벡제를 일본은 구다라라고 했는데 이게 큰 나라여서 그랬다라고 하는 설이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어로는 어떻게 읽어도 큰 나라는 구다라로 못 읽힌다고 일본어를 전공한 제 선배가 그러더라고요
그럼 백제어에서 기원했냐?
우린 백제어 몰라요 중국 사서나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몇 가지 단어로 추리하는 건데 큰에 해당하는 말은 건이나 아라 정도 입니다 구는 추정 불가
다라 역시 마찬가지... 나라라는 말이 있지 않냐 하는데 당시 나라라는 말이 있었는지 부터.....
그럼 뭐라고 볼 수 있느냐
일본에서 백제로 가려면 금강의 포구를 지나야하는데 그 포구 이름이 구드래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구드래 포구가 구다라로 바뀐 듯 합니다 네덜란드가 홀란드라는 통칭으로 쓰이듯 백제 왕성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구드래 포구가 구다라로 바뀌고 그것이 백제를 뜻하는 다른 말이 된 듯 합니다 구드래는 당시 표기로 하면 구드라이에 가까웠으니-이중 모음은 예전에는 따로 따로 발음했습니다 게다가 드가 아래아라면 구다라이에 발음이 가깝고 그렇다면 이쪽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본이 백제를 상국으로 생각했냐? 이것도 의문입니다 일본과 백제는 어디까지나 거래적 관계였죠 서명천황 시절에 소아가문이 세도정치하면서 백제 풍이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 때를 일본 전체가 그랬다라고 하는 건...
"크다"가 "구다"로 바뀌고 "라" 국 즉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구다라"는 "크다라" 즉 "큰나라"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개로왕 이전에 백제는 왜국에 조공하는 나라였으나 개로왕이 백제를 통합함으로써 백제는 본국이 되고 왜는 분국이 된 것이죠.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형제관계가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근초고왕이 칠지도를 왜에 하사하였다는 말은 어불 성설입니다. 근초고왕 이후 개로왕 이전까지의 백제는 왜를 상국으로 모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왕자를 왜에 인질로 보낸 것으로 보아도 이는 형제관계가 아니고 상하관계였음을 증명하는 것이죠. 근데 하사라니요? 칠지도는 동성왕 시절에 왜에 하사한 것이죠.
개로왕의 아들로 나오는 동성왕은 실제는 곤지왕의 아들입니다. 개로왕인 "제"가 한성백제를 점령한 이후 왜의 권력을 왜왕 "흥"에게 물려주는데 이 왜왕이 바로 동성왕입니다. 개로왕이 475년 장수왕이 내려와 죽임을 당하자 왜에 있던 동성왕이 백제로와 왕노릇하게 되어 왜의 권력을 동생인 "무" 즉 무령왕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동성왕인 "흥"이 무령왕인 "무"에게 왜를 잘 다스라라는 의미로 칠지도를 하사하게 된 것이죠.
"크다"가 "구다"로 바뀌고 "라" 는 국(國) 즉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구다라"는 "크다라" 즉 "큰나라"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개로왕 이전에 백제는 왜국에 조공하는 나라였으나 개로왕이 왜국에서 "제"로 백제를 통합함으로써 백제는 본국이 되고 왜는 분국이 된 것이죠.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형제관계가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근초고왕이 칠지도를 왜에 하사하였다는 말은 어불 성설입니다. 근초고왕 이후 개로왕 이전까지의 백제는 왜를 상국으로 모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왕자를 왜에 인질로 보낸 것으로 보아도 이는 형제관계가 아니고 상하관계였음을 증명하는 것이죠. 근데 하사라니요? 칠지도는 동성왕 시절에 왜에 하사한 것이죠.
