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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에서의 귀환
이중세
“여기, 여기요! 여기는 나로 112호, 진입에 성공했어요. 저 먼 공간은…… 아주 까매요. 먹물을 끼얹은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암흑이에요. 아…… 저기, 반짝이던 그게 저기 보여요!”
무전기에서는 더 이상 치익치익 소리가 나지 않았다. 흔들어보아도 소식이 없고, 배터리를 뺐다가 다시 집어넣어도 똑같았다. 소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날이 선선해져서 그러나 싶어 볕 좀 받으라고 건전지를 댓돌 위에 나란히 늘어놓았다가 끼워보아도 잡음은 나지 않았다. 확인해봐야 했다.
마당이 어수선해진 걸 보니 할머니가 돌아오신 모양이었다. 나는 무전기 두 개를 끌어안고 일어섰다. 쇠로 만든 두꺼운 현관문은 내가 열기에 너무나 무거웠다. 무전기를 끌어안은 왼손이 금세 뻐근해졌다.
내 팔뚝만 한 무전기는 새까맣고 무거웠다. 거기엔 내 검지 굵기의 안테나가 비죽 솟아 저쪽 말을 듣고 이쪽에서 대답할 때마다 낭창낭창 흔들렸다. 소리가 들릴 때는 귀 대는 쪽에 있는 녹색 불이 깜빡였고, 내가 말할 때는 붉은 색으로 빛났다. 무전기 뒤쪽에는 넓적한 판이 달렸는데, 허리띠에 그걸 끼우면 카우보이의 멋진 총집처럼 허리 양쪽이 두두룩해졌다. 인조가죽으로 만들어진 내 보라색 혁띠는 두 개의 무전기를 꽂은 자국으로 허옇게 벗겨졌는데, 그렇기에 거긴 무전기를 끼우도록 마련된 자리처럼 여겨졌다.
암만 생각해도 건전지 문제는 아니었다. 할머니는 방금 장을 봐온 찬거리를 꺼내 크기가 각자 다른 스테인리스 그릇에 나눠 담는 중이었다. 나는 그 옆에 쪼그려 앉았다.
“뭐 하라고.”
할머니는 불퉁불퉁한 표정을 지었지만, 귀찮다며 손을 내젓지는 않았다. 그게 고모랑 다른 점이다. 고모는 말로는 부들부들 봄바람 같지만, 내 뜻을 온전히 들어주는 일은 좀체 없다.
할머니 손에 무전기를 쥐여드리고 나는 바깥문으로 나갔다. 이 층 주택인 우리 집은 하얀 담으로 둘러져 있었다. 내 키로는 엄두를 못 낼 높이의 담 안에는 마당이 자리했고, 큰 평상이 마당의 반을 차지했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아빠는 비번일 때마다 마당에 손을 댔는데, 바닥 전체를 편편하게 고른 뒤 잔디를 심었고 남쪽 담 바로 밑에 포대로 흙을 담아와 두둑이 쌓았다. 원래 거기엔 이전 주인이 심은 굵은 감나무와 석류나무가 덩그러니 심겨져 있을 뿐이었다. 아빠는 두 그루의 나무 주변에 흙을 쌓아 허브와 상추를 심을 네모난 공간을 마련했고, 구부러진 포도나무 옆으로 작대기를 박아 넣었으며, 할머니를 위해 거기에 금잔화와 봉선화를 심었다. 지금 담 아래 짧은 마당은 가을 맞은 수목이 떨군 잎으로 그득했다. 할머니는 며칠 내로 그 잎을 긁어모으라고 시킬 게 빤했다. 낙엽 모은 드럼통에 끼얹을 라이터 기름 어디 뒀냐.
열린 대문으로 나를 돌아보는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할머니가 작게 보일 때까지 한길로 한참 뛰었다. 유치원 다니는 은선이네와 그 옆 쌍둥이네 집을 지나, 사업 망한 아들 탓에 전셋집으로 이사 온 은규 할아버지 집과 낮에는 체면 때문에 못 하고 새벽과 밤에 폐지를 주우러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영진이 할머니네까지 왔다. 조금만 더 나가면 큰길이었고, 거기까지가 내가 마음대로 가도 되는 공간이었다. 예전에 고모는 특유의 와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놀려댔었다. 네 유년의 끄트머리가 고작 여기구나!
뛰는 내내 양 갈래로 땋은 머리가 두 뺨을 사각사각 문질렀다. 얼른 커서 이놈의 머리 잘라버려야 하는데. 머리를 자르지 못하는 건 순전히 엄마 탓이었다. 엄마는 내가 바지만 입는 것도 무척 싫어했다. 왜 좀 예쁜 옷을 입지 않는 거니. 그건 바지가 내 훈련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일 달려서 폐활량을 늘려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근력을 유지해야 했다. 치마를 입고 외모를 꾸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컴퓨터는 물론이고 전기와 물리학에도 능통해야 하는데, 치렁치렁한 머리는 연구에 방해가 될 뿐이다. 나는 멈춰 서서 할머니를 돌아보았다. 눈길이 스테인리스 그릇을 자꾸 훑는 걸 보니 음식 마련에 마음이 바쁜 모양이었다.
“할머니, 들리는가, 오버.”
돌아보니 할머니는 무전기 앞뒤를 살펴는 중이었다. 말을 하려면 무전기 옆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그게 눈에 띄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의 어른 손가락만 한 두께로 툭 튀어나온 그걸 왜 볼 때마다 찾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들려.”
“들리느냐, 오버.”
“자알 들려.”
“오버 해야지.”
“오버.”
“대답도 해야지.”
“응, 아니, 그래. 오버.”
