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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能性澹爲吾友 竹解心虛是我師 수 능 성 담 위 오 우 죽 해 심 허 시 아 사 |
물은 성품이 담백하여 내가 벗으로 삼고,
대나무는 속이 비어서 내가 스승으로 여긴다.
※ 虛= 빌 허, 是= 이 시
一勤天下無難事 百忍堂中有泰和 일 근 천 하 무 난 사 백 인 당 중 유 태 화 |
부지런한 사람은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 번을 참으면 집안이 크게 화목(和睦)하리라.
明月時至 淸風自來 명 월 시 지 청 풍 자 래 |
밝은 달은 때 마침 떠오르고,
맑은 바람은 자연(自然)히 불어온다.
合抱之木 生於毫末 九層之臺 起於累土 千里之行 始於足下 |
아름 들이 나무도 털끝에서 났고,
9층의 누대도 쌓은 흙에서 시작되었고,
천리 길도 발 밑에서 시작된다.
智者千慮 必有一失 愚者千慮 必有一得 지 자 천 려 필 유 일 실 우 자 천 려 필 유 일 득 |
슬기로운 이가 천 번 생각함에 한번 잃을 것이요.
어리석은 이가 천 번 생각함에 한번 얻는 것이 있다.
良藥苦口 利於病 忠言逆耳 耳於行 양 약 고 구 이 어 병 충 언 역 이 이 어 행 |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에는 이롭고,
진실한 말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다.
一言利人 重値千金 一語傷人 痛如刀割 일 언 이 인 중 치 천 금 일 어 상 인 통 여 도 할 |
한마디 말이 남을 이롭게 하면 중요하기가 천금에 해당하고,
한마디 말이 남을 상하게 하면 아픔이 칼로 베는 것과 같다.
忍所不能忍容所不能容 唯識量過人者能之 인 소 불 능 인 용 소 불 능 용 유 식 량 과 인 자 능 지 |
참을 수 없는 것을 참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은
오직 지식과 도량이 사람을 지나치는 이 만이 할 수 있다.
兵不如者 勿與挑戰 粟不如者 勿與持久 병 불 여 자 물 여 도 전 속 불 여 자 물 여 지 구 |
병력이 남만 못한 이는 남과 싸움을 걸지 말고,
양식이 남만 못한 이는 남과 오래 버티지 말라.
寶貨用之有盡 忠孝享之無窮 보 화 용 지 유 진 충 효 향 지 무 궁 |
보화는 써서 다함이 있으나,
충효는 누려서 끝이 없다.
善作者 不必善成 善始者 不必善終 선 작 자 불 필 선 성 선 시 자 불 필 선 종 |
창작을 잘 하는 이는 꼭 완성도 잘 하지만은 못하고,
시작을 잘 하는 이는 꼭 끝맺음도 잘 하지만은 못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 이 시 습 지 불 역 설 호 |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孔子 曰]
聖人不能爲時 時至而弗失 성 인 불 능 위 시 시 지 이 불 실 |
성인은 때를 만들지는 못 하나,
때가 오면 잃지 않는다.
少壯不努力 老大乃傷悲 소 장 불 노 력 노 대 내 상 비 |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곧 슬퍼진다.
爲善者 天報之以福 爲不善者 天報之以禍 위 선 자 천 보 지 이 복 위 불 선 자 천 보 지 이 화 |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보답하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주느니라.
一日不念善 諸惡皆自起 일 일 불 념 선 제 악 개 자 기 |
▶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한 일이 저절로 일어 나니라.
終身行善 善猶不足 一日行惡 惡自有餘 종 신 행 선 선 유 부 족 일 일 행 악 악 자 유 여 |
한평생 착한 일을 하여도 선은 오히려 부족하고,
단 하루만 악한 일을 행하여도 악은 스스로 남음이 있느니라.
甚愛必大費 多藏必厚亡 知足不厚 知止不殆 심 애 필 대 비 다 장 필 후 망 지 족 불 후 지 지 불 태 |
심하게 아끼면 반드시 크게 낭비하고,
많이 간직하면 반드시 후하게 잃고,
만족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恩義廣施 人生何處 不相逢 讐怨莫結 路逢狹處 難回避 은 의 광 시 인 생 하 처 불 상 봉 수 원 막 결 로 봉 협 처 난 회 피 |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라.
인생이 어느 곳에서든지 서로 만나지 않으랴?
원수와 원한을 맺지 말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나면 피하기 어려우니라.
於我善者 我亦善之 於我惡者 我亦善之 我旣於人 無惡 人能於我 無惡哉 |
나에게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나 또한 착하게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도 나 또한 착하게 할 것이다.
내가 이미 남에게 악하게 아니 하였으면 남도 나에게 악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니라.
見善如不及 見不善如探湯 견 선 여 불 급 견 불 선 여 탐 탕 |
착한 것을 보거든 미치지 못 하는 것과 같이 하고,
악한 것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과 같이 하라.
順天者存 逆天者亡 순 천 자 존 역 천 자 망 |
천명을 순종하는 자는 살고,
천명을 거역하는 자는 망하느니라.
疑人勿使 使人勿疑 의 인 물 사 사 인 물 의 |
사람을 의심하면 시키지 말고,
사람을 시켰으면 의심하지 말라.
人間私語 天聽若雷 暗室欺心 神目如電 인 간 사 어 천 청 약 뢰 암 실 기 심 신 목 여 전 |
사람의 사사로운 말도 하늘이 듣는 것은 우뢰와 같으며,
어두운 방 속에서 마음을 속여도 귀신의 눈은 번개와 같으니라.
若人作不善 得顯名者 人雖不害 天必戮之 약 인 작 불 선 득 현 명 자 인 수 불 해 천 필 육 지 |
▶만일 사람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해서 이름을 세상에 나타낸 자는
사람이 비록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日月不肯遲 四時相催迫 일 월 불 긍 지 사 시 상 최 박 |
세월은 더디 가려하지 않고,
사시(사계절)는 서로 재촉하여 다가온다.
日月欲明 不見泰山 일 월 욕 명 불 견 태 산 |
해, 달은 밝으려하나
태산이 가린다.
死生有命 富貴在天 사 생 유 명 부 귀 재 천 |
죽고 사는 것은 타고난 명에 있고,
부자가 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의 정한 데에 달려 있느니라.
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 자 효 쌍 친 락 가 화 만 사 성 |
자식이 효도하면 양친이 즐겁고,
집안이 화목하면 온갖 일이 이루어진다.
萬事分已定 浮生空自忙 만 사 분 이 정 부 생 공 자 망 |
모든 일은 분수(分數)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세상사람들이 부질없이 스스로 바쁘게 움직이느라.
禍不可倖免 福不可再求 화 불 가 행 면 복 불가 재 구 |
화(禍)는 가히 요행으로는 면치 못하고,
복은 가히 두 번 다시 얻지 못할 것이니라.
父兮生我 母兮鞠我 哀哀父母 生我구勞 欲報之德 昊天罔極 |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나를 기르시니 아아 애달프고 슬프도다.
어버이시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고 애쓰시고 수고 하셨도다.
그 깊은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넓은 하늘도 다 함이 없도다.
※ = 수고로울 고
知被知己 百戰不殆 지 피 지 기 백 전 불 태 |
▶저쪽을 알고 자기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부 모 재 불 원 유 유 필 유 방 |
부모가 살아 계시거든 멀리 떨어져 놀지 말 것이며,
놀 때에는 반드시 그 가는 곳을 알려야 하느니라.
父命在召 唯而不諾 食在口則吐之 부 명 재 소 유 이 불 락 식 제 구 즉 토 지 |
부모가 부르시면 속히 대답하여 머뭇거리지 말고,
음식이 입에 있거든 곧 뱉고 대답할 것이니라.
孝於親 子亦孝之 身旣不孝 子何孝焉 효 어 친 자 역 효 지 신 기 불 효 자 하 효 언 |
내 자신이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내 자식이 또한 효도한다.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 할 것인가?
云大丈夫 當容人 無爲人所容 운 대 장 부 당 용 인 무 위 인 소 용 |
대장부는 마땅히 남을 용서할지언정
남의 용서를 받는 사람이 되지 말 것이니라.
責人者 不全交 自恕者 不改過 책 인 자 부 진 교 자 서 자 불 개 과 |
남을 꾸짖는 이는 사귐을 온전하지 못하고,
스스로 용서 하는 이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
彼丈夫也 我丈夫也 吾何畏彼哉 피 장 부 야 아 장 부 야 오 하 외 피 재 |
저이도 사나이요 나도 사나이니,
내가 왜 저이를 무서워하겠는가?
破山中賊 易 破心中賊 難 파 산 중 적 이 파 심 중 적 난 |
산 속의 도둑을 쳐부수기는 쉬우나,
마음속의 도둑을 쳐부수기는 어렵다.
賢者在位 能者在職 國家閑暇 현 자 재 위 능 자 재 직 국 가 한 가 |
현명한 이가 지위에 있고,
유능한 이가 직책에 있으면 나라가 한가롭다.
勿以貴己而賤人 勿以自大而蔑小 勿以恃勇而輕敵 물 이 귀 기 이 천 인 물 이 자 대 이 멸 소 물 이 시 용 이 경 적 |
나를 귀하게 여김으로써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고,
자기가 크다고 해서 남의 작은 것을 업신여기지 말며,
용맹을 믿고 적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이니라.
道吾善者是吾賊 道吾惡者是吾師 도 오 선 자 시 오 적 도 오 악 자 시 오 사 |
▶ 나를 착하다고 말하여 주는 사람은 곧 내게 해로운 사람이요.
나의 나쁜 점을 말하여 주는 사람은 곧 나의 스승이니라.
勤爲無價之寶 愼是護身之符 근 위 무 가 지 보 신 시 호 신 지 부 |
근면함은 더 없는 귀중한 것이 될 것이요.
신중함은 몸을 보호하는 부적이니라.
保生者 寡慾 保身者 避名 無慾 易 無名 難 보 생 자 과 욕 보 신 자 피 명 무 욕 이 무 명 난 |
삶을 보전하려는 자는 욕심을 적게 하고,
몸을 보전하려는 자는 이름을 피한다.
욕심을 없게 하기는 쉬우나, 이름을 없게 하기는 어려우니라.
食淡精神爽 心淸夢寐安 식 담 정 신 상 심 청 몽 매 안 |
음식이 깨끗하면 마음이 상쾌하고,
마음이 맑으면 잠을 편히 잘 수 있느니라.
定心應物 雖不讀書 可以爲有德君子 정 심 응 물 수 불 독 서 가 이 위 유 덕 군 자 |
마음가짐을 착하게 하여 모든 일에 대한다면
비록 글을 읽지 않더라도 덕이 있는 군자가 될 수 있다.
云懲忿 如故人 窒慾 如防水 운 징 분 여 고 인 질 욕 여 방 수 |
분(忿)을 징계하기를 옛 성인 같이 하고,
욕심 막기를 물 막듯이 하라.
云避色 如避讐 避風 如避箭 莫喫空心茶 少食中夜飯 운 피 색 여 피 수 피 풍 여 피 전 막 끽 공 심 차 소 식 중 야 반 |
여색 피하기를 원수 피하는 것 같이 하고,
바람 피하기를 날아오는 화살 피하는 것 같이 하며,
빈속에 차를 마시지 말고, 밤중에 밥을 많이 먹지 말라.
無用之辯 不急之察 棄而勿治 무 용 지 변 불 급 지 찰 기 이 물 치 |
쓸데없는 말과 급하지 아니한 일은 그만 두고 다스리지 말라.
衆 好之 必察焉 衆 惡之 必察焉 중 호 지 필 찰 언 중 오 지 필 찰 언 |
모든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며,
모든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하느니라.
酒中不語 眞君子 財上分明 大丈夫 주 중 불 어 진 군 자 재 상 분 명 대 장 부 |
술 취한 가운데도 말이 없음은 참다운 군자요.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不 忍 非 人 불 인 비 인 |
▷참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
자장(子張)이라는 자가 스승인 공자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감복하여 외친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려면 마땅히 참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비인불인(非人不人)이라는 말도
자장이 하였는데 결국 같은 말이다.
☞ 자장이 이런 말들을 하게 된 것은
자장이 "스승님, 참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라고 물었을 때
공자께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하였기 때문이다.
"천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공허하게 되고,
제후가 참지 않으면 그 몸을 잃고,
벼슬아치가 참지 않으면 형벌에 의해 죽게되고,
형제가 참지 않으면 따로 살게되고,
부처(夫妻)가 참지 않으면 자식이 외롭게 된다."
事雖小不作不成 사 수 소 불 작 불 성 |
▷비록 작은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함.
장자는 "事雖小不作不成" 다음에 자수현불교불명(子雖賢不敎不明)이라고 했다.
屈己者 能處重 굴 기 자 능 처 중 |
▷자기를 굽히는 자는 귀하게된다.
『경행록(景行錄)』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와 대구를 이루는 구절로 호승자자필우적(好勝者必遇敵)이라는 문구가 뒤따른다.
이기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는 뜻이다.
맹자가 말한 사양지심(辭讓之心)이 바로 자기를 굽힐 줄 아는 마음이다.
성경 야고보서 4장 10절에도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였다.
我心等虛空 아 심 등 허 공 |
▷마음을 허공(虛空)처럼 비우다.
이 문구는 마치 선문답(禪問答)에서 나오는 말과 같지만,
명심보감에서는 남에게서 욕설을 듣게 되는 경우와 관련이 있는 말이다.
만약 남에게서 욕설을 듣게 되더라도 거짓 귀먹은 체하고 시비를 가려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참으로 적절하고 인상깊은 비유를 들고 있다.
불이 허공에서 타다가 끄지 않아도 저절로 꺼지는 것과 같이
남이 나에게 퍼붓는 욕은 한창 그 강도가 세어지다가 차츰 수그러들어 마침내 사라지고 만다.
凡事留人情 범 사 유 인 정 |
▷모든 일에 인정(人情)을 남겨 두라.
유대인들은 곡식을 거둘 때도 모조리 다 거두지 않고
가난한 이웃과 나그네를 위하여 밭에 얼마간의 곡식을 남겨 두는 관습이 있다.
切 問 近 思 절 문 근 사 |
▷간절히 묻고 자신을 반성(反省)함
절문(切問)은 간절히 묻는다는 뜻이다.
피상적으로 묻고 피상적인 대답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일이나 사물의 근본에 이르기까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존재에의 용기를 저술한 폴틸리히의 용어를 빌리면
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묻고 고민하는 것이 절문이라 할 수 있다.
근사(近思)는 자기 주변의 일들을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을 뜻한다.
남의 일이나 먼 데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고
바로 자기의 일상사를 중심으로 생각을 잘 정리 해 가는 것이 근사이다.
이렇게 절문하고 근사하면 인(仁)이 그 속에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묻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가까운 사례들부터 잘 정리해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仁에서 멀어져 참으로 어리석은 일들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學 而 智 遠 학 이 지 원 |
▷배워서 지혜(智慧)가 넓어지고 깊어지다.
배워서 지혜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단계가 학이지원(學而智遠)이다.
이런 단계는 상운(祥雲), 즉 상서로운 구름을 헤치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과 같고,
높은 산에 올라 사해(四海)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만큼 높은 경지에서 시야가 열린 다는 의미다.
그런데 배우지 않으면 아무 재주도 없이 하늘에 오르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장자(莊子)가 한 말이지만 공자도 박학이독지(博學而篤志),
즉 널리 배우고 뜻을굳게 하면서 절문근사(切問近思)하면 인(仁)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했다.
절문근사(切問近思)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다.
▶예기(禮記)에서도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의(義)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것은 마치 옥불탁불성기(玉不琢不成器) 즉 옥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강태공은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성현들이 갖가지 표현들을 동원해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움의 목적은 깊은 지혜를 소유함으로써 의(義)와 인(仁)을 알고 인생(人生)에 대한 시야가 열리도록 하는데 있다.
▶맹자는 말하기를
무릇 학문의 길이란 잃어버린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라고 했다.
學 如 不 及 학 여 불 급 |
▷항상 부족(不足)한 듯이 배움에 임하라.
논어(論語)에 나오는 말로 항상 부족한 듯이 배움에 임하라는 뜻이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교만한 자세로는 학문에 진전이 있을 수 없다.
주리고 목마른 자처럼 갈급한 심정으로 배우기를 힘써야 한다.
주문공(朱文公)의 교훈에 의하면, 빈부(貧富)의 조건도 배움의 길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집이 가난하더라도 그 가난으로 인하여 배우는 일을 그만 두어서는 안되며,
집이 부유하더라도 그 부유함을 믿고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자라도 부지런히 배우기 만하면 입신(立身)할 수 있고,
부유한 자가 부지런히 배운다면 그 가문을 더욱 빛낼 수가 있다.
▶배움이란 몸의 보배요, 세상의 보배이다.
배우면 군자가 되고, 배우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
휘종황제(徽宗皇帝)는 말하기를, 배운 사람은 벼와 같고 배우지 않은 사람은 쑥과 같다고 하였다.
벼는 세상의 좋은 양식이 되지만, 쑥은 밭 같고 김매는 사람들이 귀찮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지 않으면 훗날 담벼락에 막힌 듯 답답할 뿐이다. 뉘우쳐도 이미 늙어버렸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문공(韓文公)은
배워서 고금(古今)을 꿰뚫고 있지 않으면 마치 소와 말에 옷을 입혀 놓은 것과 같다고 하였다.
소인 정도가 아니라 마소와 같은 짐승의 위치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배우는 자와 배우지 않는 자의 차이는 천양지판이다.
그리고 한번 배운 것은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면서 잘 지켜나가야 한다.
인생에 있어 배움의 중요성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賓客不來門戶俗 빈 객 불 래 문 호 속 |
▷손님이 안 오면 집안이 저속(低俗)해 진다.
빈객불래문호속(賓客不來門戶俗)이 문구 다음에 시서무교자손우(詩書無敎子孫愚)라는 문구가 이어지는데,
즉 시서를 가르치지 않으면 자손들이 어리석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손님이 집안을 드나들지 않으면 자손들이 어리석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자손이 어리석어지면 그 자손의 집에도 손님이 드나들지 않을 것이다.
至要莫如敎子 지 요 막 여 교 자 |
▷자식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重要)한 것이 없다.
이 문구를 직역하면 지극히 필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만 같음이 없다가 된다.
다시 말해, 자식을 가르치는 것만큼 이 세상에 중요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앞 구절을 보면 지락막여독서(至樂莫如讀書)라고 되어 있다.
책을 읽는 것만큼 이 세상에서 즐거운 것은 없다는 뜻이다.
한서(漢書)에 보면,
황금이 상자에 가득 차 있다 해도 자식에게 경서(經書) 한 권을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고,
자식에게 천금을 물려준다 해도 기술 한가지를 가르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자식들이 책 읽는 즐거움을 알고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익혀 자기 것으로 삼도록 해주는 일이야말로
그 어떤 물질적인 유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값진 것이다.
憐兒 多與棒 연 아 다 여 봉 |
▷아이를 사랑한다면 매를 많이 때려라.
여기서 불쌍히 여긴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를 사랑하거든 매를 많이 주어라.
매를 많이 주어라는 것은 물론 매를 많이 때리라는 말이다.
성경 잠언 22장 15절에 보면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아내리라"고하였다.
마음에 얼키설키 엉켜있는 미련은 보통의 말로써 아내기 힘들고 징계의 채찍을 들어야 아낼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잠언 22장 13절과 14절에 보면,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고 하였다.
죽지 않을 만큼 때려서라도 비뚜로 나가고 있는 자식을 바르게 세우라고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다.
매를 드느냐 아니 드느냐 하는 문제는 자식의 구원 문제와 직결된다고 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憐兒多與棒" 다음에는 증아다여식(憎兒多與食)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아이를 미워하거든 먹을 것을 많이 주라는 뜻이다.
橫步行 好去京 횡 보 행 호 거 경 |
아무렇게나 가도 서울만 잘 간다.
과정은 달라도 목표에 도달함은 같다.
食上 朋出 可笑 식 상 붕 출 가 소 |
옛날의 선비들은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은 거의가 가난하게 살았던 것 같다.
"정 선비"가 있었는데 그날 아침 조반 때가 되었는데 가장 가까운 벗 "최 선비"가
오늘 아침은 우리의 형편보다 나은 "정 선비"네 집에서 아침을 떼어 볼까하고 "정 선비"네 집을 찾았는데....
▶ "정 선비"의 아내가 "나으리 "人良卜一"하오리까?"하니 "정 선비"왈 "月月山山"이오. 라고하였다.
머슴이 짚신을 삼다가 양반님네들 말하는 것이 하도 웃겨서 "丁口竹天"이라고 했다.
※ 정 선비의 아내의 말이 [食上]=밥상을 올릴까요?
정 선비의 말은 [朋出] = 친구가 간 후 올려라. 머슴의 말은 [可笑] = 웃기고 있다.
嚴父 出孝子 엄 부 출 효 자 |
▷엄한 아버지가 효자(孝子)를 만든다.
이 구절 다음에 엄모출효녀(嚴母出孝女)라는 문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我愛子孫賢 아 애 자 손 현 |
▷나는 자손 어진 것을 사랑한다.
명심보감에 보면 "인개애주옥(人皆愛珠玉)", 이란 문구가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주옥과 같은 보석들을 사랑하지만 나는 자손들이 어진 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어진 자손들을 자신의 주옥이요 보석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북송(北宋)시대의 학자 여영공(呂榮公)은 자손이 어진 인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안으로는 어진 부형(父兄)이 있어야하고 밖으로는 엄한 사우(師友)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강태공은 남자가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반드시 미련하고 어리석게 되며,
여자가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 반드시 거칠고 솜씨가 없게 된다고 하였다.
☞ 명심보감의 또 다른 문구를 보면
남자가 자라면서 특히 경계해야 될 것은 풍류와 술에 빠지는 습관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자가 자라면 경계해야 될 것은 쓸데없이 어울려 놀러 다니는 일이라고 하였다.
남자든 여자든 세월을 허비하는 것을 경계한 셈이다.
忠孝享之無窮 충 효 향 지 무 궁 |
▷충(忠)과 효(孝)는 다함이 없다.
경행록(景行錄)에 나오는 것으로 이 구절 앞에는 보화용지유진(寶貨用之有盡)이라는 문구가 있다.
즉, 보화라는 것은 쓰면 다함이 있다는 말이다.
得人一語勝千金 득 인 일 어 승 천 금 |
▷남의 말 한마디 듣는 것이 천금(千金)보다 낫다.
물론 여기서 남의 말 한마디란 인생을 살아가는데 깊은 영향을 주는 좋은 말 한마디를 의미한다.
그 좋은 말 한마디는 인생이 파멸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도 있고,
절망 중에 있는 자에게 한줄기의 희망이 될 수 도 있고,
실패한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병든 자를 치료할 수도 있다.
家和貧也好 가 화 빈 야 호 |
▷집이 화목(和睦)하면 가난해도 좋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상식적인 문구가 있지만, 사실 집안의 화목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가정의 화목은 가난을 이기고 역경을 이기는 원동력이 된다.
得 寵 思 辱 득 총 사 욕 |
▷사랑을 받으면 욕된 생각을 하라.
다시 말해, 사랑을 받고 있을 때에 버림을 받고 욕을 당하게될 날이 올 것을 생각하고 대비하라는 말이다.
중국 고사성어 중에 색쇠애이(色衰愛弛)라는 문구가 있다.
아름다움이 시들어지면 사랑도 식어진다는 뜻이다.
직접적으로는 여자에게 해당하는 말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남자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에는 得寵思辱과 비슷한 문구들이 자주 나온다.
得寵思辱 바로 뒤에도 거안려위(居安慮危)라는 구절이 나온다.
즉 편안하게 거할 때에 위태함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甚愛必甚費 심 애 필 심 비 |
▷사랑이 심하면 반드시 소모(消耗)가 크다.
사랑의 종류를 아가페와 에로스의 등으로 나누는데 여기서는 물론 에로스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요즈음 나온 책 중에
"작은아씨들"의 작가 루이자 메이 올곳이 쓴 "치명적인 사랑"이 있다.
원 제목을 직역하면 "지독한 사랑"이 되는데,
오늘 명심보감 구절에 비추어보면 지독한 사랑은
지독한 소모를 가져오므로 곧 치명적인 사랑이 될 것은 뻔한 이치이다.
지독한 사랑이건 사람들은 이런 사랑 한번 해 보았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고들 있다.
그래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책이 인기를 얻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랑은 정욕적이고 이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결국 정신적인 에너지를 쓸데없이 소모하게 되어 영혼을 상처로 남게된다.
중국 역사를 훑어보면 황제가 아리따운 여자를 사랑함이 지나치면
황제의 정신력이 소모되어 나라 전체가 황폐하게 되는 것을 보게된다.
