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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명령은 영생, 전하고 버림받을까 두렵도다(왕상 13:25-34)
1. 오늘의 말씀 : 왕상 13:25-34
25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에 버린 시체와 그 시체 곁에 선 사자를 보고 그 늙은 선지자가 사는 성읍에 가서 말한지라
26 그 사람을 길에서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가 듣고 말하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넘기시매 사자가 그를 찢어 죽였도다 하고
27 이에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 그들이 안장을 지우매
28 그가 가서 본즉 그의 시체가 길에 버린 바 되었고 나귀와 사자는 그 시체 곁에 서 있는데 사자가 시체를 먹지도 아니하였고 나귀를 찢지도 아니하였더라
29 늙은 선지자가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들어 나귀에 실어 가지고 돌아와 자기 성읍으로 들어가서 슬피 울며 장사하되
30 곧 그의 시체를 자기의 묘실에 두고 오호라 내 형제여 하며 그를 위하여 슬피우니라
31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그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32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
33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어제 주일에는 모처럼 설교하지 않고 예배만 드렸습니다. 그 대신 42년 전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영락교회에서 4월 말 가졌던 산상 기도회의 말씀을 유튜브로 들었습니다. 강사는 26년 전 이 교회를 담임했던 임영수 목사님이었고 그는 나의 신앙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3대째 예수를 믿으며 지금은 팔순에 접어든 그의 메시지는 큰 울림과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 심리적 측면이나 술·담배를 끊는 윤리적 변화도 오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의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는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마음 깊은 곳에서 아멘이 나왔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교제하기 위함입니다(고전 1:9). 저는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되었으나 50대 중반에서야 비로소 하나님과 교제를 시작하였습니다. 이후로 날이 갈수록 신앙생활의 맛을 알게 됩니다. 일만 하다 비참하게 끝나버리는 목사가 아니라, 끝까지 주님과 교제하는 목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교제를 사모하며 말씀 앞으로 나아갑니다. 내 영혼을 보혈로 정케 하소서. 진리의 영이시여, 말씀을 조명하사 우둔한 자로 깨닫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북왕국 여로보암 왕이 제정한 유사 신앙은 북왕국이 멸망하기까지 약 210년간 존치되었다. 북왕국의 왕들은 크고 작은 치적에도 불구하고 하나 같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여 죄를 범하였다. 여로보암은 스스로 만든 벧엘 제단에서 분향하였다. 아마도 진정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가 분향한 것은 제물을 잡아 바친 것이다.
바로 그때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 제단이 파괴될 것을 예언한다. 그 징조로 벧엘 제단이 갈라지고 짐승을 태운 재들이 쏟아지는 이적이 일어났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제지하려다 손이 말랐는데, 그 사람이 행하는 이적을 보고 그에게 손이 회복되기를 구하였다. 여로보암은 손에 회복되자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와 함께 있기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이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지 말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은 심판의 예고뿐 아니라 이후 행동 지침도 포함된다. 어떤 늙은 선지자가 벧엘 제단에서 일어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을 유혹하였다. 자신도 선지자라고 소개하며, 천사를 통해 여호와의 말씀이 주어졌는데, 먹지 말고 마시지 말라는 명령이 번복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늙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의 집에 가서 먹고 마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그 늙은 선지자에게 임하였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길을 떠났고, 그는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귀가 그의 시체 곁에 있었고, 그를 찢어 죽인 사자도 그 시체 곁에 있었다.
25-32절은 늙은 선지자가 죽은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지내는 장면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길가에 버려둔 주검과 그 주검 가까이에서 어슬렁거리는 사자를 보고 사람들에게 알렸다. 늙은 선지자도 이 사실을 알았다(25절). 늙은 선지자는 죽은 그 사람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직감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로다”(26절).
늙은 선지자는 실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나귀를 타고 하나님의 사람이 죽은 곳으로 갔다. 그가 가서 보니 하나님의 사람이 죽어 그의 시체가 길에 버려지고 나귀와 사자가 그 시체를 보호하듯 서 있었다(27-28절). 그러자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체를 나귀에 실어서 자기 성읍으로 돌아와 곡을 한 후 묻어주었다(29절).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주검을 자기의 무덤에 안장하고 나서 “내 형제여”하며 통곡하였다(30절). 그리고 그의 장례를 마친 후 자기 아들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이 묻힌 곳에 같이 묻어달라고 하였다. 곧 그의 뼈를 하나님의 사람의 뼈에 두라고 하였다(31절).