금강의 구드레 나루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구다라라는 표기는 웅진 천도 이전의 백제, 즉 한성백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 웅진 천도 이후에 일본이 백제를 지칭하는 국명이 바뀌었을까요? 네덜란드를 '홀란드' 라 부르는 건 처음 정해진 명칭이 쉽게 바뀌지 않고 관습적으로 이어져 온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한성백제 때 일본측에서 백제를 지칭하는 어떤 '국명' 이 정해졌다면 그 명칭이 거의 변하지 않고 내려왔을 터이므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구다라' 라는 명칭이 금강의 구드레 나루에서 왔다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또한 일본측이 한국 고대의 다른 나라를 기록한 것을 보면, 고구려나 신라는 그 국명과 비슷한 '고마', '시라기' 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유독 백제만 나루터의 이름을 따서 본래의 국명과 다른 명칭을 불렀다고 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가야 같은 경우라면 가야연합체의 수장 노릇을 할 나라이름 하나를 골라 가야 전체를 지칭하는 방식으로 부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만('네덜란드 = 홀란드' 의 국명 사례나, '스위스연방 = 슈바이츠(쉬스)'가 사실 이런 사례지요) 백제는 그와는 좀 다릅니다. 특히 나루 이름을 국명으로 부른다는 건 그 상대방(백제)에게 '비칭'처럼 느껴지기 쉬울 텐데, 왜 측에서 백제를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당시의 백제-왜 관계를 염두에 둘 때(즉, 왜가 백제를 비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 구다라라는 명칭이 쓰일 이유를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1) 구다라는 백제의 국명이었다. '百濟' 를 정말로 백제에서 '구다라' 와 비슷한 발음으로 읽었다. 즉, 이 명칭은 백제인이 자국을 부르는 자칭이었다. 2) 구다라는 백제의 수도명이었다. 웅진천도 이후 수도 이름인 웅진(熊津: 직역하면 '곰나루' 라는 뜻)을 백제인들이 '구다라'와 비슷한 발음으로 불렀기에 왜에서도 백제 또는 '웅진의 백제' 라는 의미로 수도명을 불렀다.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어떤 국가를 지칭할 때 수도명으로 지칭하는 사례는 상당히 많습니다.) 이 경우에 구다라는 한성백제와 달리 웅진천도 이후의 백제를 한정해서 지칭하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요.(웅진과 사비를 꼭 구분하지 않는다고 할 경우)
저도 '구다라 = 큰나라' 견해는 추가적인 근거가 없는 한 아직은 좀 성급한 견해라고 봅니다. 일본서기에서 건길지를 코니키시로 읽은 예에서 보듯, 백제어 '큰'[大] 를 '코니' 로 읽은 듯한 흔적이라든가, 일본 나라[奈良] 를 '나라' 로 읽는 것이 한국어(아마 백제어) '나라'에서 기원했으리라는 데에서 보듯 '큰나라' 라는 의미를 꼭 '구다라' 라고 읽으리라 생각이 되진 않습니다.
@미주가효한국인이 타국에 가서 나 서울에서 왔다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있오! 백제인이 왜국에 가서 나는 곰나루에서 왔소이다라고 했단 말입니까! 우리 백제는 큰나라요. 하니 왜인들이 큰나라=구다라로 인식하고 모든 면에서 백제가 왜국을 압도하니 대국으로 섬겼기에 백제를 큰나라=구다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죠. 아니면 곰은 검이고 임금을 뜻하니 검나라=임금의 나라라는 뜻으로 불렀던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大欽茂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일본서기의 내용을 보면 백제어서 나온 듯한 단어의 흔적은 꽤 보입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큰'[大]을 일본에서 '코니'로 읽은 흔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백제인이 '큰나라' 라고 말하는 걸 일본인이 '구다라' 라고 발음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를 수도나 일부 지방명으로 부르는 사례들은 꽤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홀란드의 예가 대표적이고, 우리의 경우에도 신라의 경우 국명은 '사라', '신라' 로 항상 비슷한 발음입니다만, 외국에서 신라를 부를 땐 '계림' 과 같은 명칭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계림은 신라 수도의 숲 이름
@大欽茂이었지요. 그리고 국명 대신 수도명으로 그 국가나 정부를 대신 지칭하는 사례는 굉장히 흔합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의 지시야' 라고 하면 이는 미 정부의 지시라는 의미가 되고, '베이징의 입장이다' 라고 하면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뉴스 같은 데에서도 흔히 쓰이고 일상적으로도 종종 쓰는 표현들입니다.
@미주가효큰大를 코니라 발음했다는 것은 코니와 큰이 유사하고 큰나라를 일본식으로 구다라로 읽었다고 보는 것이 현재로선 합리적이죠. 일본인들이 트 발음이 안되어 또로 읽는다는 것은 널리알려진 사실이니 큰나라도 일본인들의 발음습관상 구다라로 읽었다는게 현재로선 과학적이라 봅니다. 기록상 백제와 왜가 공식적인 교류를 열게된 시기가 근초고왕시기인데 그때 수도가 한성(=위례성)에 있었죠. 위례나 한성은 모두 대성 큰성을 의미하니 큰성나라 큰나라 = 구다라 이렇게 잃었다고 보아야 합니다.구지 웅진성시대만을 상정해서 구다라를 연결시킬 필요가 없다는거죠.
