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개월 동안 요한계시록을 외웠다. 단어, 구, 절, 문장, 문단들이 어려웠고,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들의 내용과 그 사이 삽입장의 지위와 위치에 대하여서도 어려웠다.
그러나 이렇게 성경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외어야만 하는 필요와 중요성에 대한 절대적 궁핍과 절대적 필요의 경험이 이러한 일을 이겨나가게 했다.
1996년 여름 훈련 집회에서 새 언어, 새 문화, 새 시대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그 해 초겨울 대만인 형제님들의 한국에서의 집회를 통해 그 새 언어가 결정 연구 개요라는 인식과 그 언어를 배우는 방법이 p, s, r, p라는 것을 알고 나서 결정 연구 개요를 외워서 집회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집회는 그 해 가을 미국에서 있었던 활력 그룹 집회에 대한 일종의 전달 집회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성경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지 알지 못했을 때 외우기를 시작한 것이 히브리서였다. 어떻게 히브리서를 외우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때 히브리서 집회와 관련이 있었던 같았다. 외우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그리고 그 후에도 계속 성경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시작한 성경의 기록된 말씀을 외우는 일이 3년 동안 성경 낱권으로 10권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로마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히브리서, 요한일서, 요한계시록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외워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되새김질을 했다(요한계시록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것의 결과로 기록된 말씀들은 내 입에서, 그리고 생각에서 자유롭고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 기록된 말씀 안에 그 영을 접촉하기에는 이르지는 못했다. 거룩케되고, 새롭게 되고, 변화되고 같은 형상을 이루게 되는 유기적인 구원의 실재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나 그대로였다. 다만 말씀을 외우는데 정해진 시간을 보내는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는 습관이 체득되었고 자판 치는 속도가 빨라진 것뿐이었다. 많은 고민이 있게 되었다.
지쳐 가던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무언가 내 안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말씀들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유기적인 구원의 실재에 이르도록 충분한 것들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들 안에서 그러한 움직임은 조금씩 더 증가하게 되었다.
이제 이미 익숙하고 자유로운 내 기억 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말씀들을 되새김질하며 묵상할 때 그 말씀들은 말씀 안에 충만함을 그 영과 생명으로 내 마음속에 점점 더 확대되고 확장된 거처를 얻으시고 나로 충만함의 실재 안에 누리고 체험하고 사는 데에 이르도록 조금씩 더해져 갔다.
내 마음에 말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건축되어 더 풍성하게 하고, 그 실재를 더욱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내 분량 안에서 그 충만함을 누리게 하기 시작했다. 그 말씀은 그 말씀 안에 기능을 따라 살아있고 힘 있게 내게 말씀하셨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기 시작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 26-29)
나는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이 어떻게 우리 믿는 이들 안에 실제로 나타내어지겠는가 생각했다. 왜냐하면 거듭난 믿는 이가 된지 오래되었고, 나이도 많이 들어가고 있지만, 아직 이러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말씀 안에는 그분의 의도와 의지와 또한 그것들을 실재하게 하시는 요소이신 생명과 영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시라는 알아가면서 이러한 일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결정 연구 개요를 외워서 집회 가운에 말하는 것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외우고 되새김질하고 묵상하기를 지속하면서 가장 먼저 생기는 일은 구변이 생기는 것이다. 나는 자기 표현을 못 하는 사람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면 말할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믿는 이들에게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한 구절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외울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할 수 있도록 반복해 보십시오. 6개월만 실행해 보면 그 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20년 전 그대로의 상태인 것을 본다.
나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 외에 결정 연구 개요도 외우고 되새김질하고 묵상하고 있다. 진리의 20여 항목에 관련된 60개 정도의 결정 개요를 되새김질하고 묵상하고 있다. 또한 주님의 긍휼로 2013년 여름 훈련 집회와 겨울 집회의 표어를 시작하여 2023년 여름, 겨울 집회의 표어까지 90개를 외었고 되새김질하고 묵상하고 있다. 나는 나 같은 사람 안에서 이러한 일을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더 이상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려고 하지 않고, 이미 내 안에 외워져 있고 되새김질하고 묵상하고 있는 것들의 그 충만의 깊이 안에 들어가려고 한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음의 충만함을 측량할 수 없다. 양으로 풍성함을 누리고자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믿는 이들이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분깃이 아니다. 남은 인생 몇 구절의 기록된 말씀이라도 충만함에 이룰 수 있기를 그동안 내 안에서 일한 그분께 구한다. 내 안에서 이루시옵소서.
글이 거칠다. 아직 내 안에서 있는 것들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쓰고 쓰다보면 언젠가는 합당한 언어들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기록된 말씀을 외우는 것에 대하여 몇 번에 나누어 쓰려고 한다. 그때에는 좀 더 더 합당한 언어들을 사용하여 말할 수 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떤 작가가 말했다. “글은 써야 쓸 수 있게 된다”
첫댓글 아멘! 아멘! 또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