느릿느릿한 할머니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목소리 사이에 있어야 할 치익치익 소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 잡음을 찾으려 커다란 무전기를 귀에 뗐다 댔고, 옆에 달린 손가락만 한 버튼을 거푸 눌렀고, 녹색과 붉은색의 등이 온전히 들어오는지 여러 번 살폈다. 터덜터덜 돌아오니 할머니는 무전기를 바닥에 내려놓고 긴 파를 꺼내 마당 수돗물에 씻고 있었다. 난 두 손으로 무전기를 흔들고 버튼을 누르고 앞뒤를 뒤집어가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사라진 잡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 소리 들렸어?”
“오버 했잖아.”
“아니, 치익치익 소리.”
녹색과 붉은색 빛은 잘도 들어왔다.
“어디 부품이 죽었나.”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았다. 성난 표정으로 내려 했던 말을, 할머니는 꿀꺽 삼켰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하려 들었고 왜 그만두었는지, 나는 모르지 않았다.
쪼그려 앉은 채 마당 잔디를 돌아보니 여름내 자란 잔디가 희끗해지는 중이었다. 지난 여름 고모 남자친구가 세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려가며 깎아주었었는데, 고모 앞에서는 그 얘기를 조심해야 했다. 늦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릴 즈음 그 아저씨 왜 안 데려오냐고 물었을 때, 고모 얼굴이 삽시간에 꺼메졌기 때문이었다. 난 사람 얼굴이 그렇게 재빨리 꺼메지는 건 두 번째로 보았다. 고모는 쳇 소리를 내며 그깟 새끼, 라고 중얼거렸지만 젖은 시선은 저 먼 하늘로 힐끗 돌았었다.
“할머니, 장 어디서 봤어.”
산성시장에서 봤을 게 빤했지만, 그래도 난 물어봤다. 난 할머니가 아니라 누구와도 침묵이 감도는 건 견딜 수 없다.
“산성시장 갔지.”
“걸어갔어?”
“자전거 탔지.”
자전거 얘기를 들으니, 금세 분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절대 안 된다며 금지했고, 엄마가 출근 전에 잔소리하는 게 바로 그거였다. 이 근방에 차가 많아서 안 돼. 그게 엄마의 이유였지만, 난 내가 꼬마라서 금지되었다는 걸 안다. 난 일곱 살이고 보조 바퀴까지 달렸으니 넘어질 일은 아예 없지만,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해선 안 되었다. 그래서 난 내 유치원 짝꿍인 은지네 집 갈 때에만 몰래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가서 준서 깼나 봐라.”
내가 할머니를 답답하게 여기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아기는 깨면 울기 마련이다. 깼나 보러 들어가다가 애를 깨우는 법인데, 할머니는 꼭 애가 어떤가를 보고 오라고 한다. 답답한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양쪽 허리에 무전기를 꽂고 볼륨을 줄였다. 끄지는 않았다. 치익치익 소리가 돌아오는지 확인해야 했다.
준서는 자고 있었다. 내가 그 옆에 엎드리자 허리에 찬 무전기가 방바닥에 덜커덕거렸다. 다행히 아기는 눈썹만 바르르 떨다가 숨을 도로 가지런히 했다. 이불에 덮인 볼록한 배가 오르내리는 걸 확인한 나는 젖냄새 나는 볼에 뽀뽀할까 하다가 깨울까 싶어 그만두었다. 말간 아가의 볼에서는 끈끈한 달콤함이 묻어났다. 다들 이래서 아기를 낳나 싶었다. 고모는 아기를 낳는 게 무섭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좀처럼 짓지 않는 뻐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언젠가 아빠는 아기를 낳는 일이 정말 숭고하고 멋진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멋진 일이 허락되지 않으니, 남자란 불쌍하고 우울한 존재라는 말씀도 하셨다. 남자가 어떤 기분일지 난 관심 없지만, 남자가 힘이 더 센건 사실이고 그건 내게 있어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물론 나는 아기를 낳지 않을 생각이다. 내겐 더 중요한 임무가 있기 때문에 아기를 낳는 이런 근사한 일을 할 짬이 없다.
할머니가 마당에 벌려놓은 걸 봐서는,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준서가 깨면 꼼짝없이 내가 돌봐야 할 상황이었다. 나는 아기를 덮은 이불 끄트머리를 잘 펴주고 발뒤꿈치를 들고 나왔다. 문을 닫을 때 소리가 나지 않는 방법 또한 아빠에게 배웠다. 문고리를 끝까지 돌리고, 닫힌 뒤에 문고리가 제자리로 돌아가도록 조심스레 놔라. 난 그 방법을 써서 비번인 아빠가 깨지 않도록 안방에 살금살금 들어가곤 했었다. 물론 잠든 아빠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 깨우는 데는 늘 실패했지만 말이다.
할머니는 칼과 도마를 들고 평상에 오르는 중이었다. 바짝 마른 감나무잎이 할머니 발아래에서 서걱거렸다. 사온 찬거리를 물에 담그거나 씻은 걸 털어 물이 빠지게 따로 둔 솜씨가 맵짰다.
“어디 나가 놀 생각 말고.”
명토 박아 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낮고 묵직했다. 나는 잎이 절반 정도 떨어진 감나무 너머 하늘을 슬쩍 바라보다가 깜빡 떠오른 듯 말했다.
“할머니, 나 파워스플라이 받으러 가야 하는데.”
파워스플라이의 전원 코드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낸 건 사흘 전이었다. 본체와 연결된 전선 이음매가 덜렁거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노란색 쇼핑 가방이 불룩해질 정도로 큰 파워스플라이를 담아 두어 번이나 쉬어가며 간 서영이네 전파사에서는 뒤로 이어진 전선 결합부가 낡았다며 오늘 오라고 일러주었었다. 그 탓에 나는 지난 사흘간 저 먼 데로 무전을 쏘아 올리지 못했었다.
