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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바닷길 다섯 산, 망산, 가라산, 노자산, 선자산, 계룡산
하늘과 바다와 산의 경계가 없다.
거기 더해 사람들까지 모두 하나로 이어져있다.
바람이 멈추면 바다는 잠을 자는가.
나는 오로지 걷고 있는데 바다는 한 치의 미동조차 없다.
거제도 남단 명사포구 위로 솟은 망산에서 가라산, 노자산 선자산을 거쳐 거제시 중심에 솟은 계룡산까지의 다섯 산을 남북으로 종주하는, 이른바 거제남북 5산 종주코스를 두 번째 시도하게 된다.
3년 전 홀로 산행했던 추억이 떠올라 몇몇 친구들에게 언급했더니 여덟 명이 군침을 흘린다. 보름 뒤 주말에 두 대의 승용차를 나눠 타고 바로 거제도로 달려갔다. 거기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또 가까운 친구들이 있었다.
태영, 순희, 인섭, 계원이가 한 차에 타고 병소, 노천, 남영, 영빈과 함께 다섯 명이 또 한차로 출발하였다. 대다수 운길산, 적갑산, 예봉산을 함께 종주한 동창이자 오랜 벗들이다. 거제도는 올 때마다 다시 찾을 명분을 만들어준다. 거제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외도를 탐방하고자 하면 기상 탓으로 배가 출항하지 않아 날 좋을 때를 골라 다시 오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 거제도는 크고 작은 60여 개의 섬들이 그 부속도서로 주변에 깔려있다. 망산, 가라산, 노자산, 선자산, 계룡산, 북병산, 국사봉, 옥녀봉, 산방산, 대금산, 앵산 등 열한 개의 산들이 남북 혹은 동서로 이어져있다. 그 중 남북으로 늘어선 다섯 산을 접하고 나머지 산은 거제도에 다시 올 명분으로 남겨놓는다.
최남단 남부면의 명사해수욕장에서 첫 산을 오른다
금요일오후 느지막하게 서울을 출발하여 거제도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다. 늦은 밤, 저녁식사를 하고 적당히 휴식을 취하다가 이른 새벽에 산행을 시작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몇몇 친구들은 차 안에서 눈을 붙이고 또 몇몇은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기상! 출발 20분 전!”
새벽 네 시, 안개가 짙게 드리우며 흐릿하던 날씨가 먼데서 오신 손님들을 예우하려는지 점차 개이기 시작한다. 이른 봄 바닷가인데도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친구들도 대다수 표정이 밝은 편이다. 출발채비를 마치고 망산 들머리로 향한다.
국운이 기울던 조선말엽, 왜구선박의 침범을 감시하고 고기잡이어부가 망을 본다고 하여 망산望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경남 통영시를 중심으로 세 개의 망산이 있는데 한산도 망산, 사량도 지리망산이 있고 여기 거제도 남쪽해안에 접한 망산이 그것이다.
바다에서 시작하여 잠시 가파른 바윗길을 넘어서면 검은 바다가 다시 나타난다. 어둠속 불빛산행이라 더욱 그런가보다. 산길을 걷는지 물길을 걷는지 혹은 하늘을 유영하는지 점점 구분이 흐릿해진다.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의 양변을 모두 접하였으니 어찌 표정이 밝지 않을쏜가. 가까운 친구들과의 산행이라 마음은 더욱 넉넉하고 얼굴엔 자꾸 미소를 머금게 된다.
안개커튼을 거둬내면서 들머리 명사해안과 매물도여객선 선착장이 한 폭 풍경화처럼 드러나는 중이다. 오를수록 마을의 가옥들과 배는 작아진다. 깎아지른 낭떠러지 아래에 포말로 흩어지는 소소한 물결이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저 아래 악어처럼 떠있는 섬이 장사도야.”
“매물도도 보일 거 같은데.”
“저게 매물도, 좀 더 뒤로 흐릿한 게 비진도야.”
시야에 잡히는 모든 게 선명하진 않지만 두루두루 대병대도, 소병대도와 매물도, 욕지도, 비진도 등 한려해상의 내로라하는 섬들을 콕콕 찍어낼 수 있다.
“높이에 비해 꽤 빡세네.”
“바닷가 산이잖아. 해발 제로부터 시작하니까 숫자만 보고 판단했다간 낭패 볼 수 있어.”
해발 397m의 망산 정상을 동네 뒷산정도로 생각했다는 몇몇 친구들이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보인다. 청명한 날엔 여기서 부산과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 거기까지 보려하는 건 과한 욕심일 듯하다. 은근히 걱정했던 습한 날씨가 개는 것만도 감사하다.
