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초기에는 약탈 경제였다는 설이 요즘 일반적인 대세입니다. 모본왕 즉위초 한나라 공략이 고구려가 약탈경제였다고 주장하는데 가장 큰 예로 쓰입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약탈경제에서 벗어난걸 태조왕정도로 봅니다.
하지만 이 설에는 몇가지 헛점이 있습니다.
먼저 고구려가 약탈경제였다고 주로 쓰이는 예들이 다른 관점으로 해설될수 있고, 해석후 자연스럽게 풀린다는거죠. 그 큰 예로 모본와 즉위초 한나라 공략입니다. 모본왕은 즉위초 한라 동북면은 공략하여 순식간에 허물어 버립니다. 하지만 곧 화친을 하고 물러나죠, 이런 이류로 약탈경제의 큰 예로 쓰입니다. 그러나 이건 모본왕의 즉위시 정국이나 모본왕이 물러날시의 정국을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긱 오류입니다. 모본왕은 일찍 태자로 봉해지지만 다음왕이 되지 못하고 다다음 왕이 됩니다. 이는 모본왕의 세력기반이 그만큼 약했다는것을 뜻하겠죠(모본왕이 어려서 그랬다고 할수 있으나 태조왕의 예가 있으니...)그런 상황에서 즉위한 모본왕은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대외적으로 인정 받을 필요가 있으면, 자신의 세력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가장 좋은 먹이가 후한이었던거죠. 당시 막 중국을 통일하고 어수선한 정국이던 후한은 고구려의 기동성을 암세운 침략에 무너져 버리기 딱이겠죠. 무너져버린후에도 당시 상황으로 인해 보복전도 수행하기 어려울테고요. 후한의 동북면 공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냄으로써 능력을 입증화고 입지가 강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점은 장수들의 지지력을 끌어 낼수 있었던것이죠. 이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모본왕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정치를 하게 됩니다.(여기서 하고 싶었던 정치에 태클을 걸것 같아 한마디 하는데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신하를 가차없이 죽였다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물론 모본왕이 군사적 역량은 뛰어났지만 정치적이나... 다른면에서는 좀 떨어졌을수도 있으나 지금 제가 말하고 있는 부분과 상당히 떨어진 부분이기에... 줄임니다.)
두번째 태조왕대의 책성진출이 식량확보를 위해서 였고, 이 진출을 계기로 식량확보에 길이 트였고, 약탈경제에서 벗어났다고 하죠. 그러나 이 근거는 책성의 지리적,경제적인점을 무시한것에서 나온 근거라고 생각됩니다.아시다시피 책성은 나중에 고구려 제2의 무기생산지가 됩니다. 그리고 고구려 동북면 상업의 중심이 그후 발해 때는 대 일본무역의 중심지가 됩니다.(위치상 신라도중심지를 연결해주는 역할도 했던것 같습니다... 단지 제 추측이구요;;;ㅋ)또 동부여와 기타 민족들의 견제와 통치가 가장 쉰운곳이 책성이 아닌가 합니다. 한마디로 든든한 후방이 생기는 것이죠. 이렇게 경제적 이점이 있기에 아직 완전히 통합된 곳도 아닌 땅을 친히 시찰 나간것 아닐까요?(이 시찰이 어떻게 보면 해가 됬지만, 민족적, 역사적으로 본다면 정말 잘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식량조달도 되긴 하겠지만. 이건 부차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으로 고구려 초기. 고구려의 약탈 비슷한정벌(?) 이부분에 대해선 자세한 글을 아직까진 못봐서 잘 모르겠지만, 초기 고구려를 볼때, 고구려의 위치를 잡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고구려는 상업및 사냥, 수공업도 중시 되었었기 때문에 약탈에 너무 의존적이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만약에 약탈 경제 였다면은 너무 많은 군사를 동원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양 지방의 낙랑국을 정벌할때도 고구려는 국력을 퍼부었습니다.만약에 약탈경제였다면은 과연 많은 군사를 자원을 투자한 다음에 남는것을 있을까요? 정벌후에 거기서 나온돈은 일반 백성및 귀족들이 가져야 하겠지만... 군대 보급하기에도 바쁜데...말이죠...
여기까지입니다. 예전에 들었던 고구려가 약탈경제였던 근거 몇가지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고 반답도 생각해봐서 올린글입니다. 자세한 자료를 찾아보고 그런건 아니니 뭐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습니까?"라는 등에 비슷한 글은 사절해 주십시오.
첫댓글도대체 약탈경제론의 시원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궁금합니다. 혹시 일제 식민사학자들에서 처음 시작된 건 아니죠? 고구려의 시원을 북에서 내려온 극소수의 부여계 무장집단으로만 볼 경우 약탈국가론이 도출되기 쉽습니다. 근데 아니라더군요. 나 집단이라는 압록강 유역에 존재하는 공동체들이 이미 다수 존재했죠.
첫댓글 도대체 약탈경제론의 시원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궁금합니다. 혹시 일제 식민사학자들에서 처음 시작된 건 아니죠? 고구려의 시원을 북에서 내려온 극소수의 부여계 무장집단으로만 볼 경우 약탈국가론이 도출되기 쉽습니다. 근데 아니라더군요. 나 집단이라는 압록강 유역에 존재하는 공동체들이 이미 다수 존재했죠.
맞습니다. 책을 보면 동명성왕 때부터 고구려는 다른나라를 침략해서 식량과 물품을 얻었다는 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