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중생한 영이 범죄하는가?
중생한 영은 성결하여져서 옛사람의 부패성이 없기 때문에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옛사람의 부패성은 육신에 있기 때문에 육체의 욕심이 범죄한다는 것이 성경적인 말입니까?
계약신학대학원 대학교의 신학
1.중생론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가르칠 때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다(요 3:5).
죄를 짓지 아니 하나니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범죄하지 않는가?
一. 성도의 중생한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중생했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함이요 하나님의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베드로전서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했다. 또 누가복음 8:11에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성도의 중생한 영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 중생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은 다시 죽지 않고 범죄하지 않는다. 박윤선 목사는 "그리스도 신자의 인격은 성경 말씀대로 보아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 곧 옛 사람과 새 사람이다(엡 4:22-24). 새 사람은 거듭난 생명이니 그것은 범죄할 가능성도 없다. 그러나 신자라도 혹시 불행하게 범죄하게 되는 것은 옛 사람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했다(박윤선 저 요한일서 주석 Page 362-363 참조).
하나님께로 났음이라 중생한 영은 하나님께로서 난 새 생명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 새 생명은 범죄하지 않는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했다. 이 말씀에 대하여 "성도는 상습적으로 범죄치 않는다(가끔 실수하여 범죄할 수 있다고함)"고 해석하는 분들이 있다. 이 해석은 범죄치 않는다는 뜻으로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실수하여 범한 죄도 범죄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실수하여 간음이나 살인을 하였으면(상습적이 아님) 그 사람이 간음이나 살인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중생한 성도는 절대로 범죄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완전주의자들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중생한 성도라도 새 사람으로 살 때에는 범죄하지 않으나 옛 사람으로 살 때에는 범죄한다.
二. 중생한 영 전체가 다 산 영이요 새 생명이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의 몸은 아직 죄와 사망 하에 있으나 성도의 영은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전체가 살아났다는 것이다. 로마서 8:23에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했다.
여기 몸의 구속이란 성도의 영은 살아났으나 몸은 아직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성령과 중생한 영이 합력하여 몸을 죄에서 건져내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영을 중생시킬 때에 일부만 살렸을 리가 없다. 성도의 영이 만일 일부분만 살고 일부분은 죽어 있다고 하면 성도의 영은 산 것도 아니요 죽은 것도 아니다. 또 성도의 영을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된다. 한 사람의 영을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없다.
성도의 영이 일부라도 죽어 있다고 말한 것을 성경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에베소서 2:1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고, 요한복음 5: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 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했다. 여기서 성도의 영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겼다고 했다. 에베소서 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다. 여기서는 성도의 영은 벌써 하늘에 올라가 앉았다고 했다.
성도의 영이 일부만 살았다고 하면 죽은 부분은 하늘에 앉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성도의 영이 일부분(살아있는 부분)만 하늘에 앉아 있고, 죽은 부분은 하늘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논리적으로도 모순되고 성경에도 맞지 않는다. 요한복음 11:26에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의 중생한 영은 영 전체가 다 살아난 것이요 그 영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새 생명이다.
三. 옛 사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갈라디아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자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5:16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마가복음 7:21-23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했다. 여기 모든 죄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곧 욕심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에베소서 4:22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육체의 욕심, 육체의 정욕, 육체의 소욕을 옛 사람 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범죄하는 옛 사람은 육체의 욕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四. 육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육체의 원어는 (씩스)라고 하는데 성경에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태복음19:5 "그 둘이 한 몸( )", 골로새서2:5 "육신( )으로는 떠나 있으나", 히브리서 12:9 "육체( )의 아버지", 요한복음 6:53 "인자의 살( )을 먹지 않고", 요한복음 6:55 "내 살( )은 참 양식", 로마서 1:3 "육신( )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고", 로마서 9:5 "육신( )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고",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 )이 되어" 등의 모든 성구를 보아 육체( )는 부패성이 아니고, 살(肉)이나 몸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이 육체를 몸이 아니고 부패성이라고 하게 되면 예수님도 부패성이 있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므로, 육체( )는 부패성이 아니라 살(肉)이나 몸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육체의 욕심과 육체가 가지고 있는 악한 성품과 육체의 소욕과 육체의 정욕이 옛 사람이다.
