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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표어: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미 5: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Pastor. Rev. Ph.D. 조종국 목사
pastorjoh@naver.com
사명자 바울의 삶
20150125 조종국 목사 설교
행 20:22-24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오늘은 1월의 마지막 주일로 예수로교회가 감사의 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바라기로는 혹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사의 제목들이 있었다면 다시금 감사의 찬양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길 바랍니다.
너나할 것 없이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 불행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으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기 앞에 행복이 있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행복이 저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늘 자기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사랑하는 예수로교회의 모든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이 질문은 사실 모호한 질문입니다. 행복이란 일반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는 가진 것과 소유할 것과 세상에 기대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 휩쓸려 살지 않고 절대 가치에 기준한 삶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삶이 되려면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존재에 대한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성도된 자는 하나님이 나에게 부여한 사명을 깨닫고,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써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행복도 얻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 중 바울의 삶을 본다면 그의 삶은 엄밀히 말해 비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결혼도 못했고 자식도 없습니다. 게다가 돈도 없고 세상이 말하는 출세도 크게 못한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건강도 좋지 못했고 가는 곳마다 반대자들에게 고난도 당하고 때론 매도 수없이 맞았던 자입니다. 물론 옥에 갇힌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로부터 배신자라고 따돌림까지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행복했습니다. 절대 불행하지 않았고 늘 비전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1.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자
바울이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모아놓고 고별사를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24절에 보면 그는 자기의 달려갈 길, 곧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이라고 분명하게 고백합니다.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래서 그 복음을 증거 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는 겸손과 눈물로 온갖 시험을 참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위협을 무릎 쓰고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주 예수께 대한 믿음을 전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을 하기 위해 사십니까? 그리고 왜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왜 살고 계시냐고 물으면 그냥 죽지 못해 산다고 대답들을 합니다. 그래서 삶의 목표도 없고 왜 사는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저 살기위해 삽니다.
그래서 인생은 힘든 것입니다. 사는 것이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입으로는 행복하다 말은 하는데 실상은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조금 힘들고 어려우면 쉽게 생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검암역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하는 사람들의 수치가 2013년도 통계로 15.6%가 넘었다 합니다. 약 800만 명이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또 재작년도에 자살을 실제로 시도한 사람만 약 10만 명이 넘는다 합니다.
그들은 왜 자살을 생각합니까? 삶에 의미를 모르는 것입니다. 자살만 아닙니다. 마약에 빠져 살고, 알코올에 중독되어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목적이 뭔지를 모르니 사는 것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사탄이 우리를 교묘하게 속입니다. “죽으면 끝이다” “죽음은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다” 이렇게 속입니다. 아닙니다. 자살은 결코 문제 해결책이 아닙니다. 자살은 영원한 지옥에 갈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사명이 여러 가지이니 사람 따라 사명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표는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기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 그들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헌신과 충성은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라고 원하기로는 이 시간 우리의 사명을 깨닫길 원합니다. 기도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전도해야하겠다고 생각합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싶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선교사를 돕고 있습니까? 그것도 사명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있습니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그것도 사명입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습니까? 찬양을 잘 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을 잘 보살피고 도와 줄 수 있습니까? 그런 것들도 다 사명입니다.
영국의 어느 유명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에서 어느 날 “사명자가 되자”고 열심히 설교를 했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친 후 어떤 집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사명자가 되자고 하셨는데 제 사명은 무엇인가요?” 물었답니다. 설교를 듣고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는데 내사명이 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그 집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하시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합니다. “하루 종일 집에서 빨래하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하고 자녀들 9명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나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합니다. “집사님, 집사님은 이미 사명자입니다. 그 자녀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기르세요.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사명입니다.” 결국 그녀는 그 9명 자녀들을 잘 양육했습니다. 그래서 그 9명의 자녀 중에 4명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명은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고 또 한명은 영국 경제의 전문가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자녀는 훌륭한 자선 사업가가 되었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면 그것이 곧 사명입니다. 똑같은 일을 해도 먹고 살기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그것을 통해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교회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 어려운 성도를 세밀하게 보살펴주는 일, 그리고 선교사와 목사님을 위해 날마다 모여 기도하는 일, 이런 모든 일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사명자
하나님이 쓰시는 사명자에게는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때문에 주저 않고 포기하면 그런 사람에게는 큰 복이 임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큰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환난이 있고 고난이 닥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령에 매임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앞날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나 성령에 매임을 받아 가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본 성경에는 “성령에 강력한 힘에 이끌려” 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그의 앞길에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죠? 성령에 매여 이끌려서 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면 잡히고 고난당하고 할 것이나 그래도 하나님이 이끄시기에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국 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로마시민권이 있기에 로마황제에게 상소를 합니다. 그냥 얼마든지 풀려날 수 있었는데 일부러 상소합니다. 그래서 로마로 압송되다가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을 구원합니다. 그리고 배가 파선되어 상륙한 멜리데 섬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받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로마에 도착해서 만 2년 동안 마음껏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결국 바울의 꿈은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복음은 온 세상에 전파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앞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찌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날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아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미래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분께 전적으로 맡기고 두려움 없이 사명감당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앞날에 닥칠 고난과 환난이 두렵다고 되돌아서거나 주저앉는다면 그 사람은 결코 복된 삶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부름 받았을 때 그는 두려웠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낸다는 말인가요?” “나는 입술이 뻣뻣하여 말할 줄 모릅니다”라고 사양합니다. 내가 가서 하나님이 나를 보냈다고 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바로 왕에게 갔을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이 주어졌기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왕을 항복시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십니다. 하나님이 그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모세가 한 것은 순종이 전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앞길에도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고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맡기고 가면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자신의 생명도 드린 자
사람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죽음, 이별, 고통 등 여러 가지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죽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 죽으려 하고 자기 생명을 최고로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최대의 관심사는 건강이고 잘 먹고 잘살며 장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합니다. 그래서 “돈을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은 것이나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건강도 사명을 위해 있어야지 그 어떤 것도 사명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24절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생명보다 사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미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울의 사명자로서의 자세였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생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지파 출신이고 더욱이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던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모르고 살았던 바울은 스테반을 죽이는 일에 앞장섰고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를 주님이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명이 뭔지를 ‘아나니아’를 통해서 가르쳐주었습니다. 행 9:15에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는 이 한 구절에서 자기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놀랍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옛날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명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자는 엄밀히 말해 사명이 끝나는 그날이 죽는 그날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에게 있는 사명이 여러분 생명줄입니다. 그 사명 때문에 여러분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명이 여러분을 살게 하는 양식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수가성에서 전도하던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양식을 얻어 와서 잡수시라고 합니다. 요4:31-34에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말씀’도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님은 또 다른 양식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뭡니까? 그것이 사명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이것은 다름 아닌 사명입니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것, 그것이 나를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명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믿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로교회의 모든 성도여러분.
저는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성도님들 왜 그렇게 바쁩니까?
성도님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사십니까?
성도님들의 삶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이 모든 질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하나도 없었다면, 바라고 원하기로는 이제 우리 열심의 이유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을 위해서”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명자의 삶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시간 여러분의 시간과 마음과 물질이 드려져서 주님의 나라가 세워지고,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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