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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핍박과 시험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상태를 보고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자주 침체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상황을 이핼 할 수가 없어 당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스스로의 약속을 잊으신 것은 아닌지 이미 우리가 아는 대로 기독교가 종말에 이른 것인지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한 현상에 대한 답은 바로 이 요한계시록 특히 후반부의 메시지입니다. 12장에서 13장까지에서는 특히 사람들이 직면하는 적대 관계의 배후에 있는 적대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대적자들
1. 사단
12장에서 큰 용으로 묘사된 사단 자신입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3절)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와 주님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장 근본적인 세력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구약과 창세기에 나오는 타락에 대한 전체 교리와 이야기에 결부됩니다. 세상의 피조물 앞에서조차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는 바로 사단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사단이 인간을 공격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려고 시도해 왔으며 그 결과 인간의 타락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자신이 직접 활동하는 외에도 어떤 대리자들을 사용하여 일하는데 그들이 누구인지는 13장에 나타납니다.
2. 첫째짐승(세속적 권세)
“바다에서 하나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계13:1)고 요한이 묘사한 짐승입니다. 그 짐승에 대한 묘사가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넷째 짐승에 대한 설명과 거의 일치한다는데 실제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 두 본문의 차이점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에 대한 설명이 다니엘서의 묘사대로 네 짐승을 혼합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짐승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교회를 멸하기 위해 사단이 사용하는 세상의 세속적인 권세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에는 그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그이전에는 아마도 유대인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래로 그 짐승은 수많은 다른 세속의 권력이 되어 왔습니다.
3. 둘째짐승(거짓종교)
요한은 하나의 환상 속에서 둘째 짐승을 보는데 이 둘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 알고 있는 대로 이 짐승은 분명히 경우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지 나타낼 수 있는 거짓종교에 대한 묘사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여기에 나오는 짐승은 새끼 양을 연상시키지만 새끼양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용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거짓 종교의 특징입니다. 진정한 종교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모순 되는 요소가 함께 존재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2장을 자세히 설명할 때 제가 말한 대로 여기는 다른 종교에 의해 서로 모방되어 온 세속적이 권력과 영적인 권력을 결합시키려는 별난 시도로 교황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둘째 짐승은 세속적인 세력과 영적인 세력이 종교적인 권력을 형성하기 위해 결합되는 것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사단을 직접적인 교전 속에서 반드시 만나고 정치적인 동시에 세속적인 권력과도 반드시 만날 뿐 아니라 항상 거짓 종교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이 세력들을 비교하거나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세력들이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사단에의해 사용되며 거짓 종교나 기독교 신앙의 왜곡이 세속적인 권력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그것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망각한 것으로 보이는 점입니다.
4.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배도자)
13장에은 이마와 오른 손에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설명도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하십시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하 S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계13:16). 이 사람들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과 자신들이 대적들-세속의 권세와 거짓종교들-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앞 못 보고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구체적인 악을 형성합니다.
5. 큰 성 바벨론(유혹,미혹)
우리가 만나게 될 최종적인 대적은 14장에 나타나는 ‘큰 성’ 바벨론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이유는 17, 18, 19장에 크게 가증하나 바벨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이야기가 나타나기 때문인데 그것들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이 거의 있을 수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히 바벨론은 세속적인 것의 유혹하는 힘, 즉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를 떼어 놓거나 유혹하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성경이 얼마나 자주 세상적인 것에 대해 경고했는지를 깨달음이 없이는 성경을 잘 깨달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오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4:10).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 요한은 그 위험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단이 적즉적이고 호전적인 박해자로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릴 수 없을 때 세상적인 매력으로 그들을 좌절시킬 수 있었습니다. 교회사에 보면 화형당할 각오를 하고 공개적인 적대 행위를 저항할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재물에 대한 사랑이나 안락함에 대한사랑 혹은 쾌락이나 위안에 대한 사랑과 또한 그것들이 자신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세상에 속한 어떤 것들에 대한 사랑의 재물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왔습니다.
이와같이 사단이 자신이 부리는 군대나 세속적인 권력이나 거짓 종교라는 수단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는 데 실패할 때 그와 같이 매우 쾌락적이고 음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아마도 우리가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다거나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왔다거나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쳐 왔다고 넌지시 말할 수도 있을것입니다. 이 매우 그럴듯한 방법으로 그가 사용하는 세력들을 늘어 놓으며 우리가 일어나고 있는 일을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 당분간 그것이 사단의 전략임을 깨달을 때까지 무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12, 13, 14장의 주요 메시지입니다.
▶ 절대 안전한 사람들(14장)
더불어서 14장에서는 성도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가 더불어 언급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맞고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쓰여진” 144,000명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그 내용은 7장에 나타나는 것으로 이미 자세히 살폈으므로 다시 돌아가 회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선택된 자들 전체가 주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는 것을 타나냅니다. 이들은 사람들 중에서 구속된 자들로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처음익은 열매입니다(계14:4).
우리가 그 중에 들은 또 하나의 사실은 그들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핍박하는 수많은 대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그들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롬8:39).
로마서 8장은 대적들이 존재하지만 우리의 이마에 쓰여진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이길 수 없으므로 우리의 구원은 확실하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나서 요한계시록 14장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즙 틀과 땅에 익은 곡식을 거두는 낫을 상용하여 나타내는 최후의 심판에 대한 묘사로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12장에서 14장은 일련의 매우 중요한 묘사들이 나타나므로 그것들을 이해하지못하면 우리는 교회사를 이해하기 시작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오늘날의 교회와 미래의 교회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와 교회와 직면할 실제의 대적들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하면서 더 나아가 이 대적들이 마지막에 어떻게 심판을 받고 극복될 것인지 우리에게 들려눕니다. 그것은 실제로 요한계시록 15장 이후의 메시지입니다.