왜냐하면,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참 선지자로서 그가 벧엘 제단에 대해 예언한 것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신도 하나님의 사람이 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베델에 있는 제단과 사마리아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산당을 두고 외친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32절).
33-34절, 여로보암이 멸망한 이유를 약술한다.
여로보암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벧엘 제단의 파괴 예고와 그 징조로 보인 이적을 보고도 여전히 그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아니하였다. 도리어 일반 백성 가운데서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산당의 제사장으로 임명함으로써 유사 신앙을 조장하였다(33절). 그런 일 때문에 여로보암 가문은 죄를 얻었으며 마침내 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34절).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사자에 찢겨 죽었다. 늙은 선지자는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슬피 울며 장례를 지내주었다. 그것은 그가 참 선지자임을 알았고 그가 벧엘 제단과 사마리아의 모든 산당을 향하여 선포했던 예언들도 참된 것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늙은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의 선지자가 북왕국까지 와서 자기 지역에서 예언한 것에 대해 불편함도 있었을 것이고, 예언 자체에 대해 의구심도 가졌을 것이다. 더구나 새롭게 시작된 나라를 방해하려는 하나의 정치 공작으로도 의심할 수 있었을 것이다(이형원).
그래서 그는 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한 말, 곧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말씀을 시험한 것이다. 만일 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참 선지자라면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게 될 때 보응이 따를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런데 유다의 선지자가 먹고 마시자, 즉시 그에게 심판이 고지되었고 그가 죽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예언한 벧엘 제단의 파괴와 제사장들의 뼈가 그 위에 불살라지는 것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늙은 선지자는 이러한 깨달음이 있고 난 후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과 일체감을 느끼게 되어 “나의 형제여”라고 하며 애곡하였다. 그리고 죽은 선지자가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을 알고(22절), 그를 자기 묘실에 장사지냈다.
주목할 것은 그가 아들들에게 남긴 유지이다. 그는 자기가 죽으면 자기를 유다의 선지자 곁에 장사지내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 일은 300년이 지난 후 요시야에 의해 벧엘 제단이 무너질 때 효력이 나타났다. 요시야 왕은 종교개혁을 할 때 유다에서 온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벧엘 제단과 산당을 헐고 불사르고 아세라 목상을 불살랐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산당들이 있는 산의 묘실들에서 해골들을 취하여 단 위에서 불살랐고, 특히 벧엘의 산당에 있는 제사장들을 모두 단 위에서 죽이고 사람의 해골을 단 위에서 불살랐다.
그런데 요시야는 한 묘실의 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묘실은 바로 여로보암에게 심판을 고지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의 것이었다. 그러자 요시야 왕은 그 묘실을 그대로 두고 그의 뼈와 또 그 곁에 함께 있던 늙은 선지자의 뼈를 보존하였다.
“(요시아) 왕은 또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베델에다 만든 제단 곧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그 제단과 산당도 헐었다. 그는 산당을 불태워 가루로 만들었고, 아세라 목상도 불태웠다. 요시야는 또 산 위에 무덤이 있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그 무덤 속의 뼈들을 꺼내어서, 제단 위에 모아 놓고 불태웠다. 그렇게 하여 그 제단들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때 하나님의 사람이 이 일을 두고 예언한 주님의 말씀대로 되었다. 요시야가 물었다. ‘저기 보이는 저 비석은 무엇이냐?" 그 성읍의 백성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유다에서 온 어느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입니다. 그는 베델의 제단에 관하여 임금님께서 이런 일들을 하실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였던 분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 무덤은 그대로 두어라. 그리고 아무도 그의 유해를 만지지 못하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그들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예언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다”(왕하 23:15-18).
요시야 왕의 이러한 행동은 오래전에 하나님께서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을 사자에게 찢겨 죽게 하였지만, 사자에게 먹히지는 않고 그 시체를 보존되게 하셨던 것과 관련이 있다. 늙은 선지자는 바로 요시야 시대 심판의 예언이 성취될 때 하나님의 사람의 뼈와 함께 자기 뼈도 보존되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늙은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시험했으나, 그 사람의 주검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분명히 알고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을 택한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공통으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증거하였다(롬 1:2; 벧전 1:10-11). 그렇다면 이 일화도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선지자는 그가 받은 명령을 어겨 죽임을 당하였다. 늙은 선지자는 그의 주검을 대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비록 하나님의 사람이 시험을 당했으나, 어떻게 한 끼 식사를 거절하지 못한 것이 죽임을 당할 만큼 큰 죄가 될까? 그것은 식사 여부를 떠나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신약시대 참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에게 주신 아버지의 명령은 영생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그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요 17:2).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인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권세를 집행하셨다. 그가 죽으심으로써 아버지의 명령이 이루어졌다(요 19:30, “다 이루었다”).
