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막 4: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막 4: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막 4: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막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막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 4: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오늘의 성경 본문을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는 거짓을 폭로하고 바로 잡으려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을 사용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뜻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광풍을 만나 물에 빠지는 것인가 아니면 건너편으로 이동하는 것인가? (막 4:35)
; 예수님은 분명히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광풍은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이 가자고 하신 길에 광풍이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 광풍을 하나님께서 보냈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 심한 왜곡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고서 가는 길에 광풍을 보내야지. 어떻게들 하는지 좀 보자.'라고 하는 신을 선한 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광풍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광풍의 근원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그동안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고난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에게서 왔거나, 타인 때문에 왔거나, 나의 실수에서 왔거나, 그냥 자연적인 일 중에 하나입니다.
2. 그렇다면 왜 제자들이 깨우기 전에 예수님께서 광풍을 알아서 처리해 주지 않으셨나?
; 하나님은 없다고 하던 자들도 쓰나미나 지진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신'을 탓합니다. 또 인간의 잔인함을 통해 벌어진 사건 사고를 만나도 '하나님은 뭐하시나'라고 합니다. 911같은 사건이 일어날 때, 신이 없다고 떠들던 자들까지 '아니, 하나님은 뭐하고 계신건가'라며 불평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셨다'고들 합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죄를 이미 십자가에서 심판하셨습니다. 베푸신 그 은혜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자들은 앞으로 마지막 때에 최종 심판하십니다. 지금은 은혜시대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우리의 죄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지 않으십니다. 911은 테러집단이 일으킨 것이고, 쓰나미는 죄로 인해 깨어진 자연계에서 일으키는 자연현상입니다. 흉악한 사건 사고는 사단의 쓰임을 받는 인간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하여 저지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신이 이 모든 사사건건에 관여하여 일처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잘못된 해석입니다.
최고 권력을 가진 왕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그 왕이 그 나라에 일어나는 사사건건에 참견을 하며 처리하고 다니는 것을 주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도 않고요. 대신 권세를 위임합니다. 권세를 받은 자가 직무를 태만하게 한다고 해서 왕이 왕좌에서 내려와 그 직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우리에게 믿는 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서 사용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문제가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그 해결도 하나님이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 이것은 뿌리 깊은 거짓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만 있으면 하나님을 탓하고 믿지 않는 자들도 "신은 뭐하는 건가?"라며 하나님 탓을 하는 것입니다. 차마, 하나님을 탓할 용기가 없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의문합니다.
3. 광풍중에도 평안 할 수 있다는 것은 광풍이 없다는 뜻인가?
; 예수를 믿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아예 문제가 없을 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중에도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한 배를 타신 예수님의 권세를 알고 그 안에서 평안하게 안식할 수 있다는 것과 광풍이 와서 배를 흔들고 있는데도 '광풍은 없어, 괜찮아'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제자들이 광풍 속에서 '이렇게 광풍이 몰아쳤지만 물리적인 세계에서도 주인이신 예수님이 우리와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우리는 안식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과 광풍이 몰아치는데도 '이건 광풍이 아니야, 광풍은 없어'라고 하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면서 안식할 수 있다는 것은 당면한 문제를 없는 것으로 취급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빌 4:4). 그것은 문제가 있지만 주님이 계시니 영적인 진리 안에서 기뻐하자는 것이지 문제가 있는데도 없는 것으로 여기거나 무관심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닥쳐도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는 길에 광풍이 있을지라도, 이 나라도 그리고 우리 개개인도 주께서 의도하신 그 목적지에 분명히 도달할 것입니다. '저편으로 건너가자!'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미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