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시 이것만은 알아두자
많은 사람들이 자연으로의 귀향을 원하나, 또 그만큼 자연으로의 귀향을 어려워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다수가 경제력에 그 어려움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는 물질적, 교육적, 문화적
풍요를 이룬 도시에 대비,그만한 입지를 갖추지 못한 농촌의 빈약성에 어려움을 두고 있다.
이는 귀농이나 귀촌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이 둘은 수단으로서의 입지는 같으나, 방법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보다 분별하여,수익성에 중점을 둔 귀농으로서 보자면, 초기 경제력 보다는 귀농에서
자생할 역량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귀농의 어려움으로 봉착한다고 볼 수 있다.
정신적 기반에 중점을 둔 귀촌으로서 보자면, 초기 경제력과 변화되는 환경에 대한
적응 여부에 어려움을 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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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에 대해서
귀농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삶의 충족, 즉 1차 산업으로서의 농업이나, 어업, 축산업, 임업
등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취득, 자산의 가치를 획득하는데 있거나, 2차 산업으로서의 생산물에
대한 제조, 가공 등의 행위를 통하여 자산의 가치를 획득하는 데 있다. 당연히 경영계획,
경영기술, 경영정보, 그리고 지속적인 육체적 노동 등을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단순한 생각으로 접근 할 수 없으며, 접근해서도 안 된다. 귀농은 인생의 생존과 삶의 만족도에
직결된 현장이다.
현대의 귀농은 글로벌 세계가 된 만큼, 힘들고 어렵다. 왜냐면 지각과 인식, 그리고 경제력이
사람들의 까다로움 때문이며, 수입물이 밀물 같이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지 않은가. 고부가가치의 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 수출할 수 있다는 것
등으로써 말이다.
오늘날 매스컴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기사가 연매출 몇 억이라는 부농에 대한 기사이다.
그들의 특징은 결국 그들의 인고와 의지를 우선적으로 들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현대의 변화된
환경을 잘 맞춘 데서 성공을 얻고 있다. 그야말로 현대가 요구하는 것에 충실히 발맞춤 한 것이다.
귀농의 부농들은 사회 현상을 바로 보는 눈을 지녔고, 그를 잘 이용하는 현명한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다.
현대인이 요구하는 농산물 생산에 심혈을 기울였고, 남들이 일찍이 접근치 않은 농작물 개발에
정열을 기울였다. 그들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현명함은 존경되어야 마땅하고,
모범을 삼아야함이 마땅하다.
귀농을 하려면
땅을 먼저 보지 말고, 현대인의 심정을 먼저 보라.
농부가 될 생각을 하지 말고, 경영인이 될 생각을 먼저 하라.
양을 생각지 말고, 질을 먼저 생각하라.
위치를 따지지 말고, 상품의 가치를 먼저 따져라.
더러움을 생각지 말고, 자랑을 먼저 생각하라.
육체적 고통의 땀을 먼저 생각지 말고, 정신적 뿌듯함의 보람을 먼저 생각하라.
귀촌에 대해서
귀촌은 자연을 대상으로 한 인생의 충족, 즉 3차 산업으로서의 서비스업 등으로써
수입취득행위를 하거나, 5차 산업에 해당되는 오락과 취미, 약초채취 등으로서의 수입취득
행위를 하데 있다. 그리고 예술창작, 요양이나 휴양, 신앙적 활동 등의 목적을 지니고 정신적,
육체적 자산의 가치를 획득하는데 있다. 따라서 육체적으로는 소기의 활동만이 요구되고,
거의 대체로 정신적 활동을 중심으로 한다. 귀촌은 인간적 가치 회복을 꾀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귀촌의 염원은 대체로 자기 성향이 영향을 미친다.즉 자연주의적 기질이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귀촌은 대체로 수려한 풍경을 대상으로 하며, 고요한 분위기를 대상으로 하며, 즐거운 생활을
대상으로 하게 마련이다.
