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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조선,부여,발해 등 고대사토론방 스크랩 고조선(혹은 위만조선)에 대한 간략한 생각
麗輝 추천 0 조회 802 11.02.22 15:01 댓글 3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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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1.02.22 15:01

    첫댓글 신농님이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과 고고학에 대해 여쭤본 글이 있어, 그 글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신농님의 질문이 없어도 전체적인 맥락을 짚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제 글만 옮깁니다. 참고하세요. ^^

  • 11.02.22 17:47

    제 생각입니다만 고조선의 가장 큰 고고학적 문제는 도읍지의 유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아닐까요? 심지어 평양에서조차 낙랑유적은 나와도 위만조선의 도읍지를 증명할만한 유적은 안나오는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 11.02.22 17:59

    본문에 제 질문에 대한 글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질문이 바로 그거였고, 여휘님께서는 속단할 수 없다는 요지의 답글을 쓰신 겁니다.

  • 11.02.22 18:11

    제가 어디 학술회의에 가서 들은 이야기지만 평양의 낙랑유적의 바로 밑에 층을 파보면 위만조선의 유적이 나오지 않겠느냐 했는데 북한에서 실제로 이런 시도를 했는지가 궁금하군요. 그런데 밑의 층을 파봐도 아무것도 안나오면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이 과연 맞느냐는 의문을 다시 제기할 수 있겠네요. ㅋ

  • 작성자 11.02.23 10:46

    낙랑 유적의 바로 밑에 층이라...낙랑의 어떤 유적인지가 중요할 듯 합니다. 낙랑의 성곽이나 취락유적이 존재한다면 그 아래 문화층이 존재할 가능성은 높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낙랑의 분묘유적이 많이 확인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아래 문화층은 존재하지 않을 확률이 높을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도 낙랑유적의 아래층을 조사한 연구는 없는 걸로 알고 있고, 대신 고구려 유적(주로 성곽)의 아래층을 파는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구려 성곽 아래에 고조선과 후조선(위만조선)의 성곽이 확인되었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더라고요. 즉, 낙랑유적의 밑을 파봐도 딱히 위만조선의 유적이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 작성자 11.02.23 10:49

    다물전사님이 제기하실 수 있는(응?) 의문은 지금은 갖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다물전사님 말씀대로 낙랑유적 밑에 위만조선 유적이 나올만한 성격의 유적이 없긴 없네요. 북한에서 아직까지 낙랑시대 취락이 나왔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습니다. 그렇다고 낙랑시대 토성이나 성곽 등이 뚜렷하게 위만조선과 연계성이 있는 녀석들도 없는 듯 하구요. 흐음. 어제 모 교수님과 얘기를 나눠봤지만, 한군현 시대에도 대부분의 주민은 현지인이기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큰 변화 양상이 확인되는 분야는 제한적이라 하시더군요.

  • 11.02.23 11:16

    북한에서 그럼 오히려 위만조선 유적을 낙랑유적이라 오해할 수도 있겠네요?

  • 작성자 11.02.23 11:47

    흠...일단 분묘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북측에서 어떻게 해석할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낙랑유적을 위만조선 것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ㅋㅋ 아마 위만조선 유적이 아니더라도 위만조선 유적이라고 할 녀석들입니다. 그네들은. ㅋㅋ 암튼, 북한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낙랑과 위만조선을 구분하고 있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ㅋ

  • 11.02.22 23:10

    여휘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고조선이 과연 문헌사학의 비중을 무시하고 고고학으로만 연구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결국 양쪽이 다 결합되는 방식이 바람직한데...문헌사학자들이 고고학적 자료들을 활용하는 것도 서투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고고학자들이 문헌을 이용하는 방식 역시 아마츄어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 11.02.23 10:22

    이건 적절한 비판이 아닙니다. 고고학자가 문헌을 이용하는 방식이 어설픈 지 여부는 그와 관계된 글에서 따로 논하면 될 일입니다. 고고학자가 문헌을 이용하는 방식이 어설프다고 하더라도, 본문 내용에 대한 반박이 되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본문 글쓴이와 같은 고고학자 내지는 고고학 전공자가 사학자를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 라는 글쓴이의 자격을 공격하는 글이 되기 쉽습니다.
    본문에 대한 적절한 반론은 문헌사학자가 고고학 자료를 '제대로, 잘' 활용하는 예들도 많다는 걸 들어주는 것이겠지요.