유다에서 온 선지자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온 아들은 죽으심으로써 아버지의 명령을 지킨 구원자이다. 이제 영생을 얻은 자마다 아들이 죽으심으로써 주신 영생을 살아간다. 그것은 생명의 교제를 통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보는 것이다. 그 영광은 항존하는 아버지의 사랑과 신실이다.
경건한 시인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그의 신실은 궁창에 이른다고 노래하였다(시 57:10). 돔구장의 돔처럼 주의 인자와 신실이 만물 안에 드리워져 있다. 우리가 독생자의 영광을 보는 것은, 우리의 실존이나 현실이 어떠하든 그의 인자와 신실이 드리워져 있음을 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항상 주를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4. 나의 묵상
나는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은 자였다. 그러나 내가 위탁받은 말씀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자였다. 사도의 표상인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창세전 약속된 아들 안의 생명(영생)에 근거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보냄 받았다고 말하였다(딤후 1:1). 그는 이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사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바울처럼 열정을 다해 충성하고자 애썼으나 무엇을 위해 충성하는지 무지하고 오해하였다. 보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선배들에게 보고 배운 대로 한국의 종교성과 유착된 변질된 복음을 전하였다.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도 몰랐지만, 다만 숫자가 모이고 사람들이 반응만 하면 장땡인 식이었다. 선포의 내용도 무지했으나, 선포 이후의 행동 지침도 욕망을 따라 행하였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종교 장사꾼으로 뭇 신자를 속여가며 왕성히(?)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명령이 영생임을 알았다. 내 주께서 그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알았다. 내가 사도로 보냄받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버지의 명령인 영생을 전하기 위함이다.
이제는 기회를 다하여 아버지의 명령인 영생을 전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사도가 될까 심히 두렵다. 사도는 선포의 내용뿐 아니라 이후의 행동 지침까지도 주의 말씀으로 받는다. 바울은 생명을 주는 순전한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는 전파한 후 버림받을 것이 두려워 자기 몸을 쳐 복종시켰다(고전 9:27). 그는 그가 전파하는 복음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고자 범사에 절제하고 인내하였다.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생명의 교제를 다한 후 넘어지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고 두려운 일인가? 하여 오늘도 내 몸을 쳐 복종시켜 하나님께 드린다. 내 영혼을 보혈로 씻고, 죄에 대해 장애자가 되고, 육신에 속한 자기 주장 의지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내 안에 사는 이는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며 내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고 행하는 한 날이 되기를 간구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벧엘 제단에 심판을 고지한 하나님의 사람이 주의 말씀을 어깁니다. 그는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는 성공했으나 주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오명을 받습니다. 그는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는 주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사자에 물려 죽습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는 죽음으로써 주의 말씀이 진실임을 확증하였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죽음으로 확증된 예언을 그대로 믿고 자기 뼈에 대해 유언합니다. 300년 후 그들의 뼈는 보존되었습니다.
아버지여...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주의 명령을 어겨 죽습니다. 하늘에서 오신 아들은 죽으심으로써 아버지의 명령인 영생을 주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자마다 영생을 얻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같이 아들은 영생 얻은 자를 세상에 보내십니다. 이는 아들이 행한 대로 아버지의 명령인 영생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사도의 표상인 바울은 이렇듯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보냄 받았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저는 주의 종을 자처하였으나 주의 명령에는 무지하였습니다.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의 일을 하며 주의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명령도 몰랐고, 이후의 처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심판을 통해 생명을 알고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두려운 것은, 남에게 전파하고 버림받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몸을 쳐 복종시킵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게 하소서. 타자를 판단하기에 앞서 나를 판단하니 심판밖에 받을 것이 없나이다. 주의 자비와 긍휼은 무궁합니다. 오늘도 이 은혜를 부어주소서. 부르심의 감격 속에서 생명을 전하는 자로 드려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