큰나라 근나라 근다라 그다라 로 바뀐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그다라 에 부정형 나이를 붙이면
그다라나이 크지않는 ,별볼일없는 뜻이됩니다.
"크다"가 "구다"로 바뀌고 "라" 국 즉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구다라"는 "크다라" 즉 "큰나라"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개로왕 이전에 백제는 왜국에 조공하는 나라였으나 개로왕이 백제를 통합함으로써 백제는 본국이 되고 왜는 분국이 된 것이죠.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형제관계가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근초고왕이 칠지도를 왜에 하사하였다는 말은 어불 성설입니다.
근초고왕 이후 개로왕 이전까지의 백제는 왜를 상국으로 모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왕자를 왜에 인질로 보낸 것으로 보아도 이는 형제관계가 아니고 상하관계였음을 증명하는 것이죠. 근데 하사라니요?
칠지도는 동성왕 시절에 왜에 하사한 것이죠.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죠. 백제가 왜국을 상국으로 모셨다? 진짜 어이없네
근초고왕부터 의자왕때까지 백제를 큰나라라고 부르던 왜국이거늘
칠지도를 백제가 왜국에게 헌상했다고, "전시후세" "후왕에게 줄만하다는" 문구는 뽄으로 새겨져 있답니까!
칼은 군주가 신하에게 주는 것이지 신하가 군주에게 바치는게 아니올시다요. 참으로 어이가 없네.
개로왕의 아들로 나오는 동성왕은 실제는 곤지왕의 아들입니다.
개로왕인 "제"가 한성백제를 점령한 이후 왜의 권력을 왜왕 "흥"에게 물려주는데 이 왜왕이 바로 동성왕입니다.
개로왕이 475년 장수왕이 내려와 죽임을 당하자 왜에 있던 동성왕이 백제로와 왕노릇하게 되어 왜의 권력을 동생인 "무" 즉 무령왕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런 연유로 동성왕인 "흥"이 무령왕인 "무"에게 왜를 잘 다스라라는 의미로 칠지도를 하사하게 된 것이죠.
"크다"가 "구다"로 바뀌고 "라" 는 국(國) 즉 나라를 의미합니다.
즉 "구다라"는 "크다라" 즉 "큰나라"라는 뜻이 되는 것이죠.
개로왕 이전에 백제는 왜국에 조공하는 나라였으나 개로왕이 왜국에서 "제"로 백제를 통합함으로써 백제는 본국이 되고 왜는 분국이 된 것이죠. 상하관계라기 보다는 형제관계가 더 적절할 것입니다.
근초고왕이 칠지도를 왜에 하사하였다는 말은 어불 성설입니다.
근초고왕 이후 개로왕 이전까지의 백제는 왜를 상국으로 모셨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왕자를 왜에 인질로 보낸 것으로 보아도 이는 형제관계가 아니고 상하관계였음을 증명하는 것이죠. 근데 하사라니요?
칠지도는 동성왕 시절에 왜에 하사한 것이죠.
왜가 백제라는 존재를 알게 된 게 웅진 천도 이후는 아니겠지요.
금강의 구드레 나루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구다라라는 표기는 웅진 천도 이전의 백제, 즉 한성백제와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 웅진 천도 이후에 일본이 백제를 지칭하는 국명이 바뀌었을까요? 네덜란드를 '홀란드' 라 부르는 건 처음 정해진 명칭이 쉽게 바뀌지 않고 관습적으로 이어져 온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한성백제 때 일본측에서 백제를 지칭하는 어떤 '국명' 이 정해졌다면 그 명칭이 거의 변하지 않고 내려왔을 터이므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구다라' 라는 명칭이 금강의 구드레 나루에서 왔다고 보기는 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또한 일본측이 한국 고대의 다른 나라를 기록한 것을 보면, 고구려나 신라는 그 국명과 비슷한 '고마', '시라기' 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유독 백제만 나루터의 이름을 따서 본래의 국명과 다른 명칭을 불렀다고 보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가야 같은 경우라면 가야연합체의 수장 노릇을 할 나라이름 하나를 골라 가야 전체를 지칭하는 방식으로 부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만('네덜란드 = 홀란드' 의 국명 사례나, '스위스연방 = 슈바이츠(쉬스)'가 사실 이런 사례지요) 백제는 그와는 좀 다릅니다. 특히 나루 이름을 국명으로 부른다는 건 그 상대방(백제)에게 '비칭'처럼 느껴지기 쉬울 텐데, 왜 측에서 백제를
유독 낮게 대할까, 그럴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당시의 백제-왜 관계를 염두에 둘 때(즉, 왜가 백제를 비하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때) 구다라라는 명칭이 쓰일 이유를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1) 구다라는 백제의 국명이었다. '百濟' 를 정말로 백제에서 '구다라' 와 비슷한 발음으로 읽었다. 즉, 이 명칭은 백제인이 자국을 부르는 자칭이었다.
