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리 탔다고 빨리 앉는 것은 아니다.
중국어를 선택했다는 것. 내가 미국이 아닌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앞으로도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중국어로 인해서 내 신분이 크게 상승했다거나 집안을 일으켰다거나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대의 나이에 많은 청춘이 겪는 취업의 고통이나 돈벌이의 막막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적어도 겪지 않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사실 난 언어 공부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는 1인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어느 날 ‘나 미국가...’라는 말 한마디를 던지고 비행기 뜨는 장면이 연출된다. 그리고 비행기 착륙 장면이 연출되면서 1년 후 또는 3년 후와 같은 세월이 흘렀음을 알리는 자막이 덧붙는다. 그리고 미국 간다는 매정한 말과 함께 떠났던 그는 멋진 선글라스에 끝내주는 정장을 입고 온갖 환영을 받으며 입국장을 유유히 통과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유창한 영어를 샬라샬라 해내는데 완전 멋있다. 그래서 나도 중국만 갔다 오면 자동으로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드라마를 믿다니 잠깐 미쳤었나보다. 드라마와는 달리 현실은 어릴 적에 오락실에 갔다가 걸려 엄마에게 맞을 때 보다 더 잔혹했다. 언제나 정체된 것만 같은 중국어 실력과 이런 곳에서 2년이란 시간(원래 계획은 2년이었다.)을 견뎌야 한다는 두려움,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혼자서 지내는 외로움이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남자 놈이 별나다고 할지도 모르나 그런 분께는 그냥 한마디만 해드리고 싶다. 가보소...
유학은 끊임없는 고독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했다. 언어의 장벽이란 의외로 높았고 쉽게 발전하지 않았다. 오죽 중국어를 해내고 싶었으면 지나가는 중국인과 뇌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단순히 중국어 공부를 위해서 선택했던 학업의 연장이었기에 체류 기간을 줄일 수 있다면 줄이고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서 경제활동을 하며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 역시 실로 적지 않았다. 그리고 지나는 시간에 비례하여 언어 실력도 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기에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하루도 쉴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중국에 온 지 한 달이 됐다고 하면 당연히 중국어가 서툰 것이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만 온 지 반 년이 지났는데도 어버버로 있다면 대체 넌 여기서 지금까지 뭘 한 거냐는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비난과 손가락질들이 아우라처럼 은근히 퍼져 나오는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하긴 나도 그랬다. 한국에 있을 땐 유학 갔다 온 친구들이나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 얘기가 오갈 때면 당연히 외국어를 잘할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의 지체도 없이 해버렸었다. 1년을 산 친구보다 3년을 산 친구가 더 잘 할 것이고 5년을 살다왔으면 그야말로 원어민 수준이라며 당연하다는 듯이 등급을 갈라놓았었다. 하지만 이게 웬걸...내 예전의 계산대로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히 늘어야하는데 제자리걸음인지가 꽤 오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 첫 끝 발이 뭐 끝 발이고 네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끝은 창대한 것이 언어이니. 버스에 빨리 탔다고 먼저 앉아서 가는 것 아니고 오래 타고 있었다고 반드시 앉게 되는 것도 아니니 시간이 지나도 늘지 않음에 주눅들 필요도 없고 포기는 더구나 해서는 안 된다. 나 역시 슬럼프가 있었고 정체기가 있었지만 끝내는 해냈다.
내가 인내심이 남보다 뛰어 난 것도 결코 아니다. 목욕탕에 가면 온탕에 5분을 채 참지 못하고 뛰쳐나와 버리는 저질 인내심의 표준이다. 정체와 슬럼프가 온다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중국어를 놓아도 좋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그 시간을 빼먹는다 하여 남보다 늦게 앉아가는 건 아니다. 슬럼프 극복을 위한 여행이니 취미 생활이니 이런 흔해 빠진 조언은 하지 않겠다. 당신과 내가 모든 것이 다르니 당신은 당신에게 맞는 극복법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있다. 참고로 난 역시나 사회인 야구였다.
