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교육개혁안은 1995년 봄에 발표된 개혁안이고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도 우리교육 구석구석에 크게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가 정부수립이래 성공적인 교육개혁이 중학교 무시험입학제와 고교평준화정책 실시 이외에 거론할만한 것이 별로 없다고 할 때 5.31교육개혁안은 왜 포함되지 않는가 하고 누군가가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5.31교육개혁안은 김영삼정부가 1993년 2월에 출범한 이후 만2년도 더 넘어서 발표된 안이다. 당시에도 교육개혁에 대한 열망이 뜨거워 정부출범과 더불어 교육개혁위원회를 만들었고 정부차원에서 국민을 상대로 개혁안을 공모해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의 개혁안이 답지했고 필자는 그것을 눈으로 보았었다.
그런대도 개혁안은 발표되지 않고 시일을 한참이나 끌다가 교육분야 전문가도 아닌 박세일교수와 후에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이주호교수등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 그것이다. 세상은 환호했지만 교육개혁안을 제출한 수많은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고민도 별로하지 않던 사람들이 앞장서서 만든 안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내용을 두고 말한다면 시대적 요구인 신자유주의적 교육수요를 공급자 측면에서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것이 중심을 이루었다. 반면 중등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확장과 고등교육에 대한 무책임 그리고 입시위주교육 해소와 같은 전통적인 어젠다는 다루지 않고 있었다. 지나놓고보니 과연 그대로 고등교육기관(대학)은 홍수처럼 쏟아져 산업사회의 수요를 감당했지만 중등교육무상화와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무책임화와 입시교육해소와 같은 근본적 문제의 해결은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고 유감스럽게도 오늘날까지도 그러한 상태에 있다(중등교육무상화는 현정부에서 2021년까지 실현을 약속하고 있다).
당시에 5.31개혁안을 발표한 박세일교수는 노동분야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후에 여당 정책위의장으로 발탁되지만 한번도 교육분야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이는 5.31교육개혁안을 만드는데 실질적으로 깊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31교육개혁안은 후에 일본총리를 역임한 하시모토 유따로씨가 평의원시절(1991년)에 의회에 제출한 것이고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개혁안이었다. 이것을 털도 안뽑고 집어삼킨 게 5.31교육개혁안이었다. 그러니 그 안을 어찌 나라를 바로잡을 개혁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그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내용이 타당하고 우리 국민이 환영하면 되지 않는가 하는 반문이 돌아왔다.
5.31교육개혁안은 폭발하는 고등교육수요를 감당해왔다는 공이 있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국가책임의 범위와 규모와 한계에 대한 논의부재와 입시위주교육의 창궐에 대한 방임이라는 과오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눈 것처럼.
임해규 전의원이 2018년도 경기도교육감선거에 뜻을 두고(2017. 10. 20, 미래교육자유포럼) 발표한 기자회견에서 5.31교육개혁안에 대해 아래와 같이
“5·31 교육개혁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패러다임에 발맞춰 잘 진행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이제는 지식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고 그 해답은 학생 개별화 교육”이라고 밝혔다.
는 기사를 보고 소감을 밝힌다. 임 전의원도 필자처럼 그 개혁안이 산업화패러다임에 맞춘 시대적 공로를 인정하고 있고 필자도 동의하지만 그 개혁안의 배경에 대한 이해는 없지않나 싶어 몇자 적어본다.
필자는 당시에 그렇게 많이 제출된 개혁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본의 일개 정치인의 안을 덥석 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 교육주권이란 과연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