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에 있는 아시리아 유적지 <출처: (cc) Bertramz at Wikimedia.org>
《신들은 물길을 파야만 했네 / 물줄기가, 땅의 생명줄이 흐르게 해야 했다네 / 신들은 티그리스 강 바닥을 팠네 / 그리고 유프라테스 강을 팠다네.》 메소포타미아인들의 홍수 서사시인 <아트라하시스(Atrahasis)>에 나오는 말이다. 이 시는 신들이 최초의 관개수로를 파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고된 삽질에 진저리가 난 신들이 파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신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이 탄생한 유일한 이유는 신들의 노고를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를 통해 당시의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관개수로를 만들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가를 알 수 있다.
고대 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 간에는 최초의 문명이 어디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두 문명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이집트 문명과 가장 달랐던 점은 강의 범람이었다. 나일 강은 봄에 규칙적으로 범람한 반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범람은 불규칙적이었다. 이집트에겐 나일 강의 범람이 큰 축복이었지만 티그리스나 유프라테스 강의 범람은 재앙을 몰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집트는 사막과 바다가 방벽의 역할을 해줘서 비교적 외부의 위협을 받지 않고 유지되었지만, 메소포타미아는 개방된 지역이라 자연적인 보호가 없다 보니 외적의 침입이 잦았다.
이라크 모술의 티그리스 강
이집트 문명은 고왕국에서 중왕국, 신왕국으로 이어졌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새로운 국가로 계속 변했다. 이집트가 동일 민족의 지배를 받았다면 메소포타미아는 지배자가 다른 민족으로 계속 바뀌었던 것이다.
이런 정치, 경제적 차이점은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집트인들이 내세 지향적이었다면 메소포타미아인들은 현세 지향적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문화는 호전적이고 격렬해서 이집트보다 더 암울하고 비관적이었다. 이런 것은 지형과 기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두 문명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었다.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윤리와 사회, 정의의 개념을 세웠으며, 노예제와 제국주의를 추구했다. 기후변화로 위기가 왔을 때 대대적으로 관개사업을 벌인 점도 닮았다.
아카드 왕조의 청동 두상. 사르곤이나 나람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350년경,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아카드(Akkad)’라 불리는 도시국가가 탄생했다. 아카드 제국을 세운 사르곤 왕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여러 도시국가를 정복했다. 그는 유프라테스 강 상류에서 약 1,300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지역을 세계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의 곡창지대로 만들었다.
그 후 100여 년 동안 아카드 제국은 사르곤(재위 B.C.2333~B.C.2279)과 그 후계자들의 성공적인 통치 아래 번영을 구가했다. 제4대 왕 나람신(Naram Sin, 재위 B.C.2255~B.C.2219)은 아카드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 아카드 제국이 어느 날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졌다. 아무런 기록도 남지 않은 아카드 제국의 멸망은 역사가들에게 미스터리였다. 고고학자들은 인구의 과도한 증가, 변방의 반란, 유목민의 침입, 무능력한 관리 등이 이유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화에서는 나람신 왕의 오만으로 신이 징벌을 내려 망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이 제국의 멸망 원인을 설명하지 못했다.
1993년 미국·프랑스 공동연구팀이 폐허가 된 아카드 제국의 도시에서 토양의 수분을 최첨단 과학기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기원전 2,200년 전부터 약 300년 동안 건조화로 인한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었음을 밝혀냈다. 엘니뇨의 영향이었다. 수많은 도시들이 와해되고 곡창지대는 가뭄으로 사라졌다. 기후 건조화는 중동 전 지역을 황폐화시켰다. 사람들이 물을 찾아 떠나면서 도시와 촌락들이 버려졌다.
기후학자들은 아카드 문명의 멸망에는 가뭄 외에도 기온 저하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된 화분 분석의 결과 당시에는 기온도 차차 내려가 지금보다 평균 2℃나 낮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기온 2℃의 하강은 농작물의 생장에 치명적이다.
아카드 왕국은 세심하게 고안된 치수시설과 곡물저장창고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심각한 가뭄을 대처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아카드인들은 가뭄과 기온 저하로 농경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농업 기반사회에서 물 부족은 최악의 사태이다. 아카드 제국이 붕괴했던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당시의 신화를 보면 신전마다 기후신들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후신 아다드(Adad)가 백성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된다는 아트람-하시스 신화는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나람신의 승전비
《위에서 아다드는 비가 드물게 내리게 하였고, 아래에서는 백성들이 물을 절약해야 했다. 강은 지하수로부터 차오르지 않았으며, 밭에서는 수확이 줄었다. 곡식의 여신 니사바(Nisaba)는 등을 돌렸고 어두웠던 평야는 하얗게 변했으며, 황량한 땅은 질산염으로 가득 찼다.》
“급격한 기후변화가 한 문명이 멸망하는 데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례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 대가뭄은 지난 1만 년 사이에 일어난 주요한 기후학적 사건들 중 하나이며, 기후변화가 인간의 생존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예다.”