“거기, 큰길 건너 저쪽에?”
큰 칼로 고기를 끊어내며 할머니가 물었다. 말투에서 벌써 안 된다는 기운이 그득했다.
“이따 갈까?”
나는 두리번거리는 할머니에게 행주를 찾아 건네주며 은근슬쩍 물었다.
“오늘은 안 돼.”
“안 될 게 뭐 있어.”
뒤를 돌아보니 고모가 와 있었다. 내 얼굴에 활짝 인 미소를 본 고모가 씩 마주 웃어주었다. 당연하게도, 할머니는 뾰로통한 표정이었다.
“할 일이 이리 많은데.”
“쟤한테는 그거 받으러 가는 것도 할 일이야.”
금방 받아오면 되지 않겠냐며 고모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할머니 마음이 바뀔세라 냉큼 달려가 고모 손을 잡았다. 폴짝거리며 앞장섰지만, 난 고모가 할머니 등을 쓱 문지르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건 그런 뜻이었다. 걱정 마세요, 엄마.
고모는 대전에서 중학생들을 상대로 논술을 가르쳤다. 그리고 학원 근처 오피스텔에서 혼자 지냈다.
“오늘 오느라 닷새 내내 보강 수업했다.”
“거기서 혼자 사니 좋아?”
“부럽냐.”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난 엄마도 안아줘야 하고, 준서도 업어 트림시켜야 하고, 때때로 울상 짓는 할머니에게 확 다가가 슬픈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게다가 내가 집을 비우면 파워스플라이가 먼지에 덮일 게 아닌가. 교신을 하지 못하면 아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고모가 내 허리에 손을 슬쩍 뻗어 무전기를 거둬갔다. 그러고는 쌍권총 든 서부의 총잡이처럼 성큼성큼 걸어갔다. 고모는 내가 무전기를 차고 있는 걸 보면 성질을 낸다. 다리 짧아지고 허리 길어져, 이년아.
하지만 오늘은 그런 말이 없다. 고모도, 할머니도, 오늘 출근하기 전의 엄마도.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난 왜들 그러는지 안다. 그 생각을 하니 다시금 분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 또한 나를 꼬마 취급하는 거 아닌가.
모두가 말을 안 하기에, 나 또한 비밀을 털어놓지 않고 있었다. 고모와 할머니와 엄마에게도.
물론 준서에게는 얘기했다. 그리고는 태어난 지 넉 달 된 그 애가 눈을 끄게 뜨곤 고개를 끄덕거리는 통에 무척 놀랐다. 그 애 또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아기들은 별에서 왔고, 준서는 넉 달 전에도 거기 있었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털어놓고 싶기도 했다. 고모가 평소처럼, 너도 아빠처럼 팔자로 걸으니 시집가긴 글렀다거나, 공주처럼 키웠더니 머슴처럼 논다던가, 공부 게을리했다간 고모처럼 분필 가루 덮인 밥 먹게 될 거라던가, 그렇게 기판과 전선만 들여다보면 잘 되어야 전파사 직원 신세라는 악담을 퍼부었더라면, 지금 손잡고 가는 고모에게 모든 걸 말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고모는 평소처럼 호탕하게 하하, 웃다가도 먼 하늘을 보며 저도 모르게 멍해지곤 했다. 어쩌면 평소 같지 않은 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을지도 몰랐다. 다른 날이었더라면 헤어진 남자친구 생각에 청승맞은 얼굴이냐고 한소리 했다가 꿀밤을 맞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나 또한 고모의 표정을 힐끗거리며 잡은 손에 힘을 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린 웅진동 주민센터를 지나 교차로를 건너 웨딩홀 뒤쪽으로 갔다. 슈퍼 옆에 자리한 서영이네 전파사는 허름하고 옹색했다. 세월에 찌들고 비바람에 상한 간판에는 글자가 흔적만 남아 있었다. 길가에 반쯤 나온 두꺼운 나무 탁자엔 이런저런 가전제품이 해체되어 있었고, 허리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드라이버로 뭔가를 조이고 계셨다. 나는 고모 손을 놓고 그리로 달려갔다.
“어이, 박사께서 오셨군.”
두툼한 안경 너머로 나를 넘겨다보는 전파사 할아버지의 엷은 눈이 반짝였다. 그러더니 내가 맡겨둔 노란 쇼핑 가방을 꺼내주었다.
“깔끔하게 고쳤다. 잘 돌아갈 거다.”
다가오는 고모를 본 할아버지가 씩 웃었다.
“어떠세요?”
“괜찮았어. 여름에 선풍기랑 에어컨 수리가 많았거든.”
“지독하게 더웠잖아요.”
두 분이 무슨 얘기를 나누던 나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파워스플라이를 켜 작동을 확인하고 싶어 몸이 배배 꼬일 지경이었다.
“난 우리 꼬마를 박사라 부르지.”
납땜하던 기판에서 피어오른 연기를 훅 분 할아버지가 히죽 웃었다.
“공부는 하고 있어? 전기는 물론이고 컴퓨터에 수력학하고 물리학까지 통달해야 해.”
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파워스플라이 뒤쪽에 딱쟁이처럼 남은 납땜 흔적을 살피는 중이었다.
“공부는 무슨 공부에요. 체력 단련한다고 만날 뛰고 턱걸이한다고 부산 떨고 무선통신 보낸다고 이마에 먼지나 묻히는걸요.”
고모는 학원에서 분필 가루 섞인 밥에 코 박느라 정신없을 텐데, 어쩜 내 삶에 그리 해박한지 모르겠다.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할머니께 생일선물로 받은 반드르르한 붉은색 동전 지갑엔 지폐가 꼬깃꼬깃했다.
