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치마폭 속에 숨지 말고
정면 돌파하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묵상해 보시기를..)
예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는 많으나 그분과 함께 고난을 당하려는 자는 없다. 떡을 나누어주시는 그분을 따르려는 자는 많으나 그분 고난의 잔을 마시려는 자는 없다. 그분의 기적을 숭배하는 자는 많아도 치욕을 그분과 함께 당하려는 자는 없다. 주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축복을 비는 자는 많으나 이는 그분에게서 위로를 받을 때뿐이다. 게다가 주님께서 잠시 떠나시면 우리는 크게 불평, 불만하며 크게 낙심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리 십자가 지는 것을 두려워 기피하는가. 만약 그대가 그분과 더불어 죽으면 그분과 함께 살아날 것이요 그분과 더불어 고난을 당하면 그분과 더불어 영광을 함께 누릴 것이다. 신성한 십자가의 길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극기의 길 외에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 없고 참다운 내적 평화의 길이 없다.
만약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십자가를 진다면 그 십자가는 비록 이 세상은 아닐지라도 이른바 고통이 끝나는 그곳으로 그대를 데려다 줄 것이다. 그대는 십자가를 지고 가지 않을 수 없으니 피하지 말고 정면 돌파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 십자가의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질 것이다. 만약 그대가 이 십자가를 회피한다면 머지 않아 또 다른 그러나 더 큰 십자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십자가는 어떠한 인간도 피할 수 없는데 그대는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세상의 어떤 이에게 고통이 없겠는가. 우리 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신 동안 단 한 시간이라도 괴로움 없이 지내신 적이 없다. 그런데 그대는 어이 이 십자가의 길 외의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가. 그대 주인이신 그리스도는 한 평생이 십자가요 순교였는데 그대는 어찌 자신의 안일과 쾌락을 찾고 있는가. 영적으로 더욱 더 높게 발전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무거운 십자가를 만나기 일쑤이다.
십자가를 사랑하여 육신을 괴롭혀 복종시키는 것은 인간 본성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며 영예를 회피하고 기꺼이 모욕을 참아내고 자기 자신을 멸시하고 남의 멸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인간 본성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며 온갖 환난과 손해를 참아내고 이 세상에서의 어떠한 풍요도 바라지 않는 것 역시 인간 본성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주께 의지한다면 하늘에서 불굴의 정신을 그대에게 내리시어 이 세상과 육신을 그대의 뜻대로 예속시킬 수 있으리라.
주님은 그대를 향한 애타는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그대가 조금만 더 씩씩한 삶을 산다면 주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뇨. 수많은 환난과 고통을 견딜 각오를 단단히 하라. 만약 그대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과 많은 위로를 받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중 어느 한 가지를 택한다면 그대는 의당 고난받는 것을 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을 것이니라" (눅 9:23)
그대가 저 세상에 갔을 때 당할 지옥의 몸서리쳐지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과 고역, 두려움이나 불안 등을 기꺼이 견디어 낼 것이다. 오래 평안하게 사는 삶보다 죽음을 더욱 깊이 생각한다면 틀림없이 그대는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 애를 쓸 것이다. 번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영혼의 일들을 생각하며 지옥의 실체를 느끼고 천국의 기쁨을 실제 믿는다면 어이 죄 가운데 그대로 앉아있을 것인가.
세상의 어떠한 고난과 불행도 지나가기 마련이다. 두려운 것은 영원의 어둠에 처하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육신에 목 매여 노예 생활하는 것은 정신력 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겸손한 기도요 이로 인해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 밖에 무력한 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동안 겪어온 자기 인생의 발자취나 지금도 가까이 고난 당하고 있는 이웃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는 누구든지 고통을 겪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리라.
그대 영혼이 몹시 불안해하고 번민할 그때가 바로 축복의 때일 수 있으니 낙망하지 말고 기운을 차리라.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물과 불의 고통을 지나지 않고는 안식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통 하는 대부분의 것은 우리 죄를 인함이니 참는 것이 어찌 아니 큰 것이랴. 내 죄를 인함이라! 참아 가며 고통을 달게 감수하는 시간들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가치 있는 일임을 잊지 말라.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자기 죄를 발견하기는 하나 그것을 기꺼이 인내하려 하기보다는 피하는 데만 급급해 한다. 사람이 충분히 생각하고 현세의 유배생활의 처지와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패역을 가늠해본다면 현 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은 정말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얼마나 큰 덕과 힘을 지녔는가는 역경을 당할 때 나타난다. 이 세상에서 짓는 어떠한 죄던 간에 그 벌은 자신에게 고통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고통은 피하려하면 더욱 마음은 불안해지고 무서워지지만 죽고자 하는 일념으로 돌진한다면 사라지리라. 고통을 한 번 피하여 안전하게 된다면 후로 줄곧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이 따라다닐 것이다. 매사 그대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고통을 당할 각오를 하지 않은 채 안락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자신의 뜻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중시하면 그만큼 자신의 장래의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요 하나님의 기쁨을 얻게 되리라. 주께서 그대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그대의 베옷을 벗기시고 기쁨으로 띠 띠우실 날이 멀지 않으리라. 위대한 성인들도 그러한 영고성쇠를 면치 못하였다. 열심이 있다가도 금새 연약하여 돌아앉는 날이 온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 성령이 임하고 물러나는 것은 당신의 뜻대로 하시기 때문이다. 욥이 말하기를 '아침마다 권징 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우리는 자주 사소한 일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이따금 사소한 일에서 크나큰 시험이 야기되기도 한다.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는 이토록 타락하기 쉽고 욕정을 억제하는데 약하며 자주 마음이 흔들리고 퇴보하는 사람들이다. 한 가지 환난과 시험이 물러가면 또 다른 것들이 닥쳐오고 게다가 먼저 일어난 싸움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전혀 예상치 못하던 싸움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큰 괴로움이 있고 수많은 곤궁과 재난에 속박 당하고 있는 삶을 어찌 사랑할 수 있을까. 이는 육체의 욕망이 너무나 큰 세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욕망에 반드시 따르는 고통과 곤궁이 우리로 하여금 현세에 대한 거부와 염증을 일으키게 하여 마음을 피곤케 하기 마련이다.