  • 작성자 11.02.23 10:51

    제가 위에서 이렇게 얘기한 이유는, 고조선 혹은 위만조선이 문헌만 갖고 얘기하기에는 문헌이 너무 적다는 것에 주안점을 뒀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대사쪽도 문헌이 많지는 않지만, 상고사쪽은 절대적으로 문헌이 부족하죠. 그렇기 때문에 문헌보다는 고고학적 연구성과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얘기를 한 것이고, 그러한 고고학적 연구성과가 많지 않다는 얘기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문헌사학자들은 고고학적 성과들을 갖다가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지요. 하지만 정작 왜 고고학계에서는 그런 얘기를 안 하는지도 적었던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이 문헌을 이용하는 방식 역시 아마츄어적이기 짝이 없다고 하셨는데, 고조선 혹

  • 작성자 11.02.23 10:53

    은 위만조선에 대해 연구한 고고학자 어느 누가 문헌을 아마츄어적이게 이용했는지 궁금합니다. ^^ 오히려 고고학자들은 공격받을 수 있고, 위험하다시피 하면 상당히 몸을 사리는 편이라 문헌 사용을 많이 자제하는 편입니다. 제 지도교수님도 제가 문헌을 인용하는 것에 있어 늘 너무 과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시곤 하는데,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문헌을 섣불리 건드리면 쉽게 공격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혹여 고고학자들 중 어설프게 문헌을 활용하는 분이 계시다면 어떤 분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적어도 고구려 고고학하시는 분, 그리고 고조선 혹은 위만조선을 연구하는 분 중에는 없는 듯 한데요.

  • 작성자 11.02.23 11:04

    혹여나 문헌사학자한테 그런 얘기를 한게 기분 나쁘셨다면 오해하지 말라는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어차피 모든 문헌사학자의 연구성과를 제가 살펴본 것도 아닐 뿐더러, 제가 언급한 것은 위에 언급한 몇몇 분들에 한정된 것이니깐요. ^^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문헌사학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과감하게(!) 고고자료를 갖다 쓰시는데 그 점이 문제라는 얘기를 하려 했던 것입니다. 물론 적당히 갖다 쓰는 분들도 많으시고, 모르면 모른다 하여 아는 부분만, 혹은 문제가 없을 부분까지만 갖다 쓰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일일히 언급하지는 않았을 뿐입니다. 학제간 교류~아주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이죠. ^^

  • 11.02.23 11:31

    제가 문헌사용 여부를 운운한 것은 그냥 가볍게 이야기한 것 뿐이지 여휘님을 공격하기 위함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분명한 팩트라는 사실은 말해두고 싶군요.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고고학자들의 문헌사용이 어설프다는 것은 고조선 문헌 분석을 문헌학자들과 비교하면 금방 드러납니다. 이것은 전반적인 현상이지 어느 특정 학자들을 지목하는게 아닙니다. 설마 고고학자들의 문헌사용이 문헌학자들과 동급이라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ㅋ 어쨌든 여휘님의 글은 잘 정리가 되어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1.02.23 11:45

    물론 다물전사님이 저를 두고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신 걸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리고 고고학자들의 문헌 활용이 문헌사학자와 동급이라고 생각치도 않고요. 제가 위에서 적었듯이, 제 지도교수님은 제가 조금씩 활용하는 문헌에 대해 굉장히 우려하고 계실 정도로 이 부분은 고고학자들로는 꺼려지는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주변에는 그렇게 문헌을 과감히(?) 쓰는 분들이 안 계시다~고 한 것 뿐이고요. 제가 왜 이런 댓글이 달렸나 생각했는데...제가 고조선 연구는 이제 더 새로운 문헌이 없으니, 고고자료에서 결판내야 한다~는 뉘앙스의 글을 잘 전달 못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암튼, 제 글이 도움이 되어서 다행임다~^^

  • 11.02.24 17:26

    다물전사님과 미주가효님의 댓글에 대하여...
    저의 생각을 하나만 첨언하고 싶습니다...

    문헌사료가 부제하여 알수 없는 부분은 결국,,,,,고고학연구성과로 그 빈공간을 복원할수 밖에 없다는 판단입니다....

  • 작성자 11.02.23 10:56

    아! 그리고 어제 모 교수님과 회식자리에서 간단한 얘기를 나눴는데, 최근 낙랑토기와 위만조선 토기에 대한 분류작업을 하시는 중이랍니다. 이 얘기를 듣고 어찌나 흥분되던지. 기존에는 서북한 지역에서 토기만 나왔다 하면 낙랑토기로 일괄 분류했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런 얘기를 하신 원로분들이 '~카더라' 통신에 낚인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동경대 창고에 쳐박혀있던 낙랑토기들을 다 살펴보고, 최근에 각 유적에서 확인되는 낙랑토기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낙랑토기와 그것과 다른 토기들이 확인되었다는군요. 그러니깐 그동안은 낙랑토기가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고, 낙랑토기의 영향이다, 낙랑의 영향이다~를 얘기한 것이 가장

  • 11.02.23 11:14

    제 생각에는 그 '모' 교수님이 정인성 교수님을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저로서는 그분밖에 연상이 안되는지라 ㅋ

  • 작성자 11.02.23 11:42

    ㅋ 맞습니다. 지금 메일을 보냈으니, 자료를 받는대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 작성자 11.02.23 10:59