甚贓必甚亡 심 장 필 심 망 |
▷뇌물을 받으면 반드시 멸망(滅亡)을 초래(招來)한다.
앞에서 심애필심비(甚愛必甚費), 즉 사랑함이 심하면 반드시 심한 소모를 가져온다는 구절을 살펴보았다.
그 구절과 비슷한 구조의 문구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음미해보는 것이 좋겠다.
심예필심훼(甚譽必甚毁)는 명예를 누리는 것이 심하면
반드시 심하게 명예가 훼손 당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는 뜻이다.
명예를 누리는 것이 심하다는 말은 자기 분수에도 맞지 않은 명예를
다른 사람들이 안겨 주던가 자기 스스로 억지로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 심희필심우(甚喜必甚憂)는 기뻐함이 심하면 반드시 심한 근심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기뻐해야 할 일이 생겼으면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호사다마(好 事多魔)라는 말도 있듯이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도 따라 온다는 것을 알고
기쁨에 너무 도취되지 말고 앞일을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甚贓必甚亡"은
뇌물을 받음이 심하면 반드시 심한 멸망을 초래한다는 뜻이다.
利 重 害 深 이 중 해 심 |
▷이익(利益)이 크면 해도 그만큼 크다.
명심보감 "성심편(省心篇)"은
문자 그대로 자기 마음을 살피는 것과 관련된 교훈들로 채워져 있는데
무엇보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 칭찬과 기쁨이 있고
명예와 부가 있을 때 주의하라는 권면이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榮 輕 辱 淺 영 경 욕 천 |
▷부귀 영화가 작으면 욕됨도 얕다.
이 구절은 앞에서 살펴본 심예필심훼(甚譽必深毁),
즉 명예가 심하면 반드시 그 훼손됨도 심하다는 문구와 대조를 이루는 셈이다.
☞ 공자께서 말하기를
높은 낭떠러지를 보지 않으면 무엇으로 굴러 떨어지는 환란을 알며,
깊은 못에 가지 않으면 무엇으로 빠져 죽는 환란을 알며,
큰 바다를 보지 않으면 무엇으로 풍파의 환란을 알겠느냐고 하였다.
背後之言 豈足深信 배 후 지 언 기 족 심 신 |
▷등뒤에서 하는 말을 어찌 깊이 믿을 것인가?
다시 말해 직접 눈으로 본 일도 다 참되지 아니할까? 두렵다는 말이다.
往者所以知今 왕 자 소 이 지 금 |
▷과거(過去)를 통해 현재(現在)를 안다.
옛 왕(往)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을 의미한다.
지나간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이 문구는 공자가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문구 앞에 명경소이찰형(明鏡所以察形)이라는 구절이 있다.
즉, 밝은 거울을 가지고 형상을 판단하는 뜻이다.
未來事暗似漆 미 래 사 암 사 칠 |
▷미래(未來)의 일은 어둡기가 칠흑 같다.
지나간 과거는 밝은 거울과 같다는 뜻인
과거사여명경(過去事如明鏡)이라는 구절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와는 대조 적으로 미래의 일은 어둡기가 칠흑 같다고 하였다.
하지만 미래의 일 중에는 어느 정도 미루어 예측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명심보감의 다른 문장에 나오는 천유불측풍우(天有不測風雨),
즉 하늘에는 예측 할 수 없는 비바람이 있다는 구절은
바로 요즈음의 일기 예보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하물며 인간사를 예측함에 있어 서랴.
難保百年身 난 보 백 년 신 |
▷온갖 변고로 몸을 보전(保全)하기 어렵다.
이 구절 앞에 미귀삼척토(未歸三尺土)라는 문구가 있다.
거기에 難保百年身이라는 문구가 이어지면 다음과 같은 뜻이 된다.
석 자 흙 속으로 돌아가기까지는,
다시 말해 무덤으로 들어가기까지는 백년의 몸을 보전하기 어렵다.
自信者人亦信之 자 신 자 인 역 신 지 |
▷스스로 믿는 자는 남 또한 믿는다.
飽煖思淫慾 포 난 사 음 욕 |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욕(淫慾)이 생긴다.
用 人 勿 疑 용 인 물 의 |
▷사람을 쓰기로 했으면 의심(疑心)하지 말라.
이 구절 앞에 의인막용(疑人莫用)이라는 문구와 같은 말이다.
心 隔 千 山 심 격 천 산 |
▷마음이 멀어 떨어져 있음
대면공화(對面共話), 즉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아도 心隔千山이라,
마음은 천 개의 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서로의 마음을 알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말이다.
☞ 성심편의 다른 문장을 보면 "범을 그리되 가죽은 그릴 수 있으나 뼈는 그리기 어렵고,
사람을 알되 그 얼굴은 알지 그 마음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고 종견저 인사부지심(海枯終見底 人死不如心),
즉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닥을 볼 수 있으나
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문장도 있다.
不經一事不長一智 불 경 일 사 불 장 일 지 |
▷경험(經驗)하지 않으면 지혜(智慧)가 자라지 않음
한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가지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지혜라는 것은 지식하고는 달라서 그냥 이론적으로 머리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값싸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路上行人口勝碑 로 상 행 인 구 승 비 |
▷공적(功績)을 돌비에 새기는 것보다 사람들 평판이 중요(重要)하다.
길가는 사람의 입이 비보다 낫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사람들은 자신의 공적을 어찌해서든 지 오랫동안 남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없는 공적도 억지로 지어내기도 한다.
그리고는 잘 마모되지 않는 돌비에 새겨 자랑거리로 삼고자 한다.
과연 돌비는 수백년 수천년 세월을 견디어 지금도 옛사람의 행적과 공적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그 돌비에 새겨진 내용들이 진실 된 것인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격양시(擊壤詩)에서는 "큰 이름을 어찌 딱딱한 돌에 새길 것인가"하고 오히려 이름과 공적을
돌비에 새기는 행위를 조롱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곧 이어 路上行人口勝碑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한사람의 공적이 돌비에 새겨지는 것보다
길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이 어떻게 내려지느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有勢莫使盡 유 세 막 사 진 |
▷권세(權勢) 있다고 함부로 하지 말라.
이 문구는 "유복막형진 복진신빙궁(有福莫亨盡 福盡身貧窮"
즉 "복이 있다 해도 다 누리지 말라. 복이 다하면 몸이 빈궁해지리라"는 구절 뒤에 나온다.
복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 권세의 복도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 누려볼 만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복이 있다 해도 다 누리지 말라고 했으니,
有勢莫使盡 즉, 권세가 있다고 해도 다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권세자가 권세를 부리는 맛에 길들여지면 분별력을 잃게되고 한도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難塞鼻下橫 난 색 비 하 횡 |
▷끊임없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음.
이 문구 앞에 영색무저항(寧塞無底缸),
즉 밑 빠진 항아리는 막을지언정 코밑에 가로놓인 것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코밑에 가로놓인 것이 무엇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입을 가리킨다. 아니, 섬뜩한 표현이다.
코밑에 가로놓인 그 입을 채우기는
밑 빠진 항아리를 채우기보다 어렵다니
결국 입을 채우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 구절은 끊임없이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다시 말해 죽어서야 비로소 먹는 일을 멈추게되는
우리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실존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재치로 표현한 셈이다.
非 酒 不 義 비 주 불 의 |
▷술이 들어가야 의리(義理)가 두터워 짐
술이 아니면 의리가 없다.
이 문구는 군신붕우(君臣朋友)와 관련이 있는 말이므로 의역하면 다음과 같다.
임금과 신하사이, 그리고 친한 벗들 사이에서는 술이 들어가야 의리가 두터워 지는 법이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제당에 제례를 올릴 때도 반드시 술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비주불향(非酒不享), 즉 흠향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싸우고 나서 화해를 하고자 할 때도 비주불권(非酒不勸),
즉 술이 없으면 서로 권하며 화해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렇게 술의 효율이 많은 중에 우정을 돈독히 하는 매개물 역할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유익함이라 할 것이다.
地不長無名草 지 불 장 무 명 초 |
▷땅에 나는 풀은 다 이름을 가지고 있음
원문에는 무명지초(無名之草)라고 되어있지만 무명초(無名草)로 줄여 보인다.
땅은 이름 없는 풀을 기르지 않는다. 이 말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 즉 하늘은 녹이 없는 사람은 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자기 먹을 것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이 문구는 우리 조상들이 산아제한 없이 자식들을 많이 낳으면 어떻게 하든
자기 나름대로 먹고 살아가는 것을 보면 신묘하기조차 하다.
이러한 구절과 연관시켜 地不長無名草라는 문구를 보면
그 뜻이 보다 선명해진다.
땅에 나는 풀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그 수많은 풀들이 각각 자기 이름을 가지고 어떤 모양으로도 살아간다는 뜻이다.
無義錢財湯潑雪 무 의 전 재 탕 발 설 |
▷옳지 않게 번 돈은 자취도 없이 사라짐
명심보감에서 돈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교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돈을 어떻게 벌고 쓰느냐 하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어떤 선승이 말하기를 우리 인생은 활활 타는 화로에 떨어지는 한 송이 눈과도 같다고 하였다.
끓는 물에 눈을 뿌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말할 것도 없이 뿌려지는 즉시로 녹아버리고 만다.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一日淸閑 一日仙 일 일 청 한 일 일 선 |
▷마음이 맑고 편하면 선인(仙人)처럼 살수 있다.
하루를 살아도 신선처럼 천사처럼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명심보감은 하루라도 마음이 맑고 편안하다면 그 하루는 신선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선(仙)이라는 한자는 사람 인(人)과 뫼 산(山)이 합해진 글자이다.
신선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은 참으로 자유로운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꼭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일상생활에서 마음이 맑고 편안하면 그 하루는 신선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妙藥難醫寃債病 묘 약 난 의 원 채 병 |
▷원한(怨恨)으로 생긴 병은 고치기 어렵다.
이 문구는 자동제군이라는 도인이 한말이다.
원채병(寃債病)이란 원통한 마음이 빚 덩이처럼 쌓여 병이든 상태를 가리킨다.
원래 원(寃)자는 토끼가 덮개에 덮여 있는 형용을 하고 있는 글자이다.
이리저리 깡충깡충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토끼에게 가마니 같은 덮개를 씌어 놓으면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토끼가 이리 뛰어도 덮개에 걸리고 저리 뛰어도 덮개에 걸린다.
원통한 마음을 품고있는 사람은 바로 이런 토끼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디를 가나 무슨 일을 하나 그 원통한 마음이 가시처럼 일어나 온몸을 찔러 댄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원통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고 어떤 상황에 대해 원통한 마음을 품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웬만한 다른 병은 약으로 치료 할 수 있으나 이 원채병은 그 어떤 약으로도 치료 할 수 없다.
그만큼 위중한 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사실 다른 병들은 어쩌면 이 원채병이 겉으로 드러난 증세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원통한 마음으로 인하여 심장병이 생기고 암이 생기고 하는 것인데
병원에서는 심장병과 암 자체만 치료하는 대중요법을 쓸 뿐이다.
그러나 병의 뿌리인 원채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 않으면 심장병이든 암이든 재발하기 십상이다.
원채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밖에 없다.
花落花開 開又落 화 락 화 개 개 우 락 |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세상일은 돌고 돈다.
유명한 윤동주의 서시(序詩) 첫 구절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맹자(孟子) 진심장구(盡心章句)편에 나오는
앙불괴어천(仰不愧天)이라는 문구를 시적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너무나 잘 알려진 김소월의 산유화 첫 구절도 명심보감의 문구를 번역한 듯한 인상을 받게된다.
"꽃이 피네 꽃이 피네 꽃은 피었다가 또 지네."
賢人多財卽損其志 현 인 다 재 즉 손 기 지 |
▷어진 사람도 재물(財物)이 많아지면 지조(志操)가 꺾인다.
전한(前漢) 때 사람으로 황제의 아들을 가르치는 태부(太傅)의 벼슬에까지 오른 소광(疏廣)이가 있었다.
나이가 많아 벼슬자리에서 물러나니 황제와 태자가 그에게 많은 재물을 하사하였다.
소광은 그 재물을 자신이나 자기 자손들을 위해 모아두지 않고 어렵게 사는 옛 친구들에게 모조리 나눠주었다.
그런 소광의 행위를 놓고 주위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자손들을 위해 재산을 좀 남겨놓을 일이지 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그때 소광이 그 사람들에게
현인다재즉손기지 우인다재즉익기과(賢人多財卽損其志 愚人多財卽益其過)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어진 사람이라도 재물이 많아지면 그 지조(志操)가 손상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아지면 허물을 더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有麝自然香 유 사 자 연 향 |
▷고귀한 인품(人品)은 저절로 알려지기 마련
사향(麝香)은 사향노루 수컷의 향낭을 쪼개서 말린 향료이다.
향낭은 배꼽과 불투명을 싸고 있는 주머니로서 향기가 강하기로 유명하다.
중국 여러 지역에서 나고 있지만 운남성(雲南省)사향이 제일 좋다고 한다.
옛날 사람들은 향수를 뿌리는 대신에 사향을 넣은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그 향기를 맡으면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는지 사향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여자들에게 반하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중국 소설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소설가들은 그렇게 사향을 성적인 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사향이 꼭 그런 용도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고상한 품위를 안겨주는 향료로 주로 쓰인 것이다.
그래서 사향을 고귀하고 아름다운 성품에 비유하기도 한다.
"有麝自然香" 사향을 지니면 저절로 향기를 풍긴다는 말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성품 내지는 인격을 지니면
스스로 자랑을 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세상에 알려지게 마련이다.
사향을 지닌 자는 그 향기를 풍기기 위해 일부러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갈 필요가 없듯이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람들이 그 인격의 향기를 맡고 모여들게 된다.
深逕不宜獨行 심 경 불 의 독 행 |
▷혼자 으슥한 길을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惜 糞 如 金 석 분 여 금 |
▷인분 아끼기를 황금(黃金)같이 한다.
"惜糞如金"과 대조되는 문구로는 용금여분(用金如糞)이 있다. 돈을 쓰기를 똥같이 한다는 말이다.
돈을 헤프게 쓰는 것을 풍자하는 문구이다.
世情便向有錢家 세 정 변 향 유 전 가 |
▷세상(世上)의 인정(人情)은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
便이라는 글자는 주로 편할 곳으로 읽히나 여기에서처럼 곧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변으로 발음된다.
오줌 혹은 똥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도 변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오늘 문구는 세상의 인정은 곧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는 뜻이다.
이 문구 앞에는 인의진종빈처단(人義盡從貧處斷),
즉 사람의 의리는 다 가난한 데서 끊어진다는 구절이 있다.
혹시 그 가난한 집에서 도움이라도 청할까 싶어 지레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외로워지고 더 나아가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害 衆 成 家 해 중 성 가 |
▷무수한 사람들을 해치면서 집안을 일으키다.
이 구절은 진종황제(眞宗皇帝)의 어록 중에 들어 있는 말이다.
진종은 북송(北宋)의 제3대 황제로 거란족과의 오랜 분쟁을 해결하는 등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특히 송나라 문물의 융성을 이룬 황제로 유명하다.
오늘 문구는 자기 집안을 일으키고 가문의 부귀영화를 도모하기 위해
뭇 사람들을 해롭게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경고하고 있다.
"害衆成家"하면 어찌 그 부귀가 길게 가겠느냐고 하였다.
施 仁 布 德 시 인 포 덕 |
▷어짐을 베풀고 덕(德)을 널리 펴라.
이 문구 역시 진종화제가 한 말로 손인이기(損人利己),
즉 남을 해롭게 하여 자기를 이롭게 한다는 구절이나,
앞에서 본 해중성가(害衆成家)와 같은 구절들과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자기 자신과 자신들이 평안을 누리고 번영할 수 있는 비결 세 가지를
진종황제의 어록에서 살펴보자면
첫째, 지위식험(知危識險)이다.
앞에 가로 놓여 있는 위태함을 알고 험함을 안다는 뜻이다.
분별없이 무턱대고 앞으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미리 내다보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둘째, 거선천현(擧善薦賢)이다. 착한 이를 기용하고 현명한 자를 천거한다는 뜻이다.
거선천현 하면 자유안신지로(自有安身之路), 즉 스스로 몸을 안전하게 하는 길이 있게 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기가 기용하고 천거한 사람이 나중에 든든한 방패와 보루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천거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세 째, "施人布德"이다. 어짐을 베풀고 덕을 널리 편다는 뜻이다.
入 聖 超 凡 입 성 초 범 |
▷성스럽고 초탈(超脫)한 삶을 살다.
대개의 사람들 삶은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대로
그저 그렇게 살다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인생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번 살다가 가는 인생인데 평범한 수준을 뛰어 넘어 좀더 높은 차원의 삶,
더 나아가 성스러운 삶을 살고 싶은 갈증이 마음속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入聖超凡"의 갈증이다.
명심보감에서는 "入聖超凡"은 진실(眞實)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단계라고 하였다,
말과 생각과 행실이 모두 진실 할 때만이 "入聖超凡"의 경지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欲知其父先視其子 욕 지 기 부 선 시 기 자 |
▷그 아비를 알고자 하면 먼저 그 자식을 보라.
춘추시대에 진(晋)나라 사람이었던 왕량(王良)이라는 선비가 한 말이다.
그 나무를 알려면 그 열매를 보아야 한다.
예수도 마태복음 7장 26절 이하에서 그와 비슷한말을 하였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도 포도를, 또는 엉컹귀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뿐 열매를 맺나니.
왕량은 부자자효(父慈子孝)라고 하였다.
아비가 인자하면 자식이 효성스럽다는 말이다.
水至淸卽無魚 수 지 청 즉 무 어 |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다.
이 문구는 고자의 가르침과 행적을 모은 10권 짜리 공자가어(孔子家語)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말이다.
"공자가어"가 과연 공자에 관한 참된 기록을 담고 있느냐 하는 것은
논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인생 교훈들이 대부분이므로 진지하게 경청하는 것이 마땅하다.
물이 지극히 맑으면 고기가 살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고기가 필요로 하는 영양분이 그 지극히 맑은 물에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플랑크톤 같이 여러가지 부유하는 작은 생물들이 있어야 고기는 그것을 먹고 살아가는 법이다.
인지찰즉무도(人至察卽無從), 즉 사람이 지극히 살피면 따르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盜者憎其照鑑 도 자 증 기 조 감 |
▷도둑은 밝은 빛을 싫어한다.
여기서 그 기(其)는 문맥상 추월(秋月), 즉 가을달을 가리킨다.
가을에는 하늘이 맑아서 그런지 다른 계절보다 달이 더 밝게 비치는 것 같다.
특히 한가위 보름달은 더욱 크고 둥글고 밝게 빛난다.
罪拘薄福人 죄 구 박 복 인 |
▷운이 나쁜 사람이 감옥(監獄)에 간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문맥상으로 볼 때 장람(臟濫)죄를 가리킨다.
장람죄는 뇌물을 받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이런 죄를 지은 사람들이 천하에 가득하건만
운이 없는 박복한 사람들만이 죄가 들통이 나 감옥에 간다는 말이다.
人若改常不病卽死 인 약 개 상 불 병 즉 사 |
▷사람이 상도(常道)를 벗어나면 병들거나 죽는다.
여기서 고칠 개(改)는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고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바꾼다, 벗어난다는 뜻이다.
木從蠅卽直 목 종 승 즉 직 |
▷나무가 먹줄을 쫓으면 곧게 된다.
人虧我是福 인 휴 아 시 복 |
▷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면 그것은 복(福)이다.
좀 어려운 한자인 휴(虧)는 흔히 달이 이즈러지는 형용을 가리킬 때 쓰이는 글자인데,
여기서는 타동사로 이즈러지게 하다, 해롭게하다 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이 복이다.
송(宋)나라 유학자 소강절(邵康節)이 한 말 중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떤 사람이 점을 치러가 물었다.
"어떤 것이 화(禍)이며 어떤 것이 복입니까?" 그러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내가 남을 해롭게 하면 그것이 화요(我虧人是福),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하면 그것이 복이다."
이 대답은 언뜻 보기에 평범한 것 같지만, 사실은 상식을 뒤집는 역설적인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大廈千間夜臥八尺 대 하 천 간 야 와 팔 척 |
▷집이 천간이라도 누워 자는 곳은 여덟 자뿐.
중국 역사를 보면 요순(堯舜)시대의 임금들도 초가집을 궁궐로 삼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다가 어느 임금이 인도에서 들여온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면서부터
요순시대의 근검절약 정신이 깨어지기 시작했다.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니 거기에 맞는 밥그릇과 밥상을 새로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방의 가구들도 달라지고 결국 집 전체가 달라졌다.
그러나 아무리 방이 천 개나 되고 넓고 화려한 집에 산다고 하여도
밤에 잠자리로 차지할 수 있는 곳은 여덟 자 안팎일뿐이다.
▶징기스칸이 유라시아대륙에 걸치는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을 영토로 차지하였지만
결국 얼마 되지 않는 넓이의 무덤에 빈손으로 누웠을 뿐이다.
☞ 징기스칸이 자기를 관속에 넣을 때
두 손을 관 밖으로 내놓으라고 유언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瀕來親也疎 빈 래 친 야 소 |
▷너무 자주 찾아가면 친한 사이도 벌어진다.
주로 말의 끝에 붙어서 단점, 감탄, 의문 따위의 뜻을 나타내는 어조사 야(也)는
여기서는 이라는 의미로 쓰여 말의 중간에 들어가 있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부부만큼 친한 관계가 없지만 그런 관계일수록 깎듯이 지켜야 할 예의가 또한 있다는 것이다.
色不迷人人自迷 색 불 미 인 인 자 미 |
▷여색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스스로가 미혹(迷惑)하는 것.
명심보감은 여자가 미혹시킨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미혹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여자가 미혹케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에 끌려 미혹을 자초하는 것이다.
天下拙刑政徹 천 하 졸 형 정 철 |
▷천하가 졸(拙- 서투르면)하면 정치가 두루 통(通)한다.
북송의 유학자로 주자학의 원조인 주염계(周簾溪)가 한 말이다.
형정(刑政)은 요즘 말로 하면 사법과 행정을 가리킬 것이다.
옛날의 행정은 입법까지 포함하는 것이므로 행정은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전반을 의미하는 셈이다.
졸(拙)이라는 개념은 교(巧)와 대조를 이룬다.
교(巧)는 재주와 꾀를 부리는 것을 가리킨다.
반면에 졸(拙)은 재주도 없고 꾀부릴 줄도 몰라 어수룩하게 보이나
순박하고 진실한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교자(巧者)는 말을 잘하고 졸자(拙者)는 말이 없으며,
교자는 자기 꾀에 속아 수고로운 일이 많으나 졸자는 한가하게 즐길 줄을 안다고 하였다.
病加於小愈 병 가 어 소 유 |
▷병(病)은 조금 낫는데서 더해진다.
전한(前漢)시대 유향(劉向)이 편찬한 설원(說苑)이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이다.
尺璧非寶寸陰是競 척 벽 비 보 촌 음 시 경 |
▷한 자나 되는 둥근 옥도 보배가 아니니 한 치의 시간을 다퉈라.
여기서 척벽(尺璧)과 촌음(寸陰)이 대조를 이룬다.
십촌일척(十寸一尺)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자나 되는 둥근 옥도 보배가 아니니 한치의 시간을 다퉈라.
다시 말해 한 자나 되는 둥근 옥보다는 한 치의 시간이 더 보배롭다는 뜻이다.
羊羹雖美衆口難調 양 갱 수 미 중 구 난 조 |
▷양고기 국이 맛이 있다하여도 뭇 사람의 입맛을 고르게 맞추기는 어렵다.
미(美)자는 양(羊)자와 대(大)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양이 크고 살찐 것이 맛이 있다는 데서
미(美)자는 원래 맛이 좋다는 뜻으로 쓰이다가 차츰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아름답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더욱 많아진 셈이다.
그런데 오늘 문구에 나오는 미(美)자는 처음 글자가 생겼을 때의 뜻과 똑같게 양고기의 좋은 맛을 가리킨다.
양고기의 국이 비록 맛이 좋을지라도 뭇 사람의 입을 고르게 맞추기는 어렵다.
開口告人難 개 구 고 인 난 |
▷입을 열어 "자신의 딱한 사정을"고하기 어렵다.
명심보감에서는 입을 열어 남에게 딱한 사정을 고하는 것보다 입산금호이(入山擒虎易),
즉 산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는 편이 더 쉽다고 하였다.
不照覆盆之下 부 조 복 분 지 하 |
▷엎어놓은 동이의 밑은 비추지 못한다.
강태공이 한 말이다. 엎어놓은 동이의 밑은 비추지 못한다.
아무리 해와 달이 밝다고 하여도 엎어놓은 동이의 밑을 비출 도리는 없는 법이다.