드라마 속의 금의환향을 나 역시 갈망했다. 매일같이 그리운 고국을 생각하며 내가 중국어를 성공해서 당당하게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내가 막상 돌아갈 때의 내 옷차림과 행색은 드라마의 황태자는 아니니 남루하기 그지 없었지만 중국어만은 빛나고 있었다. 중국에 살더니 짱깨 다 돼서 이런 촌스러운 옷을 입고 왔냐며 핀잔은 들었지만 내면에 숨겨진 중국어는 그 진가를 아직 발휘하지 않았기에 내 나름의 금의환향이었다. 말 그대로 내가 그렸던 비행기 이륙 장면과 착륙 장면이 교차하면서 1년 6개월 후라는 자막과 함께 샬라샬라가 가능해져서 돌아왔다. 이만하면 금의환향 아닌가. 내가 하고자 하는 목표는 확실히 달성하고 왔으니 말이다. 멋진 선글라스, 끝내주는 정장 없어도 된다. 귀국할 때 내 머릿속에 중국어 하나면 된다. 그게 금의환향이다.
첫댓글 정말 슬럼프에 빠질 때가 한 번 이상은 있더라구요...여기까지 였었나? 초심은 저만치~갈등도 생기고 말이죠~~ㅎㅎ 뭐 그래도 늘 긍정적인 자기 합리화작전으로 슬럼프 탈출! 뭐 그리 급할것 있겠습니까?ㅎㅎㅎ 留得青山在,不怕没柴烧~~푸르고 무성한 산이 있는한, 땔나무는 걱정 없다.(가장 근본적인 생명과 건강이 있는한 이 후에 회복과 발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즉, 근본이 충실하면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ㅎㅎㅎ 加油!
마음가짐만 확실하다면 속도가 느린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심에 더욱 감사드립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ㅎㅎ 개인 생각이지만 내용과 비슷한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가면 더 멋질듯 합니다. ^^
중국에서 찍었던 사진을 한번 뒤적거려 봐야겠네요..^^
중국어도 간헐적으로 넣어주시면 공부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는데요,,..^^*^^
제 노트북이 중국어 타자가 계속 에러가 납니다...ㅠㅠ
ㅎㅎ 제이지님이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이렇게 제이지님의 글을 일고 있으니 팅부똥 유학일기가 생각나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네요^^
지금도 가끔 들어가서 다시 읽곤 합니다.. 전에 직장다닐때
사무실에서 읽다가 마치 미친 아줌마처럼 웃던게 생각나는군요... 웃음을 멈출수가 없어서.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흘린 눈물이 아마 한바가지쯤 될거예요^^
ㅎㅎ 팅부똥 유학일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게요..나중에는 정체현상이 너무 심해져서.. 1년정도있었어도 반년있었다는 뻥을 치는 수준까지..ㅋㅋㅋㅋㅋ 꾸준함이야 말로 그 벽을 넘을 수 있겠죠~
ㅎㅎ 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닌데 다들 그렇게들 생각하죠.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 봅시다~!
내가 나를 기특하게 여길 수 있는 금의환향,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나의 목표를 정하고 하트브레이크를 느끼며 도전하고 성취하는 기쁜 날들이 되길 바랍니다.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있는 성과를 내는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후회없는 결과를 낳고 싶습니다.^^
정말 공감되는 내용입니다. 공부 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치열하고 적극적인 자세를 배웁니다. 그리고 일일히 댓글을 달아주시는 성의도 돋보이는 군요.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의 댓글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이렇게나마 함께 소통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거든요.^^
요번주에 하얼빈행에 몸을싣고 출발해요, 일도하고 공부도 열심히 할려구요, 암튼 힘좀 주시길~~~
님의 성공을 온 마음 다해 기원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후회는 없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많습니다.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생활이기도 하구요.^^
부흥-부응(副應) : 오자인지 탈자인지 하나 발견ㅋㅋ
유학일기부터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진부한 질문일지 모르나 북경대 언어과정을 보니 비용이 적지 않던데 대강 일년에 어느정도로 생각하면 무리가 없을까요? (학비+체류비-기숙사.개인렌트)
오자발견 예리하시네요. ㅎㅎ 음..지금 환율이 꽤 높아져서 비쌀거에요. 학비는 한 학기에..지금 환율 기준으로 대략 200만원 정도 할거 같구요. 체류비는 깔끔한 원룸은 아마 50만원~60만원 정도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기숙사는 제가 안 살아봐서 모르겠네요. 정확한 수치는 아니에요~~^^;;
돈과 시간이 들어가야 늘겠지요~~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겠죠~^^
님의 글을읽으면 언제나 희망이생기고 힘이납니다...
다른건 필요업고...머리속에 중국어만 남을때까지...홧팅!!!^^
감사합니다.