당연히 일부 사람에게 있어서는 크지 않은 욕심의 짭짤한 수입 정도도 대상이 된다.
물론 크나큰 꿈도 대상이 되고, 아름다운 꿈도 대상이 된다.
귀촌의 어려움이란 경제적 여건이 대체적인 것이겠지만, 그에 못지않은 어려움이 바로 귀촌의
장소를 정하는 일이다.
열군 데를 보아도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고 망설임을 더한다. 벌써 집을 짓고, 채소까지도 수확해
먹을 수 있는 세월이 여기서 다 흘러가 버린다 해도 무방하다. 이 망설임은 하늘도 어쩌지 못한다. 귀촌의 꿈은 그만큼 사라져가고, 결국 현실에 안주하는 것만을 최선으로 삼는다.
당장에 과도한 망설임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왜냐면, 귀촌의 의미는 자연풍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을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고사가 있다.
자연풍경은 몇 달을 가지 않아서 내 마음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극히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있어서 좋은 풍경을 갖기란 ‘하늘에 별따기‘이다.
대체로 겪어보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왠지 모르게 좌절에 치닫는 어려움을
겪는다. 하다못해 풍경의 수준을 점점 낮추게 된다. 불만이 더욱 쌓일 수밖에 없다.
벌써 몇 군데를 돌아보았는지 모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선택하기가 힘들어 진다.
너나나나 없이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심상이다.
이왕 그런 상황이라면 자연풍경에 기대지 말라.
그래도 내 생활의 만족을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법. 현대의 요구답게 개성을
살려라. 개성을 살릴 수가 있다면 허허벌판에서도 만족하고 자랑할 수 있는 귀촌의 낙원을
창출해 낼 수가 있다. 물론 그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
오늘날 현대가 개성의 시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질문명에 따른 폐해로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의해 억눌린 감정을 갖고 있으며, 그를 탈피하기 위하여 보다 파격적인
것을 요구하는 심리가 강해졌다. 그것이 곧 개성의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산업구조가 모래알처럼 세분화되어 있듯이, 그 밖의 모든 사회적 구조도
세분화되어간다. 인간의 생활 구조도 개성적 요소로 세분화되어 감은 당연하다.
가공이나 생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포기의 풀이 약초, 효소, 장아찌, 나물, 차(茶),
액즙, 염색, 화장품, 마사지, 욕제(浴製), 장식, 그림 등 수십 수백 가지로 개발된다.
이런 점을 참고하여 창안한다면, 귀촌의 아이템 영역은 그야말로 무궁무진이다.
개성이란 특별한 창의적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이랬건 저랬건 모름지기 ‘흔히 없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오늘날 강남 주택가 한복판에 초가집 한 채 지어 찻집을 만들어보라.
아마도 강남의 귀족들 발걸음에 문지방이 반질반질해질 것이다. 경남 울산 언양에 자수정
동굴이란 곳이 있다. 자수정을 캐낸 동굴터, 아니, 동굴을 내느라 황량해진 산에 불과했던
그곳은 지금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 특별한 관광의 명소가 되어있다. 비행기레스토랑,
기차나 선박카페 등이 등장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었지 않은가. 일본의 어느 마을은 나뭇잎을
팔아 연 2~3억엔의 매출을 올린다고 한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어느 욕쟁이할머니의 음식점,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 욕을 듣고 싶어 온다나? 개성이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귀촌지의 장소 선택에 망설임을 갖지 말라. 아무리 애써 고른다 할지라도 장소에 대한
미적 감각은 곧 사라지고 만다. 오직 자기 생활만이 남게 된다. 불영계곡의 불영사를 귀촌지로
갖추어도 내 생활의 정체성이 없다면, 그곳은 금방 숲 속의 텅 빈 공터에 불과해진다.
귀촌을 하려면
낭만을 먼저 떠올리지 말고,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일을 먼저 생각하라.
장소를 먼저 따지지 말고, 내 생활을 먼저 생각하라.
자연풍경에 먼저 기대지 말고, 개성을 창출할 수 있는 정보나 아이디어에 먼저 기대라.
