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손손 살아온 내 고향, 사랑합니다!
말통골 토박이 김현수 씨 인터뷰
“옛 자취는 찾아볼 수 없이 변했어요. 예전엔 이 길이 유일한 도로였고 버스정류장도 있었는데 삼성전자가 생기고 그 앞으로 큰 도로가 나면서 여기로는 버스가 다니지 않게 되었죠.”
말통골은 옛날 한양 갈 때 말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하여 말통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삼성전자 정문 앞인데 행정구역 상 매탄3동에 속해있다. 김현수 씨는 할아버지 대부터 말통골에 살아 온 토박이다. 100년이 넘게 삼대가 대를 이어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다. 어쩌다보니 마을을 벗어나지 않고 평생 살게 되었다며 멋쩍게 웃는 그에게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말통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할아버지는 면장을 지내셨고 아버지는 새마을협의회장을 지내셨을 정도로 마을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매원초등학교, 수원중학교, 삼일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졸업하고 30년간 인근 새마을금고에서 근무했다. 초등학교 후배였던 아내를 만나 결혼한 후에도 한 번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여기에서 남매를 낳아 길렀다. 지금은 퇴직 후 아버님을 모시고 자영업을 하며 지내고 있다.
“앞이 개울이었어요. 여름이면 고기잡이를 하곤 했지요. 그때만 해도 수도시설이 없었고 물이 맑아서 펌프로 물을 길어다 먹었고요. 주변은 논밭이었는데 시멘트 포장이 안 된 흙바닥이라 장마철 비가 오면 미꾸라지가 기어 올라와 주워 담기도 했어요. 집 앞 도로를 포장할 때 아버지가 직접 배수관을 놓으셨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상상이 안 되겠지만 도시락 반찬으로 메뚜기나 개구리를 튀겨서 먹기도 했고요. 도토리산이라고 저 뒤에 도토리가 많은 산도 있었는데 지금은 청명산만 빼고 전부 개발되어 산들이 다 없어졌어요. 매탄1동쪽은 과수원이었고요. 매탄3동쪽은 거의 논이었는데 지대가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에 잠기곤 했어요.”
오래된 가족 앨범을 들출 때마다 이야기 거리가 가득했다. 사진 속 그곳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개를 들어 바라본 말통골은 공장과 원룸단지가 잔뜩 들어선 낯선 풍경이었다.
“큰딸이 수의학을 공부했는데 어릴 때 동네 큰개한테 물리더니 그 개를 길들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참 좋아했어요. 애들도 이제 장성해서 다 떠나고 타지에서 사는데 나도 아내랑 다른 곳에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다만 아버님이 여기가 편하시니 아버님 모시고 사는 동안은 떠날 생각을 못해요. 앞 건물 지하가 아버님이 친구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아지트예요. 허허”
한 집안의 아들로, 아버지로 60년 가까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고향을 지켜온 김현수 씨는 평생을 한 곳에 살다보니 길눈이 어두운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서지연 주민기자
사진1 : 개구쟁이 사촌들과 함께. 왼쪽 위 김현수 씨 중학생 시절.
사진2 : 수도시설이 없어 펌프질을 해서 물을 길어 먹었다.
사진3 :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해줄 연탄이 쌓여있으면 걱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