성경에는 성도의 마음이 두 가지로 표현되어 있다. 로마서 7:25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했다. 에베소서 5:19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라고 하였다. 성도에게 악한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마음이 있다. 마음은 하나인데 중생한 영에게 이용될 때는 선한 마음으로 나타났고, 육체의 부패성에게 이용될 때는 악한 마음으로 나타난 것이다. 성도의 한 인격 안에 새 사람(중생한 영)이 있고, 옛 사람(육체의 부패성)이 있다. 성도가 새 사람을 따라 살 때에는 그 마음에서부터 죄를 떠나게 된다.
五. 중생한 영은 자라난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다. 히브리서 5:13-14에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했고, 마태복음 5:48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했다. 이것은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같이 온전해진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온전을 목표로 하고 달음박질하며 계속 자라나는 면을 말한 것이다. 중생한 영이 자라난다는 것은 물체가 자라나는 것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 속성들이 자라난다는 말이다.
성도는 중생할 때 하나님의 형상인 의와 진실과 거룩과(엡 4:24) 지식(골 2:10)과 능력과 지혜(고전 1:30)와 선과 사랑을 받았다. 성도가 이것들을 점점 덧입어 나아가야 된다(롬 13:14). 덧입은 것만큼 의와 진실과 거룩과 지식과 지혜와 능력과 선과 사랑이 커진다. 이러한 영의 속성들이 커지는 것이 영이 자라나는 것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계속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가야 한다(갈 4:19). 그리하여 성도가 죽을 때는 옛 사람을 다 벗어 놓고 자라나서 온전히 거룩하게 된 그 영이 하나님 앞으로 간다. 요리 문답 제37 문답에 "신자가 죽을 때 그 영혼(Soul)이 완전히 거룩하게 되며 즉시 영광에 들어가고"라고 한 것도 이 같은 내용과 같다고 볼 수 있다.
六. 성도가 범죄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지는 문제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언제나 옛 사람의 소행이고, 새 사람 즉 중생한 영의 소행은 아니나 그 범죄한 것을 중생한 영이 책임을 지고 탄식하며 같이 회개한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책임지고 대신 형벌 받으시고 대신 의를 행한 것과 같다
七. 로마서 7:15-25에 대한 고찰
로마서 7:15에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라고 했는데, 여기 "나의 행하는 것"을 "옛 사람이 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이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로마서 7:17에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행하는 자"는 "옛 사람이 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내가 아니요"한 것은 "중생한 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한 것은 "옛 사람 속에 거하는 죄의 부패성"이라는 말이다.
로마서 7:19에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라고 했는데, 여기 "내가 원하는 바 선"은 성도의 새 사람(중생한 영)은 선을 원하고 있으나 옛 사람(부패성)은 악을 행한다는 것이다.
성도가 악을 행할 때 중생한 영은 반대하고 양심에 가책한다. 범죄한 후에도 중생한 영은 계속하여 반대하고 책망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범죄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심령이 괴로워서 회개하게 된다.
로마서 7:23에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했다. 여기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란 "육체의 부패성"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성도가 범죄하는 것은 옛 사람(육체의 정욕, 부패성)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八. 영이 범죄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구들에 대한 고찰
1. 고린도후서 7:1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라고 했다. 본 절 초두에 '그런즉'이라고 한 것을 보아 6장 후반부와 연속되는 말이다.