이른 아침 망산에서 내려다본 절벽해안선이 정갈하다
돌탑을 쌓고 그 위에 자갈을 깔아 세운 정상석, 바다수면에서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곳에 세워진 정상석이 묘한 낭만을 자아낸다. 커다란 언덕을 등지고 근포와 대포마을이 각각 바다를 낀 풍광도 낭만 가득하다.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기에 그 거대함을 이룰 수 있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기에 그처럼 깊어질 수 있다.’
바다를 내려 보노라니 중국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문 중 하나로 평가받는 간축객서諫逐客書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진나라의 가신인 이사는 간축객서를 통해 출신을 가리지 말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이루라는 제안을 하였고, 마침내 진나라는 진시황으로 하여금 중국을 통일하게 한다.
뒷간에 사는 쥐는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를 보면 두려워 도망치지만, 곳간에 사는 쥐는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다는 것을 본 이사는 사람이 어질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이런 쥐의 행태와 같아 처해 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통일의 공을 세워 진나라 최고의 권력을 얻었지만, 결국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생각 밖에 없었기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처한 환경에 대한 습성을 잘 아는 이가 결국 처한 환경에 속박되어 사람을 안중에 두지 못한 꼴이 되고 말았다.
바다로 흐르는 작은 물줄기일지라도 오염된 폐수만큼은 흘러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다가 망산과 작별한다. 내봉산(해발 359m)에 이르러서도 미끄러지면 풍덩, 그대로 바다로 구를 것만 같다. 몸집이 큰 순희와 계원이가 땀을 쏟아내긴 하지만 너끈히 여유로운 표정이다.
“노천이랑 인섭이도 끄떡없지?”
“아직은 문제없어.”
운전을 하고 온 태영이와 병소는 마라톤과 장거리산행으로 단련된지라 염려할 게 없다. 영빈이와 남영이도 여유롭게 물길산행을 즐기는 표정이다.
야트막한 천장산 아래의 여차몽돌해안이 거기 머물러서 바다를 즐길 때만큼이나 아늑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수시로 저구항을 드나드는 소형어선들이 바다마을의 바쁜 일상을 실감하게 해준다.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가라산, 신선에 비유되는 노자산
“저기가 가라산 정상이야.”
“엄청 머네.”
“넌 다섯 산 완주는 무리겠어. 망산 하나로 만족하고 계룡산 날머리에서 기다리는 게 어때?”
“그러고 싶지만 우리어머니가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셔서 멈출 수가 없네.”
농을 주고받으면서도 친구의 체력을 염려해준다. 모두가 다 같이 안전하게 완주하고픈 마음이 동하기 때문이다. 진행할 능선을 따라 볼록하게 솟아 앞이마가 벗겨진 봉우리가 가라산 정상이다. 돌담을 끼고 내려가다 아직은 휑한 침엽수림을 지나면 도로변에 닿는다. 작은 다대재라고 불리는 곳이다. 여기서 가라산 등산로입구로 들어선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산을 오르지만 누구 하나 엄살 섞인 말을 하지 않는다. 다대산성을 지나 고갯마루 학동재 직전의 능선까지는 계속되는 잡목 숲에다 길이 꽤나 거친 편이다. 학동재를 넘어 여전히 물길, 산길이 이어진다. 남쪽이지만 아직 봄이 오기엔 이른지라 산수유 노랗게 피려면 멀어 보인다.
가라산에서 내려다보는 해금강은 여의주를 문 청룡이 동해를 향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떠올라 걸음을 빨리하려다 뒤를 돌아보고 보조를 맞춘다. 망등을 지나 이제까지 없던 바위가 많이 눈에 띄는 가라산 정상(해발 585m)에 도착한다.
“여기가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야.”
500년대 초 금관가야는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과 여기 거제도의 남쪽 가야산까지가 그 국경이었는데 이곳이 가라산으로 변음 되었다고 전해진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여의주 문 청룡의 모습을 헤아리다가 고개를 돌리고 길을 서두른다. 자칫 늦어지면 막판체력이 떨어질 즈음 다 같이 하산하는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진마이재로 가면서 햇살 듬뿍 받은 억새가 한가롭고도 평온해 보인다. 학동해안과 해금강 등 노을빛 물들기 시작하는 바다 곳곳마다 감미롭고 평화롭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즐거운 산행 되세요.”
몇 명의 산객들이 반대편에서 걸어온다. 이들도 외지에서 온 것처럼 보인다. 하늘과 바다와 산의 경계가 없다. 거기 더해 사람들까지 모두 하나로 이어져있다. 바람이 멈추면 바다는 잠을 자는가. 우리는 오로지 걷고 있는데 바다는 한 치의 미동조차 없다.