“네 엄마가 주고 갔다. 그냥 가.”
내 머리를 툭툭 두들긴 할아버지의 손은 크고 두툼했다. 납땜을 잘하기엔 좋지 않은 손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할아버지를 흉내 내 히죽, 웃었다.
무전기까지 쑤셔 넣어 커다래진 노란색 쇼핑 가방은 고모가 들어주었다. 나는 안에 있는 파워스플라이가 예민하니 조심스레 다뤄달라고 부탁했다. 어휴, 이 기집애야. 고모는 꿀밤을 주는 대신 웃음을 터뜨렸지만, 역시나 평소와 같진 않았다. 힐끔힐끔 돌아보니, 고모는 성격대로 쇼핑 가방을 공중으로 덜렁덜렁 던져 올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퉁명스레 쏘아붙이고 싶지만, 성질이 나면 나한테 들라고 할 참이니 그냥 꾹 말을 삼켰다. 오른쪽 저 멀리로 공산성이 보였다. 거기엔 옛 왕이 쌓은 성과 공원과 절과 비석들이 있었다.
“요즘도 저기로 소풍가냐?”
“이번엔 무령왕릉에 갔어.”
“매점 지붕에 올라갔겠군. 엄마랑 준서 데리고 공산성 가봐. 운동 삼아.”
엄마는 공산성에 가지 않으려 할 게 빤했다. 하지만 난 그 얘길 하지 않았다.
우리 집 하얀 담 밖으로 음식 냄새가 흥건하게 풍겼다. 집 현관에 설치된 하얀 등이 마당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할머니는 침침한 걸 싫어하셨고, 담 아래 마당 깊은 곳은 서쪽 방향이라 어둑했다. 부탄가스로 켠 불 옆에 앉아 프라이팬을 다루는 할머니는 전과 부침개로 대광주리를 채우는 중이었고, 준서를 업은 엄마는 국 끓일 준비에 한창이었다. 준서를 받아든 고모는 아기의 뺨에 코를 비볐고, 엄마의 목을 끌어안은 나는 입술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엄마에게서는 먼지처럼 텁텁하고 매캐한 냄새가 났다. 난 아직 못 가봤지만, 아빠는 그게 교실에서 나는 냄새라고 알려주었었다. 고모가 현관문 아래 네 칸짜리 회색 계단에 아무렇게나 둔 노란색 쇼핑 가방을 들고, 난 방으로 갔다. 할머니가 내게 뭐라고 하는 듯싶었지만, 고모의 부주의함에 화가 나기도 했고 서영이네 전파사 할아버지가 부려놓은 솜씨를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아빠 책상 위에 수리를 한 WP30 파워스플라이를 놓고는 책상 아래 기어들어 가 전원장치를 콘센트에 끼웠다. 3w짜리 송수신기를 파워스플라이에 연결하고 안테나 검측 기기의 잭도 꽂았다. 안테나 조건 검측과 출력을 측정하는 기기의 게이지 바늘이 끝까지 돌았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기계가 네게 차분해지라고 일러주는 거란다. 아빠는 그렇게 알려주었었다.
나는 다시 책상 아래 기어들어 가 거기 처박힌 안테나를 꺼냈다. 아빠가 일본에서 사온 안테나였다. 그걸 꺼내 펴주는 건 평소 엄마가 해주던 일이었지만, 벅적거리는 바깥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그걸 들어 올리고 받침대를 펼쳐 간신히 세워놓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얀 기둥과 사방으로 뻗은 은색 가지를 지닌 안테나로 좁은 방 안이 꽉 찼다. 그래도 괜찮았다. 몸집이 작은 나는 그 사이를 다람쥐처럼 잽싸게 돌아다닐 수 있으니까. 안테나를 세우다가 머리카락이 은빛 가지에 얽히고 옷 소매가 걸리는 과정이 귀찮았지만, 이걸 세우지 않고는 무선부호를 저 먼 데로 쏘아 보낼 수가 없었다.
문에 딱 붙어서 보니 안테나는 잎이 다 떨어진 겨우내 감나무처럼 보였다. 붉은 등이 켜진 파워스플라이는 우우웅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바짝 붙인 몸으로 벽을 문지르면서 책상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헤드셋 잭을 파워스플라이에 꽂았다. 나는 도넛 모양의 목 베개를 목에 끼우고는 거기에 헤드셋을 얹었다. 아무리 조여도 헤드셋은 내 머리에 컸기에 그렇게 쓰는 게 그나마 최선이었다. 말랑말랑한 헤드셋 폼을 귀에 대기 전에 나는 고개를 돌려 킁킁 냄새를 맡았다. 거기에서는 아빠의 체취가 났다. 흐려지고 있지만, 기억에 또렷한 아빠의 흔적이, 거기 남아 있었다. 난 안테나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저 먼 데를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수동전건을 연결하니 꺼져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뭔가가 보랏빛 점액질에 푹 잠기는 느낌을 주는 소리였다. 미세한 잡음이 잔음처럼 이어져갔다. 나는 그게 저 먼 데로 뻗어 나가는 통로임을 안다. 나는 서랍에 든 무선부호 코드집을 꺼내 펼쳤다. 엄마가 붙여주신 좁고 얇은 무지개색 포스트잍이 책 가장자리에 아름다운 비늘 마냥 빼곡했다.
여기는 호출부호 HBU1CBC. 아직 거기 계시나요? 얼른 이리 오세요.
