 하는 단체입니다. 세계인권선언문에도 나와 있듯 인권교육 자체가 인권이에요. 사람들이 내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아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요. 어떤 것이 인권인지 배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속에서 서로의 인권을 확인하고 나누는 곳입니다.
오늘(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에요. 여성의 인권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죽으면서 주장했어요. 1908년 3월 8일, 미국 섬유업계 여성노동자들이 우리에게도 인권을 보장하라고 외쳤던 날이에요.
[영은]: 저도 여성 인권의 날에 인권선언문을 낭독한 적이 있었어요. 반올림에 사망하거나 병에 걸렸다고 제보를 해오는 분들이 대부분 여성 노동자에요. 자신들의 노동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생명을 잃은 분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그래서 더더욱 오늘 같은 날을 기억하고 인권선언문 내용을 찬찬히 잘 살펴서 마음에 새겨야겠어요. 평소 삼성 직업병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는지요?
[세훈]: 교육내용에 삼성 직업병 문제가 들어가 있어요. 교육내용에 따라 다른데, 삼성 황유미 사건을 소개하기도 해요. 삼성이 대기업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기업이잖아요. 그렇다면 삼성이 이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예컨대 정부 욕을 하거나 대통령 욕을 하면 반응이 없어요. 그렇게 기분 나빠 하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런데 삼성의 문제, 치부를 말하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 이야기를 빼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이야기가 안 나오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삼성이 우리 얘기를 빼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과하고 재발방지하고 보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교육 내용에 삼성 얘기를 꼭 넣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영은]: 반올림 농성장에 취재온 언론이 삼성이라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면서 인터뷰를 요청하더라고요. 협상 문제인데, 소통이라고 바꿔서 해달라고 하고. 사람들 덜 불편하게, 어떻게든 보도가 나갈 수 있도록 타협한 게 아닌가 싶은데, 그렇게 타협할 문제가 아니지 않나. 제대로 해결해야 삼성의 기업 이미지도 고양될 텐데, 해결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세훈]: 인권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권은 ‘배려’, ‘존중’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물론 인권에 그런 부분이 있지만 사실, 우리에게 배려와 존중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 같네요.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도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인권이 신장됐단 말이죠.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생긴 건 100년 정도 밖에 안 돼요. 보편적으로 참정권이 주어진 건 2차 대전 이후니까 고작 70년 전이에요. 여성들은 달거리를 해서 선거 투표권을 주지 못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투표할 권리를 주지 않았어요. 많은 여성들이 목숨을 버리고, 감옥에 가면서 인권을 가진 존재로 이야기된 것이 인권이었습니다.
아무도 삼성 백혈병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을 때,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죠. 관심 갖지 않을 때, 계속 말하면서 알려진 것이 아닐까요? 삼성이 좋은 기업이고 잘 나가는 기업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과거에 안 좋았던 부분을 발견하고 고쳐 나가는 게 맞지 않나요? 삼성이 인권 친화적인 기업으로 하루 빨리 환골탈태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요.
[영은]: 인권, 피로 얻어졌고, 성취하기 위해서 지난한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들리네요.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남편분들, 여성들에게 장미꽃 하나 선물해드리면 어떨까요?
[세훈]: 여성에 대한 존중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사회가 대통령도 여성이지만, 남성이 역차별 받고 있다고 말씀하는 분들 많아요. 공무원들 대상으로 인권 교육할 때 있었던 일이에요. ▲여성 ▲아동·청소년 ▲인권 일반 ▲장애에 대해 교육했어요. 그런데 여성 파트 교육을 할 때, 반발이 가장 많아요. ‘왜 결혼한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남성 집에 먼저가고 나중에 여성 집에 가는가’하는 얘기를 했는데 강하게 저항하시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아직 그런 것조차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영은]: 여성은 결혼하면서부터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합니다. 여성들이 결혼해서 명절을 지내고, 집에서 남성들은 TV보고 여성들은 설거지하면서 가정이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느끼고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남성들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가부장제의 문제를 덜 느끼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별명이 ‘순돌아빠’시더라고요. 아이 이름이 순돌이신가요?