산에서 내려다본 학동포구가 한가롭다
가던 길 멈추고 뫼바위에 올라 학동포구를 내려다본다. 학동몽돌해안에서 올려다보면 노자산의 기암괴석이 꽤나 볼만하다. 오래 전 저기서 해상식물공원 외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47000평 규모의 외도해상공원은 3000여 종이나 되는 식물들이 심어져있고 지중해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이국적 정취를 물씬 풍긴다. 아직도 외도유람선에서 돌아본 해금강의 사자바위, 촛대바위 등이 눈에 선하다.
노자산전망대로 향하는 막바지 바윗길이 제법 날카롭다. 노자산전망대에서 노자산 정상까지 800m, 거꾸로 가라산 정상까지는 3.4km라고 표시되어 있다. 밤샘피로가 몰려오는지 노자산 정상이 실제거리보다 멀게 느껴진다. 몇몇 친구들도 조금씩 지친 기색을 보인다. 오기 전부터 마음 다지고 소망했었다. 아홉 명 다 같이 무사히 완주하여 오랫동안 추억으로 공유하고 싶었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자.”
전망대에서 간식을 먹으며 한 번 더 다짐해보고는 정상으로 향한다. 너덜오르막길을 올라 송신탑에 이르면 바로 정상이다. 거제도 동남쪽위치인 동부면 구천리, 부춘리와 학동을 끼고 있어 각 마을에서 올라올 수 있게끔 등산로가 나있다. 노자산老子山 정상(해발 565m)에서 내려다보는 조망도 시원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도해는 섬과 바다와 바람까지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불로초와 절경으로 인해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신선에 비유하여 노자산이라고 이름 붙여졌다니 우리도 건강수명을 연장시키지 않을까.”
“계룡산 찍을 때까지 만이라도 건강하게 걸어야 할 텐데.”
가을단풍이 멋질 뿐 아니라 희귀조인 팔색조를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희귀동식물도 서식한다는 노자산에서 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다시 진행한다.
멀리 선자산 정상이 보이고 그 왼편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10시방향의 끝봉우리가 계룡산 정상이다. 여기서도 다시 내려갔다가 또 올라야한다. 이 두 산으로 가기 위해 해양사방향으로 하산한다. 하산로 초입은 상당히 가파르고 비좁은 편이다.
“이제 두 개의 산이 남았어. 친구 따라 억지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친구를 못 볼 수도 있어.”
“오늘 너희들 보는 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남은 산을 아홉 명 모두가 동반한다.
선자산과 계룡산, 바다를 끌어안은 하늘 길을 걷다
선자산 들머리로 가는 거리곳곳에 활짝은 아니지만 동백꽃이 피기 시작한다. 평지에서 조신하게 시작되던 선자산 등로는 갈수록 가파르게 고도가 높아지고 너덜바위 가득한 험로로 이어진다.
“노천아! 내려가지 못하고 쓰러지면 우리 집사람한테 사랑했었다고 전해줘.”
“마지막까지도 친구한테 거짓말하라고 시키는 거냐.”
“하하하!”
수차례 쉬었다가 땀깨나 흘리며 도착한 정상(해발 507m)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곧 어둠이 내려앉을 것처럼 묵직해졌다. 계룡산 남쪽줄기로 이어진 선자산은 가을에는 단풍나무가 아름답고 자작나무와 참나무가 무성하며 계곡물이 맑고 깨끗하단다. 이 계곡의 물이 굽이굽이 모여 구천 댐을 이루고 있다.
오르면서 둘러보는 남쪽나라, 노을을 살포시 품기 시작한 바다, 그 바다를 끌어안은 잿빛하늘, 하루를 접어야 한다는 시그널처럼 마음을 바쁘게 한다. 친구들과 함께 왔으면서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생성된다.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사실에 대한 무한한 공감대, 그 느낌은 바로 함께 있으면서도 마구 솟구치는 그리움이다. 이처럼 맛깔스럽고 낭만 가득한 곳에 함께 왔으므로 해서 끝까지 함께 하고, 함께 이루고픈 본능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 푸르른 날 / 미당 서정주 -
네 군데의 방향으로 갈라지는 고자산치를 지나고 6.25한국전쟁당시 포로관리를 위해 세웠다는 통신대건물의 잔해를 보게 된다. 아파트단지와 자그마한 마을에 불이 켜졌고, 어두워 실체를 구분하기 어려워진 농지와 저수지를 아래에 두고 걸으며 계룡산까지 왔다.
“우리가 해낸 거야?”
“해냈어.”
“마지막 하산 길만 조심하자. 모두 랜턴 꺼내서 켜.”
대단하고 대견하다. 가슴이 울컥했지만 축배는 내려가서 들어도 늦지 않다.
거제도의 중앙에 우뚝 솟은 계룡산(해발 506m)은 산정이 닭 벼슬과 흡사하고 산이 용트림을 하여 구천계곡을 이루었다하여 그렇게 명명했다고 한다. 정상에는 신라 의상대사가 지었던 의상대의 절터와 불이문바위, 장군바위, 거북바위, 장기판바위 등이 있다.
