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들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존귀함 그 자체입니다.
그 존귀함은 말로 표현 불가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한자로 쓰면 基督敎會/기독교회)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의 사람들과 같은
겉모양새를 하고 있는 무리 떼들이
그리스도의 사람들 중에 함께 섞여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알곡이 아닌,
가라지에 비유 되어 있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뽑아 버릴까요?
라며 묻자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이 다친다며
그냥 두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교회(그리스도의 사람들)중에
알곡만 있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알곡 중에 가라지가 섞여 함께 있으니
이것이 어디 보통 문제이겠습니까?
양이 아닌 것이 양의 탈을 쓰고
양들과 함께 있다면
어찌 보통 문제라 하겠습니까?
누가 알곡이고 누가 가라지며
누가 양이고 누가 양의 탈을 쓴 것인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기에 분간 되지 않고
다들 진짜로 여긴다는,
이점은 무시무시한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저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차도
가늠 되지 않는 혼돈의 상태가
오늘날의 교회가 직면해 있는 현실입니다.
후일에 가서는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낸다는 (마13:49)
다음과 같은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같은 들판에 풀을 뜯고 있지만 양과 염소는 따로 나눠지고
같은 논에 심겨져 있지만 알곡과 가라지는 따로 나눠지고
같은 밭에 두 여자가 김을 매고 있지만 따로 나눠지고
같은 자리에 두 남자가 누워있지만 따로 나눠지고
같은 그물에 걸린 고기도 따로 나눠지고
같은 등불을 들고 있지만 따로 나눠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어느 시대 보다
영적 분별력이 요구 되는 지금입니다.
그 까닭은,
성경적인 기독교회가 아니면서
성경적인 기독교회와 같은 겉모양새를 하고 있는
무리들이 출현해서 함께 섞여 있고
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성경적인 기독교회인양 주장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그들이 누구냐?
대표적으로 WCC.WEA기독교입니다.
WCC라 칭하는 세계교회협의회와
WEA라 칭하는 세계복음주의연맹이
1940년대에 출현해서
세계교회와 한국교회를 점령하여 다수가 되어
함께 자리하고 있기에
무서운 현실이 되어 버린
지금의 한국교회 현실 상태입니다.
그래서 WCC.WEA기독교와
성경적인 기독교회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하되,
여러 관점에서 알아야 합니다.
본 내용은 그 중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WCC.WEA기독교는 이렇습니다.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이 세상에 속한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성경책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틀림없이 그대로 인용합니다.
(다소 다르게 인용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등,
인용합니다.
이 같은 WCC.WEA기독교의
인용은 틀림없이 맞습니다.
왜냐 하면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말하기에
성경적인 기독교회의 성경 인용과 다르지 않고
같습니다.
그런데 WCC.WEA기독교가
성경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틀림없이
그대로 인용함은
양이 아닌 것이 덮어쓴 양의 탈입니다.
알곡이 아닌 가라지가 하고 있는
알곡의 모양새입니다.
겉모양새는 성경적인 기독교회처럼 하고는 있지만
그 속은 성경적인 기독교회가 아닙니다.
WCC.WEA기독교가
성경적인 기독교회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이고
이 사람들이 불교라는 종교를 믿듯,
이 사람들이 이슬람교라는 종교를 믿듯,
이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어떤 사람들인가?
좀 더 이해 쉽게 비유하자면,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알맹이인 반면에
WCC.WEA기독교는 쭉정이입니다.
성경적인 기독교회와
WCC.WEA기독교의 겉모양새는
같은 성경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그대로 틀림없이 인용하기에
같은 성경적인 기독교회처럼 보이지만
WCC.WEA 기독교는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아담으로 말미암은 그 사람 그대로입니다.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아담으로 말미암은 그 사람 그대로이기에 쭉정입니다.
성경적인 기독교회도 본래는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아담으로 말미암은 그 사람이었기에
생명 없는 빈껍데기 쭉정이 이었습니다.
그런 쭉정이에게
알맹이가 주어져 그 생명으로 살아났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성경적인 기독교회입니다.
이 세상 창조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지으심을 받은
아담으로 말미암은 모든 사람은 쭉정이입니다.
WCC.WEA기독교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성경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틀림없이 그대로 인용하지만
그래서 겉보기에는 성경적인 기독교회처럼 보이지만
알맹이 없는 쭉정이입니다.