이 문구는 문맥상 다음 구절들을 강조해주는 말로 쓰이고 있다.
먼저 도인수쾌불참무죄지인(刀刃雖快不斬無罪之人)이라고 하였다.
薄 藝 隨 身 박 예 수 신 |
▷보 잘 것 없는 기술(技術)도 평생(平生)을 따라 다닌다.
예(藝)자는 원래 사람이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정성스럽게 어린 나무를 심는 모양에서 나온 글자이다.
그래서 글자를 자세히 뜯어보면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이 보이고 흙 토(土)자도 보인다.
옛날의 기술이야 농사짓는 기술이 제일이었고 그것만 있으면 그럭저럭 먹고살기 때문에
예(藝)자가 기술, 재주라는 의미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인 셈이다.
아직도 원예(園藝)라는 단어 같은 데
원래의 뜻이 그대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술, 재주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박예(薄藝)는 그렇게 엄청난 기술은 아니지만 살아가는데 요긴한 기술을 의미한다.
박예가 몸을 따른다는 말은 작지만 중요한 기술을 일생동안 활용하여 생계를 꾸며 간다는 말이다.
강태공은 말하기를 이러한 "薄藝隨身"이 양전만경(良田萬頃).
즉 좋은 밭 만 이랑을 지니고 있는 것 보다 낫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엄청난 부동산을 지니고 있는 것 보다 작지만
중요한 기술을 지니고 있는 것이 더욱 낫다는 뜻이다.
行有不得反求諸己 행 유 불 득 반 구 제 기 |
▷일이 여의치 않으면 돌이켜 자신(自身)을 살펴라.
기(己)자는 만물이 그 몸을 안쪽으로 굽혀 쭈그리는 형상을 본떠서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원래는 중앙을 가리키는 방위 개념으로 쓰였는데,
거기서발전하여 만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자기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기(己)는 카를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말한
마음의 가장 깊숙한 중앙인 셀프(Self)의 개념과 통한다.
그리고 기(己)자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기 위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는 형용을 닳았다.
"성리서(性理書)"에서는 접물지요(接物之要),
즉 사물을 접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
다시 말해 가장 중요한 인생지침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뜻이다.
나는 멸시 당하기를 원치 않으면서 남을 멸시한다든지,
나는 판단 받기를 원치 않으면서 남을 판단한다든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의 황금론이 된다.
둘째가 바로 "행유부득반구제기(行有不得反求諸己)"이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든 돌이켜 자기를 살펴 그 원인을 찾으라는 의미이다.
讀書起家之本 독 서 기 가 지 본 |
▷글을 읽는 것이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根本)이다.
一日之計在於寅 일 일 지 계 재 어 인 |
▷하루의 계획(計劃)은 새벽에 세운다.
인(寅)은 시간을 뜻 할 때는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오늘 문구는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는 말이다.
공자가 말한 삼계도(三計圖)중의 하나이다.
삼계도란 일생의 계획,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데 대한 교훈을 의미한다.
☞ 일생지계재어유(一生之計在於幼)라 하여 일생의 계획은 어릴 적에 있다고 하였고
일년지계재어춘(一年之計在於春)이라하여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一日之計在於寅"이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에 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忠臣 不事二君 충 신 불 사 이 군 |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중국 전국시대 제(齊)나라 사람인 왕촉이 한 말이다.
연(燕)나라 군대가 쳐들어와 성이 함락되자 왕촉은 항복 권유를 물리치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스스로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자기가 평소에 강조하던 말을 목숨을 바쳐 실천해 보인 인물이었다.
夫婦爲衣服 부 부 위 의 복 |
▷부부는 옷, 형제는 손발과 비교(比較)해서 사용(使用)함
장자(莊子)가 한 말이다.
의복파시갱득신(衣服破時更得新),즉 의복이 떨어졌을 때는 새 것으로 갈아입을 수 있으나,
수족단처 난가속(手足斷處難可續), 즉 손발이 끊어진 곳은 잇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부부관계보다 형제간의 우애가 더 소중하다는 말이나 장자가 의도한 속뜻은
부부관계만 중요할 것이 아니라 형제간의 우애도 그것 못지 않게 중요시하라는 말이다.
一言不中千語無用 일 언 불 중 천 어 무 용 |
▷이치(理致) 안 맞으면 천 마디 말을 해도 소용(所用)없다.
명심보감에서는 아예 언어 편(言語扁)이라 하여 말에 관한 교훈들을 한데 모아두고 있다.
거기에 보면 말이 잘못 쓰이면 무서운 흉기와 같이 사람을 해치게 된다는 것을 여러 번 깨우치고 있다.
흉기 중에서도 도끼와 칼을 비유로 들고 있다.
구설자멸신지부야(口舌者滅身之斧也),즉 입과 혀는 사람의 몸을 멸하는 도끼라고 하였다.
몸을 도끼로 찍으면 사람은 죽고 만다.
그와 같이 말 한마디가 사람을 크게 낙담시키거나 분노케 하여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구시상인부(口是傷人斧)라고도 하였는데 입은 사람을 상하게 하는 도끼라는 뜻으로
앞의 구절보다는 강도가 약하지만 결국 같은 말이다.
칼을 비유로 든 구절들을 보면,
일어상인통여도할(一語傷人痛如刀割)이나 언시할설도(言是割舌刀)와 같은 문구들이 있다.
한마디 말이 사람을 해쳐 아프게 하기가 칼로 벤 것과도 같다.
말은 혀를 베는 칼이다라는 뜻이다.
逢人且說三分話 봉 인 차 설 삼 분 화 |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쏟아 놓지 말라.
또 차(且)는 여기서는 가령이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다.
사람을 만나 말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열 가지 중 세 가지만 이야기하라.
다시 말해, 미가전포일편심(未可全抛一片心),
즉 마음에 있는 말을 다 쏟아놓지 말라는 뜻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공인정양심(恐人情樣心), 즉 사람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호랑이 입에 세 개가 있다고 하여도
사람에게 두 가지 마음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두렵지 않다고 하였다.
語不投機 一句多 어 불 투 기 일 구 다 |
▷마음이 맞지 않으면 말 한마디도 많다.
흔히 투기(投機)는 기회를 엿보아 이익을 얻기 위해 취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래서 투기를 하려면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한다.
여기서 투기는 서로 마음이 맞는 것을 의미한다.
利人之言 煖如綿絮 이 인 지 언 난 여 면 서 |
▷사람에 이로운 말은 따뜻함이 솜과 같다.
이(利)는 벼화(禾)의 칼도(刀)가 합해진 글자로 원래는 벼를 베는 칼이라는 뜻이었다.
벼를 베는 칼은 날카로워야 하므로 이(利)는 날카롭다는 뜻을 가지게 되고,
그 칼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가져오므로 이롭다는 뜻을 가지게도 되었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그 따뜻하기가 솜과 같다.
雖不濕衣時有潤 수 불 습 의 시 유 윤 |
▷[학문의 영향력이] 모르는 사이에 촉촉이 배어듦
습(濕)과 윤(潤)은 둘 다 젖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젖는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
습(濕)은 축축이 젖는 것이라면 윤(潤)은 촉촉이 젖는 것이라고 할까?
그 차이를 살려 오늘 문구를 번역하면
비록 옷이 축축하게 젖지 않는다 하더라도 때때로 물기가 촉촉이 베어들곤 한다.
시적인 분위기를 담고있는 구절로
안개 속을 지나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안개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학인동행(與好學人同行), 즉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일은, 여무중행(如霧中行),
즉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안개가 비처럼 옷을 흠뻑 적시지는 않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물기가 스며들게 하지 않는가?
그처럼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 옆에만 있어도
그 학문의 영향력이 안개처럼 피어올라 어느새 우리를 촉촉하게 적셔준다는 말이다.
善與人交久而敬之 선 여 인 교 구 이 경 지 |
▷사람을 잘 사귀므로 이를 오래도록 공경(恭敬)함
공자가 안자(晏子)를 두고 칭찬한 말이다.
안자는 춘추시대 제(齊)나라 재상으로 경공(景公)이라고 하는 군주를 섬겼다.
경공이 워낙 모자란 인물이라 그 군주를 바로 세우느라고 인자는 무진 고생을 하였다.
"안자(晏子)"라는 책은 비뚜로 나가는 경공을 안자가
어떠한 말로 간언하여 바르게 이끌었나 하는 기록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간언학(諫言學)이라는 것이 있다면 [안자]야 말로 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교과서가 될 것이다.
어진 인물을 그 하는 길을 묻는 경공에게 세 가지 종류의 선비에 관해 안자가 조언한 말이 유명하다.
가장 훌륭한 선비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물러 나는 것은 쉽게 여기며,
그 다음 보통선비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도 쉽게 여기며,
최하등 선비는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은 쉽게 여기고 물러나는 것은 어렵게 여긴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안자는
사람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사람들을 사귀는데 있어 모법을 보였다.
急難之朋 一個無 급 난 지 붕 일 개 무 |
▷어려울 때의 친구는 한사람도 없다.
영어 속담에도 가장 필요한 때의 친구가 참다운 친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친구 한사람 얻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문구 바로 앞에는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라는 구절이 있다.
즉, 술을 마실 때는 형제처럼 친한 친구들이 1천명은 있다는 뜻이다.
상식 만천하 지심능기인(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즉, 얼굴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있는가 하는 뜻이다.
君子之交 淡如水 군 자 지 교 담 여 수 |
▷군자의 사귐은 담박하기가 물과 같다.
담박하다는 말은 사전에서 찾아보면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
맛이나 빛이 산뜻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겉치레나 꾸밈이 없이 소박하고 맑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소인지교(小人之交),
즉 소인들의 사귐은 감약예(甘若醴), 즉 달콤하기가 단술과 같다.
日久見人心 일 구 견 인 심 |
▷오래 사귀어 보아야 마음을 알 수 있다.
이 구절 앞에 노요지마력(路遙知馬力)이라는 구절이 있다.
요(遙)는 [멀 요]이므로 길이 멀어야만 말의 힘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명심보감에 보면
사람 마음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교훈들이 군데군데 나와 있다.
[풍간(諷諫)]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구절을 보면,
물 속 깊이 있는 고기는 낚시로 낚을 수 있고
하늘 높이 날고 있는 기러기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지만
지척심불가료(咫尺心不可料),
즉 바로 지척에 있는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헤아릴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해고종견저(海枯終見底), 즉 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밑바닥을 볼 수 있지만
인사부지심(人死不知心),즉 사람은 죽고 나서도 그 마음을 알 수가 없다고 하였다.
待親暗待兒明 대 친 암 대 아 명 |
▷어버이에겐 어둡게 자식에겐 밝게 대함
어버이를 대하는 데는 어둡고 아이들을 대하는 데는 밝다.
이 문구는 명심보감 팔반가(八反歌)편에 나오는
여덟 노래들의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罪大而不可解 죄 대 이 불 가 해 |
▷죄가 크면 풀지 못한다는 뜻
죄(罪)라는 글자는 그물 망과 아닐 비가 합해진 글자이다.
잘못을 저지른 자가 그물에 걸려 있는 형용인 셈이다.
또 어떻게 보면 발이 여섯 개 달린 무슨 벌레처럼 보이기도 한다.
下民易虐 上蒼難欺 하 민 이 학 상 창 난 기 |
▷백성을 학대하긴 쉬워도 하늘은 못 속인다.
정관(貞觀)의 치(治)로 유명한 당태종(唐太宗)이 벼슬아치를 경계하면서 하는 말들 중에 나오는 문구이다.
벼슬아치들을 향하여 태종은 이봉이록민고민지(爾俸爾祿民膏民脂)라고 하였다.
즉, 너희들이 받는 봉록은 백성들의 기름이라는 뜻이다.
若先暴怒 只能自害 약 선 폭 노 지 능 자 해 |
▷먼저 화부터 내면 자기를 해롭게 할 뿐
日月逝矣歲不我延 일 월 서 의 세 불 아 연 |
▷세월(歲月)은 나를 위해 흐름을 늦추지 않는다.
주자(朱子)가 학문을 권하면서 경고와도 같이 후학들에게 준 말이다.
이 문구는 도연명(陶淵明)이 역시 학문에 힘쓰기를 원하면서 한 말과 비슷하다.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즉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즉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렵다는 유명한 구절 뒤에도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經), 즉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가 따른다.
이렇게 볼 때 학문을 이룬다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인 것을 알 수 있다.
내일 있으니 오늘 배우지 않아도 되겠지 할 수 없으며,
내년이 있으니 올해 배우지 않아도 되겠지 할 수 없는 법이다.
성년부중래(盛年不重來), 즉 배우기에 좋은 나이는 두 번 오지 않는다.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고 하니, 따뜻한 봄날 못가에 앉아 졸면서 꾸는 꿈을 깨기도 전에
섬돌 앞의 오동나무에서 벌써 가을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주자는 자신의 늙음을 이렇게 한탄하였다.
오호노의시수지건(嗚呼老矣是誰之愆). "오호라 늙었도다.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고. 배우지 않고 세월을 그냥 흘려 보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허물 중에서도 허물인 것이다."
格 物 致 知 격 물 치 지 |
▷물(物)의 이치(理致)를 연구(硏究)하여 지식(知識)을 넓힌다.
"格物致知"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지식을 넓힌다는 뜻으로
[대학(大學)]에 실려 있는데 그 제 일 장에서 풀이하기를,
大學의 도(道)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백성들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함에 멈추는데 있다.
"대학지도 재명 명덕 재친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고 하여
소위 세 강령(綱領)과, 사물에 이르러 앎을 이루고 뜻을 성실히 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고 집안을 정돈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한다.
격물치지, 성의정심, 수신제가, 치국평천하(格物致知, 誠意正心,修身齊家, 治國平天下)는
여덟 가지 조목을 이루고 있다.
喪歌僧舞老人泣 상 가 승 무 노 인 읍 |
▷상복을 입고 노래하고, 중은 춤을 추고, 노인은 울고
옛날에 임금님이 왕궁에서 생활을 하다가
하루는 백성들의 생활하는 것이 궁금하여 밤에 평민의 옷으로 갈아입고,
신하 몇을 데리고 어느 외진 곳의 불 켜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 문 앞에 당도하여 보니,
그 집의 가장은 상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고, 여승은 춤을 추고, 그의 어머니께서는 울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하도 이상하여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에게 물으니
"오늘이 아버님의 제삿날이며,
또한 어머님의 회갑 일이온데 가진 것(돈)이 없어
아내의 머리를 짤라 팔아 그 돈으로 제사상 겸 어머님의 회갑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낸 다음 어머님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저는 상복을 입은 채 노래를 불렀으며,
저의 아내 역시
어머님을 즐겁게 해 드리려고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씀을 올렸다.
임금님께서 그 정성과 효성심을 갸륵히 여겨 "1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과거 준비를 하여 다음 해에 과거 시험에 응시토록하라." 하시면서 (돈을 주시고)그 자리를 뜨셨다.
그래 그 가장은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다음해에 과거 시험을 치루는데 시험의 문제가 "상복을 입고 노래하고, 중은 춤을 추고,
노인은 울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나와 그는 장원에 급제하였다.
結 草 報 恩 결 초 보 은 |
▷죽은 뒤에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다.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진(晋)나라 위무자(魏武子)의 첩의 부모가
위무자의 아들 과(顆)에게 은혜를 갚는 이야기다.
진 나라의 환공(桓公)은
진 나라를 공격을 하고는 보씨(輔氏) 라는 곳에 군대를 머물게 했다.
이때 진왕(晋王)은 직(稷)이라는 곳에서 군대를 총동원하여
오랑캐의 땅을 침략해서 여왕(黎王)을 사로잡아 앞세우고 돌아왔다.
그런데 낙수(洛水)까지 오자 우과(魏顆)가
진(秦)나라의 군대에게 輔氏에서 패 하였으나 적군의 두회(杜回)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때에 [위무자]에게는 사랑하는 첩이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위무자]는 병이 위독했으므로 그는 본처의 아들 인 [과]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의 사랑하는 첩을 반드시 개가(改嫁)하게 하라"
그리고 다시 병이 위독해지자 [위무자]는 아들인 [과]에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첩을 반드시 순사(殉死)하게 하라."
[위무자]가 죽자 아들인 [과]는 그 첩을 차마 순사시키지 못하고 개가하게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병환이 위독해 지면 마음이 혼란 해 집니다.
저는 아버님의 올바르신 정신으로 하신 말씀에 따르기로 하겠나이다."
[보씨]의 싸움에서 [과]는 어떤 노인들이 풀을 엮어 [두회]를 막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두회]는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이리하여 그를 사로잡게 되었다.
그날 밤 [과]는 그 노인을 꿈에서 보았는데,
그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시집으로 맞아들인 부인의 아버지입니다.
당신은 아버님이 옳은 정신으로 말씀하신 것에 따라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죽어 혼령이 되어서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았다는 뜻이다.
傾 國 之 色 경 국 지 색 |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미색이란 뜻으로써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경국(傾國) 이란 원래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뜻으로서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있다.
그러나 경국이 미인(美人)을 일컫는 말로 쓰여진 예는 아주 많아서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및 이연년(李延年)등의 시에서 나온다.
[이연년]은 한무제(漢武帝)때의 협률도의(協律都尉=음악을 맡는 관리)로,
그에게는 누이 동생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절색미인이었다.
[한무제]는 이때 이미 50고개를 넘고 있었으며 애인도 없는 쓸쓸한 생활을 보내고 있어서 곧 그녀를 불렀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과 춤을 잘 추어 [한무제]는 그녀에게 매혹되었다.
바로 그녀가 [한무제]의 만년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이부인(李夫人)인 것이다.
鷄 口 牛 後 계 구 우 후 |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
소진(蘇秦)은 동주(東周)의 낙양(洛陽) 사람으로서 제(齊)나라의 귀곡선생(鬼谷先生)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자기 나라를 떠나 몇 해 동안 유세(遊說)하다가 완전히 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가족들은 모두가 비웃으며 말했다.
"땅에서 일을 하지 않고서 입으로 논의만 열중하고 있었으니 거지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
[소진]은 할 말이 없어서 자기 방에 들어박혀 장서(臟書)를 꺼내놓고 모두 읽어 나갔다.
그러다가, "사나이로 태어나서 학문을 해도 출세하지 못 한다면 읽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부라는 병서를 꺼내 놓고 열심히 읽으면서
1년이 지나자 인생의 의미를 미루어 생각하는 재주를 생각해 내고는
우선 주(周)나라 현왕을 유세하려 하였으나
소진에 대한 일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해 주지를 않았다.
이어서 진나라로 조(趙)나라로 갔지만 모두들 마땅찮게 맞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候)에게 유세했더니
[문후]는 좋은 기분으로 맞이하고 수레와 말과 금 비단을 내 주었다.
[소진]은 다음으로 한(韓)나라를 찾아가
선혜왕(宣惠王)을 알현하고 이렇게 유세했다.
한나라는 토지가 견고하고 뛰어난 무기를 생산하며 병사들은 용감합니다.
이 유리한 조건과 대왕의 현명함을 가지고서도, 진나라를 섬긴다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진나라에 호의를 보이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토지의 할애는 더욱 많은 토지를 요구할 것입니다.
한정이 있는 토지를 가지고 부득이 요구에 응한다는 것은,
소위 "원망을 사고 재앙을 불러들이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서 국토를 떼어주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서면을 하고서 손길을 마주 잡고 진나라를 섬기는 것은 소의 꼬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대왕의 현명함을 가지고 한나라의 강병을 옹호하면서도 소의 꼬리의 이름을 듣는다는 것은
제가 은근히 대왕을 위하여 부끄러워하는 바입니다.
선혜왕도 소진의 변설에 놀라서 합종(合縱)의 맹약에 가담했다.
소진은 다시 위나라, 제나라, 초나라로 유세를 하며 돌아다녀서는 그 나라의 군왕을 설복했다.
이리하여 여섯 나라는 합종의 맹약을 굳게 맺고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그 맹약의 장(長)이 되어 여섯 나라의 제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닭의 머리가 될 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는 것은
큰 것에 따르기보다는 설사 작더라도 머리가 되라는 의미인 것이다.
鷄 鳴 狗 盜 계 명 구 도 |
▷한 가지 기술에 능한 사람을 가리키는 뜻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고 개의 흉내를 잘 내 어 서 좀도둑질을 잘 한다는 뜻으로,
한가지 기술에 능한 미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또한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장점과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전국 시대 말기에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이
닭 우는 흉내를 잘 내는 자의 힘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빠져 나오고,
개의 흉내를 내는 자로 하여금 도둑질하게 한 고사(故事)이다.
鼓 腹 擊 壤 고 복 격 양 |
▷백성들이 즐기며 태평 성대함을 의미(意味)하다.
옛날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리기를 50년이 지난 어느 날,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백성들이 자기를 천자로 받들고 있는지 어떤 지에 대하여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임금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거리로 나갔는데 어린이들이 동요를 부르고 있었다.
"우리 백성들이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당신의 어지신 덕의 덕분입니다.
당신은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일을 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들은 근심 걱정 없이 당신의 다스림에 따라 갈 뿐입니다" 하는 뜻이었다.
그러나 요임금은 노인들의 생활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자 저쪽에 땅 바닥에 아무렇게나 다리를 펴고 앉아있는 노인들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입에 든 음식을 우물거리면서 "鼓腹擊壤"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고복(鼓腹)이란 배를 내놓고 두드리는 일이며, 격양(擊壤)이란 땅을 치는 일로
노인들은 배를 두드리고 땅을 쳐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흥겹게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요임금이 귀를 기우려 들어보니,
"해가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와 쉬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들에 나가 밭 갈아먹는다네.
임금의 힘이 어찌 나에게 관계가 있으랴."하는 뜻이었다.
이야말로 요임금이 목표를 삼는 정치였던 것이다.
노인이 부른 노래를 "鼓腹擊壤歌"라고 말한다.
孤 城 落 日 고 성 락 일 |
▷외딴 섬에 해가 저문다는 뜻.
원군이 오지 않고 고립된 외딴 섬에 해가 저문다는 뜻으로 낙조처럼 세력이 쇠퇴하여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고립된 상태에 빠져있는 것, 또는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쓸쓸한 심경을 비유한 말이다.
이 시(詩)는 왕유(王維)의 칠어절귀(七言絶句)인 송위평사(送韋評事)에서 나온 것이다.
장군을 따라서 우현(右賢)을 취하고자 하니
모래밭으로 말을 달려 거연(居延)으로 향하네.
멀리 한나라 사자가 소관(簫關) 밖에 움을 하니
근심스러워 보이는구나!(고성락일)"孤城落日"의 가여.
曲 學 阿 世 곡 학 아 세 |
▷올바른 학문에 힘을 갖고, 학문(學問)을 세상에 아부해서는 안됨
도(道)에서 벗어난 학문을 닦아서 세상에 아부한다는 뜻으로
평소의 자기 신조나 소신을 굽히고 권세나 세파에 아첨함을 말한다.
원고생(轅固生)은 제(齊)나라 사람으로써 전한(前漢)의 4대 황제인 경제(景帝) 때의 하자로
<시경(詩經)>을 밝게 안다고 해서 박사(博士)가 되었다.
그는 강직한 사람으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것은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곧바로 말했다.
경제의 어머니인 두태후(竇太后)는 노자를 몹시 좋아했다.
어느 때 그녀가 원고생을 불러서 노자의 책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원고생은 이렇게 말했다.
"그와 같은 책은 종들의 말에 불과합니다."
그러자 두태후는 화가 나서
원고생을 사육장(飼育場)으로 보내어 돼지를 잡도록 명령했다.
경제는 원고생이 바른 말을 했을 뿐으로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몰래 날카로운 칼을 그에게 주었다.
원고생은 그 칼로 어려움 없이 돼지를 죽일 수가 있었다.
그때 원고생은 이미 90여세가 되어 있었다.
원고생이 부름을 받았을 때 설(薛)나라 사람인 공손홍(公孫弘)도 역시 부름을 받았다.
원고생은 공손홍을 꺼려하며 흘기는 눈길로 그를 보았고 그리고 원고생은 이렇게 말했다.
"공손군, 올바른 학문에 힘을 갖고 말하게, 학문을 굽혀 세상에 아부해서는 안되네."
過 而 不 改 과 이 불 개 |
▷같은 잘 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잘못한 줄 알고서도 고치지 않으면 이것을 잘못이라고 말하는 뜻이다.
논어(論語)의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잘못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고 말한다."
완전무결한 이상적인 인간이라는 성인적 경지에 있는 사람들은 별개로 하고
사람은 누구나 말과 행실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르기 쉽다.
다시 말하면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잘못을 저지르냐 않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것이다.
요컨대 성인이 아닌 이상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피할 수가 없다.