[세훈]: 순돌아빠라는 별명은 자녀가 없을 때 붙여진 것이고요, 저는 딸만 둘입니다.(웃음)
[영은]: 딸이 어떤 세상에서 살았으면 하시는지요?
[세훈]: 딸이 둘이고 아내가 있습니다.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라디오 사연이 들리더라고요. 명절 끝난 며느리가 보낸 게 나오더라고요. 이 분이 설 명절에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당신 딸들이 오니까 그 딸들의 시어머니 욕을 했다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며느리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낸 분이었고요. 이걸 듣고 나서 함께 있던 딸들에게 물어봤어요. ‘딸들 결혼을 할 거니“라고 물어봤더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딱 한 가지만 얘기했어요. 제발 가부장적인 집안에 시집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누구나 생각해도 말이 되는 얘기가 통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딸이 명절 때 집에 늦게 오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느끼면서, 자신의 며느리는 빨리 보내주지 않는 가족 제도가 참 가슴이 아프네요.
[영은]: 우리가 그런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할 만큼 문제가 있는 상황에 매몰돼 자연스럽게 살아온 거죠.
[세훈]: 전 정말 상식적인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그저 사과하면 되지 않나요? 반올림이 천막 친다고 할 때, 제발 겨울은 지나고 치자고 했어요. 겨울에 천막에서 자는 게 상식적이지 않잖아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참 암담하네요. 전 정말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영은]: 저 같으면 사연을 라디오에 보내지 않고 직접 시어머니께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우리나라는 문제에 대해 바로 얘기하지 못하고 라디오나 다른 곳에, 아니면 수다로 풀어야 하는 세상이네요. 그러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여성 노동자들도 남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해서, 집안의 생계를 대신 책임져야 해서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참으면서 공장에 가서 일을 했었죠. 70~80년대 유미 씨 어머니들이 했던 것과 비슷해요. 그런 영화도 있었죠. 지금은 21세기인데, 어떻게 도대체 왜 예전과 똑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이런 부분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훈]: 오늘 친했던 형 장례가 끝나고 발인하는 날이었어요. 5년 정도 노동조합을 함께 조직하겠다고 힘을 모으기도 하고, 잘 되면 기쁨도 함께 나누고, 가끔 물론 싸우기도 했고요. 술도 같이 먹고 ‘꼬장’도 같이 부렸던 선배인데, 그 선배가 상근활동을 그만두고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간 선배였는데… 일요일에 그 형이 죽었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상가에 갔는데, 심장마비였다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계속 일만 하고 쉬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부검을 했는데,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이러다 일하다 큰 병 난다’고 얘기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되어 버리니까. 강남역에 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배의 죽음과 황유미 씨의 죽음은 다르지 않아요. 일하다가 노동자들이 왜 목숨을 잃어야 할까. 우리는 왜 그런 사회를 가만히 보고 있는 걸까. 사람이 일은 먹고 살고, 더 좋아 지려고 하는 거 잖아요. 일하다가 죽으려는 게 아니잖아요. 황유미 씨 같은 죽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슴이 아파요. 삼성이나 대기업들이 사과하고 재발방지 해야 하겠지만,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도록 앞장서야 하는 것 아닐까요?
[영은]: 우리의 노동조건과 환경이 점점 더 팍팍해져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우리가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서 일을 하잖아요. 일자리도 별로 없고, 하청에 하청 밖에 없다는 것. 안전 교육은 바랄 수도 없고요.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 역시 더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고요.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 가입은 꿈도 꾸기 힘들고요. 일하면서 행복해져야 하는데, 일하면서 불행해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세훈]: 전 건설 노동자, 특히 목수 분들을 중심으로 해서 노조를 결성하려고 노력했어요. 건설업은 산업재해가 심하기 때문에 산재 보상도 문제지만,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활동을 많이 했어요.
[영은]: 우리나라는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 제도라든지 기준이 미흡한 것 같아요. 빨리 건물을 세우기를 바라지, 노동자의 몸을 보호하면서 건설하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 세상인 것 같아요. 오늘은 날이 많이 차네요. 앞엔 직업병 피해자의 동생과 아들이 앉아 있는데요, 둘이 좋은 일로 만났으면 더 좋겠지만, 이렇게 만나고 모이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