연습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송출되는 모스 부호는 제법 속도감 있게 이어졌다. 수동전건을 톡톡 두들기는 간격은 안정적이었다. 아빠가 봤다면 한가득 미소지었을 게 분명했다. 모스 부호를 두들기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또 또로또똣또 또또 또오 또 또롯 또오. 얼른 이리 오세요.
파워스플라이는 잘 작동하고 있었다. 귀에 들리는 낮은 잡음도 안정적이었다. 나는 안테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자기 전까지 연습해 이젠 심장박동도 그리 뛸 법한 박자들로, 나는 수동전건을 거듭 두들겨댔다.
돌아보니 엄마가 보였다. 어깨 너머로 돌아본 나는 씽긋 웃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다 엄마 허리를 안고 싶었지만, 헤드셋에 도넛 베개에 안테나에 둘러싸여서 복잡했다. 포대기에 싸여 업힌 준서는 먹은 젖을 흘리고 있었다.
“저녁 먹어야지, 아가.”
엄마에게 아가라 부르는 걸 언제 그만둘 거냐 물었었는데, 내가 시집가서 아가를 낳을 때까지란다. 내게 다른 계획이 있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리자, 엄마는 그 꿈을 다 이루더라도 내가 아가를 낳는 데는 지장 없을 세상이 곧 이뤄질 거라고 하셨다. 엄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분이니 옳은 말씀을 하시겠지만, 난 아기엔 별 관심이 없다. 그 대화 중에도 나는 복근과 상체 근육을 위해 맨손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이거 마저 보내고요.”
엄마는 이 방에 들어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애 아빠랑 하는 게 어찌 그리 똑같나 몰라요. 예전에 방문을 닫으며 할머니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엄마는 내가 아빠랑 닮는 게 걱정되었나 보다. 하지만 소방관을 하겠다는 꿈은 접었으니, 엄마가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같이 음식 하자.”
“중요한 일이에요.”
난 검지로 책상 위의 기기들을 애매하게 가리키며 대꾸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억지로 그리 해주신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걱정하셔.”
어차피 모두들 내 걱정을 하지 않는가. 내가 유치원에서 멀쩡히 있다가 울음을 터뜨리길 서너 번 한 뒤로, 다들 내 걱정을 끙끙 앓았다. 내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은 나뿐일 거다. 어쩌면 지금 엄마 어깨에 젖을 흘린 준서도 날 걱정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따가 아빠를 만나면 준서도 생각을 바꿀 게 분명했다.
엄마가 나간 뒤, 갑자기 흥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외워두었던 모스 부호를 두어 번 더 치고는 파워스플라이의 전원을 껐다. 안테나는 그대로 두었다. 어차피 이 방에 들어올 사람도 없을 테고, 지금 보내놓은 신호의 응답을 받으려면 저 은빛 나무가 굳건히 서 있어야 했다. 그랬다. 아빠는 저 안테나를 통해 오실 게 분명했다.
마당에서 도마 뚜닥거리는 소리와 프라이팬 지글거리는 소리가 줄어든 걸 보니 음식준비가 거의 끝난 모양이었다. 우리 집은 음식을 많이 하진 않는다. 마루에 엎드린 고모는 지방을 쓰고 있었다. 고모가 나를 올려다보기 전에 나는 소파에 폴짝 뛰어올랐다. 위패에 지방을 끼운 고모는 작은 나무문을 착 닫고는 향 상자를 열었다. 향을 꽂을 화로에 담긴 모래는 서걱서걱하니 알이 굵었다.
“지금 피워?”
소파 위에서 쪼그려뛰기를 하며 나는 물었다. 우주는 무중력이지만, 어느 순간에 위기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근력은 높은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책엔 쓰여 있었다. 내가 애지중지하는 <우주에서 살아남기>라는 두꺼운 책의 저자는 저 까만 공간에 네 번이나 다녀왔다고 했다. 그 책은 무선통신과 씨름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사준 생일선물이었다.
“상 차리고 피워야지.”
“지금 피웠음 좋겠다.”
난 향이 타오르는 냄새를 좋아했다. 멍하니 앉은 걸 보니, 고모는 지난 설에 내게 일러줬던 향의 의미를 까먹은 것 같았다. 고모는 향이 피워내는 연기를 가만 보면, 그게 꼭 구불구불한 길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영혼은 그 길을 밟고 이리 돌아오는 법이라고, 고모는 얘기해주었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엎드려서 팔굽혀펴기를 했다. 고모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너 아까 낮에 아이스크림 먹었냐?”
“왜.”
“당이 뻗어서 그리 날뛰나 하고.”
저래 가지고 제사 때까지 깨어있긴 글렀군 중얼거리며 고모는 마당으로 나갔다. 고모는 음식은 서툴지만, 설거지는 귀신이다. 슬리퍼 질질 끄는 소리 사이로 스테인리스 그릇 포개며 울리는 댕댕 소리가 들렸다.
향이 돌아올 길을 마련한다지만, 안테나 또한 그렇다. 그건 아빠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아빠는 안테나와 파워스플라이와 수동전건과 헤드셋이 있으면 세상 누구에게도 말을 건넬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아빠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오늘은 아빠가 오는 날이니까.
소방서는 멀지 않았고, 아빠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었다. 다음날은 비번이었고, 밤은 아주 까맸다. 로터리 안쪽에는 고장 난 차량이 서 있었다. 아빠는 비상등을 켠 그 차에 다가가 보닛을 열어보라고 하셨다고 한다. 어쩌면 아빠가 그 전날 내게 ‘내 손재주를 물려주마’라고 하지 않았던들, 아빠는 차를 얼른 고쳤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밤은 너무나 까맸고 랜턴은 껌뻑거려 아빠는 손이 더뎠다.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고 로터리 안쪽이 어두웠기에 술 취한 트럭 운전사는 정차한 차량과 아빠를 피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제사음식을 먼저 먹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고모에게 프라이팬을 퐁퐁까지 써가며 싹싹 닦게 하고는 그걸로 다시 음식을 해 식구들을 먹였다. 나는 부리나케 밥을 먹어치우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준서는 그새 또 젖을 먹고는 트림을 끄윽 내는 중이었다.