▶문제는 그것을 잘못인 줄을 알았으면 선뜻 잘못을 고쳐야 하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瓜田不納履李下不正冠 과 전 불 납 리 리 하 불 정 관 |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바로 쓰지 말라.
이 시(詩)는 문선(文選)의 악부고사(樂府古辭) 중 에 있는 군자행(君子行)에 실려 있는데 다음과 같다.
군자(君子)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일을 사전에 방지 해야하며 혐의를 받을 상황에는 몸을 두지 말아야 한다.
외밭 앞에서 신을 고쳐 신으면, 멀리에서 보는 사람은 외를 따는 줄 알고 의심을 받을 것이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바로 고쳐 쓴다면 오얏을 따는 줄 알고 의심을 받을 것이니
절대로 그와 같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過卽勿憚改 과 즉 물 탄 개 |
▷잘 못을 저질렀으면 즉시 고쳐야 한다.
잘 못을 저질렀으면 즉시 거리낌없이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실려 있는 말이다.
"성실과 신의를 위주로 삼고 나만 못한 사람과는 벗하지 말 것이며
잘못하면 고치는 데 주저하지 말라." 라고 공자께서 말씀 하셨다.
사람은 역시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러나 잘못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곧 고쳐야 하는 것이다.
잘못이 있는데 고치기를 주저해서는 안 된다.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질러서는 안 되는 것이다.
佳 人 薄 命 가 인 박 명 |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일컫는 말
가인(佳人)이란 귀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의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의 시(詩)에 <옛부터 미인은 운명이 박함>이라 했다.
[소식은 북송(北宋) 후기의 대문장가로 항주(杭州)지방 장관으로 있을 때 어느 어여쁜 여승을 보고
"박명가인"이란 칠언율시(七言律詩)를 지었다.
이 시는 1086년부터 8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두 볼은 젖빛 같고, 머리칼은 옻칠을 한 듯 새까맣데
눈빛이 발로 들어오니 주옥과 같이 또렷하구나!
원래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만들고
붉은 연지는 천년의 바탕을 더럽힐까 바르지 않았네.
오 나라 사투리가 아직도 애교 있는 어린아이 같은데
무한한 세월에 그 근심 알 수가 없네.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운명은 박함이 많으니
문을 닫고 봄이 다하면 버들 꽃 떨어진다네..
苛政猛於虎 가 정 맹 어 호 |
▷포악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가정(苛政)이란 가혹한 정치를 뜻하는 것으로 곧 포악한 정치제도는 맹수인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이다.
이 이야기는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나오는 공자의 설화의 하나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태산(太山-山東省)의 어느 길을 가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부인이 길가에 있는 무덤 앞에 앉아서 슬피 우는소리가 들렸다.
공자는 수레에 몸을 기댄 채 울음소리에 귀를 기우렷다.
이윽고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명하여 묻게 했다.
"부인, 마치 슬픈 일을 거듭 당하신 것 같은데 대체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네,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옛날에 저의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는데,
얼마 전에는 저의 남편이 또 호랑이에게 잡혀 먹혀서 죽었고
이번에는 저의 자식마저 호랑이에게 잡혀 먹혔답니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물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서운 곳에서 왜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이곳에서 살고 있으면 무서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지요."
공자는 이 말을 듣고 깊이 느끼는 바가 있어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일깨웠다.
"너희들도 가슴에 잘 새겨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사람을 잡아먹는 호랑이보다 더욱 무섭다는 것을...."
乾 坤 一 擲 건 곤 일 척 |
▷흥(興)하느냐 망(亡)하느냐, 성공(成功)하느냐 파멸(破滅)하느냐!
이글은 한유(韓愈)라는 칠언절구(七言絶句)에 나온다.
홍구(鴻溝)는 현재 중국 하남성(河南省) 개봉(開封) 서쪽을 흐르는 강으로 고로하(賈魯河)라고 부른다.
이 시는 한(漢)나라의 싸움의 한 토막을 읊은 것이다.
한나라의 유방(劉邦)과 초(楚)나라의 항우(項羽)는 서로 협력하여 진(秦)나라 왕조를 쓰러뜨리고,
다시 두 사람은 천하의 맹주(盟主)가 되기 위하여 격렬한 전쟁을 벌렸는데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유방은 천하를 둘로 나누어 영토를 삼자는 항우와의 약속을 어기고 항우와의 일전(一戰)에 천지를 걸고
항우를 해하(垓下)에서 포위해 대패시키고 한왕조(漢王朝)를 세웠다.
管 鮑 之 交 관 포 지 교 |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友情)이나 교우관계(交友關係)를 뜻한다.
중국 제(齊)나라 때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두터운 우정을 얘기한 것으로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이나 교우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관포(管鮑)란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를 가리킨다.
두 사람은 죽마고우(竹馬故友)로 가까운 친구였다.
관중은 소홀(召忽)과 함께 양공(襄公)의 공자(公子)인 규(糾)의 측근자가 되었고,
포숙아는 규의 동생인 소백(小白)의 측근자가 되었다.
양공은 바탕이 바르지 않은 사람이어서
드디어 종제인 공손무지(公孫無知)의 반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죽임을 당했다.
관중과 소홀은 규를 받들고 노(魯)나라로 망명했으며, 포숙아는 소백을 받들고 거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윽고 공손무지가 반대파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제나라의 왕위는 비어 있었다.
규와 소백은 형제이긴 했지만 먼저 제나라로 돌아온 쪽이 왕위에 오른다는 정적의 묘한 사이가 되었다.
규는 서둘러 귀국하려 했지만 격식이 높은 유서있는 노나라에서는
무엇이나 행동이 제한되어 생각대로 되지 않는 반면에
소백은 작은 나라인 거에 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제약이 업이 신속하게 행동하여 곧바로 제나라로 행하여 출발했다.
이와 같은 정보를 얻은 관중은 왕위에 규를 앉히기 위해서는 소백을 죽이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도중에 매복하였다가 암살을 꾀하였으나, 화살이 조금 빗나가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소백은 제나라 도읍으로 돌아와, 포숙아 대부(大夫)인 고혜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르자 군대를 이끌고 노나라로 가서, 규와 관중과 소홀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소백은 곧 자기의 목숨을 노린 관중의 목을 자르려 했으나 포숙아가 그것을 말리며 말했다.
"왕께서 제나라 하나만을 다스리신다면 고혜와 제가 있으니 충분하겠지만
천하의 패자가 되시기를 바란다면, 관중을 살려주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소백은 그 말에 따라 관중을 대부의 벼슬을 주어 국정을 다스리게 했다.
과연 관중은 대재상으로서의 수완을 발휘하여 환공을 춘추시대 제일의 패자의 지휘에 올려놓았다.
刮 目 相 待 괄 목 상 대 |
▷눈을 씻고 상대를 대한다는 뜻
눈을 씻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한다는 뜻으로,
남의 학식이나 재주 같은 것이 갑자기 늘어난 것을 보고 놀라서 쓰는 말이다.
삼국이 정립(鼎立)하여 격렬한 대립을 계속하고 있던 무렵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로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아주 무식한 사람이었으나 전공(戰功)으로 인해 계속 승진하여
마침내 장군이 되었는데 어느 날 손권이 그에게 공부를 하도록 충고했다.
얼마 후 손권은 부하 중 가장 학식이 뛰어난 노숙이 여몽을 찾아갔다.
여몽과는 오랜 친구 사이였던 노숙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여몽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는가?
이제 학식이 대단하니 이미 오(吳)의 시골구석에 있던 여몽이 아니로군!"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는 헤어진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
掛 冠 괘 관 |
▷갓을 벗어 건다.
<갓을 벗어 건다>라는 뜻으로, 관리가 벼슬을 내놓고 사퇴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의 봉맹(逢萌)은 집이 가난하였으므로 도둑을 잡는 정장(亭長)이 되었지만
그 일에 싫증내지 않고 장안(長安)에 나아가 <춘추(春秋)>에 정통했다.
우연히 전한(前漢)의 대왕인 애제(哀帝)가 죽고 왕망(王莽)이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평제(平帝)를 세웠지만
왕망은 평제의 어머니인 위희(衛姬)와 그 집안 식구가 도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또 이 일을 간한 장남인 왕우(王宇)의 내외를 죽였다.
그러자 봉맹은 친구에게, "삼강(三綱 = 君臣 夫婦 夫子의 윤리)은 이미 끊어졌다.
지금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들에게 재앙이 미칠 것이다." 라하고,
그 자리에서 갓을 벗어 장안의 북문인 동도문(東都門)에 걸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가 요동(遼東)에서 숨어살았다.
巧 言 令 色 교 언 령 색 |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 빛
교언이란 남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는 교묘한 말이요,
영색이란 좋은 얼굴빛으로 소인배들의 교묘한 수단과 아첨을 일컫는 말이다.
공자는 학이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에는 인(仁)이 적다." 나는 자주 빛이 붉은빛을 뺐는 것을 미워하고,
정나라 음악이 아악(雅樂)을 어지럽힌 것을 미워하며,
약삭빠르게 둘러대는 말이 나라를 뒤엎음을 미워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이구(利口)란 교언과 상통하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는 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은 덕을 어지럽히고,
작은 일을 참지 않으면 큰 계획을 어지럽힌다고 하였다.
반면에 자로편(子路篇)에서는 강직하고 의연하고 질박하고 입이 무거운 것은
인(仁)에 가깝다라고 하여 상대적으로 "巧言令色善義仁"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巧言令色"의 상대어로 강의불눌(剛毅不訥)을 들 수가 있다.
膠 柱 鼓 瑟 교 주 고 슬 |
▷고집 불통을 비유(比喩)하는 말
기둥(비파나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풀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늘 탄다는 뜻으로서
어떤 규칙에 얽매여 변통을 모르는 것, 또는 고집불통을 비유하는 말이다.
조나라 명장 조사(趙奢)에게 괄(括)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병서에 밝아 가끔 아버지와 용병(用兵)에 관해 토론을 하면
오히려 아버지가 이론에 몰리곤 하였다.
조사의 부인이 아들의 총명함을 보고 장군의 집에 장군이 났다면서 기뻐하자 조사는 이렇게 타일렀다.
"전쟁이란 생사가 달린 결전으로서 이론만 가지고 승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오.
철없이 이론만 가지고 가볍게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장수로서 가장 삼가야 할 일이오.
앞으로 괄이 장군이 된다면 조나라는 큰 변을 당하게 될 터이니 오히려 걱정이오."
그 뒤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해 왔다.
명장 염파가 나가 싸웠으나 싸움은 조나라에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염파는 힘이 모자라는 것을 알자
진지를 굳게 다지고 방어에 힘을 기울렷다.
그러자 진나라는 첩자를 들여보내 헛소문을 퍼뜨렸다.
"진나라 사람들은 조사의 아들 조괄이 조나라 대장이 되면 어쩌나 하고 겁을 먹고 있다.
염파는 이제 늙어서 싸움을 회피만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렵지가 않다."
이 헛소문에 귀가 솔깃해진 조나라 왕은
염파 대신에 조괄을 대장에 임명하려 했다.
그때 인상여가 반대하고 나섰다.
"대왕께서 이름만 듣고 조괄을 쓰려하시는 것은 마치 기둥을 아교로 붙여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괄은 그의 아버지가 전해 준책을 읽었을 뿐으로 때에 맞추어 변통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임금은 인상여의 말을 듣지 않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했다.
조괄은 대장이 되는 그날로 자기가 알고 있는 병서의 가르침에 따라
전부터 내려오는 군령들을 전부 뜯어 고쳤는가하면 자기 주장대로만 밀고 나갔다.
그러다가 결국 조괄은 대 참패를 당하고 조나라를 큰 위험에 빠지게 했다.
九 死 一 生 구 사 일 생 |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간신히 살았다.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유량주가 말한 아홉 번 죽어서 한 번 살지를 못한다 에서 나온 것으로
열 번 중에서 아홉 번까지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 한다는 뜻으로서
현재는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간신히 살아난다는 뜻으로 통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속의 굴원(屈原)과 가생(賈生)열전(列傳)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굴평(屈平一平은 굴원의 이름)은, 임금이 신하의 말을 듣고 분간하지 못하고 참언(讖言)과 아첨하는 말이
왕의 밝은 지혜를 가리고 간사하고 비뚤어진 말이 임금의 공명정대함을 상처 내어서
마음과 행실이 방정한 선비들이 용납되지 않는 것을 미워했다.
그리하여 근심스러운 생각을 속에 담아 <이소(離騷)>한편을 지었다."
제 6단에 다음과 같은 1절이 있다.
<한숨쉬며 눈물을 닦으며, 인생의 어려움 많음을 슬퍼한다...
그러나 자기 마음에 선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비록 아홉 번 죽을지라도 오히려 후회하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
이 구사(九死)에 대하여,
<문선(文選)>을 편찬한 유량주(劉良注)는 이렇게 말했다.
"아홉은 수의 끝이다.
충성과 신의와 바름과 깨끗함 충신정결(忠信貞潔)이 내 마음의 선하고자 하는 바이니
해를 만남으로써 아홉 번 죽어서 한 번을 살아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직 후회하고 원한을 품기에는 족하지 못하다."
九 牛 一 毛 구 우 일 모 |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없어져도 표적이 나지 않는다.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司馬遷)은
보임안서(報任安書)의 전반에서 자기가 이릉(李陵)을 변호했기 때문에
관청의 형벌을 받게 된 경과를 말하고,
다시 자기는 임안(任安)과 이릉과 함께 투옥의 쓰라림을 맛보면서
더구나 자기는 거세의 형벌을 받아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이것은 정말로 슬픈 일이며
투옥된 자기들의 하소연할 수 없는 괴로움은 세상의 속인들에게는 말로 들려 줄 수 없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나의 아버님은 부부단서(剖符丹書)를 받을 만한 공적도 없는 문 사성력(文史星曆)의 계원이며
점장이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원래 천자가 희롱하여 노니는 것을 상대하는 천한 배우와 같이 양성되어
세상 사람들이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설사 내가 법에 복종하여 죽임을 받을지라도
아홉 마리의 소에서 한 개의 터럭을 잃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자조적인 그늘 위에는 당대의 사회적 불만과 속세의 분노가 깃들여 있다.
口有蜜腹有劒 구 유 밀 복 유 검 |
▷겉으로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 헤어질 생각을 한다.
이인보는 환관에게 뇌물을 바치고
당 현종의 총애하는 왕비에게 접근하여 출세의 실마리를 잡은 사람이다.
그는 처음부터 전형적인 궁중 정치가였던 것이다.
개원 22년에 부제상을 24년 동안이나 지냈으며
천보 11년에 제상이 되어 죽을 때까지 19년 동안은 항상 현종의 측근에서
인사권을 손에 쥐고 국정을 마음대로 하다가
마침내 당나라를 한때 위기에 몰아 넣었던 안록산(安祿山)의 난리를 불러들이게 하였다.
이임보는 질투심이 강한 사나이로서 자기 보다 나은 사람을 보면
그가 자기의 지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워하여 조정에서 추방해버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자기의 권위를 어깨에 걸친 강인한 수법으로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충성스런 얼굴로 현종에게 천거하여 올려놓은 뒤에 떨어뜨리는 수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라고 했다.
九인功 虧一궤 구 인 공 휴 일 궤 |
▷지금까지의 수고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최후의 순간에 가서 실패한다는 뜻으로 공들인 일이 한 번의 실수로 허사가 된다는 것이다.
일인은 주나라 제도에서는 8척을 말하는 것으로
따라서 구인은 그 9배나 되는 것이니 몹시 높고 길음을 말하는 것이다.
일궤는 한 삼태기를 말하는 것이다.
그 출전은 <서경(書經)> 여오편(旅獒篇)으로서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아아, 임금이 된 사람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천하의 정치를 힘써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작은 행위에서 신중함을 결여한다면 마침내는 큰 덕을 손상시키기에 이를 것이다.
▶예를 들면 흙을 쌓아 산을 만들어 한 삼태기의 흙을 운반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지금까지의 수고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라는 뜻이다.
群 鷄 一 鶴 군 계 일 학 |
▷평범한 사람 속에 한사람의 뛰어난 인물이 섞여 있다.
닭 무리 가운데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서,
즉 평범한 사람 속에 한 사람의 뛰어난 인물이 섞여 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혜소의 자는 연조(延祖)라 하는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으로서
유명한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였던 혜강의 아들의 아들이다.
소(紹)는 10세 때에 아버지가 무고한 죄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래 어머니를 모시고 근신하고 있었으나
망부의 친구며 칠현(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가 당시 이부(吏部)에 있으면서 무제(武帝)에게 상주하였다.
"강고(康誥)에 부자의 죄는 서로 미치지 않는다고 적혀 있습니다.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긴 하나
그 영특함이 춘추 시대의 진(晋)나라 대부인 극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습니다.
부디 부르셔서 비서랑(秘書郞)을 시키십시오."
"경이 추천하는 사람 같으면 승(丞)이라도 족하겠지.
반드시 랑(郞)이라도 좋지 않겠는가?"
황제는 그를 불러 비서랑보다 한 등급 위인 비서승(秘書丞)이란 관직에 오르게 했다.
소가 처음으로 낙양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 중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에게 말했다.
"어제 많은 사람들 틈에서 처음으로 혜소를 보았는데 의기도 높은 것이 아주 늠름함이
마치 독립불기(獨立不羈)한 학이 닭의 무리 속으로 내려앉은 것 같았네."
여기서 "群鷄一鶴"이라는 말이 나왔다.
國 士 無 雙 국 사 무 쌍 |
▷경쟁 할 만한 자가 없다는 사람이란 뜻
진나라가 멸망하고 초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이 천하를 다투고 있을 때의 일이다.
초군의 위세에 눌려 파촉(巴蜀)의 땅에 몰리고 있었던 한군 속에 한신이란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 한신은 초군에 속해 있었으나
아무리 군략을 헌책해도 항우가 채택해 주지 않으므로 도망쳐 나와 한군에 투신했다.
아직 유방에게는 알려질 기회가 없었으나
우연히 부장(部將) 하후영(夏侯瓔)의 눈에 들어 치속도위(治粟都尉)로 추천되었다.
병량(兵糧)을 관리하는 직책으로 그는 다시 승상인 소하(蕭何)와 알게 되었다.
한신은 대망을 품고 있었으며 또 그에 걸맞은 재능을 감추고 있었는데
역시 소하는 그것을 알아보고 은근히 기대를 걸었다.
그 무렵, 유방을 따르는 부장들 중에도 향수에 젖어서 도망치는 자가 상당히 있었다.
따라서 군중에 동요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도망병에 섞여 한신도 도망쳤다.
영재라고 자부하는 바가 컸던 그는 치속도위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었다.
한신이 도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하는 급히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소하도 도망쳤다고 지레짐작을 한 자가 있어 유방에게 그 보고가 전해졌다.
유방은 좌우의 팔을 잃은 것 같이 낙담하여 노여움 또한 컸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서 소하가 돌아 왔다.
그 얼굴을 보고 유방은 기뻤으나 화를 내며,
"숭상인 자가 왜 도망을 쳤는가?"
"도망친 것이 아닙니다. 도망친 자를 쫓아갔었습니다."
"누구를?" "한신입니다."
"뭐, 한신? 지금까지 부장으로서 도망친 자가 십 여명이나 되는데
경은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뒤쫓은 일이 있는가?
그런데 이름도 없는 한신의 뒤를 쫓다니, 거짓말이 아닌가?"
"이제까지 도망친 부장들 정도의 인물이라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주공께선 이름도 없는 한신이라고 하시지만 그것은 한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신은 실로 국사무쌍이라고 칭찬할 만한 인물입니다.
주공께서 이 파촉을 영유하시는 걸로 만족하신다면
한신이란 인물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동방으로 진출해서 천하를 다투실 것을 희망하신다면
한신 이외는 같이 군략을 꾀할 사람이 없습니다.
한신이 필요한지 아닌지는 주공이 천하를 바라시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한신은 한의 대장군이 되었다.
마침내 초왕(楚王)이 되어 밥을 준 노파에게는 천금을 하사하고,
가랭이 밑으로 자기를 기어 들어가게 했던 사람에게는 초나라의 수도를 경비하는 관리로 삼았다고 한다.
群 盲 評 象 군 맹 평 상 |
▷일부분만을 알고 전체의 관찰은 하지 못 한다는 뜻.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평한다는 말로서
맹인들이 코끼리를 손으로 만져보고 각자가 만진 부분만을 평한 것처럼
보통 사람이 위대한 성인이나 사업을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그 일부분만을 알고 비평하는 것 일뿐
전체의 관찰은 하지 못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느 나라에 왕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은 대신에게,
"코끼리를 끌어내어 맹인들에게 보여 주어라,"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대신은 많은 맹인들을 모아 놓고 그들 앞에 코끼리를 끌어내었다.
맹인들은 각자 손으로 코끼리를 만져 보았다.
대신이, "명령대로 하였나이다." 하고 보고하자,
왕은 그 맹인들을 불러서 물었다.
"너희들은 코끼리를 알았느냐?"
그러자 맹인들은 입을 모아 대답하였다.
"네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다시 물었다.
"코끼리는 무엇과 같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 상아를 만져 본 맹인은 대답했다. "코끼리의 모양은 무우와 같나이다."
- 귀를 만져 본 맹인은 말하였다. "코끼리는 키와 같나이다."
- 코를 만져 본 맹인은 말하였다. "코끼리는 방앗공이와 같나이다."
- 머리를 만져 본 맹인은 말하였다. "코끼리는 바위와 같나이다."
- 다리를 만져 본 맹인은 말하였다. "코끼리는 나무토막과 같습니다."
- 등을 만져 본 맹인은 말하였다. "코끼리는 널판지와 같습니다."
- 배를 만져 본 맹인은 말하였다. "코끼리는 독과 같습니다."
- 그리고 꼬리를 만져 본 맹인은 말하였다. "코끼리는 새끼줄과 같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코끼리는 부처님을 비유한 것으로, 모든 맹인들은 밝지 못한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을 부분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
즉 모든 중생들에게는 각각 부처님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君子 三樂 군 자 삼 락 |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은 이 세 가지 속에 들어 있지 않다.
부모가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고, 사람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음이 둘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째의 즐거움이다.
▶이를 어떤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 하여
인생삼락(人生三樂)이라고 하기도 한다.
捲 土 重 來 권 토 중 래 |
▷한 번 실패(失敗)하고 다시 도전(挑戰)한다.
한 번 싸움에 패한 사람이 다시 힘을 내어서 흙먼지를 날리며 힘찬 기세로 공격해 온다는 뜻으로서
오늘날에는 한 번 실패하고도 다시 그 일에 도전한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만당(晩唐)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던 두목(杜牧)의
칠언 절구(七言絶句)중의 하나인 제오강정시(題烏江亭詩)에서 나온 것이다.
승패는 병가(兵家)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니 부끄러움을 참을 수 있음이 남아 있다.
강동(江東)의 자제(子弟)들 중에는 호걸들이 많으므로
흙먼지를 일으키고 거듭 쳐들어오는 것을 아직 알 수 없다.
이 시에서 오강은 항우가 정장(亭長)에게서 강동으로 돌아가라는 권고를 받은 곳으로
항우는 패전한 몸으로 강동의 부형(父兄)을 대할 면목이 없다고 하며 스스로 자기 목을 쳤다.
항우가 죽은지 천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 두목이 오강을 바라보는 나루터에 서서
항우의 인품을 그리며 너무나도 빠른 그의 죽음(31세)을 애석해 했다.
항우는 단순하고 격한 성격의 소유자 이였으나
일면 우희(虞姬)와의 이별(離別)에서 보이듯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래서 두목의 시에는
강동의 부형에 대한 수치를 참고 견디었더라면 우수한 자제가 많은 곳이므로
만회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하고
항우를 애석하게 여기는 정이 넘쳐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槿花一日自爲榮 근 화 일 일 자 위 영 |
▷사람의 일시적인 영화(榮華)는 덧없다는 뜻.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 때 시드는 무궁화 꽃처럼 사람의 일시적인 영화는 덧없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사전에 의하면 꽃은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든다고 되어 있다.
백락천(白樂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방언(放言) 5수중의 첫 수에 실려 있다.
방언이란 마음 내키는 대로 읊는다는 뜻이다.
백락천은 사람의 영화는 무궁화 꽃과 같이 하루동안 피었다 지는 것이라고 하여
하루동안의 영광을 한탄하지 아니하므로 슬퍼하고 기뻐하는 자체가 어리석다고 말하는 것이다.
金 蘭 之 交 금 난 지 교 |
▷친구의 사이가 쇠보다 굳고,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대홍정(戴洪正)이란 사람이 친구를 사귈 때마다
그것을 장부에 기록하고 향을 피하고
조상에게 고하는 것을 가리켜 금란부(金瀾簿)라고 이름 붙인,
고사에서 친구의 주소 성명을 기록한 장부를 금란부라고 부르게 되었다.