생존수단을 먼저 걱정하지 말고, 생존수단으로 삼을 요소를 먼저 생각하라.
외로움을 먼저 생각지 말고, 자연과의 소통을 먼저 생각하라.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생각지 말고, 낯선 것에 대한 믿음을 먼저 생각하라.
생활은 실패해도 땅은 실패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거의 병폐적으로 부동산 가치가 높다. 그런 가치성 때문에 투기라는 말도
나오고, 졸부라는 말도 나온다. 한마디로 땅장사 치고 손해 보는 사람 드물다는 것이다.
땅장사가 아니어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에는 인건비, 토목개발에는 토지보상비>라 할 정도로
토지의 가치력은 막강하다.
그러나 투기의 명목으로 자연의 땅을 매매하지 않는 이상, 좋은 현상인지 나쁜 현상인지를
구태여 생각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귀농(귀촌)의 염원에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한 것.
이는 지탄의 대상이 아니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 수 있다. 자연으로의 귀향에 대한 염원은 맨 먼저
땅을 사는 것으로부터 충족된다. 땅을 사는 한, 귀농(귀촌)의 실패는 없다.
만약 평당 1만원을 주고 산 전답을 대지로 변경시켜보라. 그 자체로 이미 땅의 부가가치는
몇 배로 높아진다. 개발의 여지가 전혀 없는 아무런 쓸모없을 것 같은 산언저리의 임야 300평을
3백만원에 사놓고 그대로 두기만 하면,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가도 매양 300만원의 가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틈틈이 돌을 날라 축대를 쌓고, 향나무나 노간주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키워놓아 보라.
묘지터로서의 값을 몇 배로 톡톡히 받아낼 것임은 틀림없다. 그와 같이 아담한 식물원을
조성하고 싶어 그에 준하는 땅을 산 뒤, 돌로 화단을 만든다던지, 오솔길과 같은 산책로를
만든다던지, 오랜 고목을 이용한 가로등을 여기저기 세워놓는다던지 하는 등의 조경을 매달,
매년 조금씩이라도 해놓고 보라. 천만원을 주고 산 방치된 임야가 아기자기한 공원화가 되면서
순식간 몇 배의 부가가치로 변화되게 마련이다.
사람이 살만한 개울가 곁의 휴경지를 싸게 사서 거기에 무슨 집이라도 한 채 세워놓아 보라.
자기 손으로 손수 세운 집이라면 더욱 그렇겠지만, 아마도 역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급하게 팔아야만 하는 사정이 생길지라도 최소한 본전치기는 보장되리라 장담한다.
결국 생활의 실패로 인한 시간적 손실 및 정신적인 고통은 다소나마 있겠지만,
자산적인 실패란 그다지 없을 것임이 분명하다. 또 모르지 않은가,
몇 배를 받은 탓에 새로운 희망이 활활 타오를 지도.
그러한 지혜와 방법에 대한 용기가 없다면 도대체 꿈은 무엇 하러 꾸나? 우리의 인생은 거의
한결같이 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꿈에 대한 지혜와 용기로써 비로소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기본 원리가 아닌가.
속된 말로, 싸질러라! 들이밀어라! 따지고 보면, 도시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도 매마찬가지지
않은가. 직장의 사주가 개떡 같아서 몇 달을 못 버티고 보따리 싸고 나올지라도,
직장은 일단 구하고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물론 무대포격 선택은 사양해야 할 일이다. 최소한의 목적과 목표, 그리고 계획은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최선도 다해야 한다. 그 뒤의 결과는 역시 하늘에 맡겨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것이 실패를 하건, 성공을 하건 겸허한 일이 아닌가!
출처:전원속의 내집
토지사랑 http://cafe.daum.net/tozisarang/
첫댓글 유익한 정보 감사함다
귀한정보 잘 읽어봅니다.
잘 새겨듣겟습니다ㅡ^^
잘보고갑니다
쉬운 게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