예일대의 고고학자 하비 웨이스 교수의 말이다. 아카드 문명은 건조화와 기온 저하로 몰락한 문명이었다. 세계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는 기후변화로 인해 붕괴된 최초의 제국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역사에서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오리엔트 문명이라고도 부른다. ‘오리엔트’라는 말은 ‘해가 떠오른다’는 뜻의 라틴어 oriens에서 유래했다. 고고학에서는 현재 중근동 지역과 이집트를 포함해 ‘오리엔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리엔트 사회는 경제적인 삶의 방식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메소포타미아의 ‘정착 농경사회’다. 다른 하나는 아나톨리아, 아르메니아, 이란 고원지대와 시리아, 아라비아의 사막지대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던 ‘유목 상업사회’다.
바빌로니아의 원통 인장. 왕이 신에게 동물을 공물로 바치고 있다. <출처: (cc) Hjaltland Collection at Wikimedia.org>
기원전 9,000년경, 오리엔트 지역은 그때까지의 수렵생활에서 벗어나 농경과 목축생활로 바뀌었다. 기원전 3,000년경에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두 강 유역에서 인류 최고의 문명이 만들어졌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 부근의 이라크 남부에서 수메르인들이 도시국가를 건설했던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카드, 시리아에서는 에블라 왕국이 들어섰다. 여기까지가 앞부분에서 다룬 것이다.
그 후 기원전 2,000년경부터 기원전 1,600년경에는 바빌로니아가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아나톨리아에서 쳐들어온 히타이트에게 멸망당한다. 고고학자들은 이 당시 극심한 건조기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기원전 1,600년에 이르자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모래바람이 날리는 지역으로 변했다. 오늘날의 중동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당대의 한 시인이 남긴 글이다.
《신은 가루로 빻은 곡식이 부족하게 하고 / 배를 채울 야채도 충분하지 않으니 / 들판은 그 활수한 손을 거두어 / 곡물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게 되었네 / 검은 경작지가 하얗게 바뀌니 / 넓은 들판이 소금기 있는 축축한 땅이 되고 / 대지의 자궁은 뒤틀려 / 아무런 식물도 돋아나지 못하네》
바빌로니아를 점령하고 지배했던 히타이트도 기원전 1,200년경에는 멸망한다. 뒤를 이은 제국이 아시리아다.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9세기부터 영토를 크게 확장해 기원전 7세기 초에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612년에 갑자기 멸망했다. 역사학자들은 아시리아의 멸망 원인을 반란, 내란, 바빌로니아의 공격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역사상 최대 제국이었던 아시리아가 이런 원인들로 그렇게 쉽게 무너졌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아시리아의 궁궐을 지키는 반인반수 석상. <출처: (cc) Urban at French Wikipedia at Wikimedia.org>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와 터키 코크대학교의 공동연구팀은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 원인이 기후였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당시 호수 퇴적물 등의 분석을 통해 기원전 657년 대가뭄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기원전 7세기에 극단적으로 건조한 날씨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당시 곡식의 탄소동위원소 분석에서도 기원전 7세기의 아시리아에는 극심한 가뭄이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Riehl et al, 2014). 식량생산이 줄면서 아시리아 제국의 경제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극단적인 가뭄이 발생했던 시기에 반란과 봉기가 일어나고 속국들이 독립을 선언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후변화로 많은 문명들이 성쇠를 거듭했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인간 생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놀라운 문명이었다. 관개기술(수메르), 세계 제국(아카드, 아시리아, 페르시아), 성문법전(수메르, 바빌로니아), 알파벳(페니키아), 말과 전차(히타이트), 철기의 사용(히타이트) 등 문명의 주요한 요소 대부분이 이 시대에 탄생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인류의 자랑일 뿐 아니라 문명의 실험장이기도 했다.
많은 고대 문명이 발생에서 멸망까지 비슷한 구조를 보인다. 단순하게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기후 최적기(후빙기 고온기) → 농경의 발달 → 건조화 → 인구 이동 → 하천 유역에의 인구 밀집 → 문명의 발생 → 산업과 관개기술의 발달 → 기후변화 → 나무의 대량 소비 → 삼림 감소 → 사막화의 가속 → 염분에 의한 농지의 불모화 → 인구의 분산 → 문명의 소멸 단계를 거친다. 많은 고대 문명의 성쇠에 기후가 큰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글 반기성 |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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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천문기상학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공군 기상전대장과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케이웨더 기후산업연구소장이며, 조선대학교 대기과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연세대에도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워렌버핏이 날씨시장으로 온 까닭은?], [날씨가 바꾼 서프라이징 세계사] 등 15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