錦 上 添 花 금 상 첨 화 |
▷좋은 일에 좋은 일이 더 한다는 뜻.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으로 좋은 일에 또 좋은 일이 더 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더욱더 악화된다는 뜻을 지닌 설상가상(雪上加霜)이 있다.
왕안석(王安石)은 북송 중기의 군사비 팽창에 의한 경제적 파탄을 구하려고
획기적인 신법(新法)을 실시한 정치사상 귀재(鬼才)일 뿐 아니라
송나라 시대의 시풍(詩風)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 다음의 시는 그가 만년에 남경에서 은둔생활을 할 무렵의 작품으로
즉사(卽事)란 세상 물정에 직면하여 그 자리에서 지은 시를 말한다.
강물은 남원으로 흘러 언덕 서쪽으로 기우는데,
바람에 수정 빛이 있고 이슬엔 꽃다움이 있네.
문 앞의 버들은 고인이 된 도령의 집이고
우물가의 오동나무는 전날 총지(總持)의 집일세.
좋은 초대를 받아 술잔에 술을 거듭하니
고운 노래는 비단 위에 꽃을 더 하네.
문득 무릉도원에 술과 안주의 손님이 되니
내 근원엔 아직, 붉은 노을이 젖어드네.
이 시에서의 비단은 술자리와 주변 풍경을 가리키고 꽃은 고운 노래를 뜻한다.
錦 衣 夜 行 금 의 야 행 |
▷출세(出世)를 해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간다는 말로서 아무리 내가 출세를 하고 잘 해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유명한 홍문연(鴻門宴)이 있은 지 며칠 뒤의 일이다.
항우가 군대를 이끌고 진나라의 도읍인 함양을 쳐들어갔으나
함양은 이미 유방이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우는 그냥 입성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항우는 함양에 입성하자 마자 유방에게 거짓으로 투항하여
유방이 손대지 않고 있던 진나라 궁궐에 불을 질렀다.
그 불은 사흘 동안이나 타올랐다.
그리고 항우는 재물과 여자들을 손안에 넣고 동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때 항우에게 이렇게 설득하는 사람이 있었다.
"함양은 산과 강이 험하여 사방을 막고 있고,
땅이 기름지므로 여기를 도읍으로 삼으면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우는 진나라의 궁궐이 타서 파괴되는 것을 보자
또 마음속으로 고향이 그리워졌기 때문에 동쪽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릴지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다.
누가 이것을 알 사람이 있겠는가?"
여기에서 <비단 옷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起 死 回 生 기 사 회 생 |
▷죽은목숨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
죽은목숨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으로서 큰 은혜를 베푸는 것을 말하지만
지금은 죽음에 임박한 환자를 되살린다.
또는 위기에 처한 것을 구원하여
사태를 바로 잡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춘추시대 후기인 노나라의 애공 원년에 오왕 부차는
3년 전에 월나라에 폐할 때 다리에 중상을 입었으나
그후 죽은 아버지 합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월왕 구천을 격파했다.
월나라의 대부인 종은 구천에게 화평을 구하는 방책을 드리고 구천은 이것을 승락했다.
이리하여 대부인 제계령에 명하여 오나라에 화평을 간청하게 했다.
이보다 앞서 월나라가 오왕 합려에게 부상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부차는
이 죽은 사람을 일으켜서 "기사인(起死人),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다.
과인은 감히 군왕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라고 했다.
오왕 부차는 월나라에 대하여 죽은 사람을 되살려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은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한다.
杞 憂 기 우 |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뜻.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뜻으로서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열자(列子) 천서편(天瑞篇)>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기(杞)나라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하늘과 땅이 무너져 내려앉으면
몸 붙일 곳이 없을 것을 근심하여 자고 먹는 것을 그만둔 사람이 있었다.
또 그의 근심하는 것을 근심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에게 가서 이것을 깨우쳐서 말했다.
"하늘은 공기가 쌓인 것뿐이니 어디든 기운이 없는 곳이 없네.
몸을 굽히고 펴고 호흡함과 같은 것은 종일토록 하는 가운데 있어서 행함을 그치는 일이 없네.
어찌 하늘이 무너져 내려앉을 것을 근심하는가?"
그러자 그 사람이 다시 물었다.
"하늘이 정말 공기가 쌓인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들이 마땅히 떨어지지 않겠는가?"
그것을 깨우쳐 주려는 사람이 말했다.
"해와 달과 별들도 또한 공기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일세.
만일 떨어지게 될지라도 또한 능히 맞추어 상처 낼 곳이 없다고 하네."
그 사람이 또 물었다.
"땅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하겠나?"
깨우쳐 주려는 사람이 대답했다.
"땅은 흙덩이가 쌓였을 뿐이니
사방의 허한 곳을 채우고 막아서 어느 곳이나 덩어리가 없는 곳이 없다네.
걸음을 걷고 땅을 밟고 함과 같은 것은 종일을 땅 위에서 행하여 그치지 않는 것일세.
어찌 땅이 무너질 것을 근심하겠는가?" 그러자 그 사람은 마음놓고 크게 기뻐했다.
騎 虎 之 勢 기 호 지 세 |
▷하던 일을 중지(中止)하기 어렵다는 뜻.
호랑이의 등을 타고 앉아 달리는 형세로 중도에서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니 하던 일을 중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수(隨)나라의 문제(文帝)인 양견(楊堅)의 황후 독고씨(獨孤氏)가 남편을 격려할 때 사용한 예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자 양견이 어린 정제(靜帝)를 보좌하여
국정을 맡아 다스리게 되었을 때에 독고씨는 북주의 천하를 빼앗기 위해 궁중으로 들어가
분주획책(奔主劃策)하고 있는 남편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했다.
"하루 천리를 달리는 호랑이를 탔으니 도중에서 내릴 수 없습니다.
騎虎之勢不得下虎도중에 내리면 잡혀 먹히고 말 것입니다.
호랑이와 함께 끝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미 대사를 일으키시고자 계획한 이상 도중에 꺾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목적을 달성하시도록 애써 주십시오."
양견이 용기를 북돋아 주는 처의 말에 힘을 얻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洛 陽 紙 貴 낙 양 지 귀 |
▷낙양(洛陽)의 종이 값이 오른다는 뜻.
낙양(洛陽)의 종이 값이 오른다는 뜻으로서 저서가 호평을 받아
책이 매우 잘 팔린다는 비유로 베스트셀러를 의미하는 말이다.
진(晉)나라에 좌사<左思-字는 태중(太仲)>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선비의 집안에 태어나서
뛰어난 문재(文才)를 지니고 있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용모가 추할 뿐 아니라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싫어하고, 집에 들어박혀 창작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1년 동안에 제나라의 도읍이었던 임치의 모습을 운문(韻文)으로 엮은 제도지부(齊都之賦)를 쓰고,
이어서 삼국시대 촉한의 도읍인 성도와 오나라의 도읍인 건업과 위나라의 도읍인 업을 노래한 삼도지부를 지었다.
삼도지부의 평판은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작품은 반고의 이도지부나 장형의 이경지부에 대하여 결코 월등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자부하고 있던 그는 작품을 들고 황보밀을 찾아갔다.
황보밀은 무제의 자주 있었던 벼슬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서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던 재야의 석학으로 현안 선생이라고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황보밀은 그 글을 한 번 읽고 나서 그 자리에서 서문을 써 주었다.
다시 장재가 우도지부에, 중서랑인 유달이 약해(略解)를 짓는 등 마음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거니와 그 이름을 결정한 것은
사공(司空-재상직) 벼슬에 있는 장화가 절찬하는 말이었다.
"이 작품은 정말로 반고(班固)나 장형(張衡)의 작품과 어깨를 겨룰 만하다.
다 읽고 나면 독자로 하여금 여운이 요요하고,
날이 갈수록 다시 감명을 새롭게 함을 깨닫게 하는 바가 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도읍의 귀족과 부자들이 앞을 다투어 이 글을 베껴갔다.
그래서 낙양에서 종이 값이 갑자기 올라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難 兄 難 弟 난 형 난 제 |
▷형 노릇하기도 어렵고 동생 노릇하기도 어렵다는 뜻.
형 노릇하기도 어렵고 동생 노릇하기도 어렵다는 뜻으로서
어느 편이 더 낫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경우에 사용한다.
양상군자로 유명한 후한 말의 진식이 친구와 함께 떠나기로 약속한 일이 있었다.
시간이 되어도 친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진식이 먼저 떠났다.
그 뒤에 친구가 찾아와서 문밖에서 놀고 있는 진기에게 아버지의 일을 물었다.
"아버지는 손님을 기다리시다가 오시지 않아서 먼저 떠나셨습니다." 하고 말하자,
친구는 화가 나서,
"사람과 약속을 해놓고서 혼자 먼저 떠나버린다는 것은 어쩐 일인가?" 하고 불평을 하자,
진기는 말했다.
"손님은 아버지와 정오에 만나자고 약속하셨지요?
그런데도 정오에 오시지 않은 것은 신의를 저버린 것이 아닙니까?
또 자식을 앞에 두고 아버지의 욕을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닙니까?"
친구는 그가 닦아세우는 바람에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여 수레에서 내려 사과하려고 했지만
진기는 그를 상대도 하지 않고서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것을(그 아버지에 그 아들) 이라고 하거니와 이 진기의 아들인 진군 역시 수재로서 뒤에
위나라 문제(文帝)인 조비에게 벼슬하여 사공(司空)과 재상이 되어
구품관입법(九品官人法)을 입법한 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다른 아들 진군이 어릴 때의 이야기다.
어느 날 숙부인 진심의 아들인 진충과
서로 자기 아버지의 공적과 덕행을 가장하며 우열을 다투었는데
도무지 결말이 나지 않아서 할아버지인 진식에게 판정을 구하였다.
그러자 진식은 말했다.
"원래 훌륭한 동생의 형이 되기도 어렵고,
동생도 훌륭한 형의 동생 노릇하기 어려우니,
누가 훌륭하고 누가 못하다는 것은 가릴 수 없다."
南 柯 一 夢 남 가 일 몽 |
▷남쪽으로 뻗은 나뭇가지 밑에서 꾼 꿈이란 뜻.
남으로 뻗은 나무 가지 밑에서 꾼 꿈이란 뜻으로서 널리 꿈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또한 한 때의 부귀와 권세는 꿈과 같다고 하여
사람의 덧없는 일생과 부귀영화에 비유되어 쓰이기도 한다.
당나라의 덕종 때 강남 양주 교외에 순우분이라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원래 알려진 협객으로 한 때는 희납군의 부장을 지낸 일도 있었으나,
술로 실패한 이후로 친구들을 모아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의 그늘은 여름철에 술을 마시기에는 제격이었다.
어느 날,
그는 밖에서 술이 취한 것을 두 친구들이 집으로 데려 왔는데
그는 추녀 끝에서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보니 마당 끝에 두 사람의 관원이 엎드려 있었다.
"저희들은 괴안국왕의 명을 받고 모시러 온 사람입니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문을 나서니 밖에는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마차에 오르자 큰 느티나무 뿌리 쪽에 있는 굴속으로 달려갔다.
마차는 본 일도 없는 아름다운 경치 속을 수십 리를 달려서 번화한 도읍에 도착했다.
성문에는 금색으로 대괴안국이라 쓰여 있었다.
국왕은 매우 기뻐하며 그를 부마로 맞이한다고 했다.
그는 왕궁 안에서 살게 되었는데 세 사람의 시종 중에 한 사람은 전부터 얼굴을 아는 전자화였다.
또 왕이 접견할 때 백관의 행렬 속에서 술 마시던 친구인 주변을 발견했기 때문에 전자화에게 물어보니
지금은 출세하여 대신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남가군의 태수로 임명되어 전자화와 주변을 보좌관으로 받아 부임했다.
그로부터 20 년 동안 두 사람의 보좌로 인하여 태평을 누리게 되고
백성들은 그를 하늘과 같이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 해에 단라국의 군대가 남가국을 침략해 들어왔다.
주변이 3만의 대군을 이끌고 이를 저지하려 했지만
크게 패했으며 주변도 동창을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아내마저 병으로 죽었으므로 그는 관직을 사퇴하고 나라의 도읍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명성을 사모하여 찾아오는 귀족이나 호걸들이 끊이지 않아 국왕도 그 세력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 마침<나라에 어려움이 닥쳐올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상소문이 제출되어,
신하들로부터 이것은 순우분이 잠입한 것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하나 둘 나왔기 때문에
국왕 내외는 순우분에게 이렇게 권고했다.
"자네도 고향을 떠나온 지가 오래되었으니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어떤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의 집은 여긴데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그대는 원래 속세의 사람으로서 여기는 자네의 집이 아닐세."
그제야 순우분은 깜짝 놀라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 내고 돌아가기 기로 했다.
처음 그를 맞이해 준 관원이 데려다 주어 자기 집에 다시 돌아오니,
추녀 끝에서 자고 있는 자기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서 있을 때 관원이 큰 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번쩍 눈을 뜨자 밖에서 자기가 업혀 들어왔을 때와 변함이 없고
하인이 청소를 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의 친구들은 발을 씻고 있었다.
그가 친구들과 함께 큰 느티나무의 뿌리 쪽에 있는 굴을 파서 살펴보니,
성 모양을 한 개미의 집이 있고 빨간 머리를 한 큰 개미의 둘레를 수 십 마리의 큰 개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것이 대괴안국의 왕궁이었던 것이다.
다시 구멍을 따라 남쪽으로 뻗은 가지를 네 길쯤 위로 올라가니
네모진 빈 동굴이 있고 성 모양의 개미집이 있었다.
이곳이 그가 있던 남가군성이었던 것이다.
그는 "南柯一夢"의 덧없음을 느끼고 인간 세상의 변천하기 쉬움을 깨닫고
주색을 당장에 끊어버리고 도술(道術)에 전념하게 되었다 한다.
그로부터 3년 후 순우분은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가 바로 남가국에서 약속한 기한이 되는 해였다.
囊 中 之 錐 낭 중 지 추 |
▷많은 사람 가운데 섞여 있어도 그 재능(才能)이 드러난다는 뜻.
주머니 속의 송곳이 뾰족하다 하여 밖으로 뚫고 나오듯이 뛰어난 사람은
많은 사람 가운데 섞여 있을 지라도 그 재능이 저절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진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도읍 한단을 포위했다.
조나라에서는 평원군을 보내어 초나라와 동맹을 맺으려고 했다.
평원군은 용기가 있고, 문무의 덕을 겸비한 사람 20명과 동행하려 했지만
19면까지는 선발했지만 나머지 한 사람이 부족했다.
그러자 모수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그 20명 가운데 가담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원군이 물었다.
"그대는 나의 문하에 몇 해나 있겠오?"
"이제 3년이 됩니다."
"현명한 사람이 세상에 있으면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있는 것처럼 그 끝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법이요.
그런데 그대는 나의 문하에 3년이나 되었는데도 선생의 뛰어 난 점을 들은 적이 없으니
결국 선생에게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겠소?"
그러자 모수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처음으로 주머니 속에 넣어 주었더라면 송곳의 끝은 고사하고 송곳자루까지 나와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내 모수는 20명중에 가담하여 함께 초나라로 갔는데 교섭은
난항을 거듭했지만 모수의 용기와 설득력으로 합종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內 憂 外 患 내 우 외 환 |
▷나라 안의 근심과 나라 밖의 근심
나라 안의 근심과 나라 밖의 근심, 즉 내란과 외구를 뜻한다.
B.C 576년에 초나라 공왕이 정나라와 위나라를 침략하여 평화는 깨어지고
다음 해에 진나라와 초나라의 두 군대가 언릉에서 마주쳤다.
당시 진나라의 내부에서는 극씨와 낙씨와 범씨등의 대부들이 정치를 좌우하여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보다 앞서 낙서는 진나라에 항거한 정나라를 치기 위하여 동원령을 내리고 스스로 중군의 장군이 되고
법문자는 그 부장군이 되었지만 진나라와 초나라의 두 군대가 충돌하자 낙씨는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했다.
범문자는 이에 반대하여, "성인이라면 안으로부터의 근심도 밖으로부터의 재난도 지니지 않고 견디지만,
우리들에게는 밖으로부터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부터 일어나는 근심이 있다.
초나라와 당나라는 잠시 놓아두고서 밖으로부터의 근심을 버려 두지 않겠는가?"
제후는 어려움의 근본이라고 지적하여 말했다.
內 助 之 功 내 조 지 공 |
▷내조란 안에서 돕는다는 뜻.
내조란 안에서 돕는다는 뜻으로서 지금은 널리 아내가 집안 일을 잘 다스려 남편을 돕는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濫 觴 남 상 |
▷물의 근원은 술잔에 넘칠 정도의 적은 물에 불과하다는 뜻.
양자강 같은 큰 강물도 그 물의 근원은 불과 술잔에 넘칠 정도의 적은 물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이나 일의 시초와 근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로(子路)가 화려한 옷차림을 하고 공자를 찾아뵈었다.
공자는 그 모습을 훑어보고 자로가 사치와 교만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여 걱정을 하고 말했다.
"네가 이야기하는 것을 잘 기억해 두라. 말을 자랑하는 자는 믿음직하지 않고,
행동을 자랑하는 자는 잘난 척하는 자이며 알고 있는 것을 얼굴에 나타내 그 능력을 자랑하는 것은 소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라.
또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실행할 수 있다고 하고 실행할 수 없는 것은 실행할 수 없다고 하라.
전자의 상태를 지(智)라 하고, 후자의 상태를 인(仁)이라고 한다.
지에다 인을 겸하게 되면 이젠 그 이상의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老 馬 之 智 노 마 지 지 |
▷자기 나름대로의 장점(長點)과 특징(特徵)을 지니고 있음의 뜻.
아무리 잘난 체 해도 그 지혜가 늙은 말만 못한 때가 있다는 말로
아무리 하찮은 인간이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장점과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한비자(韓非子)] 설림편(說林篇)상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인 관중(管仲)과 습붕(濕朋)의 두 사람이 제환공(齊桓公)을 따라
고죽국(孤竹國)이라는 작은 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올 때는 겨울이었는데 길을 잃고 말았다.
이럴 때에는 늙은 말의 지혜가 도움이 된다하고
관중은 늙은 말을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 가니 이윽고 길을 찾게 되었다.
또 험한 산을 진군하고 있을 때에 먹을 물이 없었다.
그러자, 개미는 겨울이면 산 남쪽에서 살고 여름이면 산 북쪽에서 사는 것이므로,
개미집의 높이가 한 치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하고
습봉이 개미집을 찾아 그 아래를 팠더니 과연 물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늙은 말의 지혜 즉 "老馬之智"가 나온 것이지만 그 뜻이 변하여
지금은 [경험이 풍부하고 숙달된 지혜]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老 益 壯 노 익 장 |
▷젊은이 못지 않게 건장하다는 뜻.
나이가 들어 늙어 갈지라도 젊은이 못지 않게 건장하다는 말이나
사람은 늙을수록 뜻을 더욱 굳게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노당익장(老當益壯)이라고도 한다.
한나라 말년, 부풍군(扶風郡)에 마원이라는 장사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글을 배우고 예절을 익혔으며,
무예에도 정통하여 부풍군 독우관(督郵官)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을 때,
많은 죄수들을 어느 곳으로 압송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중에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고
자신은 북방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마원은 북방으로 가서 소, 말, 양 따위를 놓아먹이면서 지냈다.
부지런하고 수완이 좋은 그는 수년간 정성껏 가축을 길러 수천 두의 축산으로 늘어났다.
그래서 생활이 윤택해 지고 많은 돈을 벌게 되자 가까운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웠고,
자기는 등 극히 근면한 생활을 하였다 한다.
마원은 항상 입버릇처럼 중얼거렸다.
"대장부가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강해야 한다."
그리고 그후 마원은 광무제 때 대장수가 되어 혁혁한 전공(戰功)을 세웠다.
論 功 行 賞 논 공 행 상 |
▷공적(功績)을 조사하여 그 지위에 따라 상을 주었다는 뜻.
오나라의 손권(孫權)이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강하군(江夏郡)을 공격했을 때 태수인 문빙(文聘)이 공격을 막았다.
조정의 여론은 군대를 출정하여 이를 구원하려 했지만 명제(明帝)는 이렇게 말했다.
"오나라는 원래부터 수전(水戰)에 뛰어나는 데도 그들이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전하는 것은
우리 쪽의 무방비를 겨냥하는 것이리라.
더구나 현재 강하의 태수 문빙과 대치 중에 있으니
공수(功守)의 세력이 변하는 것은 오랜 일이 아니다."
과연 손권은 후퇴를 했다.
그리고 강하의 공격에 호응하여 오나라의 제갈근(諸葛謹)과 장패(張覇) 등이 양양(襄陽)으로 침략했지만
무군대장(撫軍大將) 사마의(司馬懿)가 이것을 격파하여 장패를 목베고
정동대장(征東大將) 조휴(曹休)도 오나라의 별장(別將)을 심양(尋陽)에서 격파했다.
이와 같은 공적을 조사하여 상을 주고
"論功行賞"을 각자 그 지위에 따라 주었다고 한다.
能書不擇筆 능 서 불 택 필 |
▷글씨에 능한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글씨에 능한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서
진정한 달인(達人)이나 기능인은 별로 기구에 대해 트집을 잡지 않는다는 말이다.
당나라에서는 서도(書道)의 달인으로
우세남(虞世南), 저수량(楮遂良), 안진경(顔眞卿), 구양순(歐陽詢)등이 유명했으나
그 중에서도 구양순은 특히 유명했다.
그의 서체는 솔경체(率更體)라 불리는데
힘찬 기세가 스승인 왕희지(王羲之)보다 뛰어났다.
당서의 구양순전(歐陽詢傳)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저수량은 좋은 붓과 먹이 없으면 글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수량이 우세남에게 물었다.
"내 글씨와 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누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우는 대답했다.
"순은 종이나 붓에 대해서는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
어떤 종이에라도 썼으며 어떤 것을 써도 뜻대로 쓸 수가 있다고 하네.
자네는 아직도 종이나 붓에 얽매여 있는 듯 하니 도저히 순을 따르지 못하네."
이 말에 저수량도 할 말이 없었다.
"能書不擇筆"이라고 하는 말도 구양(歐陽)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종이와 붓을 문제 삼게 되었다." 라는 말이 있다.
多 岐 亡 羊 다 기 망 양 |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
갈림길이 많아서 양을 잃어 버렸다는 이야기로써 학문을 닦는 길에 있어서도
너무 다방면에 걸쳐 지나치게 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열자(列子)]의 설부편(說符篇)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양자(楊子)의 옆집에서 양 한 마리가 도망쳤다.
그래서 옆 집 사람들을 동원해서 양을 찾으러 나섰다.
그것을 보고 양자가 물었다.
"단 한 마리의 양인데 그렇게 여러 사람이 나서느냐?"
그러자 양자의 하인이 대답했다.
"달아 난 방향에 갈림길이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후 모두들 기진맥진해 돌아와서 말했다.
"갈림길 중에 또 갈림길이 있어서 양이 어디로 갔는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양자는 그 말을 듣자 입을 다물고 오랫동안 말도 하지 않을 뿐 더러
그날 하루는 웃는 낯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맹손양(孟孫陽)이란 제자가, 선배인 심도자(心都子)를 찾아가 사실을 말했다.
그러자 심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놓쳐 버리고
학문하는 사람은 방법이 많기 때문에 본성을 잃었다.
학문이란 원래, 근원은 하나 이었는데 그 끝에 와서 이같이 달라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하나인 근본으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말씀하는 거라네."
또한 [장자]의 변무편에는 어느 집에 두 사람의 하인이 양을 지키고 있었다.
원문은 단직(斷織)으로 되어 있었으나 뒤에 단기(斷機)로 바뀌어 있어 각각 양을 지키고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지키고 있던 양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주인은 화를 내면서 물었다.
"도대체 네놈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책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려서......." 하고 한 사람은 대답하였고,
"윷놀이를 하다가 그만...." 하고 또 한 사람도 대답했다.
두 사람이 하고 있던 일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양을 지킨다는 중요한 목적을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다름이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가를 단단히 파악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多 多 益 善 다 다 익 선 |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다다익변(多多益辯)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한나라 고조가 천하를 통일했으나 한신에게 반란의 기미가 있다고 하여
붙잡아서 왕위를 박탈하고 회음후로 좌천시켜 도읍에 있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고조는 한신에게,
"나는 어느 정도의 군대를 이끄는 장수가 될 수 있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한신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그저 10만 정도의 군대면 됩니다."
"그러면 그대는 어떠한가?"
