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 잘 대하기》, 안젤름 그륀 지음, 김선태 옮김.
“자신을 자비롭게 대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울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너그러운 것을 미덕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자기 자신 잘 대하기》에서 안젤름 그륀 신부님은 그 반대의 가르침을 전한다.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으면 결코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 약점, 욕구 등을 향해 호통 치거나 억압하면서 그것과 싸우려 들지 말고, 자기 안의 모든 것들을 친절하고 사랑스럽게 어루만져보라고 한다.
요즘, 겉으로는 당당해 보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데는 서툰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외적 자의식은 넘치는데 내적 자존감은 부족하다.
자존감이 낮으니 자신을 사랑하기가 어렵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 자존감은 더 낮아지고….
내가 나를 잘 대하기가 쉽지 않다.
안젤름 그륀 신부님의 《자기 자신 잘 대하기》는 이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자기 자신을 잘 대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되 성경과 교회의 영적 전통, 현대 심리학 이론을 근거로 하기에, 그 메시지는 견고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책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어떤 규범을 준수하고 그 결과에 따라 평가를 받는 데 있지 않고,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 대해 계획하셨던 그 모습으로 성장하는 데 있다.(94쪽)
자신의 잘못, 약점, 욕망과 화해하고 그것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일, 잘못과 약점과 욕망을 향해 호통치고 그것을 억압하는 대신에 모든 것이 있을 수 있다고 허용하는 일은 인생 전체를 통해 배워 가는 과정이다. (50쪽)
만일 포기하는 것이 즐기는 것보다 항상 더 좋은 것이라면, 이것은 예수님의 메시지와 일치하지 않는다. 영성생활이 나에게 항상 무언가를 가져다주어야 하고, 나는 늘 최고의 기분이어야 한다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해롭다. (54쪽)
고행은 인간과 맞서 싸워서는 안 되고, 인간을 위해 일해야 한다. (55쪽)
하느님을 통해 모든 것이 변화될 수 있다고 믿으면, 자신이 모든 것을 장악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 안에서 떠오르는 모든 것을 참으로 하느님께 내맡기게 된다. (59쪽)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의 또 다른 형태는 자기비하이다.
이것도 종종 겸손으로 오해된다. 하지만 겸손은 자신의 고유한 진리에 이르는 용기를 뜻한다. 말하자면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자신의 어둠으로 내려가 그 어두운 면과 화해하는
용기를 뜻한다. (61쪽)
나를 방해하는 것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 만일 이상만을 고집하며 산다면 삶은 경직된다. 계속하여 삶을 생기 있게 살려면 항상 다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89쪽)
융이 반복하여 강조하는 바는,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좌절시키는 모순을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89쪽)
노사부 마카리오스에 따르면, 고행은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가 아니라 자비를 익히는 훈련이었다. (100쪽)
완벽주의자들은 어떤 잘못된 동기 없이 순수하게 영적으로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완벽주의는 비인간적이다. (103쪽)
각자가 자신의 자아 곧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다. 모든 인간은 유일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만드신 나의 고유한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통로인 내 영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