계룡산 정상에서 걸어온 마지막 능선을 돌아본다
왼편 아래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도 불빛이 보인다. 거제도는 조선 산업의 메카로 잘 알려져 왔다.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거제도 섬 전체의 경제가 엉망이라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조선소에 에너지가 쑥 빠진 느낌이다.
내려오다가 비켜서서 보니 정상의 바위들 실루엣이 닭 벼슬을 닮은 것처럼도 보인다. 더 내려와서는 거제시내와 공설운동장이 가깝게 보인다. 갈림길에서 계룡사를 지나 포로수용소유적공원까지 내려온다.
“수고들 했어.”
“모두 자랑스럽지만 내 자신이 제일 자랑스럽다. 너희들 덕분에 내가 해냈다. 고맙다, 친구들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악수를 하고 서로가 서로를 포옹하며 해피엔딩을 만끽한다. 경험해보니까 혼자 긴 연계산행을 했을 때보다 여럿이 할수록 그 기쁨과 감동은 훨씬 커진다. 그 큰 감동을 잠시 가슴에 여며두고 이상 유무를 체크했는데 아무도 탈이 생기지 않은 것 같다.
1950년 11월 27일부터 유엔군에 의해 설치된 포로수용소에는 1951년 6월까지 북한군포로 15만 명과 중공군포로 2만 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의 포로를 수용했었고, 그 중에는 여성포로도 300명이 있었다.
현재는 잔존건물 일부만 남아서 당시 포로들의 생활상이나 모습, 의복, 무기 등을 전시해 놓았으며, 기존의 시설을 확장하여 거제도 포로수용소유적공원으로 탈바꿈하여 1983년 12월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된 바 있다.
미리 예약한 통영의 콘도로 향하면서 대장정의 뿌듯함도 있지만 마음한구석 허전함이 고여 드는 걸 의식하게 된다. 아홉 명이 총 도상거리 27km, 실제 30여 km를 걸으며 바다를 품고 산을 만끽했는데도 말이다. 혼자나 두서너 명이 아닌 아홉 친구가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마쳤다는 사실이 이곳 거제도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출발하기 전 횃불산악회장 홍태영은 출사표에서 함께하는 친구들의 소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파스텔 톤 엷은 하늘과 고요하도록 잔잔한 옥빛수면이 겹치는 곳, 수평선마저 지워져 물길인지 하늘길인지 구분이 모호한 곳
우리나라 두 번째 큰 섬 거제도를 남북으로 가른 다섯 산줄기에 사랑하는 벗 아홉 명이 함께 걷습니다. 이른 새벽, 최남단 명사에서 아직 깊은 어둠을 아홉 개의 횃불 들어 망산 들머리를 오르며 여명 밝힐 것입니다.
비록 육산 흙길일지라도 다수의 친구들이 이처럼 긴 산길은 처음인지라 다리 저리고 무릎 시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흐르는 땀만큼이나 숨차고 고될 수 있을 것입니다.
허나 우리 모두 완주하겠다는 의지로 어렵사리 시간 맞추고 한주일 일손 놓은 즉시 멀리 거제도까지 가는지라 한사람도 다치는 이 없기를 간곡히 염원합니다.
도전에 망설임 없이 선뜻 응한 친구들과 더불어 한걸음 또 한걸음 포기하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하여 그날 밤, 건강한 웃음으로 완주와 환희의 축배를 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친구들이 이날 흘린 땀방울이 세상사 자신감과 충만의 매개역할을 할 것이며, 세월이 한참 지나서도 우리들 우정이 그 흘린 땀에 푹 버무려져 끈끈한 의미로 되새겨지고, 새벽햇살처럼 영롱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거제도와 그곳의 산들을 사랑하고 거기서 바라본 물빛과 하늘빛을 환한 미소로 떠올릴 수 있도록 수 십리 종주길이 학동의 몽돌처럼 모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기상까지 청정하여 남으로 한라산, 북서로는 지리산을 조망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소박한 소망인 듯하면서도 큰 욕심 표현하며 출사표에 갈음합니다.
때 / 늦겨울
곳 / 명사포구 - 칼바위등 - 전망대 - 망산 - 전망바위 - 해미장골등 - 내봉산 - 호연암 - 여차등 - 세말번디 - 각지미 - 저구고개 - 작은 다대재 - 다대산성 - 학동재 - 망등 - 가라산 - 진마이재 - 뫼바위 - 노자산전망대 - 노자산 - 해양사 - 임도 - 부춘마을 - 동부면사무소 - 구천댐 - 암석지대 - 선자산 - 고자산치 - 포로수용소 잔해 - 통신탑 - 절터 - 계룡산 - 434m봉 - 임도 - 김실령고개 - 계룡사 - 포로수용소유적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