"저는 "多多益善"입니다." 라고 한신은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고조가 웃으면서
"그 <多多益善>이란 사람이 어째서 10만의 장수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는가?" 하고 묻자,
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별 문제입니다.
폐하께서는 군대의 장수는 별로 잘 하시지 못하지만
장수의 장수다운 점에 있어서는 훌륭하십니다.
이것이 제가 폐하에게 포로가 된 이유입니다.
더구나 폐하의 능력은 소위 하늘이 주신, 재능으로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 말씀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하고 한신은 대답했다.
斷 機 之 敎 단 기 지 교 |
▷지금까지 공들인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뜻
학업을 중도에서 그만두는 것은 짜던 베의 날을 끊는 것과 같아 아무 보람도 없다는 뜻으로서
지금까지 공들인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맹자가 소년 시절에 집을 떠나
유학을 하고 있다가 뜻밖에 집을 찾아온 적이 있었다.
맹자의 어머니는 그때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다가
오래간만에 집에 돌아온 아들인데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이렇게 물었다.
"공부는 모두 끝 마쳤느냐?"
"끝마치다니요? 어머님을 뵙고 싶어 잠시 다니려 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를 옆에 있는 칼로 끊어버렸다.
맹자가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그 베는 왜 끊어 버리십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학문을 그만 둔다는 것은 내가 짜던 베를 끊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군자란 모름지기 학문을 배워 이름을 날리고 모르는 것은 물어서 앎을 넓혀야 하느니라.
그러므로 평소에 마음과 몸을 편안히 하고, 세상에 나가서도 위험을 저지르지 않는다.
지금 너는 학문을 그만 두었다.
너는 다른 사람이 심부름꾼으로 뛰어 다녀야 하며 재앙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생계를 위하여 베를 짜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여자가 그 생계의 방편인 베짜기를 그만두고
남자가 덕을 닦는 것에 떨어지면 도둑이 되지 않으면 심부름꾼이 될 뿐이다."
맹자는 결심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움에 힘쓰니 드디어 천하의 명유(名儒)가 되었다.
원문은 단직(斷織)으로 되어 있으나 뒤에 단기(斷機)로 바꿔 쓰게 되었다.
斷 腸 단 장 |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는 뜻.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다는 뜻으로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출면편(黜免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동진(東晋)의 무인(武人)인 환온(桓溫)이 촉나라로 가는 도중에 양자강의 삼협(三峽)이 배를 타고 가는데,
대오 중의 한 사람이 원숭이 새끼를 붙잡았다.
그러자 그 어미 원숭이는 새끼를 그리워하여 언덕을 따라 울부짖으며 달리기를 백 여리나 하더니
드디어 배 위로 뛰어 들어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그 뱃속을 가르고 보니, 창자가 모두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螳 螂 拒 轍 당 랑 거 철 |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
사마귀가 팔을 벌리고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서
제 분수도 모르고 강자에게 분수없이 덤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제나라 장공이 사냥을 나갔다가 한 마리의 벌레가 다리를 쳐들고 수레의 바퀴를 향하여 왔다.
장공이 마부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슨 벌레인가?"
"저것은 사마귀라는 벌레입니다.
이 벌레는 나아 갈 줄만 알고 물러 설 줄을 모릅니다.
제 힘은 생각하지 않고서 적을 가볍게 아나이다."
그러자 장공이 이렇게 말했다.
"이 벌레가 만일 사람이라면 반드시 천하에 더 없는 용사가 될 것이다." 하고
수레를 돌려 피하여 가게 했다고 한다.
大 器 晩 成 대 기 만 성 |
▷큰그릇은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努力)으로 만들어진다는 뜻
큰그릇은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드린 뒤에야 만들어진다는 뜻으로서
큰 일이나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노력 끝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노자(老子> 제 41장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최대의 사각은 지나치게 커서 그 모퉁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인 것과 같이 최고의 가치가 있는 그릇은
모든 것의 최후에 완성되고 절대적인 불면의 참된 도(道)는 너무나도 광대해서 그 정체를 포착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된 도인 것 같고, 밝은 도는 어두운 것 같고, 나아가는 도는 물러서는 것 같고, 평탄한 도는 험한 것 같다.
최상의 덕은 골짜기와 같고 너무 흰 것은 더러운 것 같고,
큰그릇은 늦게 이루어지고 큰 소리는 소리가 없고, 큰 형상은 형상이 없다.
도는 숨겨져서 이름이 없다.
大 同 小 異 대 동 소 이 |
▷비슷비슷하고 조금 다르기도 하다는 뜻
장자의 친구 혜시의 말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하늘은 땅 보다도 낮고, 산은 연못보다도 편편하다.
해는 장차 중천에 뜨지만 장차 기울어지고, 만물은 장차 태어나지만 장차 죽는다.
크게 보면 한 가지이지만 작게 보면 각각 다르니, 이것을 소동이(小同異)라고 한다.
만물은 크게 보면 각각 한 가지이지만 각각 다르니, 이것이 대동이(大同異)라고 한다.
어제의 같음은 같음이 아니고, 다름은 다름이 아니다.
이것을 크게는 같고 작게는 다르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大同小異"란 말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道 不 拾 遺 도 부 습 유 |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어가지 않는다는 말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는다는 말로서 나라가 태평하게 잘 다스려짐을 뜻하는 말이다.
B.C. 536년에 정나라의 자산(子産)이 형법을 궁중에 공표했는데 이것이 중국 최초의 성문법(成文法)이다.
자산은 농지 분배의 평등화와 생산노동의 합리화를 도모하고, 한편 귀족의 특권을 삭감하여
군주에 의한 통일통치에 접근시키고 신분의 차별을 필요한 한도에서 그치게 하고 적재적소의 관리 임용을 도모했다.
자산이 정사를 다스리기를 5년 동안 하니
나라에 도둑이 없고 길에 물건이 떨어 져 있어도 주어가지 않고,
복숭아와 대추가 거리를 덮어도 따는 사람이 있지 않고,
송곳과 칼이 땅에 떨어져 있어도 사흘 뒤에 돌아오게 되며 3년 동안을 변함없이 다스리니
백성들은 굶주리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道不拾遺"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桃 園 結 義 도 원 결 의 |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정원에서 의(義)를 맺는다는 뜻
후한(後漢)때 일어난 황건적(黃巾賊) 난으로 인해 만나게된
유비, 관우, 장비가 유비의 집에서 거병 할 것을 상의하고
복숭아밭에서 검은 소와 흰말과 지전등을 준비하고 세 사람은 향을 피우고 재배하고 맹세를 했다.
"유비와 관우와 장비는 비록 성은 다르다 해도 이제 형제를 맺고,
곧 마을을 하나로 하고 힘을 합쳐 곤란함을 구원하고 위태함을 도와 위로는 국가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만민을 편안하게 하리라.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으려 한다.
황천(皇天)과 후토(后土)는 진실로 이 마음을 보시고
의(義)에 배반하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일 것이다."
중국의 민중 사이에서는
이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의형제를 서약할 때의 모범이 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동생동사(同生同死)를 맹세하는 의식은 오늘날까지도 전해 오고 있다.
桃 源 境 도 원 경 |
▷평화스러운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
도원경(桃源境)이란 평화스러운 유토피아를 말하는 것으로 무릉도원(武陵桃源)과 같은 뜻이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시병기(桃花源詩竝記)>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진(晋)나라 태원년간(太元年間)에 무릉(武陵)에 사는 한 어부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중에
양쪽 언덕에 펼쳐진 복숭아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복숭아꽃이 한창 피어서 어부는 작은 배를 저어가면서 그 복숭아꽃에 도취되었었다.
가도가도 복숭아의 숲은 끝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숲이 어디까지 계속된 것일까 하며 올라가는데 강의 근원에서 숲도 끝나고 있었다.
그 앞의 산에는 작은 굴이 있었다.
그 굴은 겨우 빠져나갈 만 하였다. 어부가 배에서 내려 굴로 들어가니 이윽고 넓은 땅이 펼쳐졌다.
경외하게 늘어 선 집들과 아름답게 가꾸어진 밭에서 남녀들이 즐겁게 밭갈이를 하고 있었다.
방문한 사람이나 맞이하는 사람이나 놀라서 서로 이유를 물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옛날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아내와 자녀를 이끌고 이 절경으로 피난 온 이후로는
바깥 세상에 나가지 않고 바깥 세상과는 인연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지금은 대체 어떤 세상입니까? 하고 마을 사람들이 물었다.
어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으며 며칠동안 그곳에서 묵은 뒤에
원래 들어온 길에 표지를 붙여놓고 돌아와서는 그 일을 태수(太守)에게 보고했다.
태수는 사람을 시켜 찾아보게 하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陶 朱 之 富 도 주 지 부 |
▷수 억만 금의 큰 부자가 되었다는 뜻
도주공(陶朱公)이 수억 만금의 큰 부자가 되었다는 뜻으로서
<도주>대신에 의돈을 써서<의돈지부>라고도 한다.
도주란 월나라의 명신 범려의 늙었을 때의 이름이다.
주경왕(周敬王) 26년(기원전 497년)월왕 구천(勾踐)은
범려의 간언을 듣지 않고 오왕 부차(夫差)와 싸워 크게 패했다.
구천은 범려의 간언을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고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범려는 구천을 도와 오로지 부국강병에 힘써 20년 뒤에
드디어 오를 멸망시키고 회계의 치욕을 씻으며 천하의 패자가 되었던 것이다.
구천이 패자가 되자 범려는 상장군이 되었다.
그러자 범려는
'구천과는 환란을 같이해도 태평 세월을 보내기 어렵다'고하여
그 일족과 함께 월나라에서 제(齊)나라로 갔다.
제나라에서는 그의 현재(賢才)를 아껴 재상으로 맞이하고자 했으나
그는 그것을 거절함과 동시에 수천만의 재산을 남김없이 이웃에 나누어 준 다음 다시 도로 떠났다.
그는 19년 동안에 세 번이나 큰 부를 얻었으나,
그 중 두 번씩이나 이를 빈민에게 나누어주었다.
뒤에 그의 나이가 많아지자 모든 기업을 자손에게 맡겼으나
자손 역시 재주를 물려받아 더욱더 그 부를 늘렸다고 한다.
의돈은 춘추 시대 때 노(魯)나라 사람이다.
원래는 궁사(窮士)였으나 소금과 목축으로 부를 쌓아 왕이나 공후들을 능가하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로 세상에서 부를 운운하는 자를 <도주공> 혹은 <의돈>을 비유해서 말한다.
道 聽 塗 說 도 청 도 설 |
▷길에서 듣고 길에서 얘기한다는 뜻
이 말은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에 있는 공자의 말에 기인되고 있다.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도 같은 뜻의 말이 있다.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와 바로 입으로 빠지며 조금도 마음에 머무르지 않는다.
입과 귀 사이는 약 4인치 이 정도의 거리를 지날 뿐으로써 어찌 7척 장신을 훌륭한 것으로 만들 수가 있겠는가?
옛날 학문을 하는 사람은 자기를 연마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지금 사람은 배운 것을 곧
남에게 알리려 할 뿐 자기 것으로 하겠다는 생각이 없다.
군자의 학문은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데 반해 소인들의 학문은 인간을 못 쓰게 만들어 버린다."
塗 炭 之 苦 도 탄 지 고 |
▷백성이 도탄에 떨어진다.
도(塗)는 진창을 말하고 탄(炭)은 숯불을 말하니
결국 진창 속이나 숯불 속에 빠지는 것과 같은 심한 고통과 학정(虐政)속에 빠져 있음을 뜻한다.
이것은 <서경(書經)> 상서(商書)의 '중훼의 고함'이란 글에서 나온 말이다.
"유하혼덕(有夏昏德)하여 백성이 도탄(塗炭)에 떨어지다."라고 했다.
탕(湯)임금이 무력혁명에 의해 걸왕(桀王)을 내쫓고
천자가 된 것을 부끄러워하자 좌상인 중훼가 글을 지어 탕 임금을 위로했다.
이것이 중훼지고 이거니와 걸왕의 부덕 악랄한 행위에 의해 백성들이 받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을
여기서는 한 마디 말로 '백성이 도탄에 떨어지다.'라고 표현했다.
이것이 오늘날 '도탄의 괴로움'이란 말의 어원이 되었다.
讀 書 亡 羊 독 서 망 양 |
▷중요한 일이 소홀하게 되는 것을 비유로 한 말
마음이 밖에 있어 도리를 잃어버린다.
혹은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중요한 일이 소홀하게 되는 것을 비유로 한 말이다.
<장자(莊子)> 병오편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어떤 집에 장(臧)과 곡(穀)이란 두 사람이 서로 함께 양을 치고 있었는데 함께 그 양을 잃어 버렸다.
장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느냐? 고 묻자 댓가지를 옆에 끼고 글을 읽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곡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자, 주사위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의 일은 같지 않았지만 그 양을 잃어버림에 있어서는 똑같다.
同 工 異 曲 동 공 이 곡 |
▷같은 것 같기도 하면서 다른 것 같고
시문(詩文)에 있어서, '같은 것 같기도 하면서 흥취가 다른 것 같고'
또한 행동하는 것이나 지은 것이 다른 것 같기도 하면서 처리하는 방법이 아주 똑 같은 것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표면은 다른데 내용이 똑 같다'라는 말로 칭찬하는 것보다 경멸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이것은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에 있는 말이다.
한유는 복고문(復古文)을 부르짖는 중당(中唐)의 대문호로,
그의 글은 <고문진보(古文眞寶)>와 <당송팔가문(唐宋八家文)>등에 수록 되어있다.
同 病 相 憐 동 병 상 련 |
▷같은 병을 앓고있는 사람들은 서로 연민의 정을 갖는다.
오나라의 태자 광은
자객 전저를 보내어 종제인 오왕 요를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이를 합려라고 한다.
자객 전저를 합려에게 천거한 것은
초나라에서 망명해 온 오자서(伍子胥)였고 그 공로에 의하여 대부로 임명되었다.
오자서는 대부로서 벼슬을 하게 된 해에 초나라로 부터 또 한 사람의 망명객인 백주려의 아들 백희가 찾아 왔다.
그는 오자서를 의지하여 오나라로 망명해 온 것이었다.
오자서는 그를 위하여 그 덕분으로
그는 대부에 임명되어 오자서와 함께 오나라의 정치를 해 나가게 되었다.
그 때에 오자서는 같은 대부인 피리(被離)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저 백희를 한번 만나 보고서 신용하지 않는 것입니까?" "
그것은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울 위에서 부르는 노래 하상가(河上歌)가 있지 않습니까?"
같은 병은 서로 불쌍히 여기고
같은 근심은 서로 구원한다.
놀라 나는 새는 서로 따라서 날고
여울 아래 물은 다시 함께 흐른다.
피리의 충고를 듣지 않았던 오자서는
뒤에 월나라에 매수 된 백성의 배신으로 자살을 하게 된 것이다.
得 魚 忘 筌 득 어 망 전 |
▷은혜(恩惠)를 보답(報答)하는 일을 잃어버린다는 뜻.
전(筌)이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을 말한다.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 먹는다는 말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그 목적을 위하여 사용한 사물을 잊어버린다는 비유로서,
은혜에 보답하는 일을 잊는 다는 뜻이다.
<장자>의 외물편(外物篇)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전(筌)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나 고기가 잡히면 전은 잊어버리게 된다.
제(蹄:덫)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나 토끼가 잡히면 잊어버린다.
말은 뜻을 나타내는 것, 뜻을 다 알게 되면 그 말을 잊어버린다고
장자는 세 가지 보기를 들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참된 뜻을 깨달은 사람과 만나 얘기해 보고 싶다."
登 高 自 卑 등 고 자 비 |
▷무슨 일이든지 순서(順序)가 있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가야 한다는 뜻으로서 무슨 일이든지 순서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군자의 도는 비유하건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함과 같으며,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함과 같다.
시경(詩經)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는 듯 형제들이 뜻이 맞아 즐겁고도 즐겁나니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고 말했다.
登 龍 門 등 룡 문 |
▷입신 출세(出世)의 관문(官門)이란 뜻.
난관을 돌파하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말로서 입신출세의 관문이란 뜻으로 쓰인다.
후한 말(後漢末)경 환제(桓帝)의 시대는 환관(桓官)들의 횡포가 극심한 시대로서
일부정의파 관료들의 사악한 횡포에 심하게 항쟁하였다.
그 정의파 관료들의 영수라고 할 수 있는 이응(李膺)은 기강이 퇴폐 된 거친 궁궐 안에 있으면서
혼자서 이름 있는 가르침을 지키어 쉬지 않고서 항상 고결하게 몸을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명성은 점점 올라가 '천하의 모범은 이응 자는 원례(元禮)'라고 칭송을 받았거니와
특히 청년 관료들은 그를 존경하여 그가 알아줌을 받은 것을 "登龍門"이라고 불러 큰 명예로 생각했다.
<등룡문>이란 '용문으로 간다'는 뜻이다.
용문이란 황하상류에 있는 골짜기의 이름으로
이 근처는 심한 급류여서 보통 물고기가 수천 마리나 떼지어 다니지만
여간해서 용문으로 올라가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만일 올라가기만 하면 물고기는 순식간에 변하여 용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등용문>이란 심한 난관을 극복하고 비약의 기회를 잡는 것을 말하고 있다.
馬 耳 東 風 마 이 동 풍 |
▷말의 귀를 스치는 동풍이란 말
말의 귀를 스치는 동풍이란 말로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충고 등을 전혀 상대치 않거나
이쪽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상대에게 아무런 반응도 주지 않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 우이독경(牛耳讀經)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이백(李白)의<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라는 장편의 시에 있는 말이다.
▶당시의 정치 현실에 대하여 심각한 비판을 제시하고 몹시 분개하고 있음과
동시에 자신의 처지와 태도를 설명하고 있는 시라고 생각한다.
푸른 산을 둘러싸고 뜬구름이 하염없이 이어지고,
그 하늘 가운데 외로운 달이 흐르고 있네.
외로운 달은 추위에 못 이겨 빛나고 은하수는 맑고,
북두칠성은 섞어져 깔려 있는데 밤의 많은 별들이 밝게 빛나네.
나는 술을 마시면서 어두운 밤 서리의 하얀 것을 생각하고
자네의 집 우물의 구슬난간에 얼음이 얼어붙은 모양을 생각하고
얼어붙은 자네의 마음을 생각 했다네.
인생은 아차하는 사이에 백 년도 채우지 못하는데
자, 술이나 마시면서 한없는 생각을 떨쳐 버리세.
자네는 요즘에, 대 유행인 닭싸움을 배워 비책(秘策)을 생각해서
임금의 마음에 들어, 어깨를 으시대며 거리를 활보하는 흉내도 내지 못 하네.
그렇다고 가서한(歌舒翰) 장군을 배워 청해지방(靑海地方)을 거닐고
밤에 칼을 차고 오랑캐의 보루 석보성(石堡城)을 무찔러
큰 국난을 진정하여 임금의 측근 요직을 가로채지도 못 하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로는 햇볕을 쪼이지 않는 북쪽 창문 속에서
시를 읊거나 부(賦)를 짓는 정도의 일이라네.
일 만 마디를 지어도 고작 술 한 잔의 가치도 없어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들으며 다 머리를 흔들걸세,
동풍(東風)이 말의 귀를 스치는 것과 같음이라네.
莫 逆 之 友 막 역 지 우 |
▷마음에 조금도 거슬림이 없는 친구라는 뜻.
마음에 조금도 거슬림이 없는 친구란 뜻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친한 허물이 없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똑 같은 뜻을 가진 이야기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사(子祀) 자여(子與) 자리(子犁) 자래(子來) 네 사람이 서로 말했다.
"누가 능히 무(無)로써 머리를 삼고, 생(生)으로써 등을 삼고, 죽음으로써 다리를 삼겠는가?
누가 죽고 살고 있고 없는 것이 하나(一體= 일체)라는 것을 알겠는가?
내가 그와 더불어 친구가 되리라." 이렇게 말하고는 네 사람이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마음에 거슬림이 없어 드디어 더불어 친구가 되었다.
또 하나는 자상호(子桑戶) 맹자반(孟子反) 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했다.
"누가 능히 서로 사귀지 않는 속에서 사귀고, 서로 하는 일없는 가운데 행함이 있겠는가?
누가 능히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 놀고 무한한 우주 속을 돌아다니며
삶을 잊고 무한함을 즐길 수 있겠는가?" 하고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마음에 거슬림이 없는지라 서로 친구가 되었다.
이 "막역어심(莫逆於心)에서 막역지우(莫逆之友)니
막역(莫逆)이니 하는 말이 생겨서 진정한 친우(親友)를 가리키게 되었다.
馬 革 과 尸 마 혁 과 시 |
▷말가죽으로 시체를 싼다는 뜻.
말가죽으로 시체를 싼다는 뜻으로서
전쟁터에 나가 싸우다가 죽겠다는 용장의 각오를 가리키며 또, 전사함을 일컫기도 한다.
▶옛날에는 장수의 시체는 말가죽으로 쌌다고 한다.
마원은 후환의 광무제때의 복파장군으로
지금의 월남인 교지를 평정하고 돌아온 용맹과 인격이 뛰어난 맹장이었다.
이때 마원을 환영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성밖까지 나와 맞았는데
그 속에 지모가 뛰어나기로 유명했던 맹익도 끼어있었다.
맹익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형식적인 축하 인사만을 건넸다.
그러자 마원은 맹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 가슴에 사무치는 충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겨우 남과 같은 형식적인 인사만을 한단 말인가?
옛날 복파장군 로박덕(路博德)은 남월(南越)을 평정하여 일곱 군(郡)을 새로 만드는 큰공을 세우고도
겨우 수 백호에 불과 한 작은 영토를 받은 데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별로 공을 세우지도 못 했는데 큰 고을을 봉읍으로 받게 되었다.
공에 비해 온상이 너무 크니 도저히
"이대로 오래 영광을 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대에게 무슨 좋은 생각이 없는가?"
맹익이 좋은 꾀가 얼른 생각나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마원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지금 흉노와 오환이 북쪽 변경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이들을 정벌할 것을 청하리라. 사나이는 마땅히 변경 싸움터에서 죽어야만 한다.
말가죽으로 싸여 돌아와 장사를 치르게 될 뿐이다.
어찌 침상에 누워 여자의 시중을 받으며 죽을 수 있겠는가?"
마원이 남방에서 개선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때마침 흉노와 오환이 부풍군(扶風郡)으로 쳐들어 왔다.
마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나가 싸울 것을 청하고 그는 9 월에 일단 낙양으로 돌아 왔다가
12 월에 다시 싸움터로 나가게 되었는데 이때 광무제는
백관들에게 조서를 내려 마원을 다 같이 환송하였다고 한다.
挽 歌 만 가 |
▷수레를 끌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
수레를 끌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으로
상여를 메고 갈 때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부르는 노래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나라의 유방이 초나라의 항우를 해하(垓下)에서 격파하고 즉위에 올라 한 고조(漢高祖)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고조는 전횡(田橫)이 후일에 반란을 일으킬까 겁내어 낙양 못 미쳐 30리까지 왔을 때 체포하였는데
그는(전횡) 포로가 되어 한왕(漢王)을 섬기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자결하였다.
그래서 그 목을 고조에게 바쳤는데
그 두 사람의 사신도 뒤 이어 전횡의 무덤으로 찾아가 스스로 목을 잘라 순사했다.
섬에 남아 있던 5백여 명도 전횡의 높은 절개를 사모해서 다 순사 했다.
이렇게 되자 전횡의 문인이 해로, 호리라 하는 두 장의 상가(喪歌)를 지었다.
☞ 그 중에 하나인 해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해상의 해는 부추에 내린 이슬처럼 어찌 그리도 쉽게 마르는가?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에는 다시 내리건만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소냐
한나라의 무제는, 악부라는 국립 음악원을 만들어 음악 가요의 작성에 힘쓰고
악인(樂人)인 이연년(李延年)을 총재에 임명했다.
이연년은 전기 2장을 나누어 두 곡으로 만들고 전자는 공경귀인(公卿貴人)을,
후자는 사부서인(士夫庶人)을 송장(送葬)하면서 관을 끄는 자에게 부르게 했다.
사람들은 말을 만(輓=挽)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萬 事 休 矣 만 사 휴 의 |
▷뜻하지 않은 실패(失敗)를 맛보아 절망과 체념의 상태(狀態)를 말함.
어떤 일에 직면해서 그것에 대해 어떠한 방법도 강구할 수 없는 상태나
뜻하지 않은 실패를 맛보아 되돌릴 수 없게 된 경우로 절망과 체념의 상태를 말한다.
당나라 말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 천하는 어지러울 대로 어지러워 전란 30년으로 당의 명맥이 끊어지고
송나라가 새로 일어나기까지 50년 동안 왕조가 다섯 차례나 바뀌었다.
