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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죽자, 그럼.”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짓는 세경의 손을, 준이 붙잡아 일으켰다.
놓으라며 발버둥치는 세경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밖을 나선 준의 걸음이 향한 곳은 10분 거리에 위치한 어느 호숫가였다.
깊은 물가 위로 초승달이 둥둥 떠다니고, 그 아래는 하늘을 닮아 시커먼 암흑이었다.
“이리 와, 죽게.”
먼저 호숫가로 다가간 준이 손을 뻗자, 세경은 도리질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럼에도 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싫어? 그럼 내가 먼저 죽을까?”
“…….”
“그러지 뭐.”
준은 몸을 돌려 호숫가를 향해 빠르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뭐, 뭐하는 짓이야? 당장 안 나와?!”
세경의 외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느새 몸의 절반이 물밑으로 뒤덮인 후였다. 심장까지 느껴지는 차가움에 온몸이 저렸다.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듯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지만, 준은 멈추지 않았다.
“죽지 마!”
세경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귀를 가득 막은 채 소리쳤다.
힘없이 주저앉은 그녀는 하염없는 눈물로 중얼거렸다.
“죽지 마… 제발… 죽지 마.”
어떻게 됐는지 짐작하기조차 두려운 그때, 세경의 머리 위로 익숙한 그림자가 졌다.
머리 밑으로 홀딱 젖은 준이었다.
“안 죽었어.”
그 말과 함께, 준은 귀를 꾹 막고 있는 세경의 두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살결에 깜짝 놀라 눈을 뜬 세경은 이내 주먹을 쥐고 준우의 가슴팍을 세게 때렸다.
“미쳤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야.”
몇 번의 주먹질이 멈추자, 준은 파랗게 질린 입술을 열었다.
“넌 오늘 죽을 뻔한 날 살렸어.”
“…….”
“그러니까 너도 살아.”
허무했다. 고작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이런 무모한 짓까지 저질렀다니.
그러면서도 안도감이 들었고, 추위에 떠는 준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집에 가자.”
준은 쭈그려 앉아있는 세경을 일으켜, 손 하나를 꼭 맞잡았다.
“춥다.”
세경의 온기와 준의 찬기가 뒤섞여,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순간이었다.
***
두 사람은 새벽이 되도록 잠에 들지 않았다.
잠을 자기엔 아까운 시간이었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정신을 다잡기도 전에 고모한테 빚진 돈을 갚느라 여념이 없었어. 어제 그 일도, 그래서 선택한 거고.”
세경의 부모님은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강도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엊그제 교도소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게 만들었던 그 놈이.
“넌… 왜 교도소에 있었던 거야?”
이윽고 세경의 물음이 이어지자, 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터놓고 말 문제는 아니었지만, 먼저 속마음을 보여준 세경에게 고마워서라도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누명을 썼어.”
“…….”
“내가 잘 알던 놈을 대신해서… 살인미수로 3년을 살았어.”
여기서 그 놈은, 태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어쩌다 그랬는데?”
“나도 잘 몰라. 그저 연락만 받고 달려갔을 뿐인데, 해명할 기회도 없이 경찰들에게 포위됐어. 마치 미리 짜놓은 덫처럼.”
아직까지도, 아니. 아마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릿한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남자와, 그 앞에 쇠파이프를 들고 서있는 태주. 그리고 순식간에 들이닥쳐, 태주가 아닌 준을 붙잡는 경찰들의 모습까지.
“이용당한 거겠지. 그까짓 돈이 뭐라고.”
처음 태주와 알게 된 것도, 전부 돈 때문이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얘기하고 나니까, 꼭 누가 더 불행하나 대결하는 거 같네.”
금세 악몽 같은 기억을 지워버린 준은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이 분위기만큼은 살아온 인생처럼 어두컴컴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세경은 변함없이 굳어진 표정이었다.
“…자고 싶어.”
곧이어 세경이 말하자, 준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옷장 문을 열고 깨끗한 이불과 베개를 꺼내 바닥에 깔았다.
“여기서 자. 출소하고 한 번도 안 써서 깨끗해.”
“너는?”
준은 자리에 앉지 않고 외투를 챙기며 답했다.
“잠깐 나갔다 올게.”
말을 마치고, 세경이 이불 위에 눕는 것까지 확인한 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묵묵히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골목길로 들어서자, 몰려있는 남학생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교복 차림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바닥에 떨어진 담뱃갑을 주워들었다.
“뭐야, 이거 수표잖아?”
태주에게 받았다가 집어던져 버린 그 물건이었다.
준은 잔뜩 상기된 무리에게 다가갔다.
“그거 내 건데, 돌려줄래?”
최대한 상냥하게 던진 말이었다. 괜한 싸움을 일으키긴 싫은데다, 이런 10대 청소년들과 주먹다짐 할 위치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무리 중 남학생 하나가 뻔한 소리로 주장했다.
“먼저 주운 사람이 임자거든? 여기 이름이라도 적어뒀어?”
“내 거 맞아. 그러니까 이리 내.”
“근데 이게 진짜!”
남학생이 달려드는 순간, 준은 같은 자리에 선 채로 그의 손가락을 붙잡아 뒤로 꺾었다.