2) 구다라는 백제의 수도명이었다. 웅진천도 이후 수도 이름인 웅진(熊津: 직역하면 '곰나루' 라는 뜻)을 백제인들이 '구다라'와 비슷한 발음으로 불렀기에 왜에서도 백제 또는 '웅진의 백제' 라는 의미로 수도명을 불렀다. (동서고금을 막론
하고 어떤 국가를 지칭할 때 수도명으로 지칭하는 사례는 상당히 많습니다.) 이 경우에 구다라는 한성백제와 달리 웅진천도 이후의 백제를 한정해서 지칭하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요.(웅진과 사비를 꼭 구분하지 않는다고 할 경우)
저도 '구다라 = 큰나라' 견해는 추가적인 근거가 없는 한 아직은 좀 성급한 견해라고 봅니다. 일본서기에서 건길지를 코니키시로 읽은 예에서 보듯, 백제어 '큰'[大] 를 '코니' 로 읽은 듯한 흔적이라든가, 일본 나라[奈良] 를 '나라' 로 읽는 것이 한국어(아마 백제어) '나라'에서 기원했으리라는 데에서 보듯 '큰나라' 라는 의미를 꼭 '구다라' 라고 읽으리라 생각이 되진 않습니다.
@미주가효 한국인이 타국에 가서 나 서울에서 왔다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있오! 백제인이 왜국에 가서 나는 곰나루에서 왔소이다라고 했단 말입니까! 우리 백제는 큰나라요. 하니 왜인들이 큰나라=구다라로 인식하고 모든 면에서 백제가 왜국을 압도하니 대국으로 섬겼기에 백제를 큰나라=구다라로 부르게 되었던 것이죠. 아니면 곰은 검이고 임금을 뜻하니 검나라=임금의 나라라는 뜻으로 불렀던 것이 합리적인 추론일 것입니다.
@大欽茂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겁니다. 일본서기의 내용을 보면 백제어서 나온 듯한 단어의 흔적은 꽤 보입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큰'[大]을 일본에서 '코니'로 읽은 흔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백제인이 '큰나라' 라고 말하는 걸 일본인이 '구다라' 라고 발음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를 수도나 일부 지방명으로 부르는 사례들은 꽤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네덜란드/홀란드의 예가 대표적이고, 우리의 경우에도 신라의 경우 국명은 '사라', '신라' 로 항상 비슷한 발음입니다만, 외국에서 신라를 부를 땐 '계림' 과 같은 명칭으로 부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계림은 신라 수도의 숲 이름
@大欽茂 이었지요. 그리고 국명 대신 수도명으로 그 국가나 정부를 대신 지칭하는 사례는 굉장히 흔합니다. 예를 들어 '워싱턴의 지시야' 라고 하면 이는 미 정부의 지시라는 의미가 되고, '베이징의 입장이다' 라고 하면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뉴스 같은 데에서도 흔히 쓰이고 일상적으로도 종종 쓰는 표현들입니다.
@미주가효 큰大를 코니라 발음했다는 것은 코니와 큰이 유사하고 큰나라를 일본식으로 구다라로 읽었다고 보는 것이 현재로선 합리적이죠. 일본인들이 트 발음이 안되어 또로 읽는다는 것은 널리알려진 사실이니 큰나라도 일본인들의 발음습관상 구다라로 읽었다는게 현재로선 과학적이라 봅니다. 기록상 백제와 왜가 공식적인 교류를 열게된 시기가 근초고왕시기인데 그때 수도가 한성(=위례성)에 있었죠. 위례나 한성은 모두 대성 큰성을 의미하니 큰성나라 큰나라 = 구다라 이렇게 잃었다고 보아야 합니다.구지 웅진성시대만을 상정해서 구다라를 연결시킬 필요가 없다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