“그 옷 어딨어?”
“어떤 거?”
“분홍색 카디건.”
엄마는 뭔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보였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아빠가 사준 그 카디건을 입고 우린 공산성에 갔었다. 그때만 해도 준서는 엄마 배 속에 있었고, 아빠는 비번일 때마다 나와 함께 공산성에 올라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았었다.
“세상이 너무 밝고 충분히 어둡지 않아, 우린 별을 볼 수 없다네.”
곡조 비슷한 걸 담아 아빠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리 말할 때, 아빠는 벤치에 앉은 채로 양손을 엉덩이 뒤쪽으로 쭉 뻗고는 고개를 하늘로 젖혔었다.
엄마는 아빠가 그렇게 올려보았던 하늘로 갔다고 했다. 고모는 아빠가 별이 되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아빠가 거기 얹혀 있다고 했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가끔 체한 사람처럼 숨을 벅차 했다. 그러나 다들 모른다. 아빠는 그저 먼 데에 있을 뿐이었다. 나는 거기로 갈 것이다.
“저 먼빛은 수천 년에 걸쳐 여기 지구로 온 거래.”
아빠는 수천 년 여행한 그 빛이 각별하다고 하셨었다. 우리에게 반짝이려 수천 년을 날아온 것이기에, 그 인연은 짧은 기적과도 같다고 얘기하셨다. 그 놀라운 우연을 설명하는 아빠의 표정은 감격으로 인해 아름다웠었다.
오늘은 그날이다. 아빠가 저 먼 데에서 빛으로 오는 날. 안테나로 쏘아올린 내 목소리를 듣고 반짝이는 지구에서도 큰 대륙의 한 귀퉁이에 붙은 반도 귀퉁이에 자리한 도시 공주에 있는 우리집으로 타오르는 향을 타고 돌아오는 날. 준서를 안고 엄마에게 키스하며 나를 목말 태우고는 할머니와 고모를 향해 손 흔든 채 공산성에 함께 오르는 날.
문제가 있다면 파워스플라이였다. 지난 사흘간 보내지 못한 메시지 때문에 아빠는 우주 저 먼 데에서 오지 못하는 건 아닐까. 무전기의 출력도 미심쩍었다. 내가 쏘아 올린 모스 부호를 아빠는 대번에 알아듣겠지만, 그게 저 까만 공간으로 잘 올라가는지 의심스러웠다. 작년에도 아빠는 용케 우리집을 찾아왔지만, 자꾸 흐릿해지는 기억 탓에 향과 안테나와 나의 모스 부호가 없다면 어려웠을 거라고 털어놓았었다.
그게 내가 우주비행사가 되려는 이유였다. 여기 따분한 파란 행성에 앉아 매년 똑같은 모스부호를 두들길 생각이 내겐 없다. 나는 불을 뿜는 로켓을 타고 저 까만 공간으로, 하얀 별들이 소금처럼 흩뿌려진 창공으로 뛰어오를 생각이었다. 수만 개의 칩으로 이뤄진 깡통 속에서 난 파란 행성을 물끄러미 내려다볼 것이다. 체력은 문제가 안 되었다. 근력이 부족하지만 스마트함으로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아빠가 두 눈을 감고 곰곰 물려준 손재주가 있었기에, 전기 전자는 세상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문제는 수학이었다. 내가 우주로 가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바로 수학일 것이다. 문제 안에 답이 있다 하지만, 나는 숫자들이 나를 홀린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건 엄마가 수학을 잘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양 갈래머리에 리본을 묶은 내가 아가를 낳고 그럭저럭 지구에 붙어 있길 바랄 게 틀림없었다. 식사를 다 한 나는 무료하게 앉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엄마가 빙그레 웃는 모습이 보였다. 자꾸 세상이 가물가물해졌다. 우주선 조종석에 앉아 두 배의 중력을 받을 즈음에 느끼는 기분이 이런 걸까?
“저거 조는 거 봐라, 으이그.”
고모의 말투에는 내뱉는 말과 다른 감정과 억양이 실려 있었다. 졸음은 바다에서 밀려드는 안개처럼 희뿌옜고, 언젠가 사 먹었던 솜사탕같이 달콤했다. 눈을 비비던 나는 평상에서 벌떡 일어나 계단을 올라 방으로 가려 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한밤이었다. 밖에서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와 준서를 의식해서인지 발소리가 조심스러웠다.
안테나는 착착 접힌 채 책상 아래 들어가 있었다. 아빠의 발은 안테나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빠가 어깨 너머로 나를 돌아보며 웃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공주. 이젠 안아 올리지도 못하겠네.”
아빠는 그 무거운 산소통을 지고 15층까지 단숨에 올라가면서 나 하나를 들어올릴 때마다 그런 빈 소리를 했다.
“준서는?”
“데려가야지.”
아빠는 나를 들쳐 안고는 저쪽 방으로 슬며시 갔다. 엄마는 마당에 나가 없었고, 할머니는 신위에 시선을 둔 채 바위처럼 앉았고, 고모는 화장실에라도 갔는지 보이질 않았다. 아빠가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댔다. 나는 약속을 담은 눈동자를 아빠에게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서는 자고 있었다. 앞으로 매는 아기가방에 준서를 안아 올리고 아빠는 멜빵을 단단히 조였다. 아기는 코를 벌름거렸다. 얘도 나처럼 냄새로 아빠를 확인하는구나 싶어 고개를 돌리자, 아빠가 달싹이는 내 입술을 큰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덮었다.