후주도 망하여 송이 되고, 보훈도 송에 신종하게 되었다.
보훈은 유아일 때 종회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면 웃음으로 얼버무려서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추곤 했다.
그래서 형남 사람들은 <만사휴의(萬事休矣)> 모든 것은 끝장이다! 하고 생각했었다.
과연, 그는 정권을 이어 받자 굉장한 누각을 세워 백성들로부터 원한을 샀고
한편 음일(淫佚)은 쉴 줄 몰라 매일 관부로 창기를 불러모아 그들에게 체격이 튼튼한 남자들을 짝 지워
맘껏 희롱시키고는 첩들과 함께 발 뒤에서 엿보며 즐겼으므로
정치는 어지러워져 그가 죽자 반정은 송에게 반환하고 형남은 망해버렸다고 한다.
亡 國 之 音 망 국 지 음 |
▷쓸데없는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
망한 나라의 음악 또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탕한 음악이란 뜻으로서
쓸데없는 어떤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禮記)> 가운데 <악기(樂記)>가 있는데 음악의 의의를 설명한 일편(一篇)이 있다.
여기에서는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자연적인 발로이며 따라서 사람은 음악을 들음에 의하여
그 음악이 행하여지고 있는 나라의 정치 적인 정세와 인심의 소재까지도
살펴서 알 수 있다는 내용이 설명되어 있다.
정치가 혼란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게으름으로 흐르고 상하가 함께
기강과 풍기가 문란해져서 끝내 멸망하는 나라의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麥 秀 之 嘆 맥 수 지 탄 |
▷맥수(麥秀)란 보리가 무성하다는 말
맥수란 보리가 무성하다는 말로서
옛날에 영화를 자랑하던 도읍에 보리가 무성해 있는 것을 보고
고국의 멸망을 탄식한 데에서 비롯된 말이다.
은나라 주왕의 폭정에 대해 충간의 지심을 다한 자에 대해 공자가
'은에 삼인(三仁)이 있다'고 감탄했는데 미자 기자 비간의 세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미자는 주왕의 숙부가 되는데 누차에 걸친 간언에도
끝끝내 들어주지 않았으므로 절망 끝에 국외로 망명했으며,
기자 역시 간언의 효과가 없자 망명해서 거짓 미친 체 하면서 마침내는 노예로까지 전략했으며,
왕자 비간은 극간한 나머지 육시 처참을 당했다.
후에 주왕조의 세상이 되어 미자는 은(殷)의 혈통을 보존하는 뜻에서 송(宋)의 국왕으로 봉해 졌고,
기자도 주무왕의 자문에 응해서 정치의 요체를 말하고 후에 조선왕에 봉해졌다.
기자는 주왕의 도읍으로 기던 도중 은의 옛 성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전에는 번영을 다했던 자리이건만
이제는 폐허가 되어 황폐해진 궁전 터에 보리와 벼가 무성해 있는 것을 보고
금석지감에 젖어 맥수지시(麥秀之詩)를 지어 읊었다.
옛 궁궐터에 보리와 벼만이 무성하고
벼와 기장들도 잎이 기름지구나
저 교동이 나의 말을 듣지 않았음이 슬프구나
여기에서 망국지탄(亡國之嘆)을 맥수지탄이라 하게 되었다.
孟 母 三 遷 맹 모 삼 천 |
▷자식을 힘써 가르친다는 말에서 나온 말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 위해 세 번 이사를 하였다는 것으로
자식을 힘써 가르친다는 데에서 나온 말이다.
맹자가 처음 살던 집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어린 맹자는 늘 보아 온 상여 메고 가는 상여꾼들의 흉내를 내며
땅을 파고 관을 묻은 다음 둥그렇게 봉분을 짓는 장난을 하고 놀았다.
"여기는 자식을 기를 만한 곳이 못 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곧 집을 시장 근처로 옮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사꾼들의 장사하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여기도 역시 자식을 기를 곳이 못 된다."
맹자의 어머니는 여러 가지로 생각 끝에 학교 근처로 집을 옮겼다.
그러자 맹자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과 제사 상을 차리는 법,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 행동하는 모습들을 일일이 흉내내며 노는 것이었다.
☞ "여기가 참으로 자식을 두고 기를만한 곳이다." 하고
맹자의 어머니는 학교 근처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明 鏡 止 水 명 경 지 수 |
▷명경(明鏡)이란 한 점의 흐림도 없는 맑은 거울을 말함
명경(明鏡)이란 한 점의 흐림도 없는 맑은 거울을 말하며
지수(止水)란 고요히 머물러 있는 잔잔한 물을 말하는 것으로서
<명경지수>라는 말은<고요하게 맑은 사념이 없는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덕충부편(德充符篇)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형벌로 다리를 잘린 왕태(王泰)라는 사람의 일로서
공자와 그의 제자인 상계(常季)와의 문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왕태의 문하에서 배우는 사람의 수가 공자의 문하에서 배우는 사람과 필적할 만큼 많았기 때문에
상계는 그것을 내심으로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공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왕태는 자기 몸을 닦고 자신의 지혜로써 자신의 마음을 얻었으며
자신의 마음으로서 자신의 마음의 본체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수양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에게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까?"
고자가 대답하여 말했다.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로 삼아 자기의 모습을 비춰 보는 것이다.
오직 왕태의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 오늘날에는 허무(虛無)의 의미가 없어지고
오직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 을 비유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明 眸 皓 齒 명 모 호 치 |
▷맑은 눈동자와 흰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곧 미인을 형용하는 말
맑은 눈동자와 흰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곧 미인을 형용하는 말이다.
이 말은 <두보(杜甫)>의 시(詩) 애강두(哀江頭)에 나온다.
안록산(安祿山)이 난을 일으켜 낙양(洛陽)이 함락되었을 때 <두보>는 처음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낙양으로 장안과 그 근처도 위험했기 때문에
<두보>는 가족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키기 위하여 조금 북쪽에 있는 부주로 갔다.
현종(玄宗)은 양귀비(楊貴妃)를 데리고 촉(蜀)으로 피하고,
태자는 북쪽에 있는 영무(靈武)에서 천자(天子)에 즉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두보>는 소재지를 떠나 영무로 출발하였지만
곧 도적들에게 체포되어 장안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두보>의 나이 45세 때 였으며 다음해 봄에 이 시를 지었다.
제목에 있는 강두(江頭)는 장안의 동남쪽에 있는 곡강지(曲江池)로
당시 왕후(王候)나 귀족들의 유람의 명승지였으며
현종도 양귀비와 함께 여기에 와서 놀았다.
도적들의 수중에 있는 장안에서 봄을 맞이한 <두보>는
남몰래 강두를 찾아가 옛날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목소리를 삼키고 이 시를 지었다.
맑은 눈동자 흰 이는 지금 어디 있는고?
피로 더러워진 떠도는 혼은 돌아가지를 못하고
맑은 위수는 동쪽으로 흐르고 검각은 깊은데
촉나라로 끌려가 사니 피차간 소식이 없네.
인생은 정이 있어 눈물이 가슴을 적시니
강물에는 강 꽃이 피니 어찌 다함이 있으랴.
황혼에 오랑캐 가마들은 티끌로 섬을 채우는데
성 남쪽으로 가고자하여 성 북쪽을 바라보네.
명모호치란 <양귀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明 哲 保 身 명 철 보 신 |
▷자신을 온전히 보전(保全)한다는 뜻
명(明)이란 이치에 밝은 것이요, 철(哲)이란 사리에 분명함을 뜻한다.
보신(保身)이란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며,
자신을 온전히 보전한다는 뜻으로서,
즉 성급하게 세파에 휘말려 들지 않으며
모든 일에 법도를 지켜 온전하게 처신한다는 태도를 가리킨다.
명철이란 말은 <서경(書經>, 설명편(說命扁) 상에 은나라 무정(武丁)의 성덕을 찬양하여 여러 신하들이 간하여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무리 등에 앞서 아는 사람은 명철하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보신(保身)이란 사리에 따라 나옴과 물러남을 어긋나지 않게 하는 일이다.
또 같은 당대에 시인 백낙천(白樂天)의 <두우치사지제(杜佑致仕之制)라는 문장 속에도
'힘을 다해 임금을 섬기고, 명철보신하여 진퇴시종(進退始終)에 그 길을 잃지 않으니
현달(賢達)의 인사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능히 이것을 겸하겠는가?'하고 두우(杜佑)를 칭찬하고 있다.
矛 盾 모 순 |
▷앞뒤가 서로 어긋나 서로 맞지 않는다는 뜻
창과 방패란 말로서 앞뒤가 서로 어긋나 맞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한비자(韓非子)> 잡편(雜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초나라 사람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한데 그가 방패를 설명 할 때는
"나의 방패는 아주 튼튼하여 어떤 창으로도 뚫지를 못합니다." 라고 설명하고
또 창을 설명 할 때는 "나의 창은 어떤 방패라도 막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너의 창으로 너의 방패를 찌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묻자,
그 사나이는 대답이 궁해 졌다.
때를 같이 할 때
양립 할 수 없는 것을 모순(矛盾)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木 鐸 목 탁 |
▷나무로 만든 방울
목탁이란 나무로 만든 방울로서 쇠로 만든 방울보다 소리가 부드럽고 문사(文事)에 관한 명령이나,
법령(法令)에 관한 명령을 내릴 때는 목탁을 울렸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난 나라인 노나라를 떠나 몇 사람의 제자들과 함께 여러 나라 편력한 때 55,6세 때의 일이다.
위나라의 국경에 가까운 의(儀)라는 마을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의 관문을 지키는 관리가 공자에게 면회를 청하였다.
이리하여 제자들은 상의한 끝에 그를 공자에게 데리고 간 것이다.
회견을 끝내고 나오자,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당신들의 스승께서 벼슬을 내놓고 은퇴하신 것을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천하에는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하늘은 장차 틀림없이 당신들의 스승, 사회의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巫 山 之 夢 무 산 지 몽 |
▷남녀(男女)가 정교하는 것을 무산지몽이라고 한다.
송옥(宋玉)은 초나라의 대부(大夫)로 굴원(屈原)의 제자이다.
<문선(文選)>에 실려 있는 송옥의 <고당부병서(高唐賦竝序)>의 서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초양왕(楚襄王)이 송옥을 데리고 운몽의 누각에서 지낸 일이 있었다.
그때 고당지관(高唐之館)을 바라보니 그 위에 구름이 걸려 있었는데
그 구름은 높이 하늘로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곧 그 형태를 바꾸어 순식간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했다.
양왕이 송옥에게 그 구름을 보고 물었다.
"저것이 무슨 구름인가?"
"저것은 조운(朝雲 : 남녀의 정교를 뜻함)이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양대(陽臺)는
무산 남쪽에 있으므로 해가 잘 비치는 대(臺)라는 뜻도 있겠지만,
동시에 정교(情交)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서 남녀가 남 몰래 정교하는 것을 양대(陽臺)라고 하며,
한 번 정교를 맺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을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이라고 한다.
▶그래서 남녀가 정교(情交)하는 것을 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고 한다.
無 爲 自 化 무 위 자 화 |
▷그대로 두어도 저절로 된다는 뜻
그대로 두어도 저절로 된다는 뜻으로써,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애써 바로잡지 않아도 저절로 잘 고쳐지는가 하면,
또 스스로 감화된다는 말이다.
<노자(老子)> 제57장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천하에 꺼리는 일이 많으면 백성들은 점점 가난해 지고,
백성들에게 이로운 그릇이 많으면 나라는 점점 혼란해 지고,
사람들에게 잔재주가 많으면 기이한 물건이 점점 많아지고,
법령이 점점 엄하여지면 도둑들이 많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르기를 내가 함이 없으면 백성들 스스로 교화되고,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부자가 되고, 내가 욕심이 없으면 백성들 스스로 소박해 진다."
<위정자가 덕을 지니고 있다면 행함이 없을 지라도 백성들은 그 덕에 교화가 된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門外可說雀羅 문 외 가 설 작 라 |
▷손님의 발길이 끊어 짐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말한 것으로
문전성시(門前成市)와는 반대로 쓰는 말이다.
급암과 정당시는 함께 한나라 무제에게 벼슬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각각 개성이 강하고 탁월한 인물이었지만
다 같이 현직에 임명되었다가 좌천을 당하는 등 험난한 생애를 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현직에 있을 때에는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었으나,
좌천이 되면서 손님의 방문이 끊어 졌다.
그들을 칭찬하는 글에서 저자인, 사마천은 이렇게 썼다.
"급암과 정당시의 현명함으로 세력이 있으면 손님은 10배로 늘어나고 세력이 없어지면 그렇지 않았다.
하물며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 더욱 더 그러하다."
또한 다음과 같은 적공(翟公 : 한 무제 때 사람)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다.
처음에 적공이 정의가 되자 손님들이 문에 가득 찼다.
면직을 당하자 문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사람들의 출입이 없어졌다.
적공이 다시 손님들이 오려고 했다.
☞ 적공이 이에 그 문에 큰 글씨로 써서 말하기를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번 부유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고,
한 번 귀하게 되고 한 번 천하게 됨에 사귐의 정을 곧 볼 수 있느니라."
門外可說雀羅란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聞 一 知 十 문 일 지 십 |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서 한 부분을 통해 전체를 미루어 안다는 말이니 총명함을 일컫는다.
여기서 하나란 시작의 수이며 열 이란 끝을 나타내므로 시작을 알면 끝도 알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너는 안희와 견주어 볼 때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느냐?"
공자의 제자는 3천명이나 되었으며 후세에 이름을 남긴 제자는 72명이나 되었고,
그 재주로는 자공을 첫손꼽고 있었다.
실상은 안희가 자공보다 월등 나은 편이었지만,
그는 통 아는 기색을 내 보이지 않은 바보 같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공자는
스스로 재주를 자부하고 있는 자공이 안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궁금하여 물었던 것이다.
자공은 서슴치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사(賜 : 자공의 이름)사 어찌 감히 희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희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사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뿐입니다."
공자는 자공의 대답에 만족해했다.
역시 자공은 자기 자신을 알고 있었다.
"네가 안희만은 못하다. 나도 네 말을 시인한다." 하고 공자는 말해 주었다고 한다.
門 前 成 市 문 전 성 시 |
▷출입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비유로 하는 말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
세도가의 집 앞에 찾아드는 방문객들로 저자처럼 붐빈 다는 뜻으로 세상 인심의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정약시(門庭若市)라고도 한다.
한나라 애제는 20세로 즉위했지만 정치의 실권은
외척의 수중에 있어서 황제의 빈자리만 헛되이 지키다가 몇 해 후인 원수(元壽) 2년에 급사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애제에게도 기골 찬 어진 신하들이 있었는데 정숭(鄭崇)은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정숭은 명문 출신으로 그 집안은 대대로 왕가의 인척 관계에 있었다.
애제는 점점 자포자기하여 오로지 미 청년인 동현에게 사랑에 빠져 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정도가 지나쳤기 때문에 정숭은 보다 못하여 애제에게 간청하였으나
그 때문에 애제의 흥취를 깨뜨려 도리어 꾸중을 듣는 형편이었다.
이와 반대로 상서령인 조창은 애제에게 아첨하여 상소를 올렸다
"정숭은 왕실의 여러분과 통하고 있으며 어떤 좋지 못한 일을 꾸미고 있는 협의가 농후합니다.
조사해 보십시오." 그래서 애제는 정숭을 문책했다.
"그대의 집에는 언제나 많은 손님들이 모여 상의를 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짐(朕)에게 구실을 붙이려고 하는 것인가?"
그러자 정숭은 대답했다.
"저의 집에는 시장과 같이 많은 손님들이 모여들지만 저의 마음은 물과 같이 언제나 맑습니다.
정숭은 옥중에서 죽었다.
門前成市는 신문여시(臣門如市)에서 나온 말로서
출입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비유로 사용하는 말이다.
未 亡 人 미 망 인 |
▷남편과 함께 죽지 못하고 있는 여자라는 뜻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살아 있는 여자란 뜻으로
홀로 된 여자가 스스로 낮추어서 하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다.
초나라의 영윤(令尹=재상)인 자원(子元)이 문부인(초나라 문왕의 부인)을 유혹하려고 하여
저택을 부인의 궁궐 곁에 짓고 그곳에서 만의 춤(은나라 탕왕이 시작했다는 춤)을 추게 했다.
문 부인은 그 음악 소리를 듣고 울면서 말했다.
"돌아가신 왕께서는 이 무악을 군대를 훈련시키는데 사용 하셨는데 지금 영윤은
이것을 원수를 치는데 사용하지 않고서 이 미망인의 곁에서 하고 있으니 또한 이상하지 아니한가?"
尾 生 之 信 미 생 지 신 |
▷신의가 두터운 것을 비유로 하는 말
<미생지신>이란 말은 신의가 두터운 것을 비유로 쓰기도 하고
또 우직하여 임기웅변의 변통이 없어서 하나만 안다는 말로 쓰인다.
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아주 정직한 사람이 있었다.
남과 약속을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키는 그런 인물이었다.
그 사나이가 어느 날 개울 다리 밑에서 연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라는 동안에 밀물로 개울물이 불어서, 그 사람의 몸은 점점 물에 잠기게 되었다.
발에서 무릎까지 무릎에서 가슴까지 물은 불어나는데도 그는 단념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물이 머리 위까지 올라 와 교각에 매달렸으나
피신하지 않고, 끝내 그곳에서 익사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이 말은 전국 시대에 소진(蘇秦)이 연나라 왕에게 말한 가운데서 사용한 일화이다.
같은 전국 시대의 철학자인 장자(莊子)는 그의 특색 있는 우화(寓話)에서
공자와 이름 높은 도적 도척의 대화 중에서 도척을 통해 미생의 이야기를 비평하고 있다.
"이런 인간들은 책형을 당한 개나, 물에 떠내려가는 돼지나 또는 깨어진 바가지를 한 손에 든, 비렁뱅이와 같이
쓸데없는 명목에 구애되어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 들로서 진정한 삶의 길은 모르는 패거리이다."
槃 根 錯 節 반 근 착 절 |
▷구부러진 뿌리가 많이 내려서 마디가 뒤틀려 있다는 뜻.
구부러진 뿌리가 많이 내려서 마디가 뒤틀려 있다는 뜻으로써 세력이 뿌리 깊이 박혀
당파가 잘 단결되어 있으므로 이를 제거하기가 어려울 때 쓰이는 것으로 곤란을 상징하는 말이다.
우후는 후한 안제 때의 사람이다.
영초 4년에 강족과 흉노족의 군대가 병주와 량주를 침략했다.
이때에 대장군인 등질은 공경대신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국가의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이유로
량주를 포기하고 병주를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책략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우후는 반대하고 나섰다.
이수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등질의 주장을 뒤엎었다.
등질은 이 일로 인하여 우후를 미워했다.
그 해에 조가현에 수천 명의 폭도가 일어나 맹위를 떨쳤는데 등질은 우후를 조가현의 장관으로 임명했다.
물론 량주의 사건을 보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친구들은 그의 불운을 위로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우후는 웃으면서 말했다.
"뜻은 편안함을 구하지 않고, 일은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 것이 신하된 사람의 직분이다.
구부러진 뿌리와 뒤틀린 마디를 만나지 않는다면 어찌 날카로운 칼날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조가현에 부임한 우후는 지혜와 용기를 짜내어 폭도들을 평정했다.
伴 食 宰 相 반 식 재 상 |
▷무능한 벼슬아치를 비꼬는 말
재능이 없으면서 유능한 사람 곁에 붙어서 정사를 처리하는 재상을 말하는 것으로써
무능한 벼슬아치를 비꼬는 말이다.
당나라 현종 때 자미령의 요숭과 함께 재상 직에 있었을 때 요숭이 10여일 동안 휴가를 취한 일이 있었다.
그 동안 노회신 혼자서 정사를 보았는데 도저히 처리할 수 없는 현안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런데 요숭이 나오자 그 일들을 결재하고 심복의 시종인 제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떤가? 나는 재상으로 합격인가?"
"정말로 세상을 구원하는 재상이라 하겠습니다."
이 이후로는 노회신은 자기의 재능이 요숭에게 미치지 못 한다는 것을 깨닫고
어떤 일이나 요숭을 앞세우고 자기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하여 당시 사람들은 노회신을 <반식재상>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拔 本 塞 源 발 본 색 원 |
▷뿌리를 뽑아 근원을 막는다는 뜻
뿌리를 뽑아 근원을 막는다는 뜻으로서 사물을 근원적인 차원에서 어떤 폐단을 해결한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편 중의 주왕(周王)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신 것은 마치 의복에 갓과 면류관이 있는 것과 같고,
▷나무와 물에 근원이 있는 것은 백성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있는 것과 같다.
큰아버지께서 만일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고 뿌리를 뽑고 근원을 막으며
오로지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라 할지라도 어찌 나 한 사람을 우습게 볼 것인가.
跋 扈 발 호 |
▷내 마음대로 행동(行動)하는 것을 말한다.
발호(跋扈)의 발(跋)은 뛰어 넘는다는 뜻이고 호(扈)는 대 나무로 엮은 통발을 말한다.
작은 물고기들은 통발에 남지만 큰 물고기들은
그것을 뛰어 넘어 도망쳐 버린다는 것으로서 내 마음대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또 신하가 권세를 마음대로 휘둘러 윗사람을 침범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수나라 양계가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을 만나자 당황하여
'이 바람은 발호장군과 같구나' 하고 말한데서,
<장군>의 두 글자를 붙여서<폭풍>을 뜻하기도 한다.
傍 若 無 人 방 약 무 인 |
▷옆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뜻.
옆에 사람이 없다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서 언행이나 행동을 버릇없이 한다는 말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에서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등장하는 전국시대 말기의 형가는
위나라 사람으로 칼을 좋아하고 글을 좋아했으며 또한 술을 좋아했다.
연나라로 간 그는 개 잡는 사람들과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또 축(筑 : 거문고와 비슷한 대나무로 만든 악기)의 명수인 고점리와
사귀었는데 술에 취하면 고점리는 축을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로 화답하여 즐겼다.
이윽고 그들은 부둥켜안고 울기까지 했는데 마치 가까이 사람이 없는 것처럼 하였다 하여
여기에서 "傍若無人"이란 말리 나온 것이다.
杯 盤 狼 藉 배 반 랑 자 |
▷낭자(狼藉)는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모양
배반(杯盤)은 술잔과 그릇이고 낭자(狼藉)는 어지러이 흩어진 모양이다.
술잔과 접시가 질서 없이 흩어져 있으니 주석이 난잡해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나라 위왕 때에 초나라가 대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 해 왔다.
위왕은 순수곤을 사자로 조나라에 보내어 정병(精兵) 10만, 전차 천대를 지원 받았는데 성공하자
초나라 군대는 어두운 밤을 틈타 철수해 버렸다.
위왕은 크게 기뻐하여 후궁에서 주연을 베풀고 순수곤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느 정도 마시면 취하는가?"
"한 말에도 취하고 한 섬에도 취합니다."
"그것은 어떤 뜻인가?"
"대왕님 앞에서 술을 마시는데 정승관들이 옆에 있고 장수들이 뒤에 버티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두려워하며 엎드려 마시면 한 말도 마시기 전에 취해 버립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술도 거의 떨어지게 되면
술통을 모으고 자리를 함께 해서 신발을 뒤섞이고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러이 흩어 져 배반낭자(杯盤狼藉)가 되지요
집안의 촛불을 끄고 주인이 저만을 머물게 하고
손님을 보내면 비단적삼 옷깃이 풀어지고 은근한 체취가 풍겨오니
저는 마음이 가장 기뻐져서 능히 한 섬을 마십니다.
그러므로, 술이 지극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지극하면 슬퍼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가 쇠해 집니다."
위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부터 밤새워 연회 여는 것을 중지하고
제후의 주객으로 항상 순수곤을 곁에 있게 했다고 한다.
背 水 之 陣 배 수 지 진 |
▷먼저 공격(攻擊)하려면 좁은 길을 빠져나가야 함
한왕 유방은 한신에게 명하여 조나라 징벌에 나서게 했다.
▷먼저 조나라를 공격하려면 정경의 좁은 길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조나라에서는 20만의 병력을 정경의 좁은 길목에 집결 시켰다.
한신은 1만의 군대로 하여금 먼저 가게하고 정경의 입구에서 나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했다.
조나라 군대는 이것을 바라보고 방법을 모르는 자라고 크게 비웃었다.
날이 밝자 한신은 대장기를 앞세우고 정경의 길목에서 나왔다.
조나라 군대는 성밖으로 나와 공격하여 잠시 격전이 벌어 졌는데
한신의 군대는 패배를 가장하여 기를 버리고 후퇴하여 강가에 있는 군대와 합류했다.