    큰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최근에 이에 대해 작성한 논고가 있는데 제가 받아보는대로 정리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약간 힌트를 드리면, '삼각형 점토대토기 단계에서 타날문토기가 확인된다'고 하시더군요(이 얘기 듣고 정말 깜놀했슴. 음...고고학 전공하시지 않으면 잘 모르시겠지만 참고 기다리세요. 제가 나중에 써프라이즈 하겠습니다. ^^). 덧붙여『일본 소재 고구려 유물』1~2권 이후로 3~4권이 완간된다면서 드디어 1차적인 자료 정리가 끝났다고 좋아하시더라고요. 이제는 일본 내의 낙랑 유물을 싹 찾아서 정리할 때라고요. 암튼, 이와 관련된 자료는 추후 소개하기로 하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휘릭~~

  • 11.02.24 07:42

    정인성선생이 다호리 20주년 심포(09년 고고학지 특집호)에서 발표한 내용에 세죽리-연화보유형을 간략히 설명하면서....점토대토기가 타날문토기를 중심으로하는 전국 연의 회도문화와 접촉한 결과라고 설명하였는데....

    이제 거의 만2년여가 흘렀으니...진일보된 견해를 들어볼수 있겠군요....

    그리고.. 일본내 낙랑유물뿐만아니라...국박내에 있는 유뮬 사진원판등도 다 정리되어 일반에 알려졌으면 낙랑이나 고조선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질것이라는 판단합니다.(오영찬선생의 논고로 많은 내용이 공개되었지만)

  • 작성자 11.02.24 10:33

    그러게요. 오늘 중국에 가셨는데, 돌아오시는대로 자료를 보내주신다니 시간은 좀 걸릴 듯 합니다. 점토대토기에 대해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내용이 들어있지 않을까~해서 지금 기대 중입니다. ^^

  • 11.02.24 17:21

    세죽리-연화보유형이 가지는 있는 공간 요동에서 청천강이북지역이라는 공간이외에....
    한반도 중부나 남부지역까지....점토대토기에 타날문토기를 중심으로한 전국 연의 회도문화의 접합이 보이는가가 중요한 관건이 아닐까 합니다...
    정인성선생의 연구가 와질토기 기원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하여....낙랑과 전국 연의 토기문화를 살피는 것이었고...고조선문화로 간주되는 점토대토기문화에 주목한것도 그러한 이유에서 인듯합니다....

    세죽리-연화보유형의 공간과 한반도 중남부에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지.....아닌지가 결국 편년관에서 부터 문화전달된 경로및 주체까지 해석이 달라질것 같습니다..
    정인성선생의 논고가 기대되는

  • 11.02.24 17:22

    군요.
    정인성선생의 편년관과 기존 통설적 입장의 편년관에 대하여 여휘님의 판단은 어떤지도 들어 보고 싶습니다.

  • 작성자 11.02.24 17:37

    ㅋㅋ 너무 크게 기대하지는 마세요. 제가 이쪽에 대해서는 공부한 바가 많지 않아서, 뭐 기존의 통설과 정인성 선생님의 통설과 비교해서 거창하게 쓰지는 못 할 듯 합니다. 그냥 제가 공부하면서 아는 정도만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11.02.25 05:08

    웬걸요 기대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작성자 11.02.25 18:22

    앗. 갑자기 고맙다니요...-.-;;;;

  • 11.02.24 07:41

    위글에서...
    동양고대사로 학위를 한 윤내현선생의 초기논고는 거의 북한연구성과를 매우 유사하였고...이후 차츰 보완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박선희선생의 논고는....려휘님이 지적한것처럼 자료를 오역한 부분만이 아닌듯합니다......자신의 논리에 배치되는 사료나 고고자료는 배제하고, 논리전개상 필요한 몇몇자료만 부각시키는 그런 논리를 전개하고 있어....
    전체 논리전개상에 많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 작성자 11.02.24 10:32

    박선희 선생님은 지도교수님이 윤내현 선생님이셔서 그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고...박선미 선생님은 개인적으로 잘 몰랐는데, 명도전 때문에 알게 됐습니다. 자료 오독 및 필요한 부분만 갖다 쓰는 것이 심하다는 것을 말이죠. 흐음. 그리고 윤내현 선생님의 논고 역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건 어느 누구나 시간이 지나가면 후학들의 비판을 받기 마련이니 이 정도만 하고 넘어가렵니다. ^^;

  • 11.02.26 20:11

    고조선을 최소한 라이벌이었던 연과는 비슷한 수준으로 봐야 맞는 거 같습니다. 우리는 고대국가를 고구려, 백제, 신라로 보고 성읍국가로 보는지..

  • 작성자 11.02.27 20:54

    뭐 라이벌과 비슷한 국력으로 봐야겠다는 상대적인 평가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고조선 자체 평가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겁니다.

  • 11.03.16 09:47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 11.03.16 16:31

    도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

  • 23.04.04 14:11

    고조선의 연구에 대한 생각이 아직 변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하네요. 박물관에 계셔서 바쁘진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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