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온 시집 감상평 4
- 한명원 시집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
한명원 시인의 첫 시집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은 거절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녀의 시집에는 거절이 없다. 다만 직설화법이 아니라 간접화법, 즉 우회적으로 사물에 다가간다. 그녀는 세상의 부조리에 관심이 많다.
사물의 존재는 풀기 어려운 난수표이고, 시적 어순은 세상에 대한 항거처럼 보인다. 그녀는 시에서 결코 친절을 흠모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장 난 냉장고처럼 무의미하다. 마치 고장 난 냉장고는 존재하지만 가동되지 않는 것처럼 그녀에게 있어 친절은 존재하되 가동되지 않고 있다. 시인은 사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자주 부딪친다. 그래서 시인은 ‘…했는지’라는 의문, ‘…모른다’라는 추측, ‘…라고 한다’라는 가설을 통하여, 내 안에 응축되어 있는 세상의 모순을 수용해간다. 즉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화해의 시간을 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퇴고를 거듭하며 얻으려는 시적 대상은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해법이다.
한명원 시인은 존재에 대한 근원의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그러면서 사물에 대한 현상을 재발견하고 이미지의 변환을 꾀하여 새로운 공감각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본질을 뚫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시에서 사회적 항거를 통해 타협과 화해를 시공간을 초월하면서 시도하고 있다.
- 김순진(문학평론가 ‧ 고려대 평생교육원 시창작강사)
- 실천문학사 / 정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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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
벚나무에서 꽃잎이 떨어지는 찰나
주머니에 두 손 넣고
강가를 바라보는 남자에게
- 사진 좀 찍어 주세요
머뭇거리던 그가 고개 돌려
목을 빼어 친구를 부른다
그 사이 성급한 꽃잎은
몇 프레임을 이미 지나간다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말을 건다
- 젊은 선글라스 씨 사진 좀 찍어주세요
그는 오래전에 본 천연색 꽃이 떠오르는지
잡고 있던 지팡이로 셔터를 누른다
흑백의 답을 꽃잎에게 전한다
그 사이 벚꽃은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검은색으로 변한다
맑은 눈빛의 아이가 프레임 속을 들여다보며
-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찍으려는 거죠
- 다만 꽃잎 떨어진 벚나무 한 그루 있는데
- 이걸 사진 찍으라는 건가요
주머니 속, 없는 손이 친구의 손을 부르고
선글라스 씨가 지팡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아이가 자신의 맑은 눈을 빌리게 하며
꽃잎은 무엇을 기록하고 싶었나
순간의 시간을 놓아 버린 벚나무 가지가 앙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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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원 시인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진흥기금 수혜.
2019년 시집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 상재.
2020년 문학나눔도서 선정.
첫댓글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화해의 시간을 주면서 기다리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시와 화해하며 치유해 가는 언어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