밤은 이슥했고,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준서는 깨지 않았고, 아빠는 가끔 고개를 아기 뺨에 묻는 거 말고는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었다. 목말을 탄 나는 발이 덜렁거려 준서를 건드릴까 봐 불안했다. 나는 아빠의 뺨에 내 볼을 댔다. 아빠가 고개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가을바람이 찼다. 아빠의 발 옆으로 우르르 구르던 마른 잎들이, 내달리는 차들이 비추는 섬뜩한 불빛에 몸을 부딪쳤다. 그건 너무 끔찍한 생각을 불러들였기에 나는 냉큼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매표소 말고 다른 길로 가자.”
아빠가 로터리를 싫어한다는 걸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에 나는 멀리 돌아가자는 아빠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나는 내려서 걸었다. 우리는 경사로를 통해 천천히 저 위로 나아갔다. 철책과 담으로 가려진 길은 수풀로 빽빽했다. 하지만 아빠는 산성처럼 듬직한 체격을 지녔고, 그런 것 따윈 아무 문제 되지 않았다. 나무는 울창했고 아빠에게 밟히는 낙엽들은 건조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갔다. 나는 엄마가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엄마가 양보한 건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아빠는 일 년에 한 번 오고 내게 이 밤은 아주 소중하기 때문에, 엄마가 그랬을 확률은 꽤 높았다. 혹시나 엄마는 아빠를 만나는 다른 방법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엄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고, 공공장소에서는 울지 않는 어른이니 말이다.
아빠가 어디서 멈출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벤치에 앉은 아빠는 준서가 걱정되는지 몸을 뒤로 젖히지 않았다. 나는 아빠 옆에 다소곳이 앉았다.
“아빠, 저 빛이 뭔지 알아?”
아빠는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저 빛들은 별들이 꽁무니로 내는 불꽃이야.”
“로켓들이 발사되면서 나오는 불 같은 거네?”
“맞아.”
“그럼 우리는 별들의 뒤꽁무니를 보는 거로구나?”
그렇게 별들이 어둠 너머로 사라지면서 우리를 떠나가게 되는 광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걸 말로 하진 않았다.
우리가 별다른 뭔가를 한 건 아니었다. 우린 솜사탕 장수가 집에 가버린 걸 아쉬워했고, 편의점이 먼 걸 한탄했으며, 날이 추워 준서가 감기에라도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불이 켜진 곳은 닫혀버린 매점 옆 화장실뿐이었고, 거기에선 기운을 잃지 않은 나방들이 형광등에 맨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아빠는 나를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그건 안 될 일이었다.
“난 아빠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겠어.”
아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안테나를 켜고, 까만 공간으로 아빠를 부르는 말들을 쏘아 올리고, 그러면서 함께 했던 기억들을 되뇌면 그만이라고 아빠는 대답했다. 내가 아빠를 조르지 못했던 건 그 말에 담긴 단호함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내년이면 학교에 갈 거고, 열 살이 넘기만 하면 나사(NASA)는 몰라도 한국우주센터나 일본 쓰쿠바에 들어갈지를 타진할 수 있을 것이었다. 거기에서라면 아빠가 머무는 공간에 대한 내 추측과 실험을 도울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숙녀답게, 나는 아빠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빠. 준서를 앞에 맨 아빠는 팔을 뻗어 그걸 맞잡았다. 달은 거의 보름달이었고, 별들은 공산성을 둥글게 무리 짓고 있었다. 더할 수 없는 엄숙하고도 적절한 이별이었다.
배웅길에 아빠는 집안일 이것저것과 엄마와 할머니에 대해 물었다.
“네 고모야 사막에서도 온풍기 팔 여자고.”
그건 아빠에게 최고의 칭찬이었다. 난 아빠에게 할머니는 날 보면 울고 준서를 보면 안 운다고 말했다. 엄마는 준서를 보면 울었고 날 보면 그쳤다.
“엄마랑 할머니랑 같이 있으면 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내가 무선통신기기가 놓인 방으로 줄달음질 치는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바람은 찼고 낙엽은 굴렀고 내 가슴은 맑디맑았고 밤하늘은 텅 비었는데, 그건 아빠가 그곳들에 없고 내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몸에서 힘을 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발을 구르면 저 별에 닿을 것 같았고, 손을 뻗어 땅을 안으면 반짝이는 우리 지구에 잊히지 않을 지문을 남길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으로 우리는 남은 밤을 여느 부녀처럼 하나 마나 한 얘기들로 채워나갔다.
“아빠, 전파사 이름은 왜 서영이네 전파사야?”
“아, 그거? 그 할아버지 이름이 서영이야.”
“정말이야? 난 그 할아버지 딸 이름이겠거니 했는데.”
어떤 소리에서는 빛이 난다고 할머니는 말씀하신 적이 있다. 운동회가 벌어지는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와글거리는 소리에서는 움트는 녹색 빛이 나고, 남자친구를 슬쩍 올려다보던 고모의 뺨에서는 분홍빛이 반짝였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호숫가를 가득 채운 반딧불에는 꿀빛 선율이 흐를 테고, 우리 집 마당에 금빛으로 죽은 잔디를 밟는 바람에는 잿빛 우울이 담겼을지도 몰랐다. 지금 아빠와 내가 떠드는 소리에는 어떤 빛이 흐를까. 짙어지는 밤을 디딤돌 마냥 드문드문 밝히는 가로등의 오렌지빛으로, 우리 주변은 반짝였다. 우리는 천천히 나아갔고, 그 뒤에 남겨진 세상에는 깊은 잠 같은 어둠이 사박사박 쌓여갔다.
