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려
전철을 기다리다보니 배달민족이란 배달광고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광고 대상을 받았다는 배달광고를 보고 있노라니 혀가 차졌다. 어찌 저리도 깜찍하게 끌어다 붙였을까.
배달, 배달민족 배달의 기수. 배달의 나라. 입속으로 웅얼거리다가 한글날 노래가 생각났다.
학생시절 때 10월9일 한글날이면 어김없이 행사가 있었다. 으레 조그만 입을 모아 노래를 불렀다.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 긴 역사 오랜 전통 지녀온 겨레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볼수록 아름다운 스물 넉자는 그 속에 모든 이치 갖추어 있고 누구나 쉬 배우며 쓰기 편하니 세계의 글자 중에 으뜸이도다 한글은 우리 자랑 민주의 근본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한겨레 한맘으로 한데 뭉치어 힘차게 일어나는 건설의 일꾼 바른 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 희망이 앞에 있다 한글 나라에 한글은 우리 자랑 생활의 무기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
한글날 노래 가사전문
어린 맘에도 자랑스러워 주먹을 꼭 쥐고 노래했던 생각이 났다. 입속으로 노래를 따라하다가 슬그머니 화가 났다.
광고대상을 줬단다.
아들들에게 불평을 하면, 재미있고 기발 나고 깜찍하잖아요, 광고잖아요. 하면서 시대감각에 떨어졌다고 하며 광고에 민감하다고 할 것 같다.
같은 음은 같은 뜻을 낸다고 한다.
북간도를 말을 타고 달리던 자랑스러운 배달민족과 오토바이타고 배달통을 달고 달리는 배달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짜낸다.
화가 났다.
핸드폰을 꺼내들어 광고판에서 전화번호를 찾아보았으나 인터넷주소만 나와 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누구에게라도 동조를 받고 싶은데 아무도 배달의 기수에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했다.
사람들은 커다란 배달광고간판 앞에서 전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흩어져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이 일에 나만 속상해 하고 있는 나 자신 때문에 속상했다.
전철이 들어오려는지 어느새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내 옆에 가방을 메고 핸드폰을 손에 들고 이어폰을 꽂은 청년이 서있다. 훑어보아도 신분을 알 수가 없다.
고등학생일까, 아님 중학생 같기도 하고 얼굴을 보니 제대하고 복학한 얼굴인 듯도 하다. 나이가 드니 모두가 어려보이고 귀엽다.
툭 팔꿈치 쳤다. 학생이냐 하고 묻자 대답 없이 험악한 표정이 왜냐고 묻는다.
간판을 가리켰다. 저래도 되냐고 다짜고짜 물었다. 한방 칠 기세의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재빠르게 쫑알거렸다.
난 인터넷을 못해요, 학생들이 문제 좀 삼아 봐요. 젊음은 저런 일을 묵과하면 안 돼요. 분노도 할 줄 알아야 해요. 그 학생인 듯 젊은이는 내 말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얼굴 표정마저 그렇군요. 그러네요하는 표정이다.
전철이 들어오자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사람들 속으로 섞여버렸다.
잘 가라 인사라도 해 줄걸. 우린 한어머니 밑에서 한 솥밥을 먹은 배달의 민족, 배달의 자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