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정원 (외 2편)
조영심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은
명주바람의 숨결로 너는 온다
비강과 공명강을 건너
솔 숲길 솔 향을 담은 무용선으로
고요하게 흔들리며 한 올 한 올 한삼자락 타고 한 박에 한 걸음씩 온 박으로 두 박에 반박을 차고 덧걸음 사뿐 얹어서 까치채로 재금재금 나와 반박을 스쳐 멎숨 엇박으로 잘근잘근 끊어도 끊길 듯 이어지며 맺는 듯 푸는 듯 들숨 날숨 동글동글 이음매 동글리며 온다, 왔다, 끝 선에 잡아둔 숨결을 살짝 놓아 다시 먼 곳으로 보낸다
목소리로 만든 악기, 아카펠라
공문(空門)을 오르내리는 소리의 춤사위 익히듯
열꽃 핀 이 호흡도 한자락 입춤이면 좋겠다
상침(上針)을 뜨다
사랑하는 이의 잠든 허공을
수시(收屍)해 보았는가
그가 차지한 잠매(潛寐)의 고요가 오그라들지 않도록
어느 별자리에 다시 태어날
저 절명의 어둠이 고이지 않도록
오랜만에 맘껏 잠든 아버지 반듯한 몸과 마음
재갈재갈 펴고 주무르고 향탕수, 쑥향으로 씻기고
나,
참으로 오래된, 새 옷 한 벌 입혀드리련다
살진 햇살과 생명의 소리 온갖 냄새의 기억이 드나들던
북두칠성 통로까지 여리디여린 솜으로 닫아걸고
평생을 살아도 한 장밖에 가질 수 없는
여섯 자 한 자 세 치 황망한 지금(地衾)을 편다
하얗게 입을 벌린 솔기 아래부터 위로 좌에서 우로
열을 불에서 갈라낼 수 없듯 고통을 마음에서 뗄 수 없어
곡에 곡을 시접해
부동의 영잠을 시침한다
나무 은정을 막듯 한 땀 한 땀
한 생을 오롯이 지어 보낸다
— 얘야, 울지 않아야 보인단다
저기 저,
새로 생겨난 아버지 별자리, 빛날 찬(燦) 집 우(宇)
떨리는 궁전
푸른 기억창고의 빗장을 열고
흔들리며 피어난
환상의 성(城) 알함브라, 네 가슴쯤에 이르다가
눈멀고 밝은 귀까지 닫혀
아리아드네의 실로도 빠져나오지 못한
깊디깊은 미로의 궁
너는 기타를 연주하는 작은 오케스트라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도
무지갯빛 물방울을 세공하는
트레몰로 마법사
눈물 한 방울 떨림까지
감지하는 아르페지오
아프지 않은 이별이 있을까만
그 짐마다 져야 할 무게가 달라
훌쩍 떠나버린 너의 빈자리는
누리 떼가 쓸고 지나간 폐허 오늘은,
저만치 시간 너머 붉은 성으로 서서
다시 나를 흔들지만
투명 젤리처럼 내 천 개의 하늘도
방울방울 한 떨기로 이느니
—시집『소리의 정원』(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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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심 / 전북 전주 출생. 2007년 《애지》로 등단. 시집 『담을 헐다』『소리의 정원』. 현재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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