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9(603). 재악산(载岳山) 사자평 고사리학교(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 학생, 서울 나들이 사진과 사자평(獅子坪) 지명 유래
아래의 은석초등학교(서울 소재) 단체 사진은
재악산(載嶽山 = 载岳山) 사자평 고사리학교(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 학생, 서울 나들이 사진입니다
이 사진(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은 정대재 선생이 당시에 직접 찍었다 합니다
필자(도재국)가 환경업무를 담당할 때 "태풍 셀마"가 할퀴고 지나간 "재악산(載嶽山) 사자평(獅子坪) 습지지역"을 헬기로 찍었습니다
위 사진은 국가습지로 지정하기 전의 사자평 일대 항공사진입니다
울산 사람 이유수는
사자평(獅子坪)을 사자벌(沙者伐, 沙自伐)로 왜곡시켜 재악산(載嶽산 = 载岳山) 정상을 상징하는
즉, "짐승을 상징하는 사자봉(狮子峰)"을 "넓은 광원"이라는 뜻의 사자벌(沙者伐, 沙自伐)로 선전했습니다
이는 재악산(載嶽山 = 载岳山)을 천황산(天皇山)으로 조작하는 연장 선상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자평 분교의 사자평(獅子坪)은
짐승의 사자(獅子), 사자후(獅子吼)의 짐승 사자와 관련된 지명입니다
재악산은 워낙 큰 산이어서 정대재 선생이 진불암에서 공부할 때 까지만 해도 호랑이가 있었다 합니다
위 사진은
정대재 선생이 수미봉 아래의 진불암에서 고교진학을 준비하며 공부할 때를 추억하며,
대학교 다닐 때 다시 진불암을 찾아 찍은 기념사진이라 합니다
진불암에서 고개를 넘어면 바로 사자평(獅子坪)입니다.
표충사에서 사자평 가는 최단거리 코스는 내원암, 진불암, 진불암 고개, 사자평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너무나 경사지고 험해서 일부 등산객 외는 거의 다니지 않는 길입니다
국가 사적지인 "천황산 요지(天皇山 窯址)"도 "재악산 요지(載嶽山 窯址)"로 변경해야 합니다
위 사진에서 진불암 건축 자재를 짐작해 보면,
기둥과 서까래는 현지 조달, 기와는 인근의 "재악산 요지(載嶽山 窯址)"에서 구워서 조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재악산 요지(載嶽山 窯址)"를 울산 측에서 천황산 명칭을 따서 국가 사적지인 "천황산 요지(天皇山 窯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산명이 조작되므로써, 국가 사적지도 따라서 조작된 명칭을 사용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울산 측은 2015년도 국가지명위원회 회의 때, 이 사적지를 증거의 하나로 제출했습니다.
옛날부터 있어 온 "載嶽山 窯址"가
1989년에 이유수가 조작한 증거를 뒷받침하는 물증으로 사용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즉, 증빙하는 연대가 뒤바뀐 것입니다.
"載嶽山 窯址"가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는데,
"1989년도에 이유수가 조작한 천황산(天皇山)"을 증거로 울산 측이 내민 것은
"증거가 될 수 없다" 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 사진은 고사리 학교 학생을 서울의 은석초등학교에 초청하여
서울 구경을 시켜줄 때 사진으로 정대재 선생이 직접 찍은 사진이랍니다
이 사진은 정대재 선생이 밀우회 회원들과 고사리학교를 찾았을 때 찍은 사진이랍니다
이 사진 속에 정대재 선생이 있다 합니다
이 건물은 진불암(眞佛庵) 건축 이후의 건축 교사(건물)로 보입니다.
즉 작전도로 개설 이후에 건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당시 사자평의 대부분의 화전민들의 주택은 "밀양군 단장면 구천리 사자평 지역"에 있었고,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사자평 지역"에는 몇 채가 없었습니다.
이는 필자(도재국)가 밀양시청 환경관리계장으로 재직할 때,
사자평 지역을 국가습지로 지정하기 위해서 사전에 환경정비를 할 때
국가습지로 지정할 밀양지역 전체와 울산지역 전체를
밀양시 환경관리계의 직원들을 인솔하여 저가 직원들과 직접 환경정비를 했습니다.
그 때 필자는 사자평에 수십 번을 출장가서
화전민들이 쳐놓았던 철조망을 다 걷어내고, 쓰레기를 치우는 정비를 했는데,
그때 울주군청이나 울산시청에서는 현장에 온 적이 없습니다.