▶ 15장 (보호하시는 하나님)
15장은 하늘의 놀라운 환상으로 시작합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하시는 일이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15:2-3)
최후의 심판과 강력한 대적들이 궁극적으로 파멸하는 이야기가나타나기 전에 다시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그분에게 신실한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의 어느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복된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무서운 일들이 이 땅에 일어날 것이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들로부터 구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그 말씀의 대부분을 반드시 통과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난파, 지진, 전염병과 그 밖의 다른 수많은 환난을 반드시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내용은 그 환난 중의 어느 것 하나도 실제로 우리를 해칠 수 없으며 어느 것 하나라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라도 심지어 가장 경미한 점도 하나님과 우리 복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환상 전체의 핵심이며 자로 우리의 위안의 본질입니다. 그 환난들은 외형적으로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거나, 우리의 존재의 깊은 곳에는 결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안전한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엡2:6) 앉혀져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러한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것을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단은 자주 우리를 놀라게 하고 겁을 줄 수 있으나 우리를 해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아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환상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보좌 옆에 서서 모든 해와 하나님이 대적들을 찾아오셔서 베푸실 그 심판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15장의 주요 메시지입니다.
▶ 16장 (심판전에 경고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시기 전에 늘 경고하신다는 것이 성경에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하나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홍수의 경우에서도 나타납니다. 또한 출애굽 이전에도 매울 놀라운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홍해 심판에서 애굽인들을 멸하시기 전에 10재앙을 보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원칙이 적용된 실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같은 원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하나님은 세상에 대해 특별한 심판들을 베푸십니다. 지난 강의에서 살핀대로 하나님은 오랫동안 그와 같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전쟁과 전염병들과 몹시 타락한 시대들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일이 하나님이 장차 하시려는 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게 징벌하실 것이며 장차 세상에 일어날 파멸은 과거의 모든 재난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은 언젠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신 징후를 보여주셨음에도 응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일종의 최후심판을 주시며 모든 불신자들에게 그 심판이 분명히 일어나리라는 것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 끊임없이 반항하다가 죽은 자들은 모두 최후 심판과 지옥에 떨어진다는 최종적인 언도를 받을 것입니다. 그것이 16장의 메시지입니다.
▶ 나팔들과 대접들의 차이
나팔들과 대접들 사이의 차이를 인식하는 일의 중요성에 주목하십시오. 나팔들은 경고인 반면 대접들은 징벌의 쏟아짐과 하나님의 진노의 뿌려짐을 나타냅니다.
▶ 17장(바벨론에 대한 최후심판)
세상과 세상에 속함에 대해 생각하십시오. 그것을 어떤 큰 도시의 거리 속에서 보십시오. 그것을 신문에 발췌된 것으로 보십시오. 특별히 그것을 소위 사회 보고서 속에서 보십시오. 그와 같이 한 후에 와서 이 해설하는 화제거리들을 읽으십시오. 의류에 관한 기사, 부에 관한 기사, 사치품에 대한 기사, 이 세상의 자랑, 세상의 긍지와 위인들을 보십시오. 이것이 왕과 군주들과 부유한 장사꾼, 평범한 사람들을 부르는 크게 가증한 것의 행동의 결과인 세상이 주는 매혹의 전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 밖에서 먹을 것, 자치, 승용차, 가구, 의복, 그리고 온갖 종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자랑하는 세상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 세상의 자랑거리에 대해 장차 일어날 일을 읽으십시오. 그것들이 얼마나 심히 그리고 완전히 파괴될 것인디를 읽으십시오. 또 우리가 이 가르침만이라도 이해한다고 결코 다시는 세상에 속한 것들에 의해 유혹되지 않을 텐데!
바벨론은 벌거벅겨져 조롱거리가 되고 그 음녀의 실제 모습이 그모든 부정 속에서 드러날 것입니다. 그 아름답게 꾸며주던 것들이 모두 제해지자 보기 흉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부정함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 장들을 여러번 숙독하면서 바벨론을 위해 살며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던 자들의 좌절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들을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주시는 호소에 귀를 기울입시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계18:20). 그 세상은 우리를 향해 비웃고 손가락질하며, 바보라 부르며, 우리의 삶을 편협하고 꺼림칙하고 속박되고 제한된 것이라고 여기며 그 세상 자체의 훌륭한 삶을 자랑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세상이 별안간 멸망됩니다.
우리가 그 메시지를 실제로 이해한다면 요한계시록은 얼마나 위대한 책입니까! 그러므로 요한인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2:15)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이 완전히 소멸되는 것입니다. 세상과 모든 사물, 열왕과 군주들과 세상에 속한 모든 자들이 모두 이와 같이 철저한 방식에 의해 멸망될 것입니다. 그때 이부분에 대한 개관적인 설명을 마무리하는 19장에서 우리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과 땅에서 나온 짐승이 멸망당하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세속적인 권세들과 모든 거짓종교들은 유황 불못에 던져지고 영원히 파멸될 것입니다(계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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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군요..
전 카페지기님이 지운줄 알았는데요.
참~~이상한 이단들 많습니다.
@찬송 쉬운 질문에도 답변도 못 해주고요...
선생은 또 되고싶어 하니. ㅠㅠ
90가까이 먹은 사도요한도 죄인 됨을 고백하다 죽었는데..
신이 된다니...완전 다른 복음입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거짓 선지자의 모습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