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절하게 걸어온 인생역정>
-인연의 소중함을 간직하면서-
이민홍 장군(예비역 육군 소장)
곱고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진 기원학사 법우회원님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 그 무엇을 탐하고 원망하리요
라고 일반적으로 말하지만
우리에겐 보석 같은 선후배님이 옆에 계시니
얼마나 복 받고 행복한 삶을 영유하는 사람이라 남들이 부러워합니다.
고로 우리들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비록 왕성했던 시절 넘쳐흐르던 쾌활과 낙천이 서서히 도망가고
외로이 황혼에 서 있을지라도
그 기백만은 금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4년 동안 자신들이 알게 모르게 면역력을 키워 시공을 초월한 자유자제력이 축적되어
어떠한 역경에도 극기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사료되는 바
박종철 회장님이 이끄는 회장단에서 처음으로 기원학사 법우회 Essay집을 출간한다니
정말 기쁜 일입니다.
게다가 문장력도 없는 소생에게도 한마디 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주신
박종철 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학송 법우회 사무국장님에게도 노고를 치하합니다.
기원학사 법우회 전도에 늘 웃음 가득하시고 늘 행복 충만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생각-
모임에서 볼 수 없는 선후배님들 지금 모두 어디 계시는지
나 홀로 옛 주소 중구초동107번지에 우뚝 서서
지난날을 그리며 하늘 쳐다보니 흰 구름만 바람에 흘러갈 뿐
옛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네요!!!
지금 모임에 동기동창으로는 권기종 박사 오형근 박사 두분뿐일세...
57년전 흑백사진 한 장 꺼내놓고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름을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네...
-추억속의 기원학사 생활-
저학년 때 사생장 모습이 떠오른다.
죽비소리 한 번에 대중의 일사불란한 행동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높아 보이고 근엄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각인되었다.
나는 언제 사생장을 한번 해 볼 수 있을까?
바램을 가졌더니 4학년이 되면서 마침내 사생장이 되어 죽비를 잡았다.
비교적 엄격한 리듬을 타고 대과없이 임기를 마친 것이 아름답고 좋은 지난 생각으로 남았다.
-파란만장했던 군생활-
그 당시 전국16개 종합대학에만 ROTC 제도가 도입되었기에 이 길을 택했다.
3학년부터 처음으로 군사학을 접해 1964년 2월 ROTC 2기로 2615명이 육군소위로 임관.
이중 3명만의 장군을 배출 각각 학교 명예를 하늘에 띄웠다.
고려대 1명, 동국대 1명, 경희대 1명이였다.
나는 오직 천지신명과 불보살님의 절실한 가호의 은덕으로 그 고마움을 평생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은혜 입은 모교에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을까 염원하던 차
소령 진급을 하고 모교 학군단 선임 장교로 보직을 받아
대학 측과 학군단간에 원만하고 원활한 교량 역할로 학교 측에 여러모로 도움을 준 것이 뿌듯한
보람으로 어깨가 으쓱했다.
학군단 근무를 마치고 본격적인 경쟁의 길로 접어들었다.
육사 갑종 3사 학군 출신의 보이지 않는 선두다툼.
특히 진급을 위한 교육·보직 관리가 치열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래서 동국대학 기원학사 출신으로 군에서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으려면 남보다 배가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좌우명을 설정했다.
1. 다른 사람보다 교육을 많이 받아야 산다.
2. 교육 성적이 10등 안에 들어야 산다.
3. 보직 관리를 잘해야 산다.
몇 가지 예를 들어 자랑해보면 정규 육군대학을 2곳 졸업했다.
○ 한국 육군 대학 정규과정 (상위10%)
○ 자유 중국 육군대학 정규과정 (우등상 수상)
○ 한국국방대학원 (1등)
장기복무 동기생 중 최고로 많은 교육을 받았다. 하하하 기분 좋았다, 신났다.
삶의 모든 순간은 만남이고
남기는 흔적은 기억이 됩니다.
나는 당신 삶에 따듯한 흔적이 되기를...
-절대 잊을 수 없는 과거 한마디-
1981년도 대령 때 절벽 낭떠러지에 봉착. 저승사자 출현.
종교가 다른 악질 지휘관을 만나 죽음의 사지에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악통을 당했다.
이것이 나의 종착인가 생각하면 피눈물이 펑펑. 앞이 캄캄.
그러나 이대로 끝낼 수는 절대 없었다.
나의 태산 같은 빽 관세음만 주야로 불렀다.
드디어 1987년 1월 육군 준장으로 승진.
이어서 1991년 1월 육군 소장으로 승진.
이민홍 인생의 1막 1장을 마쳤습니다.
아이 조아라 아이 조아라
우리는 별일 아닌 것에 감동하고
별일 아닌 것에 즐거워하고
별일 아닌 것에 행복해하자!!
여러분의 전도에 늘 웃음 가득하세요!!
첫댓글 이민홍 장군님 존경합니다. 에세이 감동입니다. 법체강녕 만수무강 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