수거한 엄청난 폐 철조망과 쓰레기를 트럭으로 실어내리기에는
작전도로가 너무 위험해서, 저는 고심 끝에 헬리곱터를 이용해서 폐 철조망을 실어 내렸습니다
그때 보니까 습지지역의 북쪽(울산지역)에 "주택 폐허지"가 몇 채 있었고,
"수미봉 동록인 즉, 습지지역의 서쪽인 밀양지역에 주택 폐허지"가 대부분 몰려 있었습니다.
지금의 습지지역의 북쪽은 울산땅이고, 남쪽은 전부 밀양땅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지지역 전부가 밀양땅인 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사자벌(沙自伐, 또는 沙者伐)이 아닌, 사자평(獅子坪)
저가 이런 글을 적는 이유는
- 비록 습지지역이 밀양지역과 울산지역으로 반반씩 되어 있지만,
- 또 소수의 주택지가 울산땅에 있었다 해도,
- 사자평 대부분의 주민의 그 당시 주거지가 밀양지역에 있었고,
- 사자평 전체 지역의 행정관할도 밀양군에서 했고,
- 사자평 일대의 작전도로를 제39사단 예하부대인 제119연대 제2대대(일명 밀양 평촌대대)에서 관할했습니다
- 사자평(獅子坪)이라는 지명 유래도
- 밀양땅인 표충사에서만 조망되는 사자(獅子) 형상의 사자봉(獅子峰)에서 파생된 사자평(獅子坪)이고,
- 사자봉(獅子峰)의 상징이 재악산(載嶽山)입니다.
- 그래서 제1봉을 천황산(天皇山) 이라 하면 안되고,
- 사자평(獅子坪)을 이유수가 주장한 사자벌(沙自伐, 또는 沙者伐)이라 하면 안됩니다
- 밀양문화원에서 발행한 "밀양지명고"에도 사자봉(獅子峰)과 사자평(獅子坪)이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 밀양지명고에는 사자벌(沙自伐, 또는 沙者伐)가 기록조차 없습니다
대머리 선생님이 고사리학교의 유일한 선생님으로서 교장선생님이라 합니다
사자평(獅子坪)에 거주한 모든 학생도 "밀양 산동초등학교 사자평 분교"에 재학(在學)
필자(도재국)가 보기로는 아마도 "박재갑 선생님"으로 추정이 됩니다
박재갑 선생님은 필자의 아버님의 고종사촌 형님의 아들이 되는데, 필자에게는 내재종 형님이 됩니다.
연세가 올해로 90대 초반으로 짐작되는데, 아버님에게 동생뻘 됩니다.
너무 오래되고 저가 천성적으로 사람보는 눈썰미가 없어 얼굴은 기억이 안납니다.
박재갑 선생님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고사리학교에 오래동안 근무를 하셨고, 고사리학교 하면 박재갑 선생을 연상시키듯이
"고사리학교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셨고, 오랫동안 근무를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박재갑 선생님(형님)은 퇴직 후에
김해시 지내동에 사실 때에 회갑을 맞아 저(도재국)가 회갑 축하차 지내동 자택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박재갑 형님(교장 선생님)은
예절에 관한 책을 회갑기기념으로 출간하셔서 한 권을 집에 가져와서 오래동안 보다가
이십여년 전에 이사를 하면서 분실하였습니다
박재갑 선생님은
재작년엔가 창원의 어느 요양원에 계신다는 소문을
선생님의 처가 [밀양시 무안면 마흘리 백안동마을 거주 석(石)모씨 ] 분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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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재 18.03.18. 12:37
위의 밀우회 회워들이 산동초등학교 사자평 분교의 선생님과 찍은
기념사진 속에서 검정색 조끼를 입은 등산복 차림의 청년이 바로 소생 정대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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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국 18.03.19. 06:06
고사리학교가 적힌 학교 건물 사진에 10명의 사람이 나오는 뒷줄 맨 오른쪽 사람이 정대재 선생이고, 이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전부가 밀우회 회원들이랍니다
밀우회란
재경밀양향우 학우회라는 뜻이라 합니다
즉, 밀양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의 모임이라 합니다
첫댓글 위의 밀우회 회워들이 산동초등학교 사자평 분교의 선생님과 찍은
기념사진 속에서 검정색 조끼를 입은 등산복 차림의 청년이 바로 소생 정대재입니다.
고사리학교가 적힌 학교 건물 사진에 10명의 사람이 나오는 뒷줄 맨 오른쪽 사람이 정대재 선생이고, 이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 전부가 밀우회 회원들이랍니다
밀우회란
재경밀양향우 학우회라는 뜻이라 합니다
즉, 밀양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교에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의 모임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