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 지아에게,
12살짜리 엄마가 12살 딸에게 쓴다.
3kg 남짓한 너를 처음 안았을 때, 그 무게가 지구보다 무겁게 느껴졌어.
너를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부담이 컸던 모양이야.
나 자신을 엄마라 부르기도 어색하던 그때, 조그마한 목소리로 처음 얘기했지.
“안녕? 내가 네 엄마야”
생각해보면 엄마는 참 실수가 많았던 것 같아.
책에 쓰여 있는 대로 네가 안 크면 불안하고 초조했어.
그리고 남들 눈은 왜 그리 신경 썼는지 몰라. 그 사람들이 널 키우는 것도 아닌데 말야.
우스갯소리로 엄마는 육아를 자존심으로 한 것 같아. 남들한테 안 지려고.
비교하고, 의식하느라 맘 편할 날이 별로 없었지.
실수투성이 부족한 엄마여서 미안해.
지아 너는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지.
그것을 너의 장점으로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 기 싸움을 했던 것 같아.
다섯 살 때 기억하니?
매일 아침 옷 입는 것으로 팽팽하게 서로 신경전 했던 거.
옷 입는 게 뭐라고, 아무렇게나 입으면 좀 어떻다고 그것 같고 너랑 싸웠는지 몰라.
지금 생각하니 좀 부끄럽네.
나도 너도 조금씩 깎이고 다듬어 지면서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편해졌어.
시간 이기는 장사 없다고, 우리를 둥글게 다듬어준 시간에 감사하다.
지아야, 얼마 전에 <서머힐>이라는 책을 읽었어.
서머힐 학교를 세운 니일 아저씨는 “아이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지 말고, 자유를 주라” 했데. 그래서 그 학교 애들은 수업시간에 안 들어가고 하루종일 놀기만 해도 혼나지 않았데.
신기하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놀기만 하던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싶어 하더라나?
그런데 말야, 솔직히 어디까지 자유를 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요즘 세상에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하고픈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능할까 싶어.
엄마들끼리 그런 말 하는 거 알고 있니?
“자기가 좋아하는 거 찾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공부하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학원도 안 보내고요. 그런데 영영 그 말을 안 하더라고요. 속았어요!”
현실이 그러니 니일 아저씨의 말이 딴 세상 얘기 같이 들리기도 하는구나.
지아 네 생각은 어때?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리며 자유를 주면, 그 마음이 절로 생길 것 같니?
지아의 인생은 네 것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그런데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데, 그냥 내버려 두면 혹시 방임은 아닐까 걱정도 돼.
부모로서 자유와 방임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어렵다.
<서머힐>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말이 있었어.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으나
당신의 생각들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육체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영혼은 당신의 손길이 닿지 않는
꿈속에서조차도 찾아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을 읽으면 참 겸손해져. 똑바로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되지.
내일의 집에 살고 있는 너를
과거의 집에 살고 있는 내가 가두지 않도록
그런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올 때마다 경계해야겠어. 쉽진 않겠지?
지아야,
언제가 네가 이 편지를 읽게 되는 때
그래도 엄마가 깨어있으려 노력해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몇 년 뒤 편지로 또 만나자. 시간이 또 우리를 어떻게 다듬을지 기대되는구나.
2020. 6월 사랑담아 엄마
첫댓글 시간이 다듬어 줄, 엄마 임진희 님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응원합니다. 진심으로요.
마음을 울리는 리뷰네요. 글이 아름답다는 생각도 들구요.
자신이 만든 내일의 집에서 살아갈 아이. 저도 겸손해져야 겠어요.
감동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