깨어보니, 밤은 우리집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고, 무슨 까닭인지 내 뺨은 축축하니 젖어 있었다. 문들은 모두 닫혀 있었고, 거실과 마당은 그릇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향의 자취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준서를 눕힌 아기울 옆에 깔아놓은 이불에 누워 엄마는 주무시고 계셨다.
오줌을 누고나서 으스스해진 어깨로 나는 마당에 잠시 섰다. 구름이 끼었는지 별들은 간혹 반짝일 따름이었다. 이렇게 왔던 것들은, 어디로 나아가는 걸까. 여기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디론가 가기 위해 여기에서 뭘 다져나가야 하는 걸까.
“여기, 여기요! 나로 12호, 진입에 성공했어요.”
센터로 보낼 메시지가 나도 모르게 흘러나왔고, 그 사이를 나뭇잎들이 사각사각 굴렀다. 우리는 언제쯤 이 까만 공간을 떠나오게 될까. 다 나아가고 나서도, 더 나아가야 할까. 그곳이 떠나왔던 어둠이어도, 우린 나아가야 하는 걸까.
방 안에서 준서가 발을 구르며 젖을 보채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덮었던 이불이 들춰지며 부스럭 소리를 냈다. 뒷꿈치를 들어 마당을 가로지른 내 귀에 젖 삼키는 꿀떡임과 엷은 잠 속에서 안도하며 길게 내는 엄마의 숨소리가 들렸고, 그건 어둠이 끝내 소멸시킬 수 없는 그윽하고도 또렷한 모스 부호처럼 여겨졌다. (*)
이중세
소설가·극작가·시나리오 작가·드라마 작가
출생 1978년, 서울
데뷔 2013년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대상
수상 2018년 제6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소설 부문
2017년 제7회 벽산희곡상
2016년 제2회 예스24 e연재 공모전 단편상
2015년 제8회 전국창작희곡공모전 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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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문학상 소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7편이었다. 다양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일정 정도의 수준을 갖춘 작품들이었다. 지상의 거처를 떠돌며 망자의 시선으로 관계를 돌아보는 <흙새>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패닉>은 불가항력의 사태에 허망하게 침수당하고 마는 생의 한 국면이 인상적이었다. 안정기라는 소재를 활용해 부재와 현존에 대해 천착한 <안정기>는 차분한 문장으로 서사를 찬찬히 쌓아가는 방식이 돋보였다. 장점들이 많은 작품이었으나 결말이 급작스럽거나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 단서들이 빠져 있거나 사회적 편견에 기대고 있다는 단점들이 아쉬웠다.
최종적으로 논의된 작품들은 <유령들>과 <시점과 관점> <먼 데에서의 귀환>이다. 세 작품 모두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성도를 갖춘 작품들이었다. <유령들>은 인생을 붙느냐 떨어지느냐의 0과 1의 세계로 살 수밖에 없는 취준생들의 경쟁과 의리와 인정들을 다뤘는데, 삶의 통찰로부터 나온 문장들이 특히 뛰어났다. <시점과 관점>은 가장 중층적인 구성으로 삶의 복합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윤과 어머니의 죄책감과 자서전 쓰기에서 드러난 임 노인의 허물 묻어두기는, 생의 난해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과가 뚜렷한 작품들이었으나 이전에 이미 많이 다루어진 소재인 데다, 그것을 역동적으로 살리지 못하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사용되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리하여 우리는 <먼 데에서의 귀환>을 최종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먼 데에서의 귀환>은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기술되어 얼핏 동화처럼 읽히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오히려 노인의 지혜와 같은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먹물을 끼얹은 것처럼, 설명할 수 없는 암흑의 세계. 거기서 별처럼 반짝이는 희망과 믿음.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열고 소통의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는 작은 몸부림과 시도들. 자신을 포함한 가족 모두의 상실과 아픔을 반딧불에서 꿀 빛으로 가로등의 오렌지 불빛으로 마침내 우주의 불빛으로 뻗어 나갈 때, 읽는 이로 하여금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렇게 왔던 것들이 어디로 나아가는지, 머무르는 것과 떠나는 것들의 힘은 무엇인지, 작가는 은근한 빛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어둠이 끝내 소멸시킬 수 없는 그윽하고 또렷한 모스 부호가, 당신들을 둘러싼 모든 어둠에 가 닿기를. 당신의 얕은 잠이 안도의 숨결로 깊고 포근하게 변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당신이 꿈꾸는 우주에 진입할 수 있기를. 작가가 그려낸 이 작은 우주가 더없이 따뜻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참 귀한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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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소감
수상의 격려란 한편으로 책임의 막중함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지난 10회까지의 수상자의 명단은 제게 거대한 봉우리로 여겨집니다. 여기까지 올라오라, 여기까지 네 문학을 단단히 키워올려라라는 따스한 격려로, 저는 감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홀로 걷는 사람은 있지만, 홀로 커온 사람은 없습니다.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디딜 수 없는 걸음이었습니다. 문학상을 몇 개나 타고, 몇 권의 책을 냈냐가 아닌, 매일의 책상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나날의 글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지로 작가는 평가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꽤 힘든 싸움이지만, 그 싸움에서 매일 이겨나가겠노라고 수상을 통해 다짐합니다.
별들이 아슬히 멀다는 시어로 어린 시절의 저는 검은 하늘에 촘촘히 박힌 의미들을 자꾸 되새기곤 했습니다. 별들이 소녀의 꿈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이상(李箱)이 그의 소설 동해(童骸)에 써두었듯, 앉아서 저는 듣고 있을 뿐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닿을 그 말들을 써내려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해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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