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영광, 하느님께 영광
‘영광’이란 단어 보통 언제 사용합니까?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토록 큰 상을 제게 주신 것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영광’이란 단어는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사용하는 단어는 아닙니다. 스스럼없는 친구사이에, 가족들 사이에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라 존귀한 분, 훌륭한 분, 특별하거나 비범한 분들에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또한 평범한 일상 중에 사용하기보다 특별한 순간, 정말 감동적이고 영예로운 순간에 사용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성인(聖人)을 만나거나 높은 경지에 도달한 수행자를 만날 때, 노벨평화상 수상자나 탁월한 업적을 남긴 위인을 만날 때 우리는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영광이란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분이 계십니다. 두말 할 것 없이 하느님 아버지십니다. 그리고 그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일들은 하느님 오로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셨습니다. 즉 매사 일거수일투족을 행함에 있어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의식하며 순명하며 그렇게 짧은 한평생을 살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비록 너무나도 짧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해 늘 깨어있었으며 하루 온 종일 아버지의 뜻에 집중적으로 순명하며 살아가셨기에 1년을 천년처럼 그렇게 밀도 높게, 영양가 있게, 가치 있게 살아가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놀랍게도 30년간의 세월 동안 나자렛에서 침묵하며 지내셨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결정적 출가(出家)의 때를 기다리시며 30년 세월 동안 조용히 공생활 준비 작업을 해 오신 것입니다.
드디어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잘 알고 계셨습니다. 마음이 급하고 바쁘셨습니다. 잠잘 시간, 휴식 시간까지 아껴가며 복음 선포 활동에 매진하십니다. 제자들을 교육시키시며 밀물처럼 몰려드는 수많은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일일이 환대하시며 그들에게 치유와 기적과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동의 때가 왔습니다. 끔찍한 수난과 고통, 죽음의 순간입니다. 너무나도 끔찍한 순간, 생각만 해도 살 떨리는 순간이었기에 정말이지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순간, 최종적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순간이었기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묵묵히 순종하십니다.
보통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 어떤 때일까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신을 계발하고 양성시켜 크게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세상에 크게 공헌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세상도 그를 인정해주는 일이겠지요. 그걸 경우 우리는 통상 ‘가문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문에 영광을 드리는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한 노력이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일입니다.
부족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살아가셨는지를 살펴보면 바로 정답이 나옵니다.
예수님처럼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셨던 그 일들,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구원, 사랑 안의 일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기간 내내 일관되게 보여주셨던 그 사랑의 삶을 내가 대신 펼쳐나가는 일입니다.
첫댓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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