수많은 걱정 중에 있으면서도 마치 걱정이 없는 듯 지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걱정이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걱정 가운데 자신을 추스를 줄 아는 힘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무감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마음이라는 특권을 누리며 어떠한 피조물에도 무절제한 애정으로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다. 현세의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그런 걱정에 깊숙이 휘말리지 않아야 하며 육체의 수많은 욕구에서 벗어나 쾌락의 포로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대에게 어떠한 환란이 닥치더라도 절망하지 말아라. 주님은 모든 헤아림과 가늠을 초월하여 능히 갚아줄 수 있다. 그대는 그토록 길게는 수고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까지나 고통에 짓눌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잠깐만 기다려라. 그러면 그대의 재앙이 순식간에 끝남을 보게 되리라. 온갖 고통과 노고가 끝날 때가 오리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이 잊혀져 보잘 것 없고 덧없게 되리라. 영생은 이처럼 투쟁을 해서 얻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주께서만 아시는 어느 날이 되면 평안이 찾아들 것이니 그 날은 오직 영원한 빛과 한없는 밝음과 평안과 푸근한 안식만이 있을 것이다. 그대는 현세의 삶에서 즐거운 날을 바라지 않고 차라리 하나님을 위하여 괴로움을 달게 받으려 하고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을 최대의 기쁨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저 모든 상황을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이를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어찌 세상사 단 한 마디의 불평이라도 늘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진정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고통은 참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를 잃거나 얻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현세에서는 사람들이 수많은 죄에 오염되어 있고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있으며 온갖 두려움에 결박당해 있고 온갖 걱정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모든 호기심으로 마음이 산란해져 있고 온갖 허영에 휘말리고 있으며 수많은 노역으로 지쳐있고 거듭되는 시험에 시달리고 있으며 또한 잇단 쾌락으로 쇠잔해 있으며 궁핍에 찌들어 있다.
육신이 고통으로 황폐화되면 될수록 정신은 오히려 내적 은총에 힘입어 더욱 강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사람이 고통과 환란을 소망함으로 크게 위로 받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은총이 인간의 연약한 육체 속에서 너무나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감정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되며 재기의 희망이 모조리 사라진 것처럼 느껴져도 결코 비탄에 사로잡히거나 자포자기해서는 안 된다. 주께서 한때 몇 가지 환난을 그대에게 주신다고 해서 또는 그대가 바라는 위로를 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생각지 말라. 그런 것이 바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느니라. 만사가 뜻대로 되는 것보다는 역경에 처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 이따금 영적인 행복의 감미로움을 전혀 맛보지 못한 채 삭막한 황야에 내버려지는 것이 영혼에 얼마나 유익한지를 그대는 잘 모른다. 그렇게 됨으로 그대는 물질과 세상을 탐하는 마음에서 돌이켜 영혼을 유익하게 하는 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께서 그대에게 고통을 주시거나 뭔가 그대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주더라도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말라. 주님은 순식간에 그대를 곤경에서 구원하실 수 있고 그대가 진 모든 무거운 짐을 환희로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 아무튼 주님은 의로우시며 그대를 그토록 심하게 다루신다고 할지라도 크게 찬양 받으실만하다. 주께서 그대를 아끼지 않고 마구 고통으로 두들긴다고 해도 그대는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모든 역사는 언제나 선하시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어떠한 인간도 피할 수 없는데 ... 이 세상의 어떤 이에게 고통이 없겠는가 영적으로 더욱 더 높게 발전하는 사람은 내 죄를 인함이라! 참아 가며 고통을 달게 감수하는 시간들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가치 있는 일임을 잊지 말라. . 그대가 조금만 더 씩씩한 삶을 산다면 주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뇨... 아멘~~~~`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십자가는 어떠한 인간도 피할 수 없는데 ... 이 세상의 어떤 이에게 고통이 없겠는가 영적으로 더욱 더 높게 발전하는 사람은 내 죄를 인함이라! 참아 가며 고통을 달게 감수하는 시간들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가치 있는 일임을 잊지 말라. . 그대가 조금만 더 씩씩한 삶을 산다면 주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뇨... 아멘~~~~`
저도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