알맹이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적인 기독교회도 본래는 알맹이 없는
쭉정이 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알맹이가 주어졌고
생명을 가졌고
그 생명으로 살아났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며
우리들은 그 생명으로 영생하며 .
그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성경적인 기독교회입니다.
WCC.WEA 기독교와
이 같은 성경적인 기독교회의 차이가 무엇이냐 하면,
WCC.WEA기독교는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이
성경책을 보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틀림없이 그대로 인용합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고
여전히 쭉정이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로부터
쭉정이인 우리들에게 오셔서 알맹이가 되어 주셔서
이로서 우리들은 성명을 얻어 가졌고
그 생명으로 살게 되었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이고
이런 우리들이 성경적인 기독교회입니다.
반면에 WCC.WEA기독교는
그들이 성경을 보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그대로 틀림없이 인용하지만
여전히 쭉정이입니다.
모양과 형식과 종교적인 열심은 있지만
그 모든 것은 알곡에 대한 가라지 이고
양이 아닌 것이 덮어쓴 양의 탈입니다.
모양과 형식과 종교적인 열심이 중요 한 것이 아니고
생명 없는 빈 쭉정이기에
알맹이라는 생명이 있어야 함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 살고
그 생명으로 인한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느니 하는
율법의 행위론 자가 아닙니다.
율법을 다 지킬 수도 없지만
다 지킨다 하여도
여전히 생명 없는 쭉정이입니다.
성경적인 기독교가 가진 생명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에서 비롯된 생명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생명을 주셨고
이를 받아 가짐으로
쭉정이에서 생명이 있게 되었고
이 생명으로 쭉정이가 살게 되었고
이 생명으로 인하여 살아갑니다.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WCC.WEA 기독교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WCC.WEA기독교는
이 세상 창조시에 지으심을 받은
아담으로 말미암은 사람이고
이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고
성경을 가지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
이렇다 저렇다 인용합니다만
여전히 쭉정이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자신 안에
우리 자신의 생명으로 계셔서
그로 인하여 살게 되었는지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인지 지
우리 자신인지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성경적인 기독교회이어야 하고
우리 자신 성경적인 기독교회임을 믿으시오
그래야 합니다.
그런 우리들은
우리들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서 주어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생명으로 우리가 살게 되었고
그 생명이 우리 자신 안에 살아 계시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런 우리들이 성경적인 기독교회입니다.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우리는 생명 없는 빈껍데기뿐인 쭉정이 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명을 주셨고
이 생명을 받아 가짐으로
이 생명으로 우리들이 살게 되었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인지
그런 우리들의 삶인지 관심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은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하지 아니하고
WCC.WEA 사상에 미혹 당해
WCC.WEA기독교가 목적하는 바,
‘이 세상 사회 구원’에 대부분이 빠져 있는
한국교회 대부분의 현실 상태입니다.
모양과 형식과 열심 하는 행동이
마치 잘하는 신앙의 삶처럼 보이지만
헛된 열심이고 쭉정이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에
이에서 벗어나야 하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나의 생명으로 계셔
내 자신 그로 살아 살아나게 하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는
내 자신의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율법 준수다 뭐다 하는
그런 율법주의 행위 사상에서도
벗어나야 합니다.
보십시오.
롬9: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신구약 성경 전체를 알고
보지 않고 달달달 외운다 하여도
내 안에 나의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가 계시지 않고
그로 살아가는 내 자신이 아니라면
쭉정이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주의날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당으로 오고 가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 자신이
성경적인 기독교회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품입니다.
창세기 때부터 시작된 역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때까지의 모든 역사의 완성품이
성경적인 기독교회이기에
성경적인 기독교회만큼 존귀한 존재는 없습니다.
그 모든 역사로
쭉정이인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으로 주어진 것이고
그 생명으로 살아난 것이고
그 생명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고
그 생명으로 영생하게 되는 것이고
그 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기에
이러한 성경적인 기독교회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의 완성품입니다.
그래서 존귀하고 존귀하기만 합니다.
성경적인 기독교회가 아닌,
유사 기독교가 넘쳐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는 성령으로 비롯된
이 같은 영적 분별력이 있어
율법주의 행위론 자들이나
비 성경적인 WCC.WEA사상으로부터
미혹 당하지 않고
성경적인 기독교회로
우리 자신 굳게 지켜지기를 기도 합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