조나라 군대는 성을 비운 채 한신의 군대를 추격했다.
이때 한신이 산간 속에 매복시켜 놓았던 2천의 기병으로 조나라의 성을 치게 하여 한나라의 기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한신의 "背水之陣"의 전법인 것이다.
百 年 河 淸 백 년 하 청 |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이 없다는 뜻
중국의 황하는 물이 항상 누렇게 흐려있기 때문에 백 년에 한 번 물이 맑아질까 말까 한다는 것으로
아무리 기다려도 소용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정나라의 영왕 때에 자국과 자이가 채나라를 정벌하고 사마의 공자섭을 사로잡았다.
채나라는 초나라의 속국이었기 때문에 그 해 겨울에 초나라의 자낭이 군대를 보내어 정나라를 공격했다.
정나라에서는 여섯 사람의 경대부들이 회의를 열고 대책을 협의했다.
세 사람은 동맹국인 진나라의 구원을 청하고자 주장했다. 그러자 자사가 말했다.
"주나라 때에 황야의 흐린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다면 사람의 수명이 다하지 못한다.
점을 쳐서 들어보는 것이 많으면 어수선하여 그물에 걸려 초나라 군사를 맞아 그들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후에 진나라 군사가 오면 다시 진나라를 따르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맞이할 선물이나 준비해 두고 기다리는 것이 마땅할 듯 하다."
이 말은 어느 세월에 진나라의 구원병이 오길 기다리겠냐는 뜻으로
황하가 맑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나라는 초나라와 화평을 맺고 위기를 면했다고 한다.
白 面 書 生 백 면 서 생 |
▷얼굴이 창백한 서생(書生)을 가리키는 말
<백면서생>이란 얼굴이 창백한 젊은이로서 경험이 없는 서생(書生)을 가리키는 말이다.
송나라의 문제(文帝)는 북위를 토벌할 절호의 기회를 잡고 귀족들의 찬동을 얻어 군대를 일으키려 했다.
이 때 책을 손에 들어 본 일도 없으며,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태자에게 딸린 교위(校尉) 심경지가
그 자리에 모인 귀족들을 꾸짖으며 문제에게 바른 말을 했다.
"밭일은 종들에게 물어 보고, 베 짜는 일은 하녀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적국을 치려 하고 계시는데 <백면서생> 들에게 일을 도모하게 한다면 어찌 성공하겠나이까?"
무인의 피를 이어받은 문제는 <백면서생>이 되어버린 귀족들과 긍지에 가득 찬 무인의 사기가 재미있어
크게 웃고는 결국 군대를 일으켰다고 한다.
白 眉 백 미 |
▷흰 눈썹을 지닌 뛰어난 자를 이르는 말.
흰 눈썹을 지닌 사람으로 여러 사람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를 이르는 말이나
때로는 예술 작품 중에서 뛰어난 것을 가리키는 때에 쓰기도 한다.
촉한의 유비 밑에서 벼슬을 한 마량(馬良)은 문무를 겸비한 뛰어난 인물이었다.
마량은 양양군의 의성 사람으로 다섯 형제들이 모두 재능이 뛰어 났지만
그 중에서도 마량이 가장 뛰어 났기 때문에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마씨의 형제들은 모두가 수재이지만 그 중에서도 백미(白眉)가 더 뛰어났다."
마량은 어릴 때부터 눈썹 속에 흰털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백미>가 형제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란 뜻이 바뀌어
여러 사람들 중에서 홀로 우뚝 뛰어난 사람을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白髮三千丈 백 발 삼 천 장 |
▷근심 때문에 흰머리가 길어졌다고 탄식(歎息)하는 말
쌓이는 근심 때문에 흰머리가 이렇게 길어 졌다고 탄식하는 말로서
이백(李白)의 <추포가(秋浦歌)> 17수중의 15수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절구(絶句) 되어 있다.
흰 머리칼이 3천 길이나 되어 근심으로 인하여 이같이 길어졌네.
밝은 거울 속은 알 수 없어라, 어디에서 가을 서리를 얻었는가?
삼천 장이란 흰 머리칼의 자람을 형용한 것이 아니라 근심이 많은 것을 뜻한 것이고
머리털은 근심의 영양분으로 빨아먹고 자라는 것이다.
3천 길이나 자랐다고 하는 것은 그 영양분인 근심의 깊이가 무한하다는 말이다.
추포는 안휘성(安徽省) 귀지현(貴池縣) 서남쪽에 있는
길이가 백리고 폭이 40리나 되는 대단히 큰 호수이다.
伯 牙 絶 絃 백 아 절 현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으로써
서로 마음속 깊은 곳까지 샅샅이 이해하고 있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국 시대에 거문고의 명수로 이름이 높은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鐘子期)는 그 소리를 듣기를 좋아했다.
백아가 거문고를 탈 때 높은 산을 그려내려고 마음먹으면 종자기는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훌륭하군, 산이 높이 솟은 것이 마치 태산(泰山)과 같군."
다시 강물이 흐르는 소리를 그려내려고 하면 종자기는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훌륭하군. 마치 큰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것 같군."
두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다.
그 후 불행하게도 종자기는 병을 얻어 죽었다.
그러자 일세의 명인인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어 평생동안 다시는 거문고를 타려하지 않았다.
백아가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친구를 잃은 슬픔에서 였다.
친구가 죽었을 때 이 표현을 쓰며 지기(知己) 또는 지음(知音)이라고도 한다.
白 眼 視 백 안 시 |
▷백안(白眼)이란 흰 부분을 말함
백안이란 눈의 흰 부분을 말하는 것으로 사람을 싫어해서 흘겨보는 것으로
또는 냉정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을 "백안시"라고 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이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여러 가지 책들을 널리 읽고 술을 좋아했으며 거문고도 능숙하게 탔다.
어느 날 그가 바둑을 두고 있을 때에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승부를 냈다.
그런 후, 그는
두 말이나 되는 술을 마시고 피를 토하였다.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때 조문객들이 와도
머리를 풀어헤치고 조문객에 대한 예절인 곡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원래 기쁨과 성냄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지만 까만 눈동자와 흰자위로 외면하였다.
통속적인 예절을 지키는 선비를 만나면 흰 눈으로 흘겨보는 것이다.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의 동생인 혜희가 오자 흰 눈으로 흘겨보았다.
혜희는 속물 취급을 당하고 돌아왔다.
이 소식을 혜강이 듣고 술과 거문고를 들고 찾아가자
완적은 크게 기뻐하며 검은 눈동자를 바로 하고 환영했다고 한다.
伯 夷 叔 齊 백 이 숙 제 |
▷굳은 의지와 일편단심을 말한다.
형 백이(伯夷)와 아우 숙제(叔齊)는 은나라 고죽군의 아들이다.
무왕이 은나라를 치자 이를 간(諫)하였으며 무왕이 천하를 손안에 넣었을 때
백이와 숙제 형제는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부끄러이 여기고
수양산으로 들어가서 살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고 한다.
즉 굳은 의지와 "일편단심"을 말한다.
柏 舟 之 操 백 주 지 조 |
▷남편을 잃은 여자가 정절을 지켜 재혼하지 않는 것
백주(柏舟)란 잣나무로 만든 배라는 뜻으로
과부의 굳은 정조나 남편을 잃은 여자가 정절을 지켜 재혼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 시경(詩經)에 백주라는 시가 있다.
두둥실 뜬 잣나무 배가 큰 강 가운데 있다네.
늘어진 갈래머리 참된 나의 배필이었으니
허튼 마음은 죽어도 갖지 않으리라.
어머님의 은혜는 하늘과도 같은데
어찌하여 내 마음을 몰라주나요?
백주는 공강(共姜)이 스스로 맹세하며 읊은 시이다.
위나라의 희후(僖侯)의 적자인 공백(共伯)은 젊어서 죽었는데
그의 아내인 공강은 아내로서의 절개를 지키고 있었다.
공강의 부모는 딸을 집으로 데려다가 다른 곳으로 재가(再嫁) 시키려 했지만
공강은 끝까지 승낙을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남편이 일찍 죽은 아내가 절개를 지키는 것을
"백주지조"라고 말하게 되었다.
伯 仲 之 間 백 중 지 간 |
▷그들은 백중지간이다.
백중(伯仲)이란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형제는 비슷하게 닮았기 때문에
비교 평가하여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때 <그들은 "백중지간"이다>라고 한다.
부모님과 같은 형제인 형과 누님을 백부와 백모라 하고,
동생과 누이동생을 숙부와 숙모라고 부르는 것은 옛날부터 중국의 습관에 따른 것이다.
중국에서는 형제의 순서를 다시 세분화하여 백(伯), 중(仲), 숙(叔), 계(季)로 부르고 있다.
☞ 어린이가 태어나면 3 개월만에 이름을 짓고,
20 세가 되면 손님들을 초대하여 관을 씌우고 자(字)를 짓는다.
50 세가 되면 자위에 백(伯), 중(仲)등 형제의 순서를 나타내고 죽으면 시호를 내린다.
이것이 주(周)나라의 습관이었던 것이다.
"백중지간" 이란 말을 처음에 쓰는 것은 위나라의 문제(文帝) 조비(曹丕)였다.
문인들이 서로 가볍게 여기는 것은 옛날부터 그러했다.
부의(傅儀)와 반고(班固)가 "伯仲之間"인 것이다.
報 怨 以 德 보 원 이 덕 |
▷원한이 있는 자에게 은덕으로 갚는다.
보원이덕(報怨以德)이란 말은 <원한이 있는 자에게 은덕으로써 갚는다.>라는 뜻이다.
<노자(老子)>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도(道)라고 일컬어지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며,
이름으로 불려지는 이름은 변함없는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음은 하늘과 땅의 시작이며, 이름이 있음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하지 않음을 행하고 일없음을 일하고 맛이 없음을 맛본다.
작은 것을 크게 알고, 작은 것을 많게 알며 원수 갚기를 덕으로써 하라.
천하의 어려운 일은 그 쉬울 때 도모하고
큰 일은 반드시 쉬움에 이루어지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작음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성인은 마침내 큰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능히 큰 것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駙 馬 부 마 |
▷임금의 사위를 가리키는 말
원래는 예비의 말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안무제 때
공주의 남편을 부마도위(駙馬都尉)란 관직에 임명한 데서 임금의 사위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게 되었다.
신도도(辛道度)가 진나라로 유학가는 길에 옹주(雍州)까지 왔을 때의 일이다.
가는 도중 큰 저택의 문전에 한 소녀가 서 있다가 안으로 사라지더니 이윽고 다시 나와 신도도를 맞이해 들였다.
집안에는 여주인이 있었는데 인사를 마치자 그녀가 말했다.
"나는 진나라 민왕의 딸로, 조나라로 시집을 가게 되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전에 죽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서,
23년 동안이나 여기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를 지나신 것은
어떤 인연이오니 앞으로 사흘 밤만 부부가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여인은 슬픈 듯이 말했다.
"당신과 좀 더 지내고 싶지만 나는 죽은 사람입니다.
나흘 밤 이상 계속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제 헤어져야겠습니다.
이별하기는 서운하지만 어떤 추억이 될 물건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인은 황금으로 만든 베개를 꺼내어 신도도에게 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소녀에게 대문까지 전송하게 되었다.
신도도가 대문을 나와 몇 걸음을 걷다가 돌아보니
저택은 흔적도 없고 하나의 산소가 있을 뿐이었다.
그 뒤에 진나라 도읍인 옹(雍)의 거리에서 황금의 베개를 돈으로 바꾸려고 할 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다가 진나라의 왕비가
그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나머지 왕비가 황금의 베개를 샀다.
자기 딸의 소품임을 확인하고 그것을 손에 넣은 경위를 물어 알게 되었다.
왕비는 사람들을 시켜서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열어보니 오직 황금 베개만이 보이지 않았다.
왕비는 비로소 그의 말을 믿고 그를 "부마도위"에 임명했다 한다.
이 일로 해서 사람들은 왕의 사위를 <부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釜 中 之 魚 부 중 지 어 |
▷오래 계속되지 못할 것이다.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환의 환제(桓帝)까지 20여 년에 걸쳐 횡포를 부리고 영화를 누린 양익(梁翼)이 대장군이 되고,
아우인 불의(不疑)가 하남의 태수가 되었을 때에 8명의 사자로 하여금 주군(州郡)의 순찰을 명했다.
8명중의 한 사람인 장강은 수레를 낙양의 숙소의 흙 속에 묻고서 양익 형제를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늑대와 이리와 같은 양익의 형제가 요직에 올라 있는데
여우나 살쾡이와 같은 지방관리를 조사하며 돌아다닐 수 없다."
이로 인하여 양익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양주와 서주를 휩쓸고 돌아다닌 장영이란 두목이 이끄는 도적 떼의 근거지인 광능군의 태수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장강은 단신으로 도적의 산채로 들어가
장영을 만나 사물의 도리를 설득하여 장영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저희들은 이와 같이하여 목숨을 오래 보존할지라도
그것은 물고기가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도적 떼가 항복했다고 한다.
俯 和 雷 同 부 화 뢰 동 |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뇌동(雷同)이란 우뢰가 울리면 만물이 이에 응하여 울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것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서 경솔하게 그 말에 공명하는 것을 말한다.
부화(俯和)는 뒤에 첨가 된 것이다.
<예기(禮記)> 곡례편(曲禮篇) 상에 손위 사람에 대한 예절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말처럼 말하지 말고, 함부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말고,
반드시 옛날의 성현을 모범으로 삼도록 하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시키도록 한다."
焚 書 坑 儒 분 서 갱 유 |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생매장한다는 말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생매장한다는 말로서
흔히 언론이나 인사들을 탄압하는 행위 등 독재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진시왕 34년(기원전 213년)함양궁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이때 군현제도를 찬양하는 복야 주청신과 봉건제도의 부활을 주장하는 박사 순우월이
진시왕 앞에서 대립된 의견을 놓고 싸웠다.
진시왕은 이 문제를 신하들에게 토의하게 했다.
이사는 순우월의 의견을 몹시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이사는 선비들의 그 같은 태도는 임금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당파를 조성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이를 일체 금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음 구체적인 안을 제시했다.
"지금 폐하께서는 대업을 일으키시어 만대에 전할만큼 공을 세우셨지만
처음부터 어리석은 선비가 미치지 못하여 법도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과거의 제후들이 서로 다투었을 때에는 유세하는 선비를 초빙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배운 것으로써 서로 모여 법령을 배척하는 자들은 임금을 받드는 일을 자랑으로 삼고,
의를 부르짖는 것을 고상하다고 하여 제자들을 이끌어 비방케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을 금하지 않는다면
위로는 임금의 권위와 세력을 저하시키고 아래로는 무리들이 세력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일이야말로 몹시 중요합니다.
신이 청컨대 사관은 진나라 기록이 아닌 것은 다 태워 버리며 박사가 직무상 취급하고 있는 것
이외에 감히 시서(詩書)나 백가어(百家語)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고을 수령들에게 이를 바치게 해서 태워버립니다.
감히 시서를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저자에 끌어내다 처형합니다.
옛날 것을 가지고 지금 것을 비난하는 사람은 일족을 다 처형 시킵니다.
관리로서 이를 알고도 검거하지 않는 사람도 같은 죄로 다스립니다.
명령이 내린 30일 이내에 태워 없애지 않는 사람은 이마에 문신을 새기고 중노동에 처합니다.
태워 없애지 않는 것은 의약(醫藥)과 복서(卜筮)와 농사에 관한 책들입니다.
만일 법령을 배우고자 할 때는 관리에게 배워야 합니다."
진시황은 이 안을 채택하여 행한 것을 분서(焚書)라고 한다.
이듬해에 진시황이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원한 나머지 신선술을 가진 방사(方士)들을 불러모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우대를 한 것이 후생(候生)과, 노생(盧生)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진시황의 처사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진시황을 비난하고 자취를 감춰 버렸다.
정부를 비난하는 학자가 있다는 보고를 들은 진시황은
어사(御史)를 시켜 학자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심문하게 했다.
학자들은 서로 책임 전가를 하며 자기만 빠지려고 했는데 법에 저촉된 사람이 460여 명이나 되었으며
이들은 모두 함양성 안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다.
널리 천하에 알리기 위한 징벌로 한 것이었다. 이것이 갱유(坑儒)인 것이다.
不俱戴天之讐 불 구 대 천 지 수 |
▷함께 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수라는 뜻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란 뜻으로써 원래는 아버지의 원수를 말한다.
아버지의 원수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
반드시 그 원수를 갚아야 한다.
타협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제의 원수도 집으로 무기를 가지러 갈 여유가 없다.
친구간의 원수는 나라를 함께 하고 살아서는 안 된다. 역시 죽여야 한다.
주례(周禮)에서는 당연한 복수를 한 사람은 죄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것이 하나의 윤리관으로 인정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맹자(孟子)의 진심장(盡心章)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윗 글과 비교가 된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이제야 다른 사람의 어버이를 죽이는 것이 중요한 줄을 알았노라.
다른 사람의 어버이를 죽이면 다른 사람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다른 사람의 형을 죽이면,
다른 사람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니,
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같은 뜻의 말로 <불공대천지수>, 불공대천, 불우대천, 대천지수 등으로 쓰인다.
不入虎穴不得虎子 불 입 호 혈 불 득 호 자 |
▷모험을 하지 않으면 결과를 얻을 수 없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지 못 한다는 말로써
모험을 하지 않으면 큰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후한의 반초는 집안이 가난한데다가 역사 자료 수집으로
더욱 생활이 곤란해져 지리산 관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고를 따라 흉노를 징벌함으로써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게 되었는데 그때는 거의 4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그후 반초는 선선에 사자(使者)로 떠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선선왕이 정성껏 후대를 했으나 날이 지남에 따라 갑자기 냉대해 졌다.
틀림없이 북쪽 흉노에게서 사신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반초는
어느 날 왕의 시종을 불러내어 흉노의 사신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그날 밤 반초는 부하 30여명을 불러모아 술자리를 베풀고 나서 말했다.
"요즘 우리를 냉대하는 것은 여러분도 다 아는 바로
자칫 잘못하면 우리를 흉노에게 넘겨서 포로로 만들 수작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범의 새끼를 얻지 못한다.
이제 길은 단 하나 밤을 타서 흉노의 사신을 화공(火功)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선선왕도 혼쭐이 나서 우리들의 말을 들어 줄 것이다."
부하 중에는 문관과 의논을 해야 한다는 자도 있었으나 반초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의 성패는 지금 당장에 있다. 졸 때기 관리들에게 말했다가 일만 탄로 나면 어떻게 할 셈인가?
목숨을 잃고 이름을 남기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사내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다."
중의일결(衆議一決)로 어둠을 이용해서 부하들은 흉노의 숙소를 포위했다.
때마침 불어닥친 대풍(大風) 속에서 반초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10명은 뒤편에서 기다렸다가 불길을 보거든 북을 치고 함성을 올려라.
나머지는 칼과 활을 가지고 앞문에서 나오는 흉노들을 협공하라."
이렇게 해서 화공을 당한 흉노 병은 대 혼란에 빠져 모두 불타 죽었다.
흉노의 사신의 목을 본 선선왕이 한 나라에 복종을 맹세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不 惑 불 혹 |
▷연령을 나타내는 말
이 말은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실려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 만년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시고
그 정신적인 성장과 정을 말씀하신 짤막한 일종의 자서전적인 요소를 포함한 술회(述懷)라고 보아야 하거니와,
그 가운데서 사용된 어귀가 그대로 연령을 나타내는 말로써 지금 까지 사용되고 있다.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서고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고
쉰 살에 하늘의 명을 알고 예순 살에 귀에 따랐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
脾 肉 之 嘆 비 육 지 탄 |
▷신의 재주나 수완을 발휘할 기회가 없어 탄식함
장수가 전쟁에 나가지 않아 말 탈 기회가 없어 넓적 다리에 살만 찌는 것을 한탄한다는 뜻으로써
자신의 재주나 수완을 발휘할 기회가 없음을 탄식하는 말이다.
한실의 부흥을 외치며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를 하여 일어선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다니다가
형주(荊州의 유표(劉表)에게 몸을 의탁하여 신야(新野)라는 작은 성(城) 하나를 맡아보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표가 술자리를 마련하고 유비를 불렀다.
그의 후계자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현덕은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측간(側間)으로 갔는데
무심코 넓적다리에 두둑이 오른 살을 보고 자신의 신세가 한스러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가 다시 자리로 돌아오자 유표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얼굴에 눈물 흔적이 있는데 웬 일이요?"
현덕은 깊이 탄식하며 대답했다.
"전에는 하루라도 몸이 말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에 도무지 살이 붙지 않더니
이제는 오랫동안 말을 타지 않으니 살이 올랐습니다.
세월은 덧없이 가건만 이제껏 공업(功業)을 쌓지 못하였으니 이점이 서러울 뿐입니다."
牝 鷄 之 晨 빈 계 지 신 |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린다는 것.
암탉이 울어서 새벽을 알린다는 것으로써 음양의 이치가 바뀌어 집안이 망할 징조라는 것이니,
곧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고 남편의 권리를 빼앗은 것을 비유한 말이다. 빈계사신(牝鷄司晨)이라고도 한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이 달기의 미색에 빠져
국정을 그르친 사실을 열거한 대목 중에서 목서편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옛 사람이 이르되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는데 오늘날 은왕인 수(受)는 여인의 말만 듣고 있다.
조상의 제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한 조상을 모신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형제들도 전혀 돌보지 않으며,
그들을 임용(任用) 하지도 않았다.
다만
천하 곳곳에서 많은 죄를 짓고 사방에서 도망쳐 온 자들을
높이고 기르며 믿고 임용했다.
또 이자들을 대부(大夫)와 경사(卿士)로 삼아 백성들에게
포악한 일을 저지르게 하여 은나라가 범죄로 인하여 문란해지게 하였다.
이제 나 발(發)은 삼가 하늘의 벌을 대행코자 한다."
무왕은 은왕 수의 문란한 정치에 대해 비난을 가하면서
현 집권자의 행패가 이런 상태이므로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은의 주왕을 치기 위하여 군사를 일으켰다는 사명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貧 者 之 一 燈 빈 자 지 일 등 |
▷가난한 사람이 밝힌 등불 하나 라는 말로써 이는 가난 속에서도 부귀한 사람들 보다
성의가 더 많은 가치가 있다는 것이니 정성의 소중함을 뜻한다.
석가모니가 사위국의 어느 정사에 기거할 때의 일이다.
그 나라에 난타(難陀)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몸을 의지할 곳이 없고 가난했기 때문에 구걸을 해 먹으면서 살았다.
그런데 국왕을 비롯하여 온 나라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신분에 어울리게 석가모니와 그 제자들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가난한 몸으로 태어나
모처럼 고마운 스님을 보면서 아무 공양도 할 수가 없구나." 하고
슬피 울면서 부끄러움을 느껴, 하루 종일 거리를 다니며 구걸한 끝에 겨우 돈 한 냥을 얻었다.
그 한 냥을 가지고 기름 집에 가서 기름을 사려하자,
"이 한 냥으로 기름을 사다가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이지?"
난타는 가슴속에 있는 생각을 말했다.
그러자 기름 집의 주인은 불쌍히 생각하여, 배 이상이나 기름을 주었다.
그 만큼의 기름이 있으면 한 등을 밝힐 수가 있었다.
난타는 크게 기뻐하여 등 하나에 불을 붙여 정사를 찾아가서
석가모니에게 바쳐 불단 앞에 있는 많은 등불 속에 놓았다.
그 난타의 성심에 의하여 바쳐진 한 개의 등불은
한밤중에 계속 빛나면서 먼동이 트자
다른 모든 등불들이 꺼진 뒤에까지 오직 하나 만이 빛나고 있었다.
손으로 바람을 보내도 옷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도 끌 수가 없다고 한다.
▷뒤에 석가모니는
난타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알고
그녀를 비구니(比丘尼)로 삼았다고 한다.
氷 炭 不 相 用 빙 탄 불 상 용 |
▷얼음과 불은 서로 성질이 정 반대여서 서로 용납(容納)하지 못한다.
즉 성격이 서로 상반되어 도저히 타협하기가 어려움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사(楚辭)>에, 칠간(七諫)이 실려 있는데 한나라 사람인 동방삭이 굴원을 추모하여 지은 글이다.
굴원이 고향을 떠나 고민하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불상객은 불가이상병혜(不可以相竝兮)와 같은 뜻이다.
고향에서 굴원을 쫓아낸 사람과 자기는
얼음과 숯과 같은 사이여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버릴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 갈 수는 없다.
나는 결코 오랜 목숨을 타고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지금 죽는 것은 비명(非命)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돌아가는 것도 용서되지 않고, 여기에서 죽는다는 것도 견딜 수 없는 일이다.
- 이 상(以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