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11장 25~27절)
♥† 신지식의 공급자 예수 그리스도 †♥
신지식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온전한 신지식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주어진다. 그러므로 기독론적인 성경 해석이 필수적이다. 기독론적인 해석만이 참된 생명을 준다. 자연신학이나 인간이성에 의한 해석은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 천하 만민 가운데 거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모세에게 속한 옛 언약백성이 아니다. 세상에 속한 성소에 세워진 땅에 속한 백성도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새 언약백성이다. 하나님 안에 세워진 하늘에 속한 백성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과 생명이다. 이것이 우리가 덧입은 거룩과 영광이다.
첫 언약에는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다.(히 9:1) 옛적에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어떻게 계셨는가? 세상에 속한 성소 가운데 계셨다. 가나안 성소에서 휘장으로 가리우시고 거하셨다. 이처럼 휘장의 장벽이 드리워졌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기지 못하였다. 이는 구약백성이 아들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휘장 밖에 세워진 종 된 백성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은 휘장으로 가리우신 하나님을 알고 섬겼을 뿐이다. 이것이 죄 아래에서 시행된 옛 경륜의 일이다.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을 안다. 하나님을 알되 아버지로 알고 섬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증거는 어떻게 주어졌는가? 사도들의 증거를 통해서이다. 그들은 제자로 부르심을 입은 후에 예수와 동거하며 동행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때에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자신의 사역과 구속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다. 따라서 사도들의 증거가 없다면 예수께서 생명의 주이심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길 수도 없다. 예수께서는 신약교회의 모퉁이돌이시다. 사도들은 신약교회의 토대이다. 우리는 모세율법의 토대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토대 위에 서 있다.
왜 사도들의 증거가 주어졌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뜨려졌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뜨려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죄의 장벽, 곧 휘장의 가리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성령으로 자기백성과 함께 하실 수가 있게 되었다. 옛 경륜, 곧 모세를 통한 경륜은 죄의 질서 가운데 시행된 경륜이다. 그러나 새 경륜, 곧 예수를 통한 경륜은 하늘에 속한 경륜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 아래에서의 장벽이 철폐되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만 백성을 부르셔서 자기 안에 세우시는 참된 구원의 때이다. 휘장의 가리움이 없이 아들 된 백성으로 부르시는 참된 은혜의 시대이다.
이러한 구원과 은혜는 모세제도 아래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옛 언약 아래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모세제도의 완성이다.
우리는 아들을 통하여 주어진 계시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뵙는다.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종말론적인 계시이다. 이 계시는 믿는 자의 아버지로 나타내신 하나님 자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들을 통한 계시 외에는 다른 계시는 없다.
이는 아들이 하나님 계시의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옛적에 하나님께서는 사람 중보자를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을 향하여 진행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계시의 의미도 온전하게 확정되지 않았다. 옛 경륜인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기독론 적으로 해석되지 않은 구약성경의 가르침은 우상숭배이며 사탄의 속삭임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교회를 모세의 교회로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것을 전하는 이는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갈 1:8-9).
옛적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다. 이는 구약시대에서의 하나님의 경륜은 그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도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옛 경륜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질서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옛적처럼 사람 중보자를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 이제는 아들을 통하여만 말씀하신다.(히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휘장의 가리움이 없는 영원한 계시를 나타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옛 경륜인 모세율법, 곧 구약성경은 기독론 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예수의 공생애까지라도 부활의 빛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기독론 적으로 해석되지 않은 가르침은 사변적이며 탁상공론일 뿐이다.
아브라함을 통한 구원의 완성은 솔로몬 성전이다. 천하 만민의 구원은 솔로몬 성전에 있다. 솔로몬의 기도도 천하 만민의 구원에 관한 내용이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조그마한 집에 계시겠는가라는 고백이다.
이는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 천하 만민의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 솔로몬 성전에 계시는 하나님은 온 우주보다 더 크신 분이시다. 이러한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드러난다.
모세제도에 의거하여 주어진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완성된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다. 휘장의 가리움이 없이 더욱 자기백성 가까이에 오신 것이다. 참으로 구원의 때가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의 예배는 모세제도에 의거한 예배가 아니다. 신약시대는 짐승제물과 사람 제사장, 사람 제사장을 위한 십일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하늘에 속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