"육과 영과 온갖 더러운 것"이란 6장에서 말한 불법, 어두움(6:14), 벨리알, 믿지 않는 자(6:15), 우상(6:16) 등을 가리킨다. 여기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은 성도의 영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외부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가리킨다. 만일 그것들이 성도의 안에 있는 것들이라고 하면 육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라고 하지 않고, 자신의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2. 미가 6:7에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라고 했다. 미가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대변자로서 이스라엘 전 백성을 대표하여 한말이고, 자기 개인에 대한 말이 아니다. 그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지 않고 영혼의 범죄(불신자는 영혼이 범죄로 죽어 있음) 한 것을 위하여 번제나 수송아지나 수만 강수 같은 기름이나 몸의 열매인 자녀를 드려도 안되고 오직 공의를 구하고 인자를 행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뿐이라는 뜻이다(8절).
또한 시편이나 다른 성경에 영혼이 상한다, 낙망한다는 말이 있는데(시 77:3, 142:3,4, 시 42:5), 중생한 성도의 영이 범죄한다는 뜻이 아니며, 다만 성도가 범죄한다는 말이거나 성도가 범죄할 때 영혼이 탄식하는 뜻일 것이다. .
2.우리의 신앙노선
우리의 신앙노선은 복음주의·개혁주의·칼빈주의·보수주의이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기 위하여 자유주의, 신복음주의, 신비주의를 배격한다.
① 우리의 신앙노선은 복음주의이다.
"복음주의"(Evangelism): 복음주의는 성경의 계시, 영감, 무오, 권위, 표준, 최종성, 하나님의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1위 2성(신성과 인성), 처녀탄생, 대리적 속죄의 죽음,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최후심판, 이신득구, 이신칭의, 내세의 영생 등을 믿고 전한다는 의미에서 복음주의 또는 복음주의자들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복음주의자들이라 함은 로마 천주교의 교황주의와 성례주의에 대항하여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믿고 전하는 자들을 가리켰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불행하게도 복음주의라는 용어가 신 복음주의자들의 전용물로 되었음으로 그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보수주의(근본주의)에서는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② 우리의 신앙노선은 개혁주의이다.
개혁주의(Reformism): 16세기 로마 천주교의 그릇된 신앙, 교리, 제도, 체제에 반대하여 일어난 종교 개혁자들의 신앙노선을 말한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이란 루터, 칼빈, 쥬윙글리, 낙스, 벨링거, 베자와 같은 개혁주의 신학자들의 신학을 말한다.
초기 개혁주의자들의 신앙과 신학사상은 그들의 신앙고백서들과 저서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서는 개혁주의 신앙을 대표하는 신앙고백서이다. 미국에서는 죠나탄 에드워드(Jonathan Edwards)에 의하여 개혁주의 신학이 재 공헌되었고, 죠지 윗휠드, 길벗 테넷(George Whitefield and Gilbert Tennet) 같은 목회자, 부흥사들에 의하여 확산되었으며, 하지, 윌필드, 반틸, 메이쳔, 바빙크(C. Hodge, B.B. Warfield, C. Vantil, J. Machen, H. Bavink) 그리고 한국의 박형룡 박사님 등에 의하여 발전되었다.
③ 우리의 신앙노선은 칼빈주의이다.
칼빈주의(Calvinism): 종교개혁자들 중 특히 죤 칼빈, 죠나단 에드워드, 구 프린스톤 신학자들, 박형룡 박사님의 신앙노선이다. 칼빈주의는 인간이 범죄한 후로는 영적으로는 ⓐ 전적타락, 전적부패, 전적무능, ⓑ 무조건적 선택, ⓒ 제한적 속죄, ⓓ 불가항적 은혜, ⓔ 성도의 보존 등 5대 교리와 하나님께만 영광, 은혜(믿음)로만 구원, 믿음으로만 의롭다(이신칭의)는 진리이다. 칼빈주의는 곧 신본주의이다.
④ 우리의 신앙노선은 보수주의이다.
보수주의(Conservatism): 성경의 계시, 영감, 무오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지켜 내려오는 신앙노선을 말한다.