“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남학생이 주저앉자, 다른 무리들도 웅성거리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꺾이는 아픔은 몸소 체험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남의 돈 가질 생각 말고 직접 벌어 써. 담배도 작작 피우고.”
준은 이만 손가락을 놓아주고, 반대편 손에 들린 담뱃갑을 가지고 유유히 멀어졌다.
더러운 돈에 다시 손대긴 싫었지만, 어쩌면 세경에게 필요할 지도 몰라 도로 찾으러 온 것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준은,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세경의 곁에 앉았다.
“자는 건 또 예쁘네.”
준은 콧대 아래로 흘러내리는 세경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넘겨주었다.
***
이른 아침, 세경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냄새에 잠에서 깨어났다.
부스스한 몰골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제 보았던 밥상 위에 먹음직스러운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그리고 밥 두 공기가 보였다.
“깼어?”
계란말이를 만들고 남은 재료를 일회용 봉투에 정리한 준은 수저를 가져와, 그 중 하나를 세경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오늘은 팽겨 치지 말고 먹어.”
사실 말하지 않아도 먹으려는 참이었다.
어제부터 쫄쫄 굶었으니,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말없이 허겁지겁 밥과 국을 퍼먹는 세경의 모습에, 준은 젓가락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수저 위에 얹어주었다.
“천천히 많이 먹어.”
그래도 세경이 조금은 생기를 되찾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순식간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 세경은 그릇을 설거지통으로 옮기고 고무장갑을 두 손에 끼웠다.
“내가 해도 되는데.”
“그냥 있어.”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영 마음이 무거울 것 같아서 말이다.
준은 자리에 앉아, 꼼꼼히 그릇을 닦는 세경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신기하네.”
“…뭐가?”
“이 집에 나 말고 누군가가 있다는 게.”
아마 처음일 것이다.
부모도, 형제도 없는 준에게는.
“슬슬 알바 가야 돼.”
설거지를 마친 세경은 고무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어디로?”
“근처 카페에.”
준은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같이 가.”
“왜?”
“그냥 같이 가.”
됐다며 만류하려 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준과 보내고 나니 이대로 헤어지는 것도 아쉬운 참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집을 나섰고, 준은 먼저 걸어가는 세경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어느덧 카페에 다다른 세경은 자연스럽게 들어가 사장과 인사를 나눴다.
“사장님, 저 왔어요.”
“어어, 재료는 다 채웠으니까 청소만 하고 손님 받아.”
“네.”
사장이라 불리는 중년 남성은 다행히 서글서글해 보였다.
남자가 나가고, 뒤이어 카페로 들어선 준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구석 자리에 앉아 세경을 지켜봤다.
세경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질끈 올려 묶고, 허리에 앞치마를 둘렀다. 그리고는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를 꺼내 바닥을 쓸기 시작했다.
한참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데, 마침 세경의 허리에 둘린 앞치마 매듭이 풀어졌다.
그 뒤로 다가간 준은 풀어진 줄 두 개를 붙잡았다.
“아.”
“가만있어.”
준의 말에 세경은 그대로 멈췄고, 등 뒤로 그의 숨결이 고르게 느껴졌다.
천천히, 그리고 세심하게 매듭을 지어 리본으로 묶는 준의 손길에 기분이 묘했다. 직접적으로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주 가까이 밀착된 느낌이었다.
“됐다.”
풀리지 않도록 두 번 묶고 난 뒤, 준은 옆에 보이는 행주를 적셔 때가 묻은 창틀을 닦아내려갔다.
“내가 할게.”
“됐어, 넌 바닥에 집중해.”
처음으로, 기분 나쁘지 않은 도움이었다.
세경은 묵묵히 빗자루 질을 이어갔고, 준도 꼼꼼히 창문과 창틀을 번갈아 닦았다.
금세 깨끗해진 카페 내부를 확인한 세경은 잔뜩 모인 먼지를 쓰레기통에 모아 버리고,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 쌓여있는 설거지를 준비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세제를 짜내는데, 그 한 방울이 그만 눈으로 튀어오르고 말았다.
“아!”
쓰라린 통증에 짧게 소리치자, 그 소릴 듣고 들어온 준은 얼른 손을 씻고 세경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왜 그래? 눈에 뭐 들어갔어?”
“세제가 튀어서….”
따끔한 나머지 제대로 눈도 못 뜨는 세경을 보며, 준은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 그녀의 눈매를 조심스럽게 닦아내 주었다.
점점 따가움이 사라지고 한결 가라앉는 순간, 준의 입술이 세경의 입술 위로 맞닿았다.
첫댓글 준과세경이 서로가 의지하게된 계기가 참기묘 하게도 유치장 출소하는곳이
였다니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ᴗ•̀ 특별한 만남인 만큼 특별한 얘기가 이어질 거예요!
두사람이 행복해야할텐데요 잘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ฅ́˘ฅ̀*)♡ 생각할수록 저를 기억해 주셔소 영광이에요ㅎㅎ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9.04 20:5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9.04 21:22
즐감했습니다^^
두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네요 ㅠㅠㅠ 즐감했어요 !!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