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
송혜영
우리 집안은 숙면(熟眠)문화가 발달해 있었다.
자상하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잠을 잘 잘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뿐 아니라 때를 가리지 않고 자도, 많이 자도 비난하지 않는 집안에서 자랐다는 뜻이다.
오래전부터 정착된 잠에 관한한 너그러운 가풍은 다양한 방식으로 식구들을 배려했다. 우선 등교시간 외에는 잠을 자는데 방해를 받지 않았다. 밥 때가 되었는데도 일어나지 않으면 한 끼를 포기시키더라도 계속 자도록 조치했다. 책을 보다가 잠이 들었든지, 놀다가 쓰러져 자든지 아무튼 집안 식구 중에서 누군가 자고 있으면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일찍이 할머니는 룸펜 삼촌이 낮잠을 자는 머리맡에서
“야는 잠 하나는 잘 잔다 아이가”라며 대견해 하셨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이 대낮에 코를 고는데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음으로써 가계의 전통을 성실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증명하셨다. 어머니도 시어머니의 가르침에 충실해 잠자는 것에 대해서만은 말을 아꼈다. 내일이 시험인데도 쿨쿨 자고 있으면 깨우는 걸 자제했다. 책상에 엎드리면서 몇 시에 꼭 깨워달라고 당부를 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시간이 되어 두어 번 흔들어 보다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의자에서 끌어내려 이불속에 넣어 버렸다. 성적이 엉망이 되는데 기여한 어머니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
부끄러운 걸 알 나이였던 것 같다. 안방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 얼굴이 간지러워 눈을 떴는데, 방안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친척 아저씨였다. 아마 아저씨의 우려 섞인 눈빛 때문에 잠이 깬 것 같았다. 어머니는 과일이라도 깎으러 부엌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민망한 얼굴로 일어나려는데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나는 단박 아픈 사람이 되어야 했다.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이젠 좀 괜찮다고 했다. 연출된, 기운 없는 걸음걸이로 안방을 물러 나오면서 기가 막혔다. 손님이 왔으면 깨워서 딴 방으로 보내야지 입을 벌리고 자는 나를 그냥 안방에 방치해 놓다니.
어머니는 그런 식이었다. 정리정돈을 똑바로 해라. 깨끗이 씻어라. 밥을 남기지 마라. 공부 좀 해라. 신발 제자리에 벗어 놓아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행동을 규제하면서도 자고 있으면 조용했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어머니가 내 방에 들어오는 기색이 있으면 잠든 시늉을 한 적도 많다. 그러면 무슨 용무가 있어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왔던 문을 가만히 닫아주고 발소리를 죽였다.
달라이 라마가 ‘잠은 최고의 수양修養’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럼, 할머니나 어머니는 자손들의 정신 수양을 위해 잠에 관한한 그리 너그러웠나.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년에 한 번, 초파일에나 절에 가는 고부가 달라이 라마의 수행에 관한 아포리즘까지 꾀고 있을 리가 없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할머니와 어머니는 ‘잠이 보약’이라는 말을 굳게 믿었음 직하다. 많은 자식을 욕심껏 챙겨주지 못하니 보약 대신 잠이라도 실컷 재우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잠 하나는 실컷 자면서 자랐고, 지금도 남보다 많이 자고 있다. 살아오면서 계속 숙면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나는 생겨먹길 잠이 많게 생겼다. 쓸데없이 눈이 크고 눈 꼬리가 쳐진데다가 속눈썹이 빗자루처럼 매달려 있어 조금만 피곤하면 스르르 눈에 힘이 풀린다. 그래서인지 내 눈을 보면 멀쩡하다가도 졸린다는 사람이 있다.
잠이 많은 사람은 대게 게으르다. 게으른 사람은 새로운 일을 모색하기보다 안주하기를 즐긴다. 나는 잠(게으름의 다른 이름)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친 적도 많다. 그렇지만 능력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일을 도모해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보니 얼굴이 뜨뜻한 게 아무래도 자랑할 일은 아니지 싶다.
잠이 많아서 게으른지, 게을러서 잠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신 수양’은 매일 매일 모자라지 않게 잘 하고 있다. 이렇게 성실히 修行의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 득도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순조로웠던 수행에 장애가 생겼다. 별다른 갱년기 증세가 없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하필 불면증이라는 복병이 내습할 줄이야. 잠을 못이루고 전전반측하는 밤이 무룻 기하이며 신새벽에 홀로 깨어 마당을 내다보다 아침을 맞는 일이 예사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벽에 걸려있는 보왕삼매론이 나를 그윽히 내려다 보고 있다.
수행하는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 지지 못한다.
성인이 말씀하시길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역시 득도는 만만한 길이 아니다.
송혜영 수필가
경남 울산 출생
2004년 현대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현대수필문인회 회원
에세이피아 편집 자문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