보수주의를 미국에서는 근본주의라고 한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보수주의는 미국에서의 근본주의와 동일하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 근본주의는 20세기 초 신학적 자유주의가 교파를 막론하고 미국 전역에 걸쳐 활개치며 침투할 때 성경의 무오와 권위, 하나님의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신성과 인성),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대리적 속죄의 죽음, 육체적 부활, 승천, 재림, 이신득구, 이신칭의, 최후심판, 내세의 영생과 형벌 등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fundamental doctrines)을 보수하기 위하여 자유주의를 대항하여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 일어난 교회 내에서의 보수 신앙 운동이다. 그러므로 근본주의는 배교와 불신앙에 대하여는 성별적 입장, 전투적 입장을 취하며, 성경적 연합운동을 강조한다. 20세기 근본주의의 지도자들은 그래샴 메이쳔(J.G. Machen), 칼 맥킨타이어(C. McIntire), 밥 죤스(Bob Jones), 이안 페이슬리(Ian Pais- ley), 탈마지 스펜스(O.T. Spence), 한국의 박형룡 박사님 등이다.
우리는 자유주의(Liberalism)를 반대한다.
"자유는 어떤 사람이나 또는 어떤 방자한 권력의 지배로부터 해방 또는 감금으로부터의 석방"을 뜻한다(Webster Dictionary, p.537). 자유는 속박, 구속, 제한, 억압으로부터 석방, 해방되어 제 마음대로 하는 행위이다. 신앙적 측면에서 참된 자유는 양심의 자유, 신앙의 자유이다. 신학적 측면에서 자유란 전통과 정통 교리와 신앙에서 이탈하고, 인본주의 철학과 불신앙에 근거하여 정통 교리를 부인하거나 또는 재해석하는 주의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는 인본주의, 불신앙, 배교, 교리적 이단이다.
우리는 신 복음주의(Neo Evangelicalism)를 반대한다.
"신 복음주의"는 하나의 신 중립주의(new neutralism), 타협주의, 포용주의, 반(反) 성별주의이다. 박형룡 박사님은 신 복음주의를 "신 자유주의, new liberalism"이라고 하였다. 신복음주의의 출발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보수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신앙적, 교리적, 행위적 문제들로 충돌이 심할 때 자유주의에 대하여 관용하며, 협동과 연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들은 보수주의에서 이탈하여 관용과 타협의 중립노선으로 나가게 되었고 자신들은 단순히 복음주의자들이라고 불렀다. 신앙문제, 진리문제에 대하여 애매모호한 중립 입장을 취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아니면 "아니오", 예면 "예"라고 분명히 하여야 한다.
우리는 신비주의를 반대한다.
인간의 이성을 배제하고 내적 체험과 경험만을 중요시하는 신비주의를 반대한다. 신비주의는 인간의 이성, 감정, 의지의 삼대 요소들 중에 감정적인 면만을 강조하며, 현대 방언, 신유의 은사, 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이런 입장을 취하는 노선을 우리는 신 오순절 계통의 교회라고 정의한다. 기독교는 종교이니 만큼 신비주의적 요소는 전적으로 인정하나 그릇된 신비주의는 반대한다.
⑤ 우리 교회의 정치는 의회 민주정치이다.
장로회 정치는 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들에 의하여 다스리는 의회민주 정치를 말한다. 그런데 장로회 정치는 교회를 대표하는 강도와 치리를 겸한 장로나 치리 장로로 구성되어 있다. 강도와 치리를 겸한 장로를 목사라 하고, 치리장로를 장로라고 한다. 장로 정치제도는 감독들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감독정치도 아니요, 반면에 회중들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회중 정치제도도 아니다. 장로 정치제도는 감독제를 억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회중 전체에 의한 치리를 배척한다.
장로 정치야말로 상호 협동과 상호 견제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회 민주 정치제도이다. 장로회의 정치 원리는 미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우리의 신앙노선은 복음주의, 개혁주의, 칼빈주의 보수(근본)주의 장로교이다. 우리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위하여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리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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