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 창조자와 피조물, 아버지와 아들은 생명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오직 생명의 열매만 필요합니다.
생명은 관계가 끊어지면 죽음입니다.
생명의 세계는 삶이냐 죽음이냐 이 한 가지뿐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이며 그 외의 어떤 것도 개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사람을 자신의 동산에 두시고 선악을 아는 지식의 열매는 멱지 말라 하신 이유가 이것입니다.
지식은 많은 일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지식은 생명만은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생명에 개입되면 관계를 끊게 함으로써 사망을 일으키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산에 거하려면, 생명의 세계를 누리려면 오직 생명만 있어야 하고 생명만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생명 관계를 유지하는 생명나무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먹는 것입니까?
그 열매는 생명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그 열매를 먹는 것은 결과인 창조와 출생을 감사하게 받는 것이며 전적으로 이의 없이 누리는 것입니다.
개가 '왜 나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는가?' 라고 해도 안 되며 사람이 '왜 나는 천사가 되지 못했는가?' 해도 안 됩니다.
이것은 창조와 출생을 즉 생명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동산에는 사람이 먹고 그 동산을 지킬 수 있는 나무의 열매가 가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너는 이것을 임의로 먹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생의 동산에는 창조와 출생의 열매가 가득합니다.
이리 보아도 그 열매이고 저리 보아도 그 결과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은 이 열매들을 무시합니다.
지식의 결과는 사랑하고 존경하며 흠모하고 소중히 여기나 생명의 열매는 멸시합니다.
그래서 아담은 생명의 열매 대신에 지식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아담은 우리 모든 사람의 대표격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인생의 위치를 무시했습니다.
그는 천사를 부러워한 것입니다.
지금도 모든 인간이 천사를 부러워하고 그와 같이 되기 위하여 지식을 찾고 생명은 무시합니다.
그래서 생명 관계는 끊어졌고 그 세계는 화염검으로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 열매를 먹고 그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식을 좇아 천사가 되려는 인간의 정체가 폭로되어야 하고 심판되어야 하고 정죄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선악과를 먹고 문명을 건설했고 하늘에 이르도록 성과 망대를 높이 쌓았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인생을 창조하신 이가 살펴보면 인생은 자기 위치를 이탈한 천사와 함께 자기 자신의 생명이 아닌 것으로 부풀려지고 위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어처구니없는 것은 모두 죽음을 통해 해체됩니다.
인생의 허무가 여기에 있습니다.
본질적 관계를 끊고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바벨탑을 쌓은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에 서로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흩어집니다(창11:7).
그러면 또 다시 다른 형태의 바벨탑을 건설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밖에는 진실 안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류 가운데 가장 완전한 한 사람을 세워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보인 것은 인생의 진실이었습니다.
바벨탑에 오른 인생 안에서는 진실은 감춰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안에서는 진실이 폭로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오직 창조와 출생의 결과만 증명되었습니다.
그 외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이것, 즉 예수에게서 나타난 결과(열매)인 하나님의 창조와 출생의 열매를 먹어야 합니다.
이 진실을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창조자와 피조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회복되고 동산의 삶이 허락되며 우리는 그것을 지키고 다스리는 직무를 이행함으로써 하나님의 대리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