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승공 配(처) : 대승공할머니
① 2008년 무자보에 신라김씨 알지 후손 김균(金稛) 딸(女)(見丙寅譜,1926년 병진보를 보라)
② 1423년 영락보, 1565년 가정보, 1689년 기사보, 1742년 경신보, 17656년 을유보, 1803년 정사보, 1864년 갑자보에 없는 대승공 부인(配)을 1926년 병진보에 차문 족보를 그대로 옮겨 대승공 부인을 김균 딸이라고 등재합니다.
③ 대승공 아들 좌윤공의 관직을 구보 左尹을 2008년 무자보에서 佐尹으로 등재합니다.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
김균(金稛, ? ~ 1398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군호는 계림군(鷄林君),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360년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여 과거를 준비하다가 조준(趙浚)을 알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조준이 국정을 맡을 때 여러 번 천거되었고,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냈다. 1392년 조준의 설득으로 7월 17일 조선 개국에 참여하여 태조를 추대한 공로로 개국 3등공신에 책록되고,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가자되고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 공신호를 받았으며, 계림군(鷄林君)에 봉하여졌다.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다. 1398년 졸하였다. 사후 제숙(齊肅)의 시호가 내려졌다. 슬하에 김맹성(金孟誠)·김중성(金仲誠)·김계성(金季誠) 세자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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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 계림군파는 신라 태보공 김알지를 시조로 삼고,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 계림군(鷄林君) 김균(金稛)을 파조로 하는 경주 김씨의 한 분파이다
경주 김씨 계림군파(慶州金氏 鷄林君派)는 경주 김씨(慶州 金氏)에서 분파된 한국의 성씨로, 파조 김균(金稛)은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에 있는 계림군사당이 있다.
3. 결론
① 대승공 부인은 차문에서 만든 김균 딸이라는데 김균은 조선 개국공신이며 대승공은 고려 개국공신입니다. 즉 조선조 김균 딸이 고려조 대승공 부인이 될 수 없습니다(차문이 문화류씨 사료를 왜곡한 것을 하나하나 정정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일부 류문에서 문화류씨 시조 할머니는 “김알지 후손 김균 딸이다”라는 무식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데 2019년 10월 13일 모성사에서 대승공 향사 때 대승공 위패를 보면 할머니를 국대부인(國大夫人)이라는 봉작까지 확인했으나 여러 학자의 고증을 받았으나 성씨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② 좌윤공 휘 효금을 지금까지 족보에는 좌윤(左尹)이었는데 2008년부터 좌윤(佐尹)으로 하였는데 佐尹公으로 사용하는 분이 계시고
③ 일개 회사(한글과컴퓨터) 기사가 誤字로 쓴 參奉으로 쓰는 경우가 있어 한글과 컴퓨터사에 시정을 요구 했더니 본인이 필요한 한자를 본인이 등록해서 사용하라고 했는데 무슨소리하느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에 모든 교지나 임명장은 참판 참의 참교 찹봉 모두 叅자로 되어 있는데 후손들이 선조 관직을 參으로 쓰면 안됩니다.
저는 컴퓨터에 叅奉을 이렇게 등록하여 사용합니다
컴퓨터에 "參判"만 컴퓨터 기사가 써놓았는데 +를 눌러 "叅判"을 등록하면 아래처럼 叅判이 등록됩니다.(이것이 한글과 컴퓨터회사 답변입니다. 앞으로 일개 회사 기사가 잘 못 표기한 "參判"을 사용하지 말고 한자를 등록하여 교지에 글자대로 叅判으로 쓰기 바랍니다.
※ 參글자와 叅글자는 같은 글자(同字) 이지만 선조들이 교지를 받을 때 參 글자에 한획을 더한 叅글자를